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위한기도의 날 셀모임자료

 

남북통일 기원 미사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기도하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남북통일 기원 미사


1. 말씀읽기: 마태18,19-22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한국 주교회의는 1965년, 해마다 6월 25일에 가까운 주일을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제정하고, 1992년에는 그 명칭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변경하였습니다. 2005년부터는 이날을 6월 25일이나 그 전 주일에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기도하는 오늘은 남과 북의 형제들이 피를 흘리며 싸웠던 동족상잔의 비극을 기억하며 화해와 일치의 날이 앞당겨지기를 기도하는 날입니다. 남과 북이 함께 힘을 합하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훌륭한 민족이 될 것입니다. 남과 북이 어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마음과 뜻을 모아야겠습니다. 또한 하느님께 한마음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진실한 기도와 용서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즉 진실하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참된 용서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마음을 모아서 청하는데 두  사람의 마음이 모아져야 합니다),  그렇게 청하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남북의 문제를 떠나서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마음이 다르면 아주 작은 공동체라 할지라도 일치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가 마음이 맞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남과 북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가려고 하나, 자기 색으로만 다가가려 하니 문제가 되어 아직도 서로가 하나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개인의 청원도 잘 들어주시지만 공동체의 청원을 더 잘 들어주신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증해 주고 계십니다.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는 말씀 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한 형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한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서 공동체가 기도한다면 분명 들어주실 것입니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둘이나 셋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려 모일 때, 예수님께서는 그 안에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그 기도는 예수님과 함께 드리는 기도이고, 그 기도를 하느님 아버지께서 꼭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예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모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모여서 기도하는데, 이것은 당연히 들어 주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바로 예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나 전교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용서를 생각해 본다면, 공동체에서 잘못하고서 공동체를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공동체가 모여서 기도를 한다면, 그가 공동체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를 한다면 그 기도를 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모여서 기도하니, 당연히 그에 대한 “서운함”등은 모두 용서했다는 것이 전제가 되고, 용서하려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하느님께서 외면하실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베드로 사도는 얼마나 많이 형제를 용서해 주어야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잘못을 범한 사람이 보상하지 않아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계속 용서를 해 주어야 하는가? 용서의 의무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가?


 베드로 사도는 일곱 번을 이야기 합니다. 일곱 번이라는 숫자를 이야기 한 것은 적어도 베드로사도가 용서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 용서한다는 것은 용서 할 만큼 했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그러한 잘못을 되풀이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말씀을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어떨까요? “예수님! 저에게 잘못하는 형제가 있는데,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는 제게 용서를 청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형제를 제가 일곱 번 까지 용서하고 그 다음 여덟 번째는 한대 때려도 될까요?




라삐들은 세 번까지만 용서해 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세 번까지만 용서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해서 인간들도 세 번까지만 용서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한없이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어떻게 무한히 용서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이 말씀은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용서해 주시겠다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로움을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통해서 드러내고 계십니다. 용서받은 사람이 용서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한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를 용서하셨으니 나도 용서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내 형제를 용서한다면 하느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헤아리신 다면 감당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의 용서하심과 자비로우심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위로요 희망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한히 용서하시고, 무한히 자비로우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남을 용서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타이를 때 받아들일 마음이 없거나, 그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나에게 화를 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상처를 주는 말 중의 하나가 “내가 너랑 친해서 하는 말인데 너는 그것이 나빠!…”이 말이 큰 상처를 준다고 합니다. 충고할 때도 사랑으로 해야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아닌 것을 옳다고 말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그 형제를 얻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형제적 사랑을 가지고 책망을 통해서 그를 회개하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들이 해야 할 몫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니 그것을 마다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그가 용서를 청한다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번만 용서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도 나에게 그렇게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예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싸운 친구와 다시 화해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어떤 방법으로 그에게 용서를 청했으며, 그 친구는 어떤 방법으로 나에게 다가왔으며, 어떻게 해서 그와 다시 화해하게 되었습니까?










2. 주님께 청을 드릴 때 어떤 청을 드립니까? 개인적인 청원입니까? 아니면 공동체를 위한 청원입니까?








4. 공지사항


1. 남자 축구부를 모집합니다. 이 축구부는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대상이며, 한달에 한번 정도 다른 본당과 시합을 하며, 건강과 친목을 도모할 계획입니다. 첫 모임은 7월 9일 오후 2시 사제관입니다.


2. 시험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당 다니는 친구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3. 셀 모임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례했으면 좋겠습니다. 조원들에게 서로 연락하면서, 꼭 나올 수 있도록 이끌었으면 좋겠습니다.


