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 4주일 셀모임 자료: 나자렛에서 배척 당하시는 예수님

 

어떤 예언자도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1. 말씀읽기:루가4,21-30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말씀연구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고향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것. 별것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입견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지 말고, 첫인상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지 말고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그를 대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 시대에 갈릴래아는 유대인들이 지독히 멸시하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과거로부터 힘이 강한 여러 나라들로부터 지배를 받았고, 예수님 시대에도 로마로부터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래아는 여러 민족이 혼합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의 주민이 순수한 유대 민족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갈릴래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갈릴래아 사람들은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었기에 이방인들의 영향에 대해서 조심성이 덜했기 때문에 유대 전통에 무관심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사람들은 갈릴래아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요.


  또한 갈릴래아 지역은 비옥한 땅이어서 농업 소출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정부의 무자비한 세금 징수와 팔레스타인에서 부과된 종교세(11조)는 비옥한 지역 농민들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소농 지주들은 무거운 세금을 감당할 수 없어 땅을 포기하게 되고, 소작인으로, 그 다음에는 날품팔이로 몰락했습니다. 갈릴래아 주민 대부분의 생계비는 연 200데나리온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일꾼의 하루 품삯이니 얼마나 열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그들을 시골뜨기들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멸시의 대명사였습니다. 또 바리사이들은 그들을 저주받은 자들로 보았는데, 그들이 율법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지방에서 당신의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경계를 없애고 우리를 뒤섞어 놓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복음 선포로 하느님의 나라는 유다인들의 사고를 넘어 온 인류에게로 확장됩니다. 이미 이사야 예언자는 그들에게 임마누엘이라는 메시아의 빛이 비칠 것을 예고했습니다(8.23-9.1 참조). 예수님께서도 이사야의 말을 그들에게 적용시키셨다. 구원을 선포하는 기쁜 소식이 그들에게 전해집니다. “너희의 하느님께서 다스리신다.”(이사 52.7).


  성경 낭독 후에는 가르침이 뒤따랐습니다. 그 가르침이 강렬한 만큼 인상적인 단어들로 된 한 문장으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때를 선포하시고 그 때가 도래하였음을 알리십니다. 억압받고 절망 속에서 살아야 했던 갈릴래아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 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저주받은 족속이라고 불리지 않을 것이며,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의 총애를 많이 받으셨습니다(2,52). 청중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모두들 예수님을 칭찬하였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티토서2,11). “하느님께서는 그분과 함께 계셨습니다.”(사도10,38). 이러한 것은 예수님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직접 체험한 첫인상이었다.


신비감이 떨어지면 신뢰감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 다른 동네  사람이 나자렛에 와서 가르치셨다면 모두들 그분께 고개를 숙였겠지만 동네 사람이었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왔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특별한 표징을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걸림돌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예수님의 말씀은 도전이었고 문제 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하였지만 그 메시지를 가져온 구세주는 배척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다름없었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고향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설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당신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그 영원한 생명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으니 우리는 당신들을 떠나서 이방인들에게로 갑니다(사도13,46).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약속된 구세주이시라는 표징을 원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예수님의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그들이 규정하는 바대로 입증해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당신이 정하신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동의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나자렛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예언자는 자신의 임의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파견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기적이 이웃 주민들에게가 아니라 낯선 이들과 이방인들에게 베풀어지도록 하셨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구세주의 고향 사람들이었고 같은 혈통을 지닌 친척들이었다는 것이 구원의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온 이스라엘은 그들 가운데에서 메시아가 나셨다는 이유로 구원에 대한 권리 주장을 내세울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선포하셨고 또 그 다스림을 확립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기쁨이 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구원은 은총입니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실 그대로이지만 그들에게는 모욕이 됩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 그것은 모욕이 아니라 정확한 지적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나아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화를 냅니다. 친한 친구에게 “내가 너랑 친해서 하는 말인데, 넌 이것을 좀 고쳤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싫어한다고 합니다. 듣기 싫은 이야기는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것은 옹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예언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은 반드시 표징과 놀라운 일들로 자신이 예언자임을 증명해야 합니다(신명 13,2-3).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불경한 자로 단죄하고 돌로 쳐 죽이려 하였습니다. 불경한 자를 처벌하는 첫 조치는 핵심 증인이 그 죄인을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일이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심판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죄하고 즉시 형에 처하려고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대한 예수님의 사명이 좌절되었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불경한 자로 낙인찍히고 배척당하여 죽음에 직면하게 되셨습니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지만 예수님께 손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께 달려있습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의 모습을 잘못 알고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까? 그리고 나의 모습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럴 경우 어떻게 하십니까?






2.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인들에게 상처받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떠나게 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됩니다. 마치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혹시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을 박해한 적이나, 박해를 당한 적은 없습니까? 나 때문에 다른 이들이 신앙을 저버리는 일은 없습니까?



