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축동성당 예수 성심 성월 특강 |
차례 ① 예수 성심 성월은? ② 예수 성심 성월의 역사적 발전 ③ 예수성심께 대한 사랑을 드리기 위하여 예수님의 마음으로. |
1. 예수 성심 성월은?
6월은 예수 성심 성월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특별히 묵상하며 공경하는 달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달인 것입니다. 예수성심성월은 1856년 교황 비오 9세께서 예수성심 축일을 전 교회축일로 설정하고 그때까지 이미 널리 전파되었던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을 교회의 공적 신심으로 인준하면서부터 였습니다.
2. 예수 성심 성월의 역사적 발전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이 싹튼 것은 11-12세기경 성 베네딕또 수도회와 치스떼르시안 수도회의 열심한 기도생활에서부터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수난에 대한 신심이 강했던 “성 벨라도와 안셀모”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들은 한 군사의 창에 찔린 예수님의 심장(요한 19,31-37)을 사랑의 상처, 창에 찔린 예수님 ‘마음’으로 상징해서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예수님 마음을 특별히 묵상하고 공경하였습니다.
이들이 이런 열심한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여러 교부들의 가르침이 유산으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부들은 예수님의 창에 찔린 옆구리 상처를 은총의 샘으로 보고, 마치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나왔듯이 새 아담인 그리스도의 옆구리 상처에서 새 하와인 교회가 탄생했다는 가르침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1) 하느님의 뜻은 그렇게 작용하고.
11세기의 열심한 이 수도자들(성 베네딕또 수도회와 치스떼르시안 수도회)은 창에 찔린 예수님의 마음을 상처받은 사랑으로 알아듣고, 예수님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수난신심에서 성심을 공경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신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에는 사도시대 때부터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그 큰 사랑에 대해 감사하고 보답하는 뜻으로 뜨거운 애정을 갖고 늘 살아 왔지만, ‘예수님의 마음’이란 대상을 놓고 존경을 드린 예는 그때까지 아직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신심이 싹트고 발전하게 된 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2) 성녀 젤뚜르다의 영시
성녀 “젤뚜르다”는 요한 사도 축일 영시 중에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쉴 수 있는 은총을 받고 예수님의 가슴에서 그분의 신적 마음의 진동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기쁨에 찬 성녀는 요한 사도에게
“사도께서도 최후만찬 때(요한 13,25) 이 감미로운 주의 성심의 소리를 들었다면 왜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묻자, 사도께서 대답하시기를
“이 계시는 세상이 점점 냉랭해져 주님의 사랑에 대한 열정이 요구될 후세대를 위해 보존해 두었던 것”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계시의 말씀은 성심께 대한 우리의 애정이 필요한 오늘의 우리 세대를 위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해서 싹트기 시작한 성심께 대한 신심은 15-16세기를 거쳐 많은 수덕 신비가들에 의해 실천되었고 퍼져나갔습니다.
3) 성 요한 에우데스의 성심미사
그러나 이 신심은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사적인 개인 신심으로 실천되었습니다. 즉 공식적인 전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신심행위로 실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전례 적으로 공적인 공경을 드리게 된 것은 성 요한 에우데스(1601-1680)가 성심미사를 설정하고, 1670년 렌느교구 주교의 인준을 받아 처음으로 성심미사를 봉헌하면서부터 였습니다. 그래서 교황 비오 10세께서는 그를 예수성심의 전례적 공경의 첫 시창자요 스승이요 사도라 불렀습니다.
4)성녀 말가리다
그러나 예수성심을 공경하는 신심이 우리 교회 안에 꽃피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성녀 말가리다에게 예수님 친히 그 성심을 계시해 주셨고 어떻게 하라는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녀 말가리다(1647-1690)는 살레시오회 수녀원에 들어가 수덕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주님께서는 그녀를 통해 성심공경을 전파시키고자 하셨습니다. 하루는 기도에 몰두하고 있던 그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주위에는 가시관이 둘려 있고 위에는 십자가가 있으며 사랑의 불에 타는 자기 심장을 내 보이시며,
“보라,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는 이 마음을!
