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 제 31주일 셀 모임 자료

 

연중 제 31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1. 말씀읽기: 마태 23,1-12


그 때에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길에 나서면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 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공동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의 예를 들면서 좀더 겸손하게 형제 자매들에게 다가 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좀더 겸손하게 하느님 앞에 서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2“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입법자였습니다. 모세 이후로는 조상들의 전승만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의 관심사는 모세 율법과 아울러 거기서 발전된 전승을 보존하고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율법학자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과 율법에 나타나 있는 하느님을 뜻을 알려 주었습니다.


율법학자 제도는 에스델 시절(기원 전 5세기)의 것인데, 회당에서 율법을 읽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그들이 맡은 소임이었습니다. 이 제도를 유다 사회는 정당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이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학자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율법학자들은 사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행실은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은 유다 국민의 지도자로서, 또 어떤 의미에서는 모세를 이은자들 이었지만 그들 자신은 모세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레위기의 미드라스(해석)에는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가르치고 그리고 그 가르침을 스스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삶의 자세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4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율법의 해석자로 자처한 율법학자들에 대한 책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멋진 은유법을 사용하십니다. 그들은 노새와 낙타의 등에 엄청난 짐을 실어 놓고 그 짐을 옮기는 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장사꾼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율법학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것을 꼬집고 계시는 것입니다.




5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보여주기 위한 것, 남에게서 칭찬 받기를 원하는 것. 명예로운 호칭을 좋아 하는 것. 이것은 허영심의 결과입니다. 성구 넣는 갑은 그리스 말로 부적이라는 뜻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미신적인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구 넣는 갑은 조그만 갑인데 그 속에 출애굽기 13,1-10. 11-16 그리고 신명기 6,4-9;11,13-21절 까지의 글귀를 양피지에 써서 넣었습니다. 작은 갑은 왼팔이나 이마에 달고 다녔는데 지금도 히브리인들은 기도할 때 그것을 다는 습관이 있습니다.




6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자리는 나이의 차례에 따라 앉게 정해져 있었으나, 위엄이 있고, 지식이 있는 사람 순으로 정해져 있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허영 다툼의 근원 같습니다. 자리 그 자체에 위 아래를 정하는 것은 질서를 잡기 위해 당연한 일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은 명예심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윗자리 다툼인 것입니다.




7 길에 나서면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 주기를 바란다.


히브리인 사이에서는 인사를 받는 사람을 마음과 이마와 입에 새겨 두고 싶다는 그런 뜻으로 깊이 머리를  숙여 절을 하면서 동그라미를 그려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원말은 “라브”(스승), “라삐”(나의 스승), “랏방”(우리의 스승)입니다. 라브는 기원 전 2세기 말, 현재 말하는 박사, 선생 등의 뜻으로 쓰인 말입니다. 기원 후 1세기 말에는 “라삐”라 하고, 일반적으로 팔레스티나의 선생을 가리켰습니다. 그 무렵 로마 정부가 인정한 유다의 으뜸은 “랏방”이라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을 가르치십니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9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예수님께서 존칭을 절대적으로 배척하신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것을 좋아하고, 그것만을 노리는 명예심과 오만을 배척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분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교적 겸손을 기르기 위한 참으로 적절한 표현입니다. 오직 한 분의 스승은 하느님뿐이십니다. 사람은 아무리 현명하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높은 지혜에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라는 표현은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사람 사이의 보편적 형제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브라함, 이사악과 야곱 등 세 조상에게만 사용되었고, 어머니는 사라와 리브가와 레아와 라헬에게만 붙였던 존칭입니다. 그 후 “아브”,“앗바”(아버지)를 유명한 사람이나 학자에게 붙였습니다. 라삐 이스마엘과 라삐 아키바는 세상의 아버지라 존경을 받고 그렇게 불렸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 밑에서는 모두가 형제이고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 형제라는 것을.




