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대림 제3주일 셀모임 자료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자선주일










탈리다 쿰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1. 시작기도: 말씀읽기: 마태11,2-11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하고 묻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진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 간 뒤에 예수께서 군중에게 요한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그렇다면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그런데 사실은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보았다. 성서에, 10  ‘너보다 앞서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네 갈 길을 미리 닦아 놓으리라’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사람을 가리킨 것이다. 11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일찌기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나바태아인의 침략 위협을 받은 헤로데 안티파스는 동쪽 국경을 굳게 지키려고 그들의 왕 아레타 4세의 딸과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이복 동생 헤로데 필립보를 찾아 갔을 때 계수요, 조카벌인 헤로디아를 만나 자기와 결혼하자고 유혹을 했습니다. 허영심에 가득 찬 헤로디아는 인륜을 저버리고 곧 승낙을 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아레타의 딸은 쫓겨날 비참한 운명을 비하려고 스스로 친정으로 돌아갔고, 헤로디아는 필립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살로메를 안티파스의 양녀로 삼아 데리고 갔습니다.


패륜의 이 한 쌍은 추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들의 행위는 간통이요, 가정파괴요,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이었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솔직하게 꼬집어 주었습니다. 세례자의 이 비난은 안티파스에게 아물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혔고, 또 허영심 때문에 패륜의 길을 걷는 헤로디아에게는 복수심을 뿌리박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위협이나 협박도 세례자 요한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감옥에서 그는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냈습니다.




2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시켜 물어 보게 한 질문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메시아의 사자로서 그분의 길을 닦아 놓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 메시아의 사자. 그는 메시아에 대한 행적을 감옥에서 남들의 말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들을 예수님께 보냈다. “내가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깨닫도록 가 묻고 오너라….내가 언제나 말하고 있던 사실을, 예수님 자신에게 직접 들어 보기 위해. 너희들은 선구자의 말을 들었지만 그것을 심판자의 말씀으로 확인하고 오라…”라고. 그러니까 제자들은 요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의심을 풀기 위해서 간 것이다. 즉 세례자 요한이 의심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위해서 보낸 것이라는 것이다.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 뿐 아니라 일반 대중을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 메시아성의 선언을 청했을 것이다.  요한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든가, 또 그가 불안에 빠져 있었다고 하는 해석은 복음서에서는 추리될 수가 없다. 만일 요한이 불신에 의해서 제자들을 보냈다면 제자들을 보낸 다음 하신 요한에 대한 칭찬은 결국 조롱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조롱이 아니라 칭찬이었다. 그 무엇으로 보답하기 어려운 칭찬이었다.




3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하고 묻게 하였다.


요한은 감옥에 있으면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들을 들었습니다.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죄인을 용서하시고,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그 당시에는 메시아를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요한은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제자들의 믿음을 위해서, 그리고 메시아아의 사자로서의 역할을 위해.




4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저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알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듣고 본 대로 바로 예수님은 메시아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연 나는 듣고 본 것을 알리는가? 보지도 않고, 듣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부풀려서 말하기만을 좋아하는가? 상대방을 좋은 말로 칭찬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안좋게 말하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나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진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이것은 메시아의 시대가 기적의 시대라고 예언한 예언자의 말을 성취시키고 있는 것이며(이사야 26,19 “죽은 자”, 29,18-19 “귀머거리, 가난한 자”, 35,5 “소경과 귀머거리”, 61,1 “억눌린 자”),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을 눈으로 보면서 예수님께서 바로 메시아이심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행적은 메시아가 확실한데 자신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으니 말씀해 달라는, 확신을 달라는 그런 요청입니다.


기적은 메시아의 특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소경을 보게 하고 절름발이를 제대로 걷게 하며 나병환자를 고치지 못하지만 예수님께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것을 예수님께서는 하고자만 하시면 아주 쉽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의심을 품는다는 것은 발에 돌에 걸려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걸림돌은 남이 쓰러질 기회가 되는 것이나 혹은 사람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께 결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원수까지도 사랑해라”–“어렵지만 해보겠습니다”)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을 향한 이 말씀은 제자들을 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예수님보다는 세례자 요한을 더 따랐던 그 사람들. 그들의 마음에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요한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걸림돌입니다. 이제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좁은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아니 믿게 될 것입니다. 천천히 바뀌어 갈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걸림돌들이 생겨납니다. 예수님께로 가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수많은 걸림돌들을 물리치고 예수님께로 당당히 걸어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 간 뒤에 예수께서 군중에게 요한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칭찬하십니다. 없는 데서 칭찬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없는데서 상대방을 칭찬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던지시어 사람들에게 무엇을 찾으러 떼를 지어 요르단 강으로 갔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바람 따라 이리저리 나부끼는 갈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가를 기다려 보고 있다가 오늘은 저쪽에, 내일은 이쪽에 달라붙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조작함 없이 똑바로 전했으며, 사람들의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왕에게까지 그의 잘못에 대해서 직언을 하였습니다.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