4. 공지사항


1. 친구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 가져 주기 2. 1월 30일(화)-31일(수) 피정에 적극 참례합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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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4주일 셀모임 자료: 나자렛에서 배척 당하시는 예수님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어떤 예언자도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1. 말씀읽기:루가4,21-30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말씀연구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고향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것. 별것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입견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지 말고, 첫인상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지 말고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그를 대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 시대에 갈릴래아는 유대인들이 지독히 멸시하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과거로부터 힘이 강한 여러 나라들로부터 지배를 받았고, 예수님 시대에도 로마로부터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래아는 여러 민족이 혼합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의 주민이 순수한 유대 민족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갈릴래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갈릴래아 사람들은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었기에 이방인들의 영향에 대해서 조심성이 덜했기 때문에 유대 전통에 무관심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사람들은 갈릴래아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요.

      또한 갈릴래아 지역은 비옥한 땅이어서 농업 소출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정부의 무자비한 세금 징수와 팔레스타인에서 부과된 종교세(11조)는 비옥한 지역 농민들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소농 지주들은 무거운 세금을 감당할 수 없어 땅을 포기하게 되고, 소작인으로, 그 다음에는 날품팔이로 몰락했습니다. 갈릴래아 주민 대부분의 생계비는 연 200데나리온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일꾼의 하루 품삯이니 얼마나 열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그들을 시골뜨기들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멸시의 대명사였습니다. 또 바리사이들은 그들을 저주받은 자들로 보았는데, 그들이 율법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지방에서 당신의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경계를 없애고 우리를 뒤섞어 놓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복음 선포로 하느님의 나라는 유다인들의 사고를 넘어 온 인류에게로 확장됩니다. 이미 이사야 예언자는 그들에게 임마누엘이라는 메시아의 빛이 비칠 것을 예고했습니다(8.23-9.1 참조). 예수님께서도 이사야의 말을 그들에게 적용시키셨다. 구원을 선포하는 기쁜 소식이 그들에게 전해집니다. “너희의 하느님께서 다스리신다.”(이사 52.7).

      성경 낭독 후에는 가르침이 뒤따랐습니다. 그 가르침이 강렬한 만큼 인상적인 단어들로 된 한 문장으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때를 선포하시고 그 때가 도래하였음을 알리십니다. 억압받고 절망 속에서 살아야 했던 갈릴래아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 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저주받은 족속이라고 불리지 않을 것이며,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의 총애를 많이 받으셨습니다(2,52). 청중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모두들 예수님을 칭찬하였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티토서2,11). “하느님께서는 그분과 함께 계셨습니다.”(사도10,38). 이러한 것은 예수님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직접 체험한 첫인상이었다.

    신비감이 떨어지면 신뢰감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 다른 동네  사람이 나자렛에 와서 가르치셨다면 모두들 그분께 고개를 숙였겠지만 동네 사람이었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왔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특별한 표징을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걸림돌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예수님의 말씀은 도전이었고 문제 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하였지만 그 메시지를 가져온 구세주는 배척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다름없었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고향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설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당신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그 영원한 생명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으니 우리는 당신들을 떠나서 이방인들에게로 갑니다(사도13,46).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약속된 구세주이시라는 표징을 원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예수님의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그들이 규정하는 바대로 입증해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당신이 정하신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동의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나자렛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예언자는 자신의 임의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파견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기적이 이웃 주민들에게가 아니라 낯선 이들과 이방인들에게 베풀어지도록 하셨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구세주의 고향 사람들이었고 같은 혈통을 지닌 친척들이었다는 것이 구원의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온 이스라엘은 그들 가운데에서 메시아가 나셨다는 이유로 구원에 대한 권리 주장을 내세울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선포하셨고 또 그 다스림을 확립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기쁨이 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구원은 은총입니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실 그대로이지만 그들에게는 모욕이 됩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 그것은 모욕이 아니라 정확한 지적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나아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화를 냅니다. 친한 친구에게 “내가 너랑 친해서 하는 말인데, 넌 이것을 좀 고쳤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싫어한다고 합니다. 듣기 싫은 이야기는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것은 옹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예언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은 반드시 표징과 놀라운 일들로 자신이 예언자임을 증명해야 합니다(신명 13,2-3).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불경한 자로 단죄하고 돌로 쳐 죽이려 하였습니다. 불경한 자를 처벌하는 첫 조치는 핵심 증인이 그 죄인을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일이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심판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죄하고 즉시 형에 처하려고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대한 예수님의 사명이 좌절되었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불경한 자로 낙인찍히고 배척당하여 죽음에 직면하게 되셨습니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지만 예수님께 손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께 달려있습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의 모습을 잘못 알고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까? 그리고 나의 모습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럴 경우 어떻게 하십니까?



    2.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인들에게 상처받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떠나게 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됩니다. 마치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혹시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을 박해한 적이나, 박해를 당한 적은 없습니까? 나 때문에 다른 이들이 신앙을 저버리는 일은 없습니까?

