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성령강림 대축일 셀모임 자료: 성령을 받아라

 

“성령을 받아라”


1. 말씀읽기: 요한20,19-23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오늘 1독서의 사도행전에는 성령을 받은 사도들의 모습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을 때,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골방에 숨어 지낼 때 성령께서 내려오십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불길처럼 임하시어 그들을 변화시켜 놓습니다. 가장 먼저 변화 시킨 것은 바로 당당함입니다. 그들은 성령께서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나를 잡으러 올까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사도들의 말이 모두 자기네 말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가장 큰 은사는 바로 굳건히 나의 신앙을 증거 할 수 있는 힘과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를 받은 나는 굳건히 나의 신앙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또한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까?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 다음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들어 오셔서 그들 한 가운데 서시며 이렇게 인사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하신 말씀은 “평화”였습니다. 평화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께서 고통을 통해 성취한 평화이며, 고통과 죽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성취해낸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예수님의 희생으로부터 온 평화입니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구멍 난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는 지상의 역사와 고통을 그저 흘려보낸 것이 아닙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님은 결코 서로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부활신앙은 세상의 고통과는 무관한 환상적 찬양이 아닙니다. 이 신앙은 불가해하고 무의미한 세상의 고통 가운데서 고통이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죽음으로 함께 죽었었지만(꿈, 희망, 삶의 의미)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제자들도 부활을 맞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목적은 예수님께서 가져온 평화를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교회전체를 대표해서 사명을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권위와 힘을 부여받게 됩니다. 어떤 사람의 사절은 그 사람과 같습니다. 사절은 파견자를 대리하여 임무를 수행하며, 이런 관계로부터 권한이 부여되고 동시에 파견자(예수님)의 명예가 사절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최고의 사절이며 계시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명을 맡기는 것은 제자 공동체가 그 사명을 떠맡고 예수님의 권위까지 부여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님의 길, 화해의 자세, 그리고 스승이시며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세족례와 예수님의 수난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남의 종이 되지 않으면 예수님을 대리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권위는 자신을 낮춤에서 오고, 용서함에서 오고, 사랑함에서 오고, 예수님을 닮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숨을 불어넣으시는 모습은 에덴동산에서 하느님께서 아담을 지어 내시고 숨을 불어 넣으시어 생명을 주시는 것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어 아담은 살아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살아있는 신앙인입니다. 제자들이 유다인들이 두려워서 골방에 숨어있을 때, 성령께서는 제자들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문을 박차고 나가서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분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전했습니다. 신앙인이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예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아래와 같은 사람입니다.


①하느님을 공경하고,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들에 관심을 갖는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② 성경을 읽으면서 어떻게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잘 알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통달하여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③ 선과 악을 구분하여 구원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구원문제에 대해 의견이 있는, 생각이 있는, 그래서 어떻게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분별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④ 내가 가진 신앙의 힘으로 죄악과 악마를 거슬러 용감히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마침내는 순교까지 하면서 신앙을 굳세게(굳셈) 증거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⑤ 교리와 성경의 뜻을 잘 알아듣는 지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 믿어야 하는 것과 믿지 말아야 하는 것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⑥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모시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 신뢰하며 하느님께 효성을 다하는(효경) 사람입니다.


⑦ 내 잘못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릴까봐 걱정하며 두려워 하는(두려워함)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의 시초이니 슬기를 가진 자는 두려워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슬기와 통달함과 의견과 굳셈과 지식과 효경과 두려워함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바로 살아있는 신앙인입니다.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용서받는 또는 용서받지 못하는”이라는 표현은 “매고, 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일반적인 하느님의 사면이며, 화해와 생명을 위한 보편적 봉헌입니다. 그런데 위험한 요소가 있습니다. 교회가 제멋대로 화해를 조정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교회 전체에 약속된 것이므로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 권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의 용서는 부활을 통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세상에 참된 화해와 평화를 주셨으며, 이 평화는 온 세상에 삶이 새로운 기점으로 선포되고 제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자 공동체의 존재 이유입니다.




 이러한 은총의 보편성은, 교계제도의 힘이 바로 이것으로부터 나오고, 면죄부를 판매하듯 영적인 무역행위가 성행하게 되면, 더 이상 보편적인 의미를 보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사실 성령을 통하여 새로 나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영원한 생명에 도움이 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결코 온전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용서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만이 완전한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용서를 받으려면 그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온전한 신앙인이어야만이 나를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성령을 받은 제자들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살아있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죽음을 무릎 쓰고 당당하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전하게 됩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왜 그렇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도 그렇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2. 성령의 은사 중에서 내가 성령께 청하는 은사는 무엇입니까?






