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다 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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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 |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 |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1.시작기도: 말씀읽기:루가10,25-37
25 그런데 마침 어떤 율법학자가 일어서서 예수를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습니까?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알아듣습니까?” 27 그가 대답하였다. “네 온 마음으로, 네 온 영혼으로, 네 온 힘으로, 네 온 정신으로 너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28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올바로 대답했습니다. 그대로 하시오. 그러면 살게 될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그런데 율법학자는 스스로 의로운 체하려고 예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30 예수께서는 (그 말을) 받아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매질하여 반쯤 죽여 놓고 물러갔습니다.31 그런데 마침 어떤 제관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도 피해 지나갔습니다.32 또 그와같이 한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는 피해 지나갔습니다.33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던 중 그에게 와서 보고는 측은히 여겨,34 다가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그의 상처를 싸매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사람을 제 짐승에 태워 여인숙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35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인숙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당신에게 갚아 드리겠소’ 하고 말했습니다. 36 당신은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맞은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합니까?” 37 그러자 그는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였다. 이에 예수께서는 그에게 “가서 당신도 그렇게 행하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예수님께서 나아가시는 길에 맨 먼저 장애물을 놓은 사람들은 언제나 잘났다고 생각하는 율법학자들입니다. 율법학자들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인간을 생명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이웃이란 다른 사람의 궁핍을 해소시켜 주는 사람임을 보여 줍니다. 이 사랑의 실천에는 종족, 인종, 국가, 사회계급의 장벽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같은 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 특히 가난과 곤경에 처한 사람이 바로 나의 이웃입니다. 법률가는 사랑에 한계를 정해 놓습니다. “누가 네 이웃인가?”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으로 “다른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기 위해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십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그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5 그런데 마침 어떤 율법학자가 일어서서 예수를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 물음은 신자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물음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물었던 물음이었고, 율법학자들의 제자들이 자기 스승에게 했던 물음이었습니다. “랍비,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 길을 걸음으로써 우리는 다가올 세상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의 질문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는데 있습니다. 교만, 음흉… 구원을 얻기 위한 행위는 율법서에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613가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적인 자세가 아니라 외적인 행위였습니다.
26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습니까?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알아듣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밝혀 주고 있는 율법으로 대답을 하십니다. 이제 그 율법학자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27 그가 대답하였다. “네 온 마음으로, 네 온 영혼으로, 네 온 힘으로, 네 온 정신으로 너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그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대해서 답을 했습니다. 아마 이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율법학자 하나가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그르쳐 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한 분이신 참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장엄하게 고백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느님 사랑에 대한 계명(신명기6,5)을 상기하였으며, 목숨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주저함 없이 하느님을 위해 살아가고자 하는 결심을 다졌습니다. 또한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 사랑을 완성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28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올바로 대답했습니다. 그대로 하시오. 그러면 살게 될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참으로 멋진 분이십니다. 그가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서 질문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를 칭찬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실천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행동이 옳다면 칭찬을 해주고, 그를 본받으려 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29 그런데 율법학자는 스스로 의로운 체하려고 예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런데 이 율법학자는 너무도 교만합니다. 아마 이 사람은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하고 기도했던 교만한 바리사이파 사람과 같은 모습입니다. 이 율법학자는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고 물은 것은 책망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이제 율법학자는 이웃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이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이스라엘에 사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레위19,34). 우기유대교에서 이방인에 대한 이 사랑은 한 분이신 하느님께 대한이스라엘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할례를 포함하여 율법을 준수하는 완전한 개종자들에게 한정되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반대파의 사람들도 이 사랑의 계명의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30 예수께서는 (그 말을) 받아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매질하여 반쯤 죽여 놓고 물러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꾸민 이야기이지만 유다인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는 길은 강도들의 습격이 빈번했습니다. 그는 그냥 어떤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종교도 모르고, 어디 사람인지도 모르고. 좌우지간 이 사람은 반쯤 죽었습니다.
31 그런데 마침 어떤 제관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도 피해 지나갔습니다.
32 또 그와 같이 한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는 피해 지나갔습니다.
왜 이 사제가 이 곳을 지나갔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성전 봉사의 기간을 마치고, 사제의 동네인 예리고로 돌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제라는 직책으로 보아 이 불쌍한 부상자에게 당연히 동정을 가지고 돌보아 주어야 할 터인데 그는 냉담하게 못 본 체 하고 지나가 버립니다.
레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사제와 함께 신명기에 있는 “너희는 동족의 나귀나 소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모른체해도 안된다. 반드시 동족을 도와 거들어 일으켜 주어야 한다”(신명22,4)고 한 가르침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지나쳐 버립니다.
