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다 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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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 |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 |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남북통일 기원 미사
1. 말씀읽기: 마태 18,19-22
19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
20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1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22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용서의 한계는 어디인가?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한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를 용서하셨으니 나도 용서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내 형제를 용서한다면 하느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가 잘못을 했을 경우, 그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용서를 청한다면 하느님께서도 분명 들어 주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모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19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형제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상의하여 마음을 모아 함께 구하여야 합니다. 두 사람의 합의만으로도 약속에 대한 자신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기도가 힘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인들이 한 마음이 되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한다는 것은 “어린이”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깨닫고 이행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자신이 모든 것을 행하려 하지 않고 부모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맡기고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한 마음으로 부모님께 어떤 것을 청할 때, 부모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바로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님께 청할 때, 부모님이 모두 들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들에게 유익하다면 들어주실 것입니다.
또한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생이 잘못했을 경우, 형제들이 함께 용서를 청한다면 부모님께서는 자녀들의 청을 들어주시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니다.
잘못을 범한 형제를 위한 기도는 교회의 기도 대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누군가를 훈계하고, 잘못에 대한 벌을 선고하고, 파문하거나, 재 입교 등은 교회의 기도 속에서 고려되었습니다.
20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함께 모여 기도하는 소수의 양떼 속에서 현존하십니다. 우리의 모임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고백에 바탕을 두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참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름”이라는 말은 존재의 실존과 전체적인 실재를 의미합니다. 공동 기도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오시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그 최소한의 숫자가 두 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위해서 자녀들이 모인 곳에는, 부모님께서 함께 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교회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공동 신앙 고백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며, 바로 예수님의 이름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는다(사도행전 4,12)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친히 현존하시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교회의 확고한 믿음에 대한 확신과 이 세상에서의 끊임없는 기쁨의 근거가 됩니다.
21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베드로는 얼마나 많이 형제를 용서해 주어야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잘못을 범한 사람이 보상하지 않아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계속 용서를 해 주어야 하는가? 용서의 의무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가? 베드로는 일곱 번을 이야기 합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성스러운 숫자로서 완전하고 최종적인 어떤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일곱 번이라는 숫자를 이야기 한 것은 적어도 베드로가 용서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 용서한다는 것은 용서 할 만큼 했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그러한 잘못을 되풀이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삐들은 세 번까지만 용서해 주면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세 번까지만 용서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해서 인간들도 세 번까지만 용서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22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예수님께서는 한없이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어떻게 무한히 용서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이 말씀은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용서해 주시겠다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로움을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통해서 드러내고 계십니다. 용서받은 사람이 용서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용서하지 말아야 될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들입니까? 혹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혹시 나 또한 그런 사람의 부류에 들어가지는 않습니까?
2. 내가 하기 힘든 용서를 한 적이 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4.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
1.
2.
5. 공지사항
1. 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2. 미사시간에 성가 목 터져라 부릅시다.
3. 개인 성가책 가지고 다닙시다.
6. 말씀으로 기도하기

연중 제 12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남북통일 기원 미사
1. 말씀읽기: 마태 18,19-22
19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
20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1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22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용서의 한계는 어디인가?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한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를 용서하셨으니 나도 용서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내 형제를 용서한다면 하느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가 잘못을 했을 경우, 그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용서를 청한다면 하느님께서도 분명 들어 주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모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19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형제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상의하여 마음을 모아 함께 구하여야 합니다. 두 사람의 합의만으로도 약속에 대한 자신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기도가 힘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인들이 한 마음이 되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한다는 것은 “어린이”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깨닫고 이행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자신이 모든 것을 행하려 하지 않고 부모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맡기고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한 마음으로 부모님께 어떤 것을 청할 때, 부모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바로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님께 청할 때, 부모님이 모두 들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들에게 유익하다면 들어주실 것입니다.
또한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생이 잘못했을 경우, 형제들이 함께 용서를 청한다면 부모님께서는 자녀들의 청을 들어주시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니다.
잘못을 범한 형제를 위한 기도는 교회의 기도 대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누군가를 훈계하고, 잘못에 대한 벌을 선고하고, 파문하거나, 재 입교 등은 교회의 기도 속에서 고려되었습니다.
20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함께 모여 기도하는 소수의 양떼 속에서 현존하십니다. 우리의 모임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고백에 바탕을 두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참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름”이라는 말은 존재의 실존과 전체적인 실재를 의미합니다. 공동 기도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오시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그 최소한의 숫자가 두 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위해서 자녀들이 모인 곳에는, 부모님께서 함께 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교회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공동 신앙 고백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며, 바로 예수님의 이름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는다(사도행전 4,12)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친히 현존하시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교회의 확고한 믿음에 대한 확신과 이 세상에서의 끊임없는 기쁨의 근거가 됩니다.
21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베드로는 얼마나 많이 형제를 용서해 주어야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잘못을 범한 사람이 보상하지 않아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계속 용서를 해 주어야 하는가? 용서의 의무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가? 베드로는 일곱 번을 이야기 합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성스러운 숫자로서 완전하고 최종적인 어떤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일곱 번이라는 숫자를 이야기 한 것은 적어도 베드로가 용서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 용서한다는 것은 용서 할 만큼 했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그러한 잘못을 되풀이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삐들은 세 번까지만 용서해 주면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세 번까지만 용서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해서 인간들도 세 번까지만 용서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22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예수님께서는 한없이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어떻게 무한히 용서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이 말씀은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용서해 주시겠다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로움을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통해서 드러내고 계십니다. 용서받은 사람이 용서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용서하지 말아야 될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들입니까? 혹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혹시 나 또한 그런 사람의 부류에 들어가지는 않습니까?
2. 내가 하기 힘든 용서를 한 적이 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4.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
1.
2.
5. 공지사항
1. 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2. 미사시간에 성가 목 터져라 부릅시다.
3. 개인 성가책 가지고 다닙시다.
6. 말씀으로 기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