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다 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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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 |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교리에 참석하기 | |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1. 시작기도: 말씀읽기: 마태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 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15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16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말씀연구>
빛과 소금.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소금이 없으면 음식의 맛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세상에는 필요 없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그것을 필요 없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겠지요. 나 또한 하느님께서 세상에서 중요한 한 몫을 차지할 수 있도록 세상에 내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나 스스로가 필요 없는 존재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필요한 사람일까요? 아니 필요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필요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왔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해 주십니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 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음식에 대한 소금의 구실을, 제자들은 이 세상에 대해서 행해야 합니다. 소금은 음식에 맛을 내는 동시에 그 부패를 막아 줍니다. 만일 소금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음식의 맛은 전혀 다른 것이 될 것입니다. 만일 소금이 없었다면 오래도록 보관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수도 엄청 줄어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악으로 기울어 가는 이 세상에 정신적인 맛을 주는 동시에 그 부패를 막도록 애써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신자들에게 그 말이나 행실에 있어서 항상 하느님의 맛을 느끼게 하도록 하라고 권하셨습니다.
소금에 습기가 들어가면 소금은 특색을 잃고 아무데도 쓸모가 없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쓸모가 없는 소금은 길에 내다 버립니다. 만일 그리스도교 신자가 짠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잃었다고 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고 남을 이롭게 하지도 못하고 마침내 버림을 받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리스도인은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소금으로서의 삶은 어떤 삶일까요? 하기 싫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하는 것 아닐까요? 성당이 멀어서 오기 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당에 오는 것. 듣기 싫은 소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는 것.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지만 예수님 때문에 내가 먼저 하려고 하는 것. 옳은 일이라고 생각될 때에는 끝까지 행하는 것. 미사 중에 옆에 있는 친구들이 미사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성가를 크게 부르고, 기도문을 큰 소리로 응답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소금으로서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소금으로서 삶을 살아갈 때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아름다워지지 않겠습니까?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빛은 어둠을 비추어 주고 둘레를 환하게 밝혀 줍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참 제자는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어둠 속에 살면서도 험한 덕행의 산을 오르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 길을 비추어 줄 수 있는 빛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정신계에 있어서 휘황찬란하게 비춰 주는 위대한 빛이지만, 참 제자들은 자기 주변을 비춰 주는 고귀한 빛이 됩니다.
세상의 빛. 예수님께서는 나를 너무나도 크게 대우해 주십니다. 보잘 것 없는 나를 향해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빛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먼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태운다는 데 있습니다. 나 자신 안에서 나를 태우는 거대한 움직임이 있어야 만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를 통해서 나온 빛은 먼저 나 자신을 비추고 세상을 비춥니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린 청년의 빛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세상 사람들에게 좀더 남을 생각하면서 살아 갈 수 있도록 나의 이기심을 비춥니다.
자신도 어렵지만 불우한 이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의 빛은 가진 것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어 좀더 나누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비추어 줍니다.
먼 거리이지만 어렵게 평일미사,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친구들은 멀어서 못 간다고 핑계를 대고,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서 성당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의 마음을 비추어 성당으로 향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빛은 아름다운 것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게 해 줍니다.
15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로마의 됫박은 8.631리터의 용량으로 팔레스티나의 “세하”라는 13리터 됫박보다 더 많이 애용되고 있었습니다. 등불을 켜 놓는 등경에는 나무나 쇠붙이로 만든 것이 있는데, 가난한 집에서는 됫박을 뒤집어 놓고 그 위에 등불을 켜 놓았습니다. 빛으로 집안을 밝게 하려고 하면 등불을 됫박 위에 놓아야 그 구실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이 빛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나 자신과 세상을 비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추지 않는 것은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놓는 사람입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도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놓는 사람입니다.
오래된 교우라고 말하면서, 몇 대 째 내려오는 신앙인의 집안이라고 말하면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 또한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것과 같습니다.
