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 32주일 셀 모임 자료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탈리다 쿰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부활에 대한 논쟁


1. 시작기도: 말씀읽기:루가 20,27-40


27  부활이 없다고 [반대] 주장을 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질문하여


28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모세가 기록하여 우리에게 남긴 바에 의하면, 어떤 사람의 형제가 부인을 데리고 살다가 죽고 자식이 없는 경우, 그 동기는 그 부인을 맞아 자기 형제에게 후사를 세워 주도록 해야 합니다. 29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아내를 맞았으나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 31  이어서 셋째가 그 여인을 맞았고 이렇게 하여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부인은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사실 일곱이 (모두) 그 여인을 아내로 삼았으니 말입니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갑니다.


35  그러나 저 세상, 곧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장가들지도 않고 시집가지도 않습니다. 36  사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죽는 법도 없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자녀들이므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일으켜진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덤불 대목에서 밝혔는데, 그는 주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라 하였습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사실 모두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39  그러자 율사 몇 사람이 대답하여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였다.


40  사실 그들은 예수께 감히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부활에 대한 논쟁


가끔은 오늘 이 순간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뭐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되지…” 하지만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끝나는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죽어서 하느님 앞에 섰을 때, “그래! 너는 세상에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일을 많이 했구나…잘했구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 시대에는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한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게 대두되었었고, 유다이즘 가운데는 이에 대해 서로 대립적 입장을 취하는 두 개의 그룹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였습니다. 사제 계급에 속하면서 우두머리 노릇을 했던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오늘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극단적인 예를 들어 부활신앙을 공격합니다. 첫 남편이 결혼했다가 자녀 없이 죽으면 결혼하지 않은 그의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율법 규정(수혼법: 신명 25,5-6 참조)에 따라 계속해서 일곱 남편을 맞게 되는 한 여인의 경우를 들 고 있습니다.




27  부활이 없다고 [반대] 주장을 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질문하여


사두가이파는 당파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종교적 귀족 계급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레위 종족이던 사독의 자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귀족이었으나 이스라엘의 순수 종교와는 먼 거리를 두고 살아 왔습니다. 그들은 외적 신심에는 충실하였지만 종교적 교리를 업신여기고 전례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성서만을 받아들였고, 조상들의 전통은 배격하였습니다. 그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적 존재도 다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죽은 이의 부활에 대한 부인으로 그들은 바리사이파와 그 밖의 랍비적 신심의 추종자들과 첨예하게 구별되었습니다. 그러니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비웃으며 성서의 수혼제를 빌려서 예수님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28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모세가 기록하여 우리에게 남긴 바에 의하면, 어떤 사람의 형제가 부인을 데리고 살다가 죽고 자식이 없는 경우, 그 동기는 그 부인을 맞아 자기 형제에게 후사를 세워 주도록 해야 합니다. 29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아내를 맞았으나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 31  이어서 셋째가 그 여인을 맞았고 이렇게 하여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부인은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사실 일곱이 (모두) 그 여인을 아내로 삼았으니 말입니다.”


율법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형제가 함께 살다가 그 중의 하나가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에 그 남은 과부는 일가 아닌 남과 결혼하지 못한다. 시동생이 그를 아내로 맞아 같이 살아서 시동생으로서의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난 첫아들은 죽은 형의 이름을 이어받아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신명25,5-6)