세례자 요한은 부드러운 천으로 된 화려한 옷을 입고 이목을 끌지도 않았습니다. 낙타털옷과 들꿀을 먹으면서 광야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그런데 사실은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보았다. 성서에,


그들은 예언자를 찾고 있었으며 예언자를 발견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사랑하여 메시아를 보낸다는 것을 …” 그래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야 함을.”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지금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 어느 예언자 보다 훌륭한 예언자임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다시 한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누구인지,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오직 요한만이 자기보다 더 뛰어나시고 자기 뒤에 오시게 되어 있는 예수님을 위해(3,11)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그분께로 인도할 소명을 받았기에 더욱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예언자 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자(예언자)이며 하느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중개자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구원의 전달자이며 구원의 인물이기 때문에 더더욱 훌륭한 예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인품이나 수덕적인 생활에 의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의 활동은 다른 예언자들의 활동보다 더 위대한 것이기에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10  ‘너보다 앞서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네 갈 길을 미리 닦아 놓으리라’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사람을 가리킨 것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미 그 길의 준비에 대해 말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포로 생활에서 이끌어 내시어 기쁨으로 인도하시며, 이 백성은 곧고 평탄한 길을 따라 행진해 갈 것이라는 것을. 그 행군은 노예살이로부터 자유를 향한 행군임을(이사야40,3-4; 마태3,3). 말라기 예언자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종말에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예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몸소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한 선구자가 그분보다 앞서 옵니다.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말라기3,1). 이러한 예언적인 말들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세례자 요한을 바라보게 하고, 더 나아가 바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1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일찌기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그의 임무에 있어서 위대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과거의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으로 세례자 요한을 높여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그럼 예수님 다음이어야지 왜 첫째입니까?”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적인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세례자 요한이 위대하기는 하지만 하늘 나라에 있는 자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로서는 구약시대에 속하고 선구자로서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교량입니다. 그런데 복음위에 서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본다면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명과 신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시는 은총의 시대는 요한이 머물고 있는 율법의 시대보다 뛰어난 것이기 때문이고, 세례자 요한은 단지 그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기에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알리고 있습니까? 내가 예수님한테 본 것은 무엇이고, 예수님께 들은 것은 무엇입니까? 또 말을 함에 있어서 어디에 기준을 두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있는 그대로입니까? 아니면 시기와 질투에 기준을 두고 비방을 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사자였습니다. 대림시기를 보내면서 나는 예수님의 길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례자 요한의 삶에 비추어 내가 해야 될 것을 결심해 봅시다.






3. 공지사항


   성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드릴 선물 하나씩 준비해 봅시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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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대림 제3주일 셀모임 자료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자선주일

    탈리다 쿰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1. 시작기도: 말씀읽기: 마태11,2-11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하고 묻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진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 간 뒤에 예수께서 군중에게 요한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그렇다면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그런데 사실은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보았다. 성서에, 10  ‘너보다 앞서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네 갈 길을 미리 닦아 놓으리라’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사람을 가리킨 것이다. 11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일찌기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나바태아인의 침략 위협을 받은 헤로데 안티파스는 동쪽 국경을 굳게 지키려고 그들의 왕 아레타 4세의 딸과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이복 동생 헤로데 필립보를 찾아 갔을 때 계수요, 조카벌인 헤로디아를 만나 자기와 결혼하자고 유혹을 했습니다. 허영심에 가득 찬 헤로디아는 인륜을 저버리고 곧 승낙을 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아레타의 딸은 쫓겨날 비참한 운명을 비하려고 스스로 친정으로 돌아갔고, 헤로디아는 필립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살로메를 안티파스의 양녀로 삼아 데리고 갔습니다.

    패륜의 이 한 쌍은 추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들의 행위는 간통이요, 가정파괴요,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이었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솔직하게 꼬집어 주었습니다. 세례자의 이 비난은 안티파스에게 아물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혔고, 또 허영심 때문에 패륜의 길을 걷는 헤로디아에게는 복수심을 뿌리박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위협이나 협박도 세례자 요한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감옥에서 그는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냈습니다.


    2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시켜 물어 보게 한 질문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메시아의 사자로서 그분의 길을 닦아 놓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 메시아의 사자. 그는 메시아에 대한 행적을 감옥에서 남들의 말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들을 예수님께 보냈다. “내가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깨닫도록 가 묻고 오너라….내가 언제나 말하고 있던 사실을, 예수님 자신에게 직접 들어 보기 위해. 너희들은 선구자의 말을 들었지만 그것을 심판자의 말씀으로 확인하고 오라…”라고. 그러니까 제자들은 요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의심을 풀기 위해서 간 것이다. 즉 세례자 요한이 의심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위해서 보낸 것이라는 것이다.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 뿐 아니라 일반 대중을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 메시아성의 선언을 청했을 것이다.  요한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든가, 또 그가 불안에 빠져 있었다고 하는 해석은 복음서에서는 추리될 수가 없다. 만일 요한이 불신에 의해서 제자들을 보냈다면 제자들을 보낸 다음 하신 요한에 대한 칭찬은 결국 조롱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조롱이 아니라 칭찬이었다. 그 무엇으로 보답하기 어려운 칭찬이었다.


