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 제 14주일 셀 모임 자료

 

연중 제 14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1. 말씀읽기: 마태11,25-30


25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27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전에 텔레비전에 아이들이 문제를 내고 어른들이 맞히는 쇼프로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을 제시하지만 어른들이 맞추기란 그리 쉬운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의외의 대답이 나오곤 합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이들을 다시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25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안다는 사람들은 “예지의 소유자”라는 뜻입니다. 또 “똑똑한 사람들”은 “지혜와 재주가 뛰어난 사람, 어려움을 교묘하게 뚫고 나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계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오만으로 소경이 되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소박한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의 문에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말씀과 활동으로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아버지의 뜻은 당신 나라를 세우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안다는 자들과 똑똑하다는 자들은 하느님 나라와 그 정의가 예수님을 통하여 현존하여 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펼치시는 활동의 의미를 꿰뚫고 그 활동을 이어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백성에게 지운 무거운 짐을 벗겨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가져다주십니다. 이제 앞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 전달자로 될 것이고, 복음을 전하러 떠날 것입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지요. 나름대로 공부를 잘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성당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대충 대충 성당에 나오지요. 하지만 학생미사에 나온다고 하여 점수가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우리 친구들이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27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은 아들 예수님을 아십니다. 그리고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을 아십니다. 그리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라는 말씀 안에서 그들이 아는 것과 예수님이 알고 있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하느님은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완전히 인식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 안에서 아들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이십니다.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에게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알려 주시기에 알려 주신 것만큼은 알 수 있습니다. 차량에 네비게이션을 달면 모르는 길도 쉽게 찾아 갈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신앙생활에도 네비게이션을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 네비게이션은 바로 성서가 아니겠습니까?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 무식하고 단순한 사람들, 병들고 탄식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 짐이 무엇이고 내 멍에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오려고 하는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져 보려고 항상 그분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그들을 찾아 나서셨으며, 냉대 받는 사람들과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당신께로 부르시며, 그들을 편히 쉬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들처럼 흩어져 있고 지쳐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며 멍에를 메고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이 짐과 멍에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억눌리고 고된 그들의 생활의 짐이며, 특히 율법의 해석으로 인해 생겨난 견딜 수 없는 규정들의 짐입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짐 때문에 그들은 지쳐 있고 억눌려 있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농부가 가축에게 짐을 지우듯이 율법의 규정이라는 힘들고 괴로운 멍에를 백성들에게 지워주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구원과 생명을 위해 주어졌던 율법을 수백 가지의 특수한 규정으로 만들어 견딜 수 없는 짐이 되게 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러한 규정들을 다 지킬 수는 없었으며 율법학자들 자신들도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쉬게 한다”란 그리이스 말로 노동을 쉬게 하고 힘을 다시 돌이켜 준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을 벗게 해 주실 힘이 있습니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보다도 더 철저하게 율법을 가르치셨고, 그것을 지키도록 요구하셨지만 예수님의 이러한 멍에는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을 괴롭히거나 피곤하게 하기 위해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안에 모든 계명의 핵심을 넣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은 멍에와 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배워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따른다면 그러한 멍에와 짐은 가볍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멍에와 짐까지도 다 짊어지신 분이십니다.


온유는 폭력에 대립하고, 겸손은 오만에 대립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인간이 되셨고, 당신 스스로를 낮추시어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멍에와 짐은 바로 자신을 낮추는 헌신과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시는 예수님! 이보다 더 고마운 스승이 어디 있겠습니까?


“멍에를 메고 ”란 말은 제자가 되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가벼운 짐도 지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놀이와 일은 구분이 됩니다. 어느 날 대장이 자신의 부하 장병을 데리고 골프 연습장을 갔습니다. 그날따라 공이 잘 맞지를 않았습니다. 화가 난 대장은 부하 장병에게 이렇게 투덜거렸습니다. “김대위! 이게 일인가? 놀이인가?”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장님! 그게 일이었다면 대장님께서 하셨겠습니까? 저를 시키셨겠지요…”


어떤 사람에게는 놀이가 될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문제인 듯 합니다. 예수님의 가벼운 멍에와 짐이 어떤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무거운 짐과 불편한 멍에가 될 수 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화와 안식을 얻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이 아닐까요?


받아들이기만 한다면야 얼마나 매력적인 삶이 나를 기다리겠습니까?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멍에와 짐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느님께로 가기 위해서 우리가 지어야 할 십자가가 아니겠습니까?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께 순명하는 자세, 그것이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십자가요 멍에입니다. 내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짐과 멍에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2. 신앙생활에 네비게이션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부착을 하면 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만 신앙생활의 네비게이션을 부착할 수 있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4.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


1.


2.




5. 공지사항


1. 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2. 미사시간에 성가 목 터져라 부릅시다.


3. 개인 성가책 가지고 다닙시다.








6.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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