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 28주일 셀모임 자료: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


1. 말씀읽기:루카17,11-19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시다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나병 환자 열 사람. 아홉은 유다인이었고, 하나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성숙한 믿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성장하고 감사드리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그는 치유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의 인생은 예수님 안에서 감사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과 마주치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님께 소리쳤습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님 시대에 보면 나병환자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 되었지만 성벽이 있는 고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고, 사람들 가까이에 가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애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들의 구성을 보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다인들 속에 사마리아 사람이 끼어있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 돼지’ 취급했는데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아마도 나병이라는 비참함이 그들 사이에 공동적인 유대를 형성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간의 민족적 적대감 까지 잊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들도 “하느님의 자녀”라는 공통적인 신분이 있기에 형제요 자매라고 부를 수 있고, 더욱 친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다른 이들 보다도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떤 조건 때문에, 자신의 이익 때문에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하느님의 자녀의 특권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갈라져 서로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자비를 청했습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여기서 스승님이라는 칭호는 성경에서 사도들이 그분의 능력에 압도당하였을 때, 그분의 영광에 깜짝 놀랐을 때, 또는 곤경 중에서 도움을 필요로 했을 때 사도들이 예수님께 드린 칭호였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이 칭호를 드리면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어떠한 조건도 걸지 않으십니다. 나병환자들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제들에게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사제들이 “이 사람 병이 다 나았습니다.”라고 선언해야만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들을 사제들에게 보내신 것은 결국 “너는 다 나았으니 공동체로 돌아가거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나병환자 열 사람은 아무 조건도 없이 예수님께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10명이 구원되었는데 그중에서 이방인 한 사람만이 돌아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들 드리고 있습니다. 그 사마리아 사람은 이스라엘의 자녀들 가운데 들지 않는 이방인 중의 한 사람이었기에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의 선물에 오직 감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사마리아 사람은 기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뿐 이심을 알고 있었기에 하느님을 찬양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발 앞에 엎드린 다는 것은 깊은 존경의 표시입니다. 지금 큰 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엎드려 존경을 표시하는 방법은 또 하느님께 올리는 존경을 의미했습니다(마태26,39;1고린14,25;묵시록7,11.11,16).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무런 감사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선물을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이 치유 받은 것은 하느님의 대변인으로부터 자신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엄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식사를 감사할 줄도 모르고 투덜거리는 아이들.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길지 모르겠지만 과연 그것이 당연한 것이겠습니까?


아빠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여 벌어 오시는데 아이들은 그것을 아무런 고마움 없이 써 버린다면 그것이 옳은 일이겠습니까? 아빠의 눈에는 아이들의 행동이 당연하다고 여겨질까요?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감사할 것 들 뿐입니다.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랑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잊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성한 몸을 사제에게 보이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서둘렀을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이 집에 가 있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고쳐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감사를 드려야 했음이 당연한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수능시험”을 하루 앞둔 날 복음말씀이 이 말씀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미사에 참례하고 성사를 보고 강복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수능시험이 끝나고 그날 성당에 와서 감사미사를 바친 학생은 단 한명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한번쯤은 감사하다고 여겨 보십시오. 두 눈이 있음을,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음을, 가족이 있음을, 부모가 있음을, 직장에 다니고 있음을, 그리고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치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이방인은 예수님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가르침의 탁월성을 인정했고,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믿었습니다.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믿는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여기서 또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믿음으로 구원되지만 그 믿음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기에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행동이 따르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주님께 자비를 청하는 믿음과 그 자비에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행동은 늘 결합되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러 오지 않은 치유 받은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입니까?






2. 내가 예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어떤 것을 감사드려야 합니까?






4. 공지사항


1.학교생활 잘 하기  2. 건강관리 잘하기 3. 친구들에게 관심 가져 주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말씀과 놀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다해 연중 제 28주일 셀모임 자료: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

    1. 말씀읽기:루카17,11-19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시다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나병 환자 열 사람. 아홉은 유다인이었고, 하나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성숙한 믿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성장하고 감사드리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그는 치유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의 인생은 예수님 안에서 감사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과 마주치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님께 소리쳤습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님 시대에 보면 나병환자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 되었지만 성벽이 있는 고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고, 사람들 가까이에 가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애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들의 구성을 보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다인들 속에 사마리아 사람이 끼어있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 돼지’ 취급했는데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아마도 나병이라는 비참함이 그들 사이에 공동적인 유대를 형성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간의 민족적 적대감 까지 잊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들도 “하느님의 자녀”라는 공통적인 신분이 있기에 형제요 자매라고 부를 수 있고, 더욱 친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다른 이들 보다도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떤 조건 때문에, 자신의 이익 때문에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하느님의 자녀의 특권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갈라져 서로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자비를 청했습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여기서 스승님이라는 칭호는 성경에서 사도들이 그분의 능력에 압도당하였을 때, 그분의 영광에 깜짝 놀랐을 때, 또는 곤경 중에서 도움을 필요로 했을 때 사도들이 예수님께 드린 칭호였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이 칭호를 