나는 여기에 대해 감사를 받아야 될 것이거늘 그 보답으로는 오히려 냉담과 망각뿐이구나!”
하시며 대신 보속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보속의 방법으로는
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다음에 오는 금요일에 성심축일을 지낼 것과
②매달 첫 금요일에 고백성사를 받고 영성체 할 것,
③매 목요일에 성시간을 지켜줄 것,
④가정을 성심께 봉헌케 할 것 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녀 말가리다에게 이러한 계시가 있은 후 처음에는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실 여부가 문제였습니다. 그러다가 교회의 여러 가지 심사를 받고 나서 지당한 신심행사로 인정되어 여러 수도회에 받아들여져 실천되었습니다.
이러한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이 모든 신자들에게 전파되어 온 교회가 성심을 공경하게 된 것은 교황 비오 9세께서 1856년 성심축일을 전교회 축일로 제정하고, 성심을 공경하는 행위에 대해 은사를 허락하시면서부터 였습니다. 그 후 1889년에는 교황 레오 13세께서 천하 만민을 성심께 성대해 봉헌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성심을 열심히 공경하게 되었고 지금처럼 성월을 정해 이 신심을 실천하게 된 것입니다.
3. 예수성심께 대한 사랑을 드리기 위하여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 신심의 참된 뜻은 바로 예수님의 구원적인 그 사랑에 대해 보답하기 위해 우리가 애정을 갖고 성심을 공경하며 사는 데 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마음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고, 감사하며, 공경을 드려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밖에 모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해야 합니다.
1)예수님의 마음
① 측은지심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마르코 6,34)
예수님께서는 보고서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눈에 보이는 것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성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하겠지”라고 서로 미루면 결국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에서 나오는 마음으로, 믿음에서 나오는 마음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② 조건 없는 사랑
“내가 하고자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태8,3);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마태8,7); 예수님께서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마르코3,20)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사랑만 보여주셨습니다. 계산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이, 밀려드는 환자들과 말씀을 듣고자 하는 양떼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본당에서 봉사하는 형제자매들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누가 알아줘서가 아니라, 내 열정을 쏟아 부어 하느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누가 열심히 하고, 또 누가 “볼 때만 일하는 척 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조건 없이 사랑하고 봉사했으면 좋겠습니다.
③ 일이 아니라 기쁨(착한 목자)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마르코6,37)
제자들은 일로 생각하고, 예수님께서는 기쁨으로 생각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도 바꿔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성당을 지어라! 하고 이르시니 신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1,000만원씩을 내어서 성당을 지어야 한단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성전을 짓는 것이 일입니까? 아니면 기쁨입니까?
입으로는 기쁨이라고 말하겠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부담이요, 일이겠지요.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④ 겸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마태18,4)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겸손하셨습니다. 자신을 낮추어 종이 되신 하느님!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제자들이 누가 제일 높으냐고 서로 다툴 때, 예수님께서는 겸손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나도 겸손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높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사회에서는 지위도 있고, 재력도 있는데, 왜 성당에서는 그에 맞는 대접을 해 주지 않는 것입니까?” 이럴 때는 뭐라고 말해야하지요?
⑤ 용서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18,22)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끝없는 용서를 말씀하신 예수님은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어떻게 용서해야 할까요? 해야 됨을 알면서도 마음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것이 바로 용서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지 않으면” 결코 온전히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결론)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사랑을 실천할 수 없고, 그 무엇도 할 수 없습니다.
“보라,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는 이 마음을! 나는 여기에 대해 감사를 받아야 될 것이거늘 그 보답으로는 오히려 냉담과 망각뿐이구나!”
내가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예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 방축동 본당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가 방축동 본당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늘 고민하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이신 예수님! 당신 마음을 보여 주시어, 제가 당신 마음을 알고,
제 마음이 당신 마음이 되어, 당신처럼 살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