그런데 모세의 이 법은 두 형제가 같은 집에 살고 있을 때에만 적용이 되었는데,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그것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 이런 극단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외통을 걸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수혼제는 부활이 있을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역겹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으려고 하는 행동.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모습안에서… 상대방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만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갑니다. 35  그러나 저 세상, 곧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장가들지도 않고 시집가지도 않습니다. 36  사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죽는 법도 없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자녀들이므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유다인들의 부활 신앙에는 부활 후에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현세에서의 삶과 비슷한 삶을 계속 누릴 것이라는 믿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한 삶은 우리 현세 생활의 연장이 아닙니다. 만일 현세 생활의 고통을 그래도 갖고서 영생을 살아간다면 그것이 과연 천국이겠습니까? 어느 영화에서 천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을 죽인 이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이곳에서 살겠습니까?”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천국에서의 우리의 모습은  좀 달라질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도 변화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세상의 인연의 고리는 모두 끊겨 지지 않겠습니까? 좌우지간 천국에서의 삶은 다르긴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일도 아닌 것을 걱정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는 지옥에 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는데 천국 걱정은 해서 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사두가이파 사람처럼 예수님과 논쟁하려 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만이 영광스러운 삶에 초대를 받게 될 것입니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일으켜진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덤불 대목에서 밝혔는데, 그는 주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라 하였습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출애3,6).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 자신을 선조들이 숭배하고 있는 그 하느님으로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조들이 여전히 하느님을 자신들의 하느님으로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죽었다면 결코 하느님을 숭배할 수 없습니다. 즉 그들의 육신은 이 세상에서 죽었지만 하느님을 믿고 따랐기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충실히 섬긴 사람은 죽은 뒤에 가장 완전한 상을 받을 것인데 그것은 바로 부활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시작이니 하느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 함입니다.




사실 모두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로마 6,4-5).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을 체험하기 시작한 사람만이 마지막 부활을 믿을 수 있고 또한 갈망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오직 이 지상에서 이미 시작된 하느님과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는 생명의 체험의 승화로서 이해될 때만이 그것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그것이 믿는 이들에게 주는 기쁨의 의미가 살아나게 된다.


그러기에 그런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신앙인들은 오늘도 부활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 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그런 부류인 것입니다. 정수기에 물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동차에 기름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앙인이 하느님 안에서 살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전 연애편지에“당신 없는 세상은 앙꼬없는 호방이요, 잉크 없는 만년필이요, 고무줄 빠진 거시기요. 모래없는 사막이니….”이렇게 썼던 것을 생각해보면서 내 안에 하느님이 안계시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2.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부활한 후의 내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어떤 모습일까요?


2. 내가 하느님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을 말할까요?




3. 알림 및 공지   


1. 성서를 한 주일에 한번은 펼쳐보기. 2. 시간 잘 지키기


2. 셀 모임에 충실히 참여하기. 미사에 친구들이 참례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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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탈리다 쿰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부활에 대한 논쟁

    1. 시작기도: 말씀읽기:루가 20,27-40

    27  부활이 없다고 [반대] 주장을 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질문하여

    28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모세가 기록하여 우리에게 남긴 바에 의하면, 어떤 사람의 형제가 부인을 데리고 살다가 죽고 자식이 없는 경우, 그 동기는 그 부인을 맞아 자기 형제에게 후사를 세워 주도록 해야 합니다. 29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아내를 맞았으나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 31  이어서 셋째가 그 여인을 맞았고 이렇게 하여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부인은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사실 일곱이 (모두) 그 여인을 아내로 삼았으니 말입니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갑니다.

    35  그러나 저 세상, 곧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장가들지도 않고 시집가지도 않습니다. 36  사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죽는 법도 없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자녀들이므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일으켜진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덤불 대목에서 밝혔는데, 그는 주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라 하였습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사실 모두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39  그러자 율사 몇 사람이 대답하여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였다.

    40  사실 그들은 예수께 감히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부활에 대한 논쟁

    가끔은 오늘 이 순간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뭐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되지…” 하지만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끝나는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죽어서 하느님 앞에 섰을 때, “그래! 너는 세상에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일을 많이 했구나…잘했구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 시대에는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한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게 대두되었었고, 유다이즘 가운데는 이에 대해 서로 대립적 입장을 취하는 두 개의 그룹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였습니다. 사제 계급에 속하면서 우두머리 노릇을 했던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오늘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극단적인 예를 들어 부활신앙을 공격합니다. 첫 남편이 결혼했다가 자녀 없이 죽으면 결혼하지 않은 그의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율법 규정(수혼법: 신명 25,5-6 참조)에 따라 계속해서 일곱 남편을 맞게 되는 한 여인의 경우를 들 고 있습니다.