예전에 한 공소가 있었습니다. 이곳 공소 신자들은 매일 모여서 기도하고 주일에는 공소예절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주일에 성당이 멀다고 공소예절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냉담자도 증가했고, 교리에 대해서, 성서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게 됐으며, 아이들 신앙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공소 회장님이 커다란 결단을 내렸습니다. 우리 이제 평일 미사에 참례해 봅시다. 제가 봉고를 한대 사서 운행을 할 테니 함께 차를 타고서 성당에 다녀 봅시다. 성체를 자주 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입니까? 그러자 공소에서는 회장님의 말씀에 따라 한 사람, 두 사람 멀리 있는 성당으로 평일미사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주일에 공소예절을 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게 되었습니다. 레지오와 기도회만 공소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공소 신자들의 모습을 보고서 감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의 힘든 일과를 마치고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보고, 차츰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공소회장님은 어느 날, 공소 신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을 모두 신자로 만듭시다. 어렵겠지만 우리가 삶으로 보여 준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더욱 충실히 살아갑시다.” 공소 신자들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전교할 대상을 정해놓고 기도를 하면서,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 집 일이라면 우선적으로 도와주고, 자주 만나면서 친교를 이루고, 성당 자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주간에 있었던 일을 그 사람에게 전해주고, 자기가 한 주간 동안 받은 하느님의 축복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한 면을 다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욕을 잘하던 사람은 욕을 멈추고, 사람들을 칭찬하기 시작했고, 술을 많이 마시던 사람은 술을 줄였습니다. 집안에서 싸움을 자주 하던 사람들은 싸움을 멈추고 웃음소리가 크게 나도록 가정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그리고 하나 둘, 믿지 않는 이들이 하느님을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하나 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삶. 멀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 나아가서 등불을 꺼버리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이 되어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십시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키십시오”(필립비2,15-16).
16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세상의 빛인 제자들은 그 착한 행실로 둘레를 비추어 주어야 합니다. 모든 교만을 버리고 그저 묵묵히 찬란하게 비춰 주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빛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방안을 밝게 비추려고 하는 것 같이, 제자들이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는 것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남의 칭찬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내 삶이 내 메시지가 되어야 합니다. 내 삶이 하느님의 메시지가 되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2.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빛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소금으로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나의 행실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3. 공지사항
1.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가는 학생회가 되기 위해 노력합시다.
2. 설에 예쁘게 보여 세배 돈 확보에 최선을 다합시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

연중 제 5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교리에 참석하기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1. 시작기도: 말씀읽기: 마태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 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15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16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말씀연구>
빛과 소금.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소금이 없으면 음식의 맛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세상에는 필요 없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그것을 필요 없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겠지요. 나 또한 하느님께서 세상에서 중요한 한 몫을 차지할 수 있도록 세상에 내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나 스스로가 필요 없는 존재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필요한 사람일까요? 아니 필요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필요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왔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해 주십니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 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음식에 대한 소금의 구실을, 제자들은 이 세상에 대해서 행해야 합니다. 소금은 음식에 맛을 내는 동시에 그 부패를 막아 줍니다. 만일 소금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음식의 맛은 전혀 다른 것이 될 것입니다. 만일 소금이 없었다면 오래도록 보관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수도 엄청 줄어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악으로 기울어 가는 이 세상에 정신적인 맛을 주는 동시에 그 부패를 막도록 애써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신자들에게 그 말이나 행실에 있어서 항상 하느님의 맛을 느끼게 하도록 하라고 권하셨습니다.
소금에 습기가 들어가면 소금은 특색을 잃고 아무데도 쓸모가 없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쓸모가 없는 소금은 길에 내다 버립니다. 만일 그리스도교 신자가 짠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잃었다고 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고 남을 이롭게 하지도 못하고 마침내 버림을 받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리스도인은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소금으로서의 삶은 어떤 삶일까요? 하기 싫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하는 것 아닐까요? 성당이 멀어서 오기 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당에 오는 것. 듣기 싫은 소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는 것.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지만 예수님 때문에 내가 먼저 하려고 하는 것. 옳은 일이라고 생각될 때에는 끝까지 행하는 것. 미사 중에 옆에 있는 친구들이 미사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성가를 크게 부르고, 기도문을 큰 소리로 응답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소금으로서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소금으로서 삶을 살아갈 때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아름다워지지 않겠습니까?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빛은 어둠을 비추어 주고 둘레를 환하게 밝혀 줍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참 제자는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어둠 속에 살면서도 험한 덕행의 산을 오르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 길을 비추어 줄 수 있는 빛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정신계에 있어서 휘황찬란하게 비춰 주는 위대한 빛이지만, 참 제자들은 자기 주변을 비춰 주는 고귀한 빛이 됩니다.
