탈리다 쿰 |
|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 |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 |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1. 시작기도: 말씀읽기:루가9,18-24
18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실 때에 마침 제자들도 함께 있었다. 이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합디까?” 하고 물으셨다.
19 그러자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다른 이들은 엘리야라고도 하며 또 다른 이들은 옛 예언자들 중 어느 예언자가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20 이어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러면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시니, 베드로가 대답하여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였다.
21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나무라시며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22 이어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으니, 인자는 마땅히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제관들과 율사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일으켜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23 그러고서는 모든 이를 향해 말씀하셨다. “누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24 사실 제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이야말로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제자들은 또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십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명(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시면서 당신을 따르기 위한 자세를 말씀해 주십니다.
18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실 때에 마침 제자들도 함께 있었다. 이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합디까?” 하고 물으셨다.
늘 기도하시는 예수님. 사도들을 선택하시기 전에도 홀로 기도하셨던 예수님. 이제 제자들에게 당신 사명의 신비를 전수해 주고자 준비하시면서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세주로서 지닌 사명을 어떻게 다할 것인가에 대하여 명백히 사도들에게 말씀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헤로데의 궁전에까지 퍼졌던, 예수님에 관한 대중의 생각을 알고 있었습니다.
19 그러자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다른 이들은 엘리야라고도 하며 또 다른 이들은 옛 예언자들 중 어느 예언자가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사도들에게 물으신 이유는 이해하지 못하는 군중의 마음을 지적하기 위함이고 더 나아가 제자들에게 혹시 잘못된 메시아 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 마음 또한 잡아주시기 위함입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엘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엘리야는 사람들의 지대한 존경을 받았으며 하느님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들어 높여졌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다시 오리라고 기대되고 있었습니다(말라4,5-6). 그리고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라는 추측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언자보다 더 높은 명예를 거의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더 높은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분명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분이 바로 메시아인줄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초자연적인 인물이기는 하나 메시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큰 기적을 보고 또 가르침을 들었으나 그들의 편견과 잘못된 가르침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20 이어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러면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시니, 베드로가 대답하여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였다.
천기누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21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나무라시며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메시아의 참 사명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들 자신도 아직 더 알아들어야 할 점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의 신비는 믿는 제자들에게만 계시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에게만 계시되었습니다. 이 신비는 신앙의 도정의 종점이자 목적이지 신앙의 시작은 아닙니다. 먼저 시대의 표징을 이해해야만 하고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이런 과정의 결실로서 예수님의 신비를 알게 될 것입니다.
22 이어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으니, 인자는 마땅히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제관들과 율사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일으켜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인자, 곧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인자”는 하늘에 살다가 종말에 세상을 심판하러 내려올 초월적 존재이며 종말론적 심판관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내려오신 분이요, 우리를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인간의 몸을 지니셨기에 당신의 인성이 받아야 하는 고통과 비허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말씀이었습니다.
당신은 유다의 권력자들에게 버림을 받고 죽게 되시지만, 그것으로써 비로소 구원의 신비는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이 슬퍼할 것을 알고 계셨기에 당신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미리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뿔뿔이 흩어진 것을 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23 그러고서는 모든 이를 향해 말씀하셨다. “누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 두 가지.
하나는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니.
둘 중의 하나라도 해보고 싶지만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어찌할까? 내 처지를, 어찌할까? 내 마음을…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먼저 자신을 버리고, 곧 개인적인 이익이나 욕심을 버리고 오로지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만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생활태도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모든 시련을 참아 내고, 하느님과 함께 살기 위하여 세속에 죽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율법의 손에 죽어서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위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디아 2,19-20)
24 사실 제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이야말로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개인적인, 이 세상에 속한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만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생활태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모든 시련을 참아 내며, 하느님과 함께 살기 위하여 세상에 얽매이는 마음을 죽인다는 뜻입니다. 개인적인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은 망할 것이요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이 말씀. 참으로 어렵습니다.
자기의 개인적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은 비록 그 이익을 얻을 지언정 하느님 나라에는 망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는 자는 비록 세상에서는 목숨을 잃을 지언정 하느님 나라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해야 되는 것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래서 비록 세상에서 순교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이득이라는 것입니다.
바쁘다고 성당 안 다니는 사람들. 시험이라고 성당 안 오는 학생들. 고3이라고 성당 멀리하는 학생들. 비록 그들이 세상 안에서 출세를 하고 부를 쌓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느님 나라에서까지 통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성당 다닌다고 해서 가난해 지는 것도 아니고, 시험 때 미사 나온다고 해서 성적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며, 고3 때 미사에 참례했다고 해서 대학 못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함께 생각해 봅시다
1.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인격과 가르침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버린다면 심판 날 사람의 아들에게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때 심판자로서 우리 앞에 서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자기를 버리고 세속에 대해서는 죽어야만 합니다. 내가 죽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다른 이를 앞에서 당당하게 신앙인임을 고백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 식사할 때 당당하게 성호경을 긋는 것.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의 청을 외면하지 않는 것. 핑계를 대면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어려움은 어떤 것입니까? “이것만은 하기 싫다고 생각되는 것”을 이야기해 봅시다.
2. 오늘 말씀의 다음 말씀에는 “온 세상을 벌어들인다 해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손해를 본다면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는 말씀이 이어서 나옵니다. 세상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내가 하느님 나라에도 가지고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봅시다.