아마 이들은 이 사람이 반쯤 죽은 것이 아니라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사람이 죽었을 경우 부정을 타지 않도록 그 시체를 만지지 않았습니다(레위21,1). 아니면 그들은 그들 자신이 강도들의 습격을 받을까 두려워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단지 시간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서일수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들은 쓰러져 있는 사람보다는 자신들을 더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데 모범이 되어야 할 그들이었지만 그래서 그것이 이웃사랑으로 드러나야 했지만 신앙 따로, 삶 따로의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지나쳤을 것입니다. 나랑 상관없는 일인데. 혹시 내가 연루되면 어쩌지. 나도 저렇게 당할지 몰라. 난 바쁘니까. 다른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신앙이랑 삶이랑 참 별개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33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던 중 그에게 와서 보고는 측은히 여겨, 34 다가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그의 상처를 싸매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사람을 제 짐승에 태워 여인숙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35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인숙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당신에게 갚아 드리겠소’ 하고 말했습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아예 상종하지도 않았고 서로 증오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인은 그를 가엾게 여기고 상처를 치료하여 여인숙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관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고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액수로는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닙니다. 기원전 140년경 이탈리아에서의 하루 숙박료는 1과 3분의 1데나리온 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쓰러진 사람을 구제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데에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조금만 내어 놓으면 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의 마음입니다.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제와 레위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음이…
나는 어떻습니까? 이웃 사랑을 위한 마음이 있습니까?
36 당신은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맞은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합니까?” 37 그러자 그는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였다. 이에 예수께서는 그에게 “가서 당신도 그렇게 행하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율법학자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세 사람 중 강도 맞은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이 누구냐고. 그런데 자존심이 있어서 그런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서 당신도 그렇게 행하시오!”
이웃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국적이나 종교, 당파, 직업, 지위 등이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못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 이웃입니다. 어떤 사람이랑도 동정을 호소할 때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이웃 사랑에 관한 계명을 실행하기 위한 가장 좋은 준비는 다른 사람들의 곤궁에 마음을 여는 자세를 지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꺼이 동정을 느껴야만 합니다. 평범한 성서적 표현을 빌자면 인간의 비참함을 “몸 속 깊이” 느껴야만 합니다. 비참한 모습을 보고 “안됐다”고 느끼는 사람은 사랑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5,7).
2.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신자들이 신자답게 살아갈 때 신자들은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것입니다.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돌아보면서 신자답게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봅시다.
2. 내가 도움을 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람은 누가 있습니까?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서 어떤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3. 알림 및 공지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 봅시다.
탈리다 쿰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1.시작기도: 말씀읽기:루가10,25-37
25 그런데 마침 어떤 율법학자가 일어서서 예수를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습니까?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알아듣습니까?” 27 그가 대답하였다. “네 온 마음으로, 네 온 영혼으로, 네 온 힘으로, 네 온 정신으로 너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28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올바로 대답했습니다. 그대로 하시오. 그러면 살게 될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그런데 율법학자는 스스로 의로운 체하려고 예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30 예수께서는 (그 말을) 받아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매질하여 반쯤 죽여 놓고 물러갔습니다.31 그런데 마침 어떤 제관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도 피해 지나갔습니다.32 또 그와같이 한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는 피해 지나갔습니다.33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던 중 그에게 와서 보고는 측은히 여겨,34 다가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그의 상처를 싸매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사람을 제 짐승에 태워 여인숙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35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인숙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당신에게 갚아 드리겠소’ 하고 말했습니다. 36 당신은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맞은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합니까?” 37 그러자 그는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였다. 이에 예수께서는 그에게 “가서 당신도 그렇게 행하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예수님께서 나아가시는 길에 맨 먼저 장애물을 놓은 사람들은 언제나 잘났다고 생각하는 율법학자들입니다. 율법학자들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인간을 생명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이웃이란 다른 사람의 궁핍을 해소시켜 주는 사람임을 보여 줍니다. 이 사랑의 실천에는 종족, 인종, 국가, 사회계급의 장벽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같은 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 특히 가난과 곤경에 처한 사람이 바로 나의 이웃입니다. 법률가는 사랑에 한계를 정해 놓습니다. “누가 네 이웃인가?”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으로 “다른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기 위해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십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그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5 그런데 마침 어떤 율법학자가 일어서서 예수를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 물음은 신자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물음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물었던 물음이었고, 율법학자들의 제자들이 자기 스승에게 했던 물음이었습니다. “랍비,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 길을 걸음으로써 우리는 다가올 세상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의 질문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는데 있습니다. 교만, 음흉… 구원을 얻기 위한 행위는 율법서에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613가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적인 자세가 아니라 외적인 행위였습니다.
