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다 쿰 |
|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 |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교리에 참석하기 | |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1. 시작기도: 말씀읽기: 요한9,1.6-9.13-17.34-38(요한9,1-41)
1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6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아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7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 실로암은 “파견된 자” 라는 뜻이다. )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 왔다. 8 그의 이웃들과 그가 전에 거지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을 보아 온 사람들은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9 어떤 이들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하였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을 닮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아니라고도 하였다. 그 때 눈을 뜨게 된 사람이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13 사람들은 소경이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께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다. 15 그래서 이번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또 그에게 눈을 뜨게 된 경위를 물었다. 그는 “그분이 내 눈에 진흙을 발라 주신 뒤에 얼굴을 씻었더니 이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에는 “그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면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는 사람도 있었고 “죄인이 어떻게 이와 같은 기적을 보일 수 있겠소?” 하고 맞서는 사람도 있어서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17 그들이 눈멀었던 사람에게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니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하고 다시 묻자 그는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4 유다인들은 이 말을 듣고 “너는 죄를 뒤집어 쓰고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훈계하려 드느냐?” 하며 그를 회당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35 눈멀었던 사람이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그를 만났을 때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 “선생님, 믿겠습니다. 어느 분이십니까?” 하고 대답하자 37 예수께서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8 “주님 믿습니다” 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눈먼 소경을 만나게 되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 제자들은 예수님께 누구의 죄 때문에 저 사람이 죄로 고통을 받느냐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죄를 지어야만 병이 생기는 것일까요? 그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병자들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나보다 조금 몸이 불편한 것뿐인데…, 나랑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들은 부끄럽다고, 남의 시선이 의식된다고 성당에 나오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 사람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시선을 그에게 던진 것일까요?
1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예수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소경을 만나셨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그에게 당신 자비의 손길을 펼치실 것입니다. 하지만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그를 죄인으로 단정 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병을 죄의 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태생 소경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죄 때문인지(아이가 뭔 죄가 있겠습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인지를 궁금해 하게 됩니다.
6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아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기적은 두 가지의 다른 행동으로 시작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침으로 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바르십니다. 그리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눈을 씻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셨을까요? 사실 우리야 눈에 흙이 들어가면 안보이겠지만 소경은 눈에 흙을 발라도 안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눈을 감은 채 당신을 따르라고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그냥 씻으라고 했으면 분명 안 씻었을 지도 모릅니다. 마치 엘리사가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에게 요르단 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고 할 때 불평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7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 실로암은 “파견된 자” 라는 뜻이다. )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 왔다.
실로암(또는 실로아)은 본래 “물을 내어보냄” 또는 “수로, 운하”인데 사도요한은 “파견된 자”라고 의역하여 그리스도와 관련을 짓습니다. 소경은 예수님의 뜻에 해당하는 이 못의 물로 자기를 씻도록 초청되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치유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태생 소경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함으로써 치유를 받았습니다.
13 사람들은 소경이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데리고 갔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있어서 종교와 관계있는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였습니다. 사람들은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기에 눈을 뜬 소경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로 데려 갑니다. 부모에게 데려다 주지 않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데려 갑니다. 이들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태생소경의 치유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리석게도…,
14 그런데 예수께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다.
안식일이라 하여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치유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뤄야 하는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분명 미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만일 그런 기회를 잡게 된다면 분명 치유를 받을 것입니다. 남의 일이기에,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기에 따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측은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17 그들이 눈멀었던 사람에게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니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하고 다시 묻자 그는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습니다. 함께 기뻐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어떻게 눈을 떴는지 물어보고 있습니다. 사실은 먼저 기뻐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 사건의 경이와 기적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는 잘못을 꼬집어내어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우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라면, 그래서 그가 죄인이라면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33 그분이 만일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도저히 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평생 소경으로 살아온 사람의 신앙이 평생을 신앙을 연구하고 신앙생활 해온 사람보다 훨씬 낫습니다. 진리란 복잡함에서 오지 않고 단순함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소경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의심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죄인의 청은 안 들어주시지만 하느님을 공경하고 그 뜻을 실해하는 사람의 청은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확고한 사실은 구약성서의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는데 성서를 공부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니… 또한 어찌 보면, 이것은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지한 사람이 가르치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아주 작은 꼬맹이라도 알아볼 수 있는 것을 모른다고 우기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34 유다인들은 이 말을 듣고 “너는 죄를 뒤집어 쓰고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훈계하려 드느냐?” 하며 그를 회당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소경을 쫓아냅니다. 이들은 고의적으로 어둠 속에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부족함이 보이자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들. 이 모습은 일상생활 안에서 많이 들어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아이들을 혼내는 부모님들의 모습 안에서. 말문이 막혔을 때 배우자를 공격하는 모습 안에서…, 그래서 이제는 아이들에게 화를 낼 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합니다. “네가 잘못해서라기보다는 내가 부족해서 화를 내는 거야!”바리사이들은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불행을 부모의 죄로 돌리고, 그를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로 몰아세웁니다.