3. 알림 및 공지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미사에 안나오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서로 관심을 가져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합시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탈리다 쿰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1. 시작기도: 말씀읽기:루가9,18-24
18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실 때에 마침 제자들도 함께 있었다. 이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합디까?” 하고 물으셨다.
19 그러자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다른 이들은 엘리야라고도 하며 또 다른 이들은 옛 예언자들 중 어느 예언자가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20 이어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러면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시니, 베드로가 대답하여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였다.
21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나무라시며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22 이어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으니, 인자는 마땅히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제관들과 율사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일으켜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23 그러고서는 모든 이를 향해 말씀하셨다. “누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24 사실 제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이야말로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제자들은 또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십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명(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시면서 당신을 따르기 위한 자세를 말씀해 주십니다.
18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실 때에 마침 제자들도 함께 있었다. 이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합디까?” 하고 물으셨다.
늘 기도하시는 예수님. 사도들을 선택하시기 전에도 홀로 기도하셨던 예수님. 이제 제자들에게 당신 사명의 신비를 전수해 주고자 준비하시면서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세주로서 지닌 사명을 어떻게 다할 것인가에 대하여 명백히 사도들에게 말씀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헤로데의 궁전에까지 퍼졌던, 예수님에 관한 대중의 생각을 알고 있었습니다.
19 그러자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다른 이들은 엘리야라고도 하며 또 다른 이들은 옛 예언자들 중 어느 예언자가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사도들에게 물으신 이유는 이해하지 못하는 군중의 마음을 지적하기 위함이고 더 나아가 제자들에게 혹시 잘못된 메시아 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 마음 또한 잡아주시기 위함입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엘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엘리야는 사람들의 지대한 존경을 받았으며 하느님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들어 높여졌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다시 오리라고 기대되고 있었습니다(말라4,5-6). 그리고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라는 추측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언자보다 더 높은 명예를 거의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더 높은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분명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분이 바로 메시아인줄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초자연적인 인물이기는 하나 메시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큰 기적을 보고 또 가르침을 들었으나 그들의 편견과 잘못된 가르침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20 이어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러면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시니, 베드로가 대답하여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였다.
천기누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21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나무라시며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메시아의 참 사명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들 자신도 아직 더 알아들어야 할 점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의 신비는 믿는 제자들에게만 계시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에게만 계시되었습니다. 이 신비는 신앙의 도정의 종점이자 목적이지 신앙의 시작은 아닙니다. 먼저 시대의 표징을 이해해야만 하고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이런 과정의 결실로서 예수님의 신비를 알게 될 것입니다.
22 이어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으니, 인자는 마땅히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제관들과 율사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일으켜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인자, 곧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인자”는 하늘에 살다가 종말에 세상을 심판하러 내려올 초월적 존재이며 종말론적 심판관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내려오신 분이요, 우리를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인간의 몸을 지니셨기에 당신의 인성이 받아야 하는 고통과 비허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말씀이었습니다.
당신은 유다의 권력자들에게 버림을 받고 죽게 되시지만, 그것으로써 비로소 구원의 신비는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이 슬퍼할 것을 알고 계셨기에 당신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미리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뿔뿔이 흩어진 것을 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23 그러고서는 모든 이를 향해 말씀하셨다. “누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 두 가지.
하나는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니.
둘 중의 하나라도 해보고 싶지만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어찌할까? 내 처지를, 어찌할까? 내 마음을…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먼저 자신을 버리고, 곧 개인적인 이익이나 욕심을 버리고 오로지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만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생활태도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모든 시련을 참아 내고, 하느님과 함께 살기 위하여 세속에 죽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율법의 손에 죽어서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위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디아 2,19-20)
24 사실 제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이야말로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개인적인, 이 세상에 속한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만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생활태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모든 시련을 참아 내며, 하느님과 함께 살기 위하여 세상에 얽매이는 마음을 죽인다는 뜻입니다. 개인적인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은 망할 것이요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이 말씀. 참으로 어렵습니다.
자기의 개인적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은 비록 그 이익을 얻을 지언정 하느님 나라에는 망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는 자는 비록 세상에서는 목숨을 잃을 지언정 하느님 나라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해야 되는 것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래서 비록 세상에서 순교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이득이라는 것입니다.
바쁘다고 성당 안 다니는 사람들. 시험이라고 성당 안 오는 학생들. 고3이라고 성당 멀리하는 학생들. 비록 그들이 세상 안에서 출세를 하고 부를 쌓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느님 나라에서까지 통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성당 다닌다고 해서 가난해 지는 것도 아니고, 시험 때 미사 나온다고 해서 성적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며, 고3 때 미사에 참례했다고 해서 대학 못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함께 생각해 봅시다
1.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인격과 가르침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버린다면 심판 날 사람의 아들에게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때 심판자로서 우리 앞에 서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자기를 버리고 세속에 대해서는 죽어야만 합니다. 내가 죽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다른 이를 앞에서 당당하게 신앙인임을 고백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 식사할 때 당당하게 성호경을 긋는 것.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의 청을 외면하지 않는 것. 핑계를 대면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어려움은 어떤 것입니까? “이것만은 하기 싫다고 생각되는 것”을 이야기해 봅시다.
2. 오늘 말씀의 다음 말씀에는 “온 세상을 벌어들인다 해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손해를 본다면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는 말씀이 이어서 나옵니다. 세상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내가 하느님 나라에도 가지고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봅시다.
3. 알림 및 공지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미사에 안나오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서로 관심을 가져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합시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