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다 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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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 |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 |
형제를 얻는 방법
1.말씀읽기: 마태 18,15-20
15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 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어라. 그가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다.
16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 그리하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을 들어 확정하라’ 는 말씀대로 모든 사실을 밝혀라.
17 그래도 그들의 말의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19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
20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말씀연구
누군가를 사랑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타이를 때 “상대방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상처를 주는 말 중의 하나가 “내가 너랑 친해서 하는 말인데 너는 그것이 나빠!…”이 말이 큰 상처를 준다고 합니다. 충고할 때도 사랑으로 해야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아닌 것을 옳다고 말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그 형제를 얻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5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 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어라. 그가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다.
이 말씀 안에는 공동체 안에서의 죄가 나오고 있습니다. 형제라는 것은 교회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 특별한 연결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형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단 둘이 만나서 타이르라고 하시는데 사실 그를 위해서 말하는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고맙다고 하기 보다는 “그래! 네놈은 어디 잘하나 보자!”라고 마음 품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가 돌아서면 형제를 하나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니 형제를 얻는 것입니다.
16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 그리하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을 들어 확정하라’ 는 말씀대로 모든 사실을 밝혀라.
그런데 잘못을 범한 자가 말을 듣지 않으면 이런 방법을 써야 합니다. 구약의 규율에 따르면, 증언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에 의하여 확인될 때에야 법적으로 유효합니다. “어떤 나쁜 짓이든 어떤 잘못이든,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증언이 성립되지 않는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지 두세 사람의 증언이 있어야 고소할 수 있다”(신명19,15). 여기서는 충고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고 최후의 비상 수단을 연기시키기 위해서 법적인 절차라는 요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사라이나 세 사람이 함께 사실을 증언하고 잘못을 범한 형제가 회개하도록 촉구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좀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를 죄인으로 단정하는 것, 그리고 여럿이서 한 사람을 몰아세우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욥이 고통 중에 있을 때 친구 셋이 찾아와서 욥에게 회개를 요구하고 죄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욥은 답답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형제에게 다가갈 때 그도 마음을 돌려 하느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몰아세우면 그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될 것입니다.
17 그래도 그들의 말의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물론 가끔은 정말 “저 사람이 신앙인이라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를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까지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리 다가가도 회개하지 않는 이들을 예수님께서는 억지로 회개시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할 마음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방인이나 죄인들이 회개하여 돌아온다면 예수님은 맨발로 뛰어나가 그들을 맞아들이십니다. 즉 기다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교회 밖으로 떠났다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가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의 회개를 위하여 인내와 친절을 가져야 합니다.
18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사도들은 베드로사도와 똑같이 특권(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16,19)을 받았습니다. 물론 하나의 차이는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후계자를 갖습니다. 베드로의 자리를 이어받는 교황은 교황에서 교황으로 그 특권이 이어집니다.
교회는 맬 수 있을 뿐 아니라 풀 수도, 즉 파문시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죄인을 파문한다는 것은 구태여 최종적인 판결로 볼 필요가 없으며 회개하고 다시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가혹한 징계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형제가 구언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회개하기를 바라는 열망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개인의 개인적인잘못과 전체 공동체의 생활과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죄는 공식적인 교회에 관계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책임의 구분이 여러 가지 활동에 대한 권고 속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개인에게 형제적인 충고의 책임이 맡겨져야 하고,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도움을 주도록 불려져야 하며, 최종적으로 최고 법정에 호소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비성사적인 활동과 성사적인 활동은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서로 관계를 맺고 질서 지어지는 것입니다.
19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개인의 청원도 잘 들어주시지만 공동체의 청원을 더 잘 들어주신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증해 주고 계십니다.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는 말씀 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한 형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한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서 공동체가 기도한다면 분명 들어주실 것입니다.
20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둘이나 셋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려 모일 때, 예수님께서는 그 안에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그 기도는 예수님과 함께 드리는 기도이고, 그 기도를 하느님 아버지께서 꼭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말씀 중에 와 닿는 말씀은 어느 말씀입니까? 왜 그 말씀이 와 닿았는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2. 서로 싸운 친구와 다시 화해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어떤 방법으로 그에게 접근을 했고, 어떻게 해서 그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까?
3. 주님께 청을 드릴 때 어떤 청을 드립니까? 개인적인 청원입니까? 아니면 공동체를 위한 청원입니까?
4.공지사항
1. 친구들에게 셀을 권해 봅시다. 2. 기도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