26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습니까?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알아듣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밝혀 주고 있는 율법으로 대답을 하십니다. 이제 그 율법학자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27 그가 대답하였다. “네 온 마음으로, 네 온 영혼으로, 네 온 힘으로, 네 온 정신으로 너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그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대해서 답을 했습니다. 아마 이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율법학자 하나가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그르쳐 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한 분이신 참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장엄하게 고백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느님 사랑에 대한 계명(신명기6,5)을 상기하였으며, 목숨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주저함 없이 하느님을 위해 살아가고자 하는 결심을 다졌습니다. 또한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 사랑을 완성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28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올바로 대답했습니다. 그대로 하시오. 그러면 살게 될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참으로 멋진 분이십니다. 그가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서 질문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를 칭찬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실천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행동이 옳다면 칭찬을 해주고, 그를 본받으려 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29 그런데 율법학자는 스스로 의로운 체하려고 예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런데 이 율법학자는 너무도 교만합니다. 아마 이 사람은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하고 기도했던 교만한 바리사이파 사람과 같은 모습입니다. 이 율법학자는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고 물은 것은 책망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이제 율법학자는 이웃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이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이스라엘에 사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레위19,34). 우기유대교에서 이방인에 대한 이 사랑은 한 분이신 하느님께 대한이스라엘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할례를 포함하여 율법을 준수하는 완전한 개종자들에게 한정되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반대파의 사람들도 이 사랑의 계명의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30 예수께서는 (그 말을) 받아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매질하여 반쯤 죽여 놓고 물러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꾸민 이야기이지만 유다인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는 길은 강도들의 습격이 빈번했습니다. 그는 그냥 어떤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종교도 모르고, 어디 사람인지도 모르고. 좌우지간 이 사람은 반쯤 죽었습니다.
31 그런데 마침 어떤 제관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도 피해 지나갔습니다.
32 또 그와 같이 한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는 피해 지나갔습니다.
왜 이 사제가 이 곳을 지나갔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성전 봉사의 기간을 마치고, 사제의 동네인 예리고로 돌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제라는 직책으로 보아 이 불쌍한 부상자에게 당연히 동정을 가지고 돌보아 주어야 할 터인데 그는 냉담하게 못 본 체 하고 지나가 버립니다.
레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사제와 함께 신명기에 있는 “너희는 동족의 나귀나 소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모른체해도 안된다. 반드시 동족을 도와 거들어 일으켜 주어야 한다”(신명22,4)고 한 가르침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지나쳐 버립니다.
아마 이들은 이 사람이 반쯤 죽은 것이 아니라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사람이 죽었을 경우 부정을 타지 않도록 그 시체를 만지지 않았습니다(레위21,1). 아니면 그들은 그들 자신이 강도들의 습격을 받을까 두려워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단지 시간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서일수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들은 쓰러져 있는 사람보다는 자신들을 더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데 모범이 되어야 할 그들이었지만 그래서 그것이 이웃사랑으로 드러나야 했지만 신앙 따로, 삶 따로의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지나쳤을 것입니다. 나랑 상관없는 일인데. 혹시 내가 연루되면 어쩌지. 나도 저렇게 당할지 몰라. 난 바쁘니까. 다른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신앙이랑 삶이랑 참 별개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33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던 중 그에게 와서 보고는 측은히 여겨, 34 다가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그의 상처를 싸매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사람을 제 짐승에 태워 여인숙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35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인숙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당신에게 갚아 드리겠소’ 하고 말했습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아예 상종하지도 않았고 서로 증오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인은 그를 가엾게 여기고 상처를 치료하여 여인숙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관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고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액수로는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닙니다. 기원전 140년경 이탈리아에서의 하루 숙박료는 1과 3분의 1데나리온 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쓰러진 사람을 구제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데에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조금만 내어 놓으면 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의 마음입니다.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제와 레위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음이…
나는 어떻습니까? 이웃 사랑을 위한 마음이 있습니까?
36 당신은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맞은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합니까?” 37 그러자 그는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였다. 이에 예수께서는 그에게 “가서 당신도 그렇게 행하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율법학자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세 사람 중 강도 맞은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이 누구냐고. 그런데 자존심이 있어서 그런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서 당신도 그렇게 행하시오!”
이웃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국적이나 종교, 당파, 직업, 지위 등이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못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 이웃입니다. 어떤 사람이랑도 동정을 호소할 때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이웃 사랑에 관한 계명을 실행하기 위한 가장 좋은 준비는 다른 사람들의 곤궁에 마음을 여는 자세를 지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꺼이 동정을 느껴야만 합니다. 평범한 성서적 표현을 빌자면 인간의 비참함을 “몸 속 깊이” 느껴야만 합니다. 비참한 모습을 보고 “안됐다”고 느끼는 사람은 사랑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5,7).
2.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신자들이 신자답게 살아갈 때 신자들은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것입니다.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돌아보면서 신자답게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봅시다.
2. 내가 도움을 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람은 누가 있습니까?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서 어떤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3. 알림 및 공지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