35 눈멀었던 사람이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그를 만났을 때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쫓겨난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그는 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이 죄인이라 하더라도 그가 체험한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소개를 하십니다. 이 소경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이 초자연적인 인물을 뜻하는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습니까? 라고 물어보시지 않고, 자기 자신을 약간 숨긴 채 “사람의 아들”로 당신을 표현하십니다. 이것은 믿음의 준비자세를 시험해 보기 위한 방법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치유받고 회당에서 추방당한 그를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를 찾아와 만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를 믿음으로 이끌고자 하심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36 “선생님, 믿겠습니다. 어느 분이십니까?” 하고 대답하자
매일 우리가 드리는 기도 또한 이 기도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당신께로 더 많이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그런데 우리와 소경의 차이점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꿇어 절을 하면서 말합니다.” 믿습니다.” 하지만 나의 응답은 “믿습니다” 하고 답하지만 굻어 절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치유된 자는 믿을 준비 자세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님”은 선생님이란 뜻으로 아직 그리스도론적인 존칭은 아닙니다.
37 예수께서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치유된 자로 하여금 충만한 믿음을 갖도록 자기 자신을 분명히 계시하십니다. 믿음의 마지막 단계는 예수님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다한 다음에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이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렇게 되기를 늘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38 “주님 믿습니다” 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
이제 소경이었던 그는 사람의 아들로 자신을 드러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게 됩니다. 이제 눈을 뜬 그는 믿음의 눈까지 뜨게 됩니다. 이제 그는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립니다. 하느님께만 드릴 경배자세를 예수님 앞에서 취함으로써 예수님을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계시자, 곧 구세주로 믿는 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2.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편견을 가지고 그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따뜻하게 그의 손을 잡아 주고 있습니까? 오시는데 얼마나 어려우셨냐고 말 한마디 건네고 있습니까?
2. 나는 볼 눈이 있는 사람입니까? 눈을 뜬 장님입니까? 보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예전에는 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보이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3. 공지사항
1. 학생회가 잘 되기 위해 노력합시다. 2. 셀 모임에 적극 참여 합시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

사순 제 4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교리에 참석하기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1. 시작기도: 말씀읽기: 요한9,1.6-9.13-17.34-38(요한9,1-41)
1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6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아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7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 실로암은 “파견된 자” 라는 뜻이다. )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 왔다. 8 그의 이웃들과 그가 전에 거지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을 보아 온 사람들은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9 어떤 이들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하였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을 닮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아니라고도 하였다. 그 때 눈을 뜨게 된 사람이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13 사람들은 소경이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께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다. 15 그래서 이번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또 그에게 눈을 뜨게 된 경위를 물었다. 그는 “그분이 내 눈에 진흙을 발라 주신 뒤에 얼굴을 씻었더니 이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에는 “그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면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는 사람도 있었고 “죄인이 어떻게 이와 같은 기적을 보일 수 있겠소?” 하고 맞서는 사람도 있어서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17 그들이 눈멀었던 사람에게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니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하고 다시 묻자 그는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4 유다인들은 이 말을 듣고 “너는 죄를 뒤집어 쓰고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훈계하려 드느냐?” 하며 그를 회당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35 눈멀었던 사람이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그를 만났을 때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 “선생님, 믿겠습니다. 어느 분이십니까?” 하고 대답하자 37 예수께서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8 “주님 믿습니다” 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눈먼 소경을 만나게 되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 제자들은 예수님께 누구의 죄 때문에 저 사람이 죄로 고통을 받느냐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죄를 지어야만 병이 생기는 것일까요? 그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병자들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나보다 조금 몸이 불편한 것뿐인데…, 나랑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들은 부끄럽다고, 남의 시선이 의식된다고 성당에 나오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 사람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시선을 그에게 던진 것일까요?
1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예수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소경을 만나셨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그에게 당신 자비의 손길을 펼치실 것입니다. 하지만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그를 죄인으로 단정 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병을 죄의 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태생 소경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죄 때문인지(아이가 뭔 죄가 있겠습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인지를 궁금해 하게 됩니다.
6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아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기적은 두 가지의 다른 행동으로 시작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침으로 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바르십니다. 그리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눈을 씻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셨을까요? 사실 우리야 눈에 흙이 들어가면 안보이겠지만 소경은 눈에 흙을 발라도 안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눈을 감은 채 당신을 따르라고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그냥 씻으라고 했으면 분명 안 씻었을 지도 모릅니다. 마치 엘리사가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에게 요르단 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고 할 때 불평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7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 실로암은 “파견된 자” 라는 뜻이다. )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 왔다.