    3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하고 묻게 하였다.

    요한은 감옥에 있으면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들을 들었습니다.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죄인을 용서하시고,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그 당시에는 메시아를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요한은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제자들의 믿음을 위해서, 그리고 메시아아의 사자로서의 역할을 위해.


    4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저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알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듣고 본 대로 바로 예수님은 메시아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연 나는 듣고 본 것을 알리는가? 보지도 않고, 듣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부풀려서 말하기만을 좋아하는가? 상대방을 좋은 말로 칭찬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안좋게 말하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나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진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이것은 메시아의 시대가 기적의 시대라고 예언한 예언자의 말을 성취시키고 있는 것이며(이사야 26,19 “죽은 자”, 29,18-19 “귀머거리, 가난한 자”, 35,5 “소경과 귀머거리”, 61,1 “억눌린 자”),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을 눈으로 보면서 예수님께서 바로 메시아이심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행적은 메시아가 확실한데 자신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으니 말씀해 달라는, 확신을 달라는 그런 요청입니다.

    기적은 메시아의 특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소경을 보게 하고 절름발이를 제대로 걷게 하며 나병환자를 고치지 못하지만 예수님께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것을 예수님께서는 하고자만 하시면 아주 쉽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의심을 품는다는 것은 발에 돌에 걸려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걸림돌은 남이 쓰러질 기회가 되는 것이나 혹은 사람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께 결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원수까지도 사랑해라”–“어렵지만 해보겠습니다”)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을 향한 이 말씀은 제자들을 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예수님보다는 세례자 요한을 더 따랐던 그 사람들. 그들의 마음에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요한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걸림돌입니다. 이제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좁은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아니 믿게 될 것입니다. 천천히 바뀌어 갈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걸림돌들이 생겨납니다. 예수님께로 가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수많은 걸림돌들을 물리치고 예수님께로 당당히 걸어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 간 뒤에 예수께서 군중에게 요한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칭찬하십니다. 없는 데서 칭찬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없는데서 상대방을 칭찬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던지시어 사람들에게 무엇을 찾으러 떼를 지어 요르단 강으로 갔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바람 따라 이리저리 나부끼는 갈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가를 기다려 보고 있다가 오늘은 저쪽에, 내일은 이쪽에 달라붙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조작함 없이 똑바로 전했으며, 사람들의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왕에게까지 그의 잘못에 대해서 직언을 하였습니다.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

    세례자 요한은 부드러운 천으로 된 화려한 옷을 입고 이목을 끌지도 않았습니다. 낙타털옷과 들꿀을 먹으면서 광야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그런데 사실은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보았다. 성서에,

    그들은 예언자를 찾고 있었으며 예언자를 발견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사랑하여 메시아를 보낸다는 것을 …” 그래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야 함을.”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지금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 어느 예언자 보다 훌륭한 예언자임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다시 한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누구인지,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오직 요한만이 자기보다 더 뛰어나시고 자기 뒤에 오시게 되어 있는 예수님을 위해(3,11)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그분께로 인도할 소명을 받았기에 더욱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예언자 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자(예언자)이며 하느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중개자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구원의 전달자이며 구원의 인물이기 때문에 더더욱 훌륭한 예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인품이나 수덕적인 생활에 의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의 활동은 다른 예언자들의 활동보다 더 위대한 것이기에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10  ‘너보다 앞서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네 갈 길을 미리 닦아 놓으리라’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사람을 가리킨 것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미 그 길의 준비에 대해 말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포로 생활에서 이끌어 내시어 기쁨으로 인도하시며, 이 백성은 곧고 평탄한 길을 따라 행진해 갈 것이라는 것을. 그 행군은 노예살이로부터 자유를 향한 행군임을(이사야40,3-4; 마태3,3). 말라기 예언자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종말에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예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몸소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한 선구자가 그분보다 앞서 옵니다.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말라기3,1). 이러한 예언적인 말들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세례자 요한을 바라보게 하고, 더 나아가 바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1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일찌기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그의 임무에 있어서 위대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과거의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으로 세례자 요한을 높여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그럼 예수님 다음이어야지 왜 첫째입니까?”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적인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세례자 요한이 위대하기는 하지만 하늘 나라에 있는 자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로서는 구약시대에 속하고 선구자로서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교량입니다. 그런데 복음위에 서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본다면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명과 신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시는 은총의 시대는 요한이 머물고 있는 율법의 시대보다 뛰어난 것이기 때문이고, 세례자 요한은 단지 그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기에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알리고 있습니까? 내가 예수님한테 본 것은 무엇이고, 예수님께 들은 것은 무엇입니까? 또 말을 함에 있어서 어디에 기준을 두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있는 그대로입니까? 아니면 시기와 질투에 기준을 두고 비방을 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사자였습니다. 대림시기를 보내면서 나는 예수님의 길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례자 요한의 삶에 비추어 내가 해야 될 것을 결심해 봅시다.



    3. 공지사항

       성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드릴 선물 하나씩 준비해 봅시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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