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그리스 말로 지도자는 “주”란 뜻이 있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를 때 이 말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사람이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될 존칭을 나열하고 있는 것입니다.




11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유다인들은 처음으로 이런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제자는 선생의 일꾼입니다. 제자의 일꾼이 되는 선생은 없습니다. “형제에 대하여 뛰어난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형제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명예 때문이 아니라 형제의 선 때문에 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제자들의 탁월한 스승이요 지도자가 되시는 분은 오직 한 분 뿐이시기에 그리스도교 안의 어떤 스승이나 지도자도 이러한 칭호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아무도 유다교의 랍비들의 본보기를 따라 자기 자신의 교리적인 견해를 주장하거나 어떤 교리 학파를 세우거나 거기에 가담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먼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의 철저한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아무리 교회 공동체 내에서 으뜸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참된 영광으로 가는 길은 겸손입니다. 온유하시고 겸손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이 길을 가셨습니다. 이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자신을 높이는 모든 사람은 이 말씀을 통하여 단죄의 선고를 받아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은 들어 올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종말, 즉 미래 심판의 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날에 세속적인 정신 속에서 사는 사람들과 예수님의 영 속에서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 모든 것이 완전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이 말씀이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높여 주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그냥 깔아 뭉게 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으로 받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항감이 있어야 만이 잘해주고, 예의를 갖춰주고, 조심스럽게 대한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상대방을 하느님께로 가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가끔은 착각에 빠져 살 때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대단한 인물이라고 착각하기도 하고, 남이 그렇게 대해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기도 합니다. 내가 착각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해야 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3. 참된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겸손해 지고 싶어서 옆에서 나를 비하한다면(물론 그 마음까지도 비워야 하겠지만) 마음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벽을 쌓기도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겸손해 질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4.공지사항


1. 학교생활과 성당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2. 적어도 하루에 성호경은 세 번 이상 그읍시다.


3. 오늘 밤 로사리오 성월을 맞이하여 “묵주기도의 밤” 행사를 합니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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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 31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1. 말씀읽기: 마태 23,1-12

    그 때에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길에 나서면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 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공동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의 예를 들면서 좀더 겸손하게 형제 자매들에게 다가 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좀더 겸손하게 하느님 앞에 서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2“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입법자였습니다. 모세 이후로는 조상들의 전승만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의 관심사는 모세 율법과 아울러 거기서 발전된 전승을 보존하고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율법학자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과 율법에 나타나 있는 하느님을 뜻을 알려 주었습니다.

    율법학자 제도는 에스델 시절(기원 전 5세기)의 것인데, 회당에서 율법을 읽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그들이 맡은 소임이었습니다. 이 제도를 유다 사회는 정당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이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학자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율법학자들은 사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행실은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은 유다 국민의 지도자로서, 또 어떤 의미에서는 모세를 이은자들 이었지만 그들 자신은 모세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레위기의 미드라스(해석)에는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가르치고 그리고 그 가르침을 스스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삶의 자세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4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율법의 해석자로 자처한 율법학자들에 대한 책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멋진 은유법을 사용하십니다. 그들은 노새와 낙타의 등에 엄청난 짐을 실어 놓고 그 짐을 옮기는 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장사꾼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율법학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것을 꼬집고 계시는 것입니다.


    5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보여주기 위한 것, 남에게서 칭찬 받기를 원하는 것. 명예로운 호칭을 좋아 하는 것. 이것은 허영심의 결과입니다. 성구 넣는 갑은 그리스 말로 부적이라는 뜻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미신적인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구 넣는 갑은 조그만 갑인데 그 속에 출애굽기 13,1-10. 11-16 그리고 신명기 6,4-9;11,13-21절 까지의 글귀를 양피지에 써서 넣었습니다. 작은 갑은 왼팔이나 이마에 달고 다녔는데 지금도 히브리인들은 기도할 때 그것을 다는 습관이 있습니다.