4. 공지사항


1. 친구들에게 관심 가져주기 2. 학교생활 잘하기


3. 내일 교중미사를 시작으로 본당의 날 행사가 있습니다. 모두 참례 합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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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성령강림 대축일 셀모임 자료: 성령을 받아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령을 받아라”

    1. 말씀읽기: 요한20,19-23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오늘 1독서의 사도행전에는 성령을 받은 사도들의 모습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을 때,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골방에 숨어 지낼 때 성령께서 내려오십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불길처럼 임하시어 그들을 변화시켜 놓습니다. 가장 먼저 변화 시킨 것은 바로 당당함입니다. 그들은 성령께서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나를 잡으러 올까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사도들의 말이 모두 자기네 말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가장 큰 은사는 바로 굳건히 나의 신앙을 증거 할 수 있는 힘과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를 받은 나는 굳건히 나의 신앙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또한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까?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 다음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들어 오셔서 그들 한 가운데 서시며 이렇게 인사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하신 말씀은 “평화”였습니다. 평화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께서 고통을 통해 성취한 평화이며, 고통과 죽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성취해낸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예수님의 희생으로부터 온 평화입니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구멍 난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는 지상의 역사와 고통을 그저 흘려보낸 것이 아닙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님은 결코 서로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부활신앙은 세상의 고통과는 무관한 환상적 찬양이 아닙니다. 이 신앙은 불가해하고 무의미한 세상의 고통 가운데서 고통이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죽음으로 함께 죽었었지만(꿈, 희망, 삶의 의미)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제자들도 부활을 맞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목적은 예수님께서 가져온 평화를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교회전체를 대표해서 사명을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권위와 힘을 부여받게 됩니다. 어떤 사람의 사절은 그 사람과 같습니다. 사절은 파견자를 대리하여 임무를 수행하며, 이런 관계로부터 권한이 부여되고 동시에 파견자(예수님)의 명예가 사절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최고의 사절이며 계시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명을 맡기는 것은 제자 공동체가 그 사명을 떠맡고 예수님의 권위까지 부여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님의 길, 화해의 자세, 그리고 스승이시며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세족례와 예수님의 수난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남의 종이 되지 않으면 예수님을 대리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권위는 자신을 낮춤에서 오고, 용서함에서 오고, 사랑함에서 오고, 예수님을 닮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숨을 불어넣으시는 모습은 에덴동산에서 하느님께서 아담을 지어 내시고 숨을 불어 넣으시어 생명을 주시는 것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어 아담은 살아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살아있는 신앙인입니다. 제자들이 유다인들이 두려워서 골방에 숨어있을 때, 성령께서는 제자들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문을 박차고 나가서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분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전했습니다. 신앙인이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예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아래와 같은 사람입니다.

    ①하느님을 공경하고,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들에 관심을 갖는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② 성경을 읽으면서 어떻게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잘 알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통달하여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③ 선과 악을 구분하여 구원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구원문제에 대해 의견이 있는, 생각이 있는, 그래서 어떻게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분별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④ 내가 가진 신앙의 힘으로 죄악과 악마를 거슬러 용감히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마침내는 순교까지 하면서 신앙을 굳세게(굳셈) 증거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⑤ 교리와 성경의 뜻을 잘 알아듣는 지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 믿어야 하는 것과 믿지 말아야 하는 것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⑥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모시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 신뢰하며 하느님께 효성을 다하는(효경) 사람입니다.

    ⑦ 내 잘못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릴까봐 걱정하며 두려워 하는(두려워함)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의 시초이니 슬기를 가진 자는 두려워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슬기와 통달함과 의견과 굳셈과 지식과 효경과 두려워함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바로 살아있는 신앙인입니다.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용서받는 또는 용서받지 못하는”이라는 표현은 “매고, 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일반적인 하느님의 사면이며, 화해와 생명을 위한 보편적 봉헌입니다. 그런데 위험한 요소가 있습니다. 교회가 제멋대로 화해를 조정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교회 전체에 약속된 것이므로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 권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의 용서는 부활을 통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세상에 참된 화해와 평화를 주셨으며, 이 평화는 온 세상에 삶이 새로운 기점으로 선포되고 제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자 공동체의 존재 이유입니다.


     이러한 은총의 보편성은, 교계제도의 힘이 바로 이것으로부터 나오고, 면죄부를 판매하듯 영적인 무역행위가 성행하게 되면, 더 이상 보편적인 의미를 보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사실 성령을 통하여 새로 나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영원한 생명에 도움이 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결코 온전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용서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만이 완전한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용서를 받으려면 그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온전한 신앙인이어야만이 나를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성령을 받은 제자들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살아있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죽음을 무릎 쓰고 당당하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전하게 됩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왜 그렇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도 그렇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2. 성령의 은사 중에서 내가 성령께 청하는 은사는 무엇입니까?