    4. 공지사항

    1. 친구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 가져 주기 2. 1월 30일(화)-31일(수) 피정에 적극 참례합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2. user#0 님의 말:

    어떤 예언자도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1. 말씀읽기:루가4,21-30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말씀연구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눈이 내려서 우리 친구들이 많이 안 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이 있었답니다. 그래도 눈 속을 헤치고 성당에 나오신 우리 친구들에게 예수님의 큰 축복이 내려 주길 빕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에 가셔서 가르치셨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고향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고향을 방문하신 것이랍니다. 그런데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지만 예수님은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 현장 속으로 한번 가볼까요?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문제 1: 무엇이 이루어진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루카복음 4장 18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지난 주일에 갈릴래아 사람들은 유대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면서 살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 민족이 함께 살았고, 다른 나라의 식민지 생활을 오래 해 왔고, 가난했으며, 그래서 율법을 잘 지키지 못했기에 무시를 당하면서 살아 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을 가득히 받은 예수님께서 가난한 갈릴래아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눈먼 사람들을 보게 하고, 병자들은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귀를 쫓아내어 죄의 종살이를 하고 있는 당신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고 말씀을 하신 것이랍니다.


    그리고 그 성경말씀은 오늘 우리 안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1. 아침 저녁 기도를 잘 바치고, 식사 전 후 기도를 하며

    2. 친구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고,

       성당에 행사가 있으면 친구들을 성당으로 데려오고

    3.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4.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에게는 기꺼이 도와주는 것.

    이렇게 한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오늘 우리가 이룰 수 있답니다. ^*^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예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놀랄 수밖에요. 지금 그들은 자신들은 모르지만 하느님을 만나고 있는 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예수님을 칭찬하였습니다.


    문제2: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시렁 궁시렁 거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① 예수님의 말씀이 참으로 훌륭하신데 예수님이나 우리 나자렛 사람이나 다른 것이 없지 않습니까?(교만)

    ② 예수님! 당신께서 예언자시라면 뭐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증거를 보여 주시면 저희가 믿겠습니다. 다른 곳에서 일으키셨다는 기적 좀 보여주시지요(불신).


    나자렛 사람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했지만 그 메시지를 가지고 오신 구세주 예수님은 배척하였던 것입니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문제 2: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사람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나자렛 사람들은 표징을 요구합니다. 누가 잘못하는 것일까요?

    ① 하느님께서 당신 일을 하시는데 증거를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니 나자렛 사람들이 잘못을 했지요. 믿음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나자렛 사람들의 교만은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답니다.

    ② 그래도 믿게 하려면 어떤 기적을 보여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감유. 그러니 예수님께서 잘못하신 것이지유!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문제3: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로서 나병에 걸렸다가 예언자 엘리사의 말을 듣고서 요르단 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고서 나병이 나은 장수는 누구일까요?(2열왕 5,1-27절 참조)

    ① 알렉산더 대왕 ② 아더왕 ③ 나아만 ④ 나폴레옹


    나아만은 처음에 요르단 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했을 때 화를 냈어요. 그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를 어루만지면서 병을 고쳐주길 원했었답니다. 그래서 화를 내며 발길을 돌릴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의 부하가 그거 어려운 일 아니지 않느냐고 하면서 몸을 씻게 만들었고, 그래서 결국 몸을 씻고 병을 낫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게 되었지요.


    문제 4: 엘리사 예언자는 나병이 나은 나아만으로부터 선물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예언자의 시종이 나아만을 쫓아가서 돈과 의복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 예언자에게는 아닌 것처럼 하다가 나병에 걸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①  게하지  ② 게딱지

    자기 것이 아닌 것을 탐내거나 욕심을 부리면 이렇게 된답니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문제 5: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왜 화가 났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화를 낸 이유가 무엇인가요?

    ① 이방인들은 믿음을 가지고 치유를 받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믿음이 없었기에 치유받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에.

    ② 그리고 나자렛 사람들이 믿음이 없기에 기적을 베풀수 없다는 것이기에.

    ③ 예언자라면 표징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예언자라고 하면서 기적은 보여주지 않고, 자신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시니까.


    문제 6: 그래서 화가 난 나자렛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① 예수님을 믿고 찬미와 영광을 드렸습니다.

    ② 사람들은 예수님을 불경한 자로 단죄하고 돌로 쳐 죽이려 하였습니다. 불경한 자를 처벌하는 첫 조치는 핵심 증인이 그 죄인을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일이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심판하려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로질러 가십니다.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지만 예수님께 손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께 달려있습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의 모습을 잘못 알고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까? 그리고 나의 모습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럴 경우 어떻게 하십니까?


    2.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인들에게 상처받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떠나게 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됩니다. 마치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혹시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을 박해한 적이나, 박해를 당한 적은 없습니까? 나 때문에 다른 이들이 신앙을 저버리는 일은 없습니까?

    4. 공지사항

    1. 친구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 가져 주기 2. 1월 30일(화)-31일(수) 피정에 적극 참례합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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