    6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자리는 나이의 차례에 따라 앉게 정해져 있었으나, 위엄이 있고, 지식이 있는 사람 순으로 정해져 있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허영 다툼의 근원 같습니다. 자리 그 자체에 위 아래를 정하는 것은 질서를 잡기 위해 당연한 일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은 명예심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윗자리 다툼인 것입니다.


    7 길에 나서면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 주기를 바란다.

    히브리인 사이에서는 인사를 받는 사람을 마음과 이마와 입에 새겨 두고 싶다는 그런 뜻으로 깊이 머리를  숙여 절을 하면서 동그라미를 그려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원말은 “라브”(스승), “라삐”(나의 스승), “랏방”(우리의 스승)입니다. 라브는 기원 전 2세기 말, 현재 말하는 박사, 선생 등의 뜻으로 쓰인 말입니다. 기원 후 1세기 말에는 “라삐”라 하고, 일반적으로 팔레스티나의 선생을 가리켰습니다. 그 무렵 로마 정부가 인정한 유다의 으뜸은 “랏방”이라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을 가르치십니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9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예수님께서 존칭을 절대적으로 배척하신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것을 좋아하고, 그것만을 노리는 명예심과 오만을 배척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분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교적 겸손을 기르기 위한 참으로 적절한 표현입니다. 오직 한 분의 스승은 하느님뿐이십니다. 사람은 아무리 현명하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높은 지혜에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라는 표현은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사람 사이의 보편적 형제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브라함, 이사악과 야곱 등 세 조상에게만 사용되었고, 어머니는 사라와 리브가와 레아와 라헬에게만 붙였던 존칭입니다. 그 후 “아브”,“앗바”(아버지)를 유명한 사람이나 학자에게 붙였습니다. 라삐 이스마엘과 라삐 아키바는 세상의 아버지라 존경을 받고 그렇게 불렸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 밑에서는 모두가 형제이고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 형제라는 것을.


    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그리스 말로 지도자는 “주”란 뜻이 있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를 때 이 말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사람이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될 존칭을 나열하고 있는 것입니다.


    11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유다인들은 처음으로 이런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제자는 선생의 일꾼입니다. 제자의 일꾼이 되는 선생은 없습니다. “형제에 대하여 뛰어난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형제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명예 때문이 아니라 형제의 선 때문에 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제자들의 탁월한 스승이요 지도자가 되시는 분은 오직 한 분 뿐이시기에 그리스도교 안의 어떤 스승이나 지도자도 이러한 칭호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아무도 유다교의 랍비들의 본보기를 따라 자기 자신의 교리적인 견해를 주장하거나 어떤 교리 학파를 세우거나 거기에 가담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먼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의 철저한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아무리 교회 공동체 내에서 으뜸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참된 영광으로 가는 길은 겸손입니다. 온유하시고 겸손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이 길을 가셨습니다. 이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자신을 높이는 모든 사람은 이 말씀을 통하여 단죄의 선고를 받아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은 들어 올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종말, 즉 미래 심판의 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날에 세속적인 정신 속에서 사는 사람들과 예수님의 영 속에서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 모든 것이 완전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이 말씀이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높여 주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그냥 깔아 뭉게 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으로 받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항감이 있어야 만이 잘해주고, 예의를 갖춰주고, 조심스럽게 대한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상대방을 하느님께로 가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가끔은 착각에 빠져 살 때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대단한 인물이라고 착각하기도 하고, 남이 그렇게 대해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기도 합니다. 내가 착각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해야 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3. 참된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겸손해 지고 싶어서 옆에서 나를 비하한다면(물론 그 마음까지도 비워야 하겠지만) 마음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벽을 쌓기도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겸손해 질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4.공지사항

    1. 학교생활과 성당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2. 적어도 하루에 성호경은 세 번 이상 그읍시다.

    3. 오늘 밤 로사리오 성월을 맞이하여 “묵주기도의 밤” 행사를 합니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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