실로암(또는 실로아)은 본래 “물을 내어보냄” 또는 “수로, 운하”인데 사도요한은 “파견된 자”라고 의역하여 그리스도와 관련을 짓습니다. 소경은 예수님의 뜻에 해당하는 이 못의 물로 자기를 씻도록 초청되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치유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태생 소경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함으로써 치유를 받았습니다.
13 사람들은 소경이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데리고 갔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있어서 종교와 관계있는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였습니다. 사람들은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기에 눈을 뜬 소경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로 데려 갑니다. 부모에게 데려다 주지 않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데려 갑니다. 이들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태생소경의 치유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리석게도…,
14 그런데 예수께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다.
안식일이라 하여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치유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뤄야 하는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분명 미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만일 그런 기회를 잡게 된다면 분명 치유를 받을 것입니다. 남의 일이기에,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기에 따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측은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17 그들이 눈멀었던 사람에게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니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하고 다시 묻자 그는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습니다. 함께 기뻐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어떻게 눈을 떴는지 물어보고 있습니다. 사실은 먼저 기뻐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 사건의 경이와 기적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는 잘못을 꼬집어내어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우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라면, 그래서 그가 죄인이라면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33 그분이 만일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도저히 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평생 소경으로 살아온 사람의 신앙이 평생을 신앙을 연구하고 신앙생활 해온 사람보다 훨씬 낫습니다. 진리란 복잡함에서 오지 않고 단순함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소경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의심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죄인의 청은 안 들어주시지만 하느님을 공경하고 그 뜻을 실해하는 사람의 청은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확고한 사실은 구약성서의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는데 성서를 공부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니… 또한 어찌 보면, 이것은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지한 사람이 가르치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아주 작은 꼬맹이라도 알아볼 수 있는 것을 모른다고 우기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34 유다인들은 이 말을 듣고 “너는 죄를 뒤집어 쓰고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훈계하려 드느냐?” 하며 그를 회당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소경을 쫓아냅니다. 이들은 고의적으로 어둠 속에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부족함이 보이자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들. 이 모습은 일상생활 안에서 많이 들어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아이들을 혼내는 부모님들의 모습 안에서. 말문이 막혔을 때 배우자를 공격하는 모습 안에서…, 그래서 이제는 아이들에게 화를 낼 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합니다. “네가 잘못해서라기보다는 내가 부족해서 화를 내는 거야!”바리사이들은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불행을 부모의 죄로 돌리고, 그를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로 몰아세웁니다.
35 눈멀었던 사람이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그를 만났을 때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쫓겨난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그는 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이 죄인이라 하더라도 그가 체험한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소개를 하십니다. 이 소경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이 초자연적인 인물을 뜻하는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습니까? 라고 물어보시지 않고, 자기 자신을 약간 숨긴 채 “사람의 아들”로 당신을 표현하십니다. 이것은 믿음의 준비자세를 시험해 보기 위한 방법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치유받고 회당에서 추방당한 그를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를 찾아와 만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를 믿음으로 이끌고자 하심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36 “선생님, 믿겠습니다. 어느 분이십니까?” 하고 대답하자
매일 우리가 드리는 기도 또한 이 기도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당신께로 더 많이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그런데 우리와 소경의 차이점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꿇어 절을 하면서 말합니다.” 믿습니다.” 하지만 나의 응답은 “믿습니다” 하고 답하지만 굻어 절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치유된 자는 믿을 준비 자세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님”은 선생님이란 뜻으로 아직 그리스도론적인 존칭은 아닙니다.
37 예수께서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치유된 자로 하여금 충만한 믿음을 갖도록 자기 자신을 분명히 계시하십니다. 믿음의 마지막 단계는 예수님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다한 다음에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이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렇게 되기를 늘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38 “주님 믿습니다” 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
이제 소경이었던 그는 사람의 아들로 자신을 드러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게 됩니다. 이제 눈을 뜬 그는 믿음의 눈까지 뜨게 됩니다. 이제 그는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립니다. 하느님께만 드릴 경배자세를 예수님 앞에서 취함으로써 예수님을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계시자, 곧 구세주로 믿는 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2.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편견을 가지고 그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따뜻하게 그의 손을 잡아 주고 있습니까? 오시는데 얼마나 어려우셨냐고 말 한마디 건네고 있습니까?
2. 나는 볼 눈이 있는 사람입니까? 눈을 뜬 장님입니까? 보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예전에는 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보이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3. 공지사항
1. 학생회가 잘 되기 위해 노력합시다. 2. 셀 모임에 적극 참여 합시다.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