    27  부활이 없다고 [반대] 주장을 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질문하여

    사두가이파는 당파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종교적 귀족 계급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레위 종족이던 사독의 자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귀족이었으나 이스라엘의 순수 종교와는 먼 거리를 두고 살아 왔습니다. 그들은 외적 신심에는 충실하였지만 종교적 교리를 업신여기고 전례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성서만을 받아들였고, 조상들의 전통은 배격하였습니다. 그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적 존재도 다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죽은 이의 부활에 대한 부인으로 그들은 바리사이파와 그 밖의 랍비적 신심의 추종자들과 첨예하게 구별되었습니다. 그러니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비웃으며 성서의 수혼제를 빌려서 예수님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28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모세가 기록하여 우리에게 남긴 바에 의하면, 어떤 사람의 형제가 부인을 데리고 살다가 죽고 자식이 없는 경우, 그 동기는 그 부인을 맞아 자기 형제에게 후사를 세워 주도록 해야 합니다. 29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아내를 맞았으나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 31  이어서 셋째가 그 여인을 맞았고 이렇게 하여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부인은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사실 일곱이 (모두) 그 여인을 아내로 삼았으니 말입니다.”

    율법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형제가 함께 살다가 그 중의 하나가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에 그 남은 과부는 일가 아닌 남과 결혼하지 못한다. 시동생이 그를 아내로 맞아 같이 살아서 시동생으로서의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난 첫아들은 죽은 형의 이름을 이어받아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신명25,5-6)


    그런데 모세의 이 법은 두 형제가 같은 집에 살고 있을 때에만 적용이 되었는데,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그것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 이런 극단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외통을 걸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수혼제는 부활이 있을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역겹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으려고 하는 행동.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모습안에서… 상대방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만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갑니다. 35  그러나 저 세상, 곧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장가들지도 않고 시집가지도 않습니다. 36  사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죽는 법도 없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자녀들이므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유다인들의 부활 신앙에는 부활 후에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현세에서의 삶과 비슷한 삶을 계속 누릴 것이라는 믿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한 삶은 우리 현세 생활의 연장이 아닙니다. 만일 현세 생활의 고통을 그래도 갖고서 영생을 살아간다면 그것이 과연 천국이겠습니까? 어느 영화에서 천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을 죽인 이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이곳에서 살겠습니까?”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천국에서의 우리의 모습은  좀 달라질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도 변화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세상의 인연의 고리는 모두 끊겨 지지 않겠습니까? 좌우지간 천국에서의 삶은 다르긴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일도 아닌 것을 걱정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는 지옥에 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는데 천국 걱정은 해서 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사두가이파 사람처럼 예수님과 논쟁하려 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만이 영광스러운 삶에 초대를 받게 될 것입니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일으켜진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덤불 대목에서 밝혔는데, 그는 주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라 하였습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출애3,6).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 자신을 선조들이 숭배하고 있는 그 하느님으로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조들이 여전히 하느님을 자신들의 하느님으로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죽었다면 결코 하느님을 숭배할 수 없습니다. 즉 그들의 육신은 이 세상에서 죽었지만 하느님을 믿고 따랐기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충실히 섬긴 사람은 죽은 뒤에 가장 완전한 상을 받을 것인데 그것은 바로 부활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시작이니 하느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 함입니다.


    사실 모두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로마 6,4-5).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을 체험하기 시작한 사람만이 마지막 부활을 믿을 수 있고 또한 갈망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오직 이 지상에서 이미 시작된 하느님과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는 생명의 체험의 승화로서 이해될 때만이 그것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그것이 믿는 이들에게 주는 기쁨의 의미가 살아나게 된다.

    그러기에 그런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신앙인들은 오늘도 부활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 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그런 부류인 것입니다. 정수기에 물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동차에 기름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앙인이 하느님 안에서 살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전 연애편지에“당신 없는 세상은 앙꼬없는 호방이요, 잉크 없는 만년필이요, 고무줄 빠진 거시기요. 모래없는 사막이니….”이렇게 썼던 것을 생각해보면서 내 안에 하느님이 안계시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2.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부활한 후의 내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어떤 모습일까요?

    2. 내가 하느님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을 말할까요?


    3. 알림 및 공지   

    1. 성서를 한 주일에 한번은 펼쳐보기. 2. 시간 잘 지키기

    2. 셀 모임에 충실히 참여하기. 미사에 친구들이 참례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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