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대림 제 1주일 셀모임 자료

 

대림제 1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깨어 있어라.


1. 말씀읽기: 마르코 13,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35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면 기다린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그분께서 오시면 기다리지 않았던 사람들은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준비를 합니다.




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예수님께서 모르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으로서는 물론이지만 인간으로서도 심판 날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 모든 비밀을 밝혀 주셨습니다. 단지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과 그 시간을 알릴 사명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날을 알려 주시지 않고 대신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일을 맡깁니다. 그리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하였습니다.




35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은 깨어 있으라고 분부를 합니다.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말입니다. 그런데 각자 일이 있는데 어떻게 깨어 있으라는 말일까요? 들에 나가서 일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피로에 지쳐서 저녁에는 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문지기만 깨어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인은 전부 깨어 있을 것을 말씀하시는데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그 주인이 바로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어 있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주인이 갑자기 돌아왔을 때는 언제입니까? 그리고 잠을 자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인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언제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꼭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앙인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더디 오시겠지”라고 게으름을 피운다면, 그리고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거나 냉담을 한다면 주님께서 오셨을 때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깨어 있는 삶입니다. 모두가 깨어 있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깨어 있는 신앙인 입니까? 잠을 자고 있는 신앙인입니까?




2. 내가 지금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4.공지사항


1. 학교생활과 성당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2. 적어도 하루에 성호경은 세 번 이상 그읍시다.


3. 셀 대회에 최선을 다합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대림절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1. 명칭


‘임하기를 기다린다’는 뜻의 “대림”(待臨)은 그리스어의 ‘에피파네이아’(나타남, 현시) 또는 ‘파루시아’(옴, 현존)의 번역이며 라틴어로는 ‘아드벤뚜스’(Adventus: 찾아옴, 도착)라고 합니다. 원래 일상 용어이던 아드벤뚜스가 고대 로마의 종교 영역에서는 신의 연례적인 성전 왕림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또 궁중에서는 어느 통치자가 즉위한 후에 처음으로 어느 마을을 공식 방문한다는 의미로 통용되었습니다. 345년의 로마 연대기를 보면 콘스탄티노 황제의 즉위일을 “아드벤뚜스 디비”(Adventus Divi)라고 표현하고 있다.


라틴어를 쓰던 고대 교회 문헌, 특히 라틴어 번역 성서 불가타에서는 이 낱말을 “그리스도께서 사람 가운데 오심”,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오심”, “주께서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심”, 곧 그리스도의 역사적 탄생과 재림의 의미로 쓰고 있다.


7세기경의 라틴어 문헌에 나타난 성탄 준비 시기의 명칭은 ‘안떼 나딸레 도미니’(Ante natale Domini : 주의 성탄 전) 또는 ‘아드벤뚜스 도미니’(Adventus Domini : 주님의 오심)이다. 이 ‘아드벤뚜스’는 중세기에 서방 세계에 널리 유포되어 중부 유럽의 대림 낱말의 어원을 이루고 있다.




2. 기쁨과 희망의 시기인 대림절


대림시기는 흔히 생각하듯이 주님의 역사적 성탄만을 준비할 뿐 아니라 그분의 종말 재림도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전례력 39항은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대림시기는 이중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곧 이 시기는 천주 성자께서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오셨음을 기념하는 성탄 대축일을 준비하는 시기이며, 동시에 이러한 기념의 마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심을 기다리게 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과거에 오셨던 그리스도를 기다리거나 미래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거나 우리는 똑같은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분은 처음에는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고 마지막에는 이 구원을 완성하러 오실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더없이 즐거운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을 듬뿍 안겨 줍니다. 그래서 대림시기는 기쁨과 희망의 시기입니다. 그러나 지존하신 주님을 합당하게 맞이하려면 우리의 마음과 몸을 깨끗이 씻고 단정하게 해야 합니다. 따라서 대림시기는 경건하고 열심하게 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많은 교우들은 대림시기를 사순시기와 비슷한 참회와 속죄의 시기로 생각하는데 교회의 지침에도 참회에 관한 말은 없습니다. 이 시기에도 대영광송을 부르지 않지만 그 이유는 슬퍼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성탄 당일 가장 알맞은 이 노래를 기쁜 마음으로 새롭게 부르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보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시 흠이 많은 나약한 인간이라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닦고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역시 회개하고 신앙을 굳게 하며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한편 대림시기에 우리가 기다리는 과거의 주님과 미래의 주님은 실상 현재에도 약속하신 대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가운데, 성체와 성혈 안에 그리고 미소한 형제들 안에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과거에 오셨던 주님과 미래에 오실 주님을 맞으려면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시는 주님을 만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대림시기에 기다리는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신비가 실현될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대림시기는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오셨음을 기념하는 성탄대축일을 준비하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심을 기다리게 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구원이신 주님을 기다리는 시기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기쁨의 시기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대림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시기와는 구별됩니다.