    4. 공지사항

    1. 친구들에게 관심 가져주기 2. 학교생활 잘하기

    3. 내일 교중미사를 시작으로 본당의 날 행사가 있습니다. 모두 참례 합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2. user#0 님의 말:

    “성령을 받아라”

    1. 말씀읽기: 요한20,19-23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우리 친구들 안녕하세요!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이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사도들의 마음을 바꿔 주셨어요. 그래서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전하게 만들어 주셨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골방에 숨어 있었어요.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을 때,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골방에 숨어 지낼 때 성령께서 내려오십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불길처럼 임하시어 그들을 변화시켜 놓습니다. 가장 먼저 변화 시킨 것은 바로 당당함입니다. 그들은 성령께서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나를 잡으러 올까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성령칠은을 뽑으면서 다른 친구들이 다 뽑을 때까지 펼쳐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그 손안에 꼬-옥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효경”이 뭐예요? 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손을 펴봐.”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 손 안에는 “효경”이 있었답니다. 내가 청하는 은사를 성령께서는 주신답니다.^*^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문제 1: 안식일 다음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잡히면 죽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들어 오셔서 그들 한 가운데 서시며 이렇게 인사하셨습니다. 뭐라고 인사하셨지요?

    ① 평화가 너희와 함께

    ② 방가방가~

    ③ 안뇸하셤 ㅋㅋ


    “평화가 너희와 함께” 라고 인사하셨습니다. 우리 친구들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가득 넘쳐  흐르길 빕니다.


    그런데 평화는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에서는 평화는 평온하고 화목한 것을 말하고, 사랑이 충만하고 사랑과 행복이 피어오르는 것을 말하며, 갈등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폭력을 통해서는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어요. 박해자들에게 당신을 내어 주셨지요.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통해서 얻은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입니다. 아버지가 직장생활이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하셔서 집을 장만하시고, 가정을 꾸려 가시기에 내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서 얻게 된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예수님 때문에 이겨냄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입니다. 우리 친구들이 예수님 안에서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것이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누가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 빼앗기지 마세요.


    문제 2: 어떤 경우에 평화를 빼앗깁니까?

    ①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다가 친구가 신경질을 부리거나, 욕을 할 때

    ② 친구가 자기 욕심만 챙기고, 이기적으로 변할 때

    ③ 친구가 미사 시간에 자꾸 말을 시키고, 장난을 걸어올 때

    ④ 선생님과 친구와 함께 마음을 모아서 미사에 참례하고, 재미있게 교리하고 놀 때

    ⑤ 내가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나만 생각하고, 배려하지 못할 때.

    늘 평화를 간직하는 어린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친절한 형수씨 버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그런 사람 있어요^*^”

    만사마 버전: 왜 없어~ 띠리띠디디 뚜르뚜르르^*^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구멍 난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죽음으로 함께 죽었었지만(꿈, 희망, 삶의 의미)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제자들도 부활을 맞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목적은 예수님께서 가져온 평화를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평화를 전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되어야 합니다.


    문제 3: 평화를 전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① 친구가 잘못을 해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고, 용서해 주는 것

    ②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 때 규칙을 지키고 양보할 수 있는 것.

    ③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처럼 나도 기도하면서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④ 예수님께서 겸손하신 것처럼 나 또한 겸손해 지는 것.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권위는 자신을 낮춤에서 오고, 용서함에서 오고, 사랑함에서 오고, 예수님을 닮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성령을 받은 사람이고, 살아있는 신앙인입니다. 제자들이 유다인들이 두려워서 골방에 숨어있을 때, 성령께서는 제자들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문을 박차고 나가서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분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전했습니다. 신앙인이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예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아래와 같은 사람입니다.

    ①하느님을 공경하고,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들에 관심을 갖는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②성경을 읽으면서 어떻게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잘 알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통달하여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③선과 악을 구분하여 구원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구원문제에 대해 의견이 있는, 생각이 있는, 그래서 어떻게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분별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④내가 가진 신앙의 힘으로 죄악과 악마를 거슬러 용감히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마침내는 순교까지 하면서 신앙을 굳세게(굳셈) 증거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⑤교리와 성경의 뜻을 잘 알아듣는 지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 믿어야 하는 것과 믿지 말아야 하는 것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⑥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모시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 신뢰하며 하느님께 효성을 다하는(효경) 사람입니다.

    ⑦내 잘못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릴까봐 걱정하며 두려워 하는(두려워함)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의 시초이니 슬기를 가진 자는 두려워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슬기와 통달함과 의견과 굳셈과 지식과 효경과 두려워함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바로 살아있는 신앙인입니다. 그런 신앙인은 사랑과 기쁨과 평화, 인내와 친절과 선행, 진실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사실 성령을 통하여 새로 나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영원한 생명에 도움이 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결코 온전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용서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만이 완전한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용서를 받으려면 그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온전한 신앙인이어야만이 나를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성령을 받은 제자들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살아있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죽음을 무릎 쓰고 당당하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전하게 됩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왜 그렇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도 그렇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2. 성령의 은사 중에서 내가 성령께 청하는 은사는 무엇입니까?


    4. 공지사항

    1. 친구들에게 관심 가져주기 2. 학교생활 잘하기

    3. 내일 교중미사를 시작으로 본당의 날 행사가 있습니다. 모두 참례 합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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