세상의 빛. 예수님께서는 나를 너무나도 크게 대우해 주십니다. 보잘 것 없는 나를 향해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빛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먼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태운다는 데 있습니다. 나 자신 안에서 나를 태우는 거대한 움직임이 있어야 만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를 통해서 나온 빛은 먼저 나 자신을 비추고 세상을 비춥니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린 청년의 빛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세상 사람들에게 좀더 남을 생각하면서 살아 갈 수 있도록 나의 이기심을 비춥니다.
자신도 어렵지만 불우한 이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의 빛은 가진 것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어 좀더 나누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비추어 줍니다.
먼 거리이지만 어렵게 평일미사,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친구들은 멀어서 못 간다고 핑계를 대고,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서 성당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의 마음을 비추어 성당으로 향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빛은 아름다운 것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게 해 줍니다.
15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로마의 됫박은 8.631리터의 용량으로 팔레스티나의 “세하”라는 13리터 됫박보다 더 많이 애용되고 있었습니다. 등불을 켜 놓는 등경에는 나무나 쇠붙이로 만든 것이 있는데, 가난한 집에서는 됫박을 뒤집어 놓고 그 위에 등불을 켜 놓았습니다. 빛으로 집안을 밝게 하려고 하면 등불을 됫박 위에 놓아야 그 구실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이 빛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나 자신과 세상을 비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추지 않는 것은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놓는 사람입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도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놓는 사람입니다.
오래된 교우라고 말하면서, 몇 대 째 내려오는 신앙인의 집안이라고 말하면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 또한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것과 같습니다.
예전에 한 공소가 있었습니다. 이곳 공소 신자들은 매일 모여서 기도하고 주일에는 공소예절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주일에 성당이 멀다고 공소예절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냉담자도 증가했고, 교리에 대해서, 성서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게 됐으며, 아이들 신앙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공소 회장님이 커다란 결단을 내렸습니다. 우리 이제 평일 미사에 참례해 봅시다. 제가 봉고를 한대 사서 운행을 할 테니 함께 차를 타고서 성당에 다녀 봅시다. 성체를 자주 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입니까? 그러자 공소에서는 회장님의 말씀에 따라 한 사람, 두 사람 멀리 있는 성당으로 평일미사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주일에 공소예절을 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게 되었습니다. 레지오와 기도회만 공소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공소 신자들의 모습을 보고서 감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의 힘든 일과를 마치고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보고, 차츰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공소회장님은 어느 날, 공소 신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을 모두 신자로 만듭시다. 어렵겠지만 우리가 삶으로 보여 준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더욱 충실히 살아갑시다.” 공소 신자들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전교할 대상을 정해놓고 기도를 하면서,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 집 일이라면 우선적으로 도와주고, 자주 만나면서 친교를 이루고, 성당 자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주간에 있었던 일을 그 사람에게 전해주고, 자기가 한 주간 동안 받은 하느님의 축복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한 면을 다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욕을 잘하던 사람은 욕을 멈추고, 사람들을 칭찬하기 시작했고, 술을 많이 마시던 사람은 술을 줄였습니다. 집안에서 싸움을 자주 하던 사람들은 싸움을 멈추고 웃음소리가 크게 나도록 가정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그리고 하나 둘, 믿지 않는 이들이 하느님을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하나 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삶. 멀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 나아가서 등불을 꺼버리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이 되어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십시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키십시오”(필립비2,15-16).
16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세상의 빛인 제자들은 그 착한 행실로 둘레를 비추어 주어야 합니다. 모든 교만을 버리고 그저 묵묵히 찬란하게 비춰 주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빛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방안을 밝게 비추려고 하는 것 같이, 제자들이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는 것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남의 칭찬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내 삶이 내 메시지가 되어야 합니다. 내 삶이 하느님의 메시지가 되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2.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빛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소금으로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나의 행실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3. 공지사항
1.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가는 학생회가 되기 위해 노력합시다.
2. 설에 예쁘게 보여 세배 돈 확보에 최선을 다합시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