4. 시험 때면 당연히 성당에 안 나와도 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평소에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말씀과 놀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One Response to 나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위한기도의 날 셀모임자료

  1. user#0 님의 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말씀과 놀이

         

             “성경을 가까이 하는 어린이“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토요일에 성경 읽고 오기 

    기도하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남북통일 기원 미사

    1. 말씀읽기: 마태18,19-22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한국 주교회의는 1965년, 해마다 6월 25일에 가까운 주일을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제정하고, 1992년에는 그 명칭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변경하였습니다. 2005년부터는 이날을 6월 25일이나 그 전 주일에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기도하는 오늘은 남과 북의 형제들이 피를 흘리며 싸웠던 동족상잔의 비극을 기억하며 화해와 일치의 날이 앞당겨지기를 기도하는 날입니다. 남과 북이 함께 힘을 합하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훌륭한 민족이 될 것입니다. 남과 북이 어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마음과 뜻을 모아야겠습니다. 또한 하느님께 한마음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진실한 기도와 용서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즉 진실하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참된 용서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마음을 모아서 청하는데 두  사람의 마음이 모아져야 합니다),  그렇게 청하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남북의 문제를 떠나서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마음이 다르면 아주 작은 공동체라 할지라도 일치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가 마음이 맞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문제1 : 다음 중에서 둘이나 셋이 모여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도를 드렸을 때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것은?

    ① 하느님 아버지! 저랑 훈이랑 종선이랑 은행을 털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려 하오니 은행을 잘 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② 하느님 아버지! 저랑 건호는 미사시간 마다 떠드는데 미사 시간에 떠들면 도미니코 선생님이 꿀밤을 줍니다. 제희가 도미니코 선생님보다 키도 크고 힘도 강해서, 미사 시간에 떠들어도 선생님한테 얻어맞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③ 하느님 아버지! 저랑 상겸이랑 진겸이는 성가를 부르기 싫어하는데, 저희가 성가를 부르지 않아도 부르는 것처럼 보이게 하시어, 신부님이나 선생님한테 혼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④ 하느님 아버지! 저희와 함께 기도하고, 미사에 참례하던 친구가 성당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 친구를 위해서 기도하오니, 그 친구가 성당에 나와, 저희와 함께 기도하고 미사에 참례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개인의 청원도 잘 들어주시지만 공동체의 청원을 더 잘 들어주신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증해 주고 계십니다.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는 말씀 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성당에 나오지 않는 친구를 성당에 나오게 하기위해서 기도하고 함께 노력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들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둘이나 셋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려 모일 때, 예수님께서는 그 안에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그 기도는 예수님과 함께 드리는 기도이고, 그 기도를 하느님 아버지께서 꼭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문제2 : 두 세 사람이 청하는 기도를 하느님 아버지께서 들어주시는 이유는?

    ①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기도하려고 모이면 예수님께서 함께 해 주심으로

    ② 기도하면서 청하는 기도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이기에

    ③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예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것이기에,

    ④ 예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모인 공동체는 당연히 하느님 마음에 드시는 것이기에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예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모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모여서 기도하는데, 이것은 당연히 들어 주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바로 예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베드로 사도는 얼마나 많이 형제를 용서해 주어야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잘못을 범한 사람이 보상하지 않아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계속 용서를 해 주어야 하는가? 용서의 의무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가?

     베드로 사도는 일곱 번을 이야기 합니다. 일곱 번이라는 숫자를 이야기 한 것은 적어도 베드로사도가 용서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 용서한다는 것은 용서 할 만큼 했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그러한 잘못을 되풀이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제 3: 예수님! 저에게 잘못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저에게 잘못했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제 연필을 부러뜨리고도 미안하다고 하지도 않았고, 제 게임 CD를 잊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주지도 않고, 미안하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지난 번에는 돈을 이천 원이나 빌려가고서는 아직까지 갚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친구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 일단 눈탱이 밤탱이 될 때까지 때려준다.

    ② 그 친구를 잘 타일러서 그 이유를 물어보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한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한없이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어떻게 무한히 용서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이 말씀은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용서해 주시겠다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문제 4: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몇 번을 용서하라는 것일까요?

    ① 일흔 일곱 번까지만

    ② 끝없이 용서해야 한다.



    문제 5: 예수님께서는 친구가 잘못을 하고 용서를 청하면 끊임없이 용서해 주어야 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희망과 교훈은 무엇일까요?

    ①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고 용서를 청하면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

    ② 하느님의 무한한 용서를 받고 있으니 나 또한 다른 이들을 무한히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교훈

    ③ 하느님께서 무한히 용서해주시므로 무한히 잘못을 저질러도 된다는 생각.


    하느님의 자녀가 되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한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를 용서하셨으니 나도 용서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내 친구를 용서한다면 하느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 다시 기억해 보기

    ①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왜 하느님 아버지께서 들어 주십니까?

    ② 몇 번을 용서해야 합니까?

    ③ 내가 잘못을 저지르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면 하느님께서는 몇 번을 용서해 주십니까?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싸운 친구와 다시 화해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어떤 방법으로 그에게 용서를 청했으며, 그 친구는 어떤 방법으로 나에게 다가왔으며, 어떻게 해서 그와 다시 화해하게 되었습니까?





    2. 주일학교 공동체가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께 기도한다면 어떤 기도를 드렸으면 좋겠습니까?





    4. 공지사항

    1.매주 목요일은 부모님과 함께 평일 미사에 참례하기

    2. 미사에 올 때 주일 복음 말씀 읽고 오기(복음을 써 오시는 친구들에게는 은총표를 드립니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user#0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