그런데 반가운 손님을 기다릴 때에는 집안을 깨끗이 정리하고 몸단장을 단정히 한 후 맞을 준비를 하듯이 구원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잘 맞아들이기 위해서는 인간의 나약함과 악의 세력으로 인한 죄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대림시기는 회개의 시기, 우리 자신과 세상의 온갖 죄악을 끊어버릴 것을 촉구하는 시기이고, 또 우리 자신이 그렇게 살면서 성탄을 잘 준비하도록 하는 때입니다.




4. 대림환과 대림초


대림시기 전례의 장식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待臨環입니다.


대림환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독일 개신교 선교사 요한 비허른(J. H. Wichern)으로 전해집니다. 비허름은 1833년 함부르크에서 무의탁 청소년들을 위해 대림절동안 촛불을 켜놓았으며 1840년대에 들어 왕관형 촛대와 둥근 환형의 촛대가 등장했습니다. 


대림환은 전나무 가지와 같은 푸른 나뭇가지를 둥글게 엮은 환에 4개의 초를 꽂아 만든다. 푸른 나뭇가지와 둥근 환은 생명과 공동체를 상징하며 4개의 초는 東․西․南․北, 곧 온세상을 비추는 그리스도의 빛으로서,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를 나타냅니다.


이 대림초는 대림 제1주일에는 한 개의 초에, 2주일에는 두 개의 초에, 3주일에는 세 개의 초에, 마지막 4주일에는 네 개의 초에 모두 불을 밝힙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탄이 가까울수록 빛이 더욱 밣게 빛나, 그리스도의 탄생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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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대림제 1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깨어 있어라.

    1. 말씀읽기: 마르코 13,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35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면 기다린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그분께서 오시면 기다리지 않았던 사람들은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준비를 합니다.


    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예수님께서 모르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으로서는 물론이지만 인간으로서도 심판 날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 모든 비밀을 밝혀 주셨습니다. 단지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과 그 시간을 알릴 사명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날을 알려 주시지 않고 대신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일을 맡깁니다. 그리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하였습니다.


    35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은 깨어 있으라고 분부를 합니다.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말입니다. 그런데 각자 일이 있는데 어떻게 깨어 있으라는 말일까요? 들에 나가서 일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피로에 지쳐서 저녁에는 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문지기만 깨어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인은 전부 깨어 있을 것을 말씀하시는데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그 주인이 바로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어 있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주인이 갑자기 돌아왔을 때는 언제입니까? 그리고 잠을 자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인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언제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꼭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앙인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더디 오시겠지”라고 게으름을 피운다면, 그리고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거나 냉담을 한다면 주님께서 오셨을 때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깨어 있는 삶입니다. 모두가 깨어 있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깨어 있는 신앙인 입니까? 잠을 자고 있는 신앙인입니까?


    2. 내가 지금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4.공지사항

    1. 학교생활과 성당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2. 적어도 하루에 성호경은 세 번 이상 그읍시다.

    3. 셀 대회에 최선을 다합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대림절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1. 명칭

    ‘임하기를 기다린다’는 뜻의 “대림”(待臨)은 그리스어의 ‘에피파네이아’(나타남, 현시) 또는 ‘파루시아’(옴, 현존)의 번역이며 라틴어로는 ‘아드벤뚜스’(Adventus: 찾아옴, 도착)라고 합니다. 원래 일상 용어이던 아드벤뚜스가 고대 로마의 종교 영역에서는 신의 연례적인 성전 왕림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또 궁중에서는 어느 통치자가 즉위한 후에 처음으로 어느 마을을 공식 방문한다는 의미로 통용되었습니다. 345년의 로마 연대기를 보면 콘스탄티노 황제의 즉위일을 “아드벤뚜스 디비”(Adventus Divi)라고 표현하고 있다.

    라틴어를 쓰던 고대 교회 문헌, 특히 라틴어 번역 성서 불가타에서는 이 낱말을 “그리스도께서 사람 가운데 오심”,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오심”, “주께서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심”, 곧 그리스도의 역사적 탄생과 재림의 의미로 쓰고 있다.

    7세기경의 라틴어 문헌에 나타난 성탄 준비 시기의 명칭은 ‘안떼 나딸레 도미니’(Ante natale Domini : 주의 성탄 전) 또는 ‘아드벤뚜스 도미니’(Adventus Domini : 주님의 오심)이다. 이 ‘아드벤뚜스’는 중세기에 서방 세계에 널리 유포되어 중부 유럽의 대림 낱말의 어원을 이루고 있다.


    2. 기쁨과 희망의 시기인 대림절

    대림시기는 흔히 생각하듯이 주님의 역사적 성탄만을 준비할 뿐 아니라 그분의 종말 재림도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전례력 39항은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대림시기는 이중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곧 이 시기는 천주 성자께서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오셨음을 기념하는 성탄 대축일을 준비하는 시기이며, 동시에 이러한 기념의 마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심을 기다리게 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과거에 오셨던 그리스도를 기다리거나 미래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거나 우리는 똑같은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분은 처음에는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고 마지막에는 이 구원을 완성하러 오실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더없이 즐거운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을 듬뿍 안겨 줍니다. 그래서 대림시기는 기쁨과 희망의 시기입니다. 그러나 지존하신 주님을 합당하게 맞이하려면 우리의 마음과 몸을 깨끗이 씻고 단정하게 해야 합니다. 따라서 대림시기는 경건하고 열심하게 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많은 교우들은 대림시기를 사순시기와 비슷한 참회와 속죄의 시기로 생각하는데 교회의 지침에도 참회에 관한 말은 없습니다. 이 시기에도 대영광송을 부르지 않지만 그 이유는 슬퍼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성탄 당일 가장 알맞은 이 노래를 기쁜 마음으로 새롭게 부르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보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시 흠이 많은 나약한 인간이라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닦고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역시 회개하고 신앙을 굳게 하며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한편 대림시기에 우리가 기다리는 과거의 주님과 미래의 주님은 실상 현재에도 약속하신 대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가운데, 성체와 성혈 안에 그리고 미소한 형제들 안에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과거에 오셨던 주님과 미래에 오실 주님을 맞으려면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시는 주님을 만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대림시기에 기다리는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신비가 실현될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대림시기는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오셨음을 기념하는 성탄대축일을 준비하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심을 기다리게 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구원이신 주님을 기다리는 시기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기쁨의 시기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대림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시기와는 구별됩니다.

    그런데 반가운 손님을 기다릴 때에는 집안을 깨끗이 정리하고 몸단장을 단정히 한 후 맞을 준비를 하듯이 구원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잘 맞아들이기 위해서는 인간의 나약함과 악의 세력으로 인한 죄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대림시기는 회개의 시기, 우리 자신과 세상의 온갖 죄악을 끊어버릴 것을 촉구하는 시기이고, 또 우리 자신이 그렇게 살면서 성탄을 잘 준비하도록 하는 때입니다.


    4. 대림환과 대림초

    대림시기 전례의 장식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待臨環입니다.

    대림환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독일 개신교 선교사 요한 비허른(J. H. Wichern)으로 전해집니다. 비허름은 1833년 함부르크에서 무의탁 청소년들을 위해 대림절동안 촛불을 켜놓았으며 1840년대에 들어 왕관형 촛대와 둥근 환형의 촛대가 등장했습니다. 

    대림환은 전나무 가지와 같은 푸른 나뭇가지를 둥글게 엮은 환에 4개의 초를 꽂아 만든다. 푸른 나뭇가지와 둥근 환은 생명과 공동체를 상징하며 4개의 초는 東․西․南․北, 곧 온세상을 비추는 그리스도의 빛으로서,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를 나타냅니다.

    이 대림초는 대림 제1주일에는 한 개의 초에, 2주일에는 두 개의 초에, 3주일에는 세 개의 초에, 마지막 4주일에는 네 개의 초에 모두 불을 밝힙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탄이 가까울수록 빛이 더욱 밣게 빛나, 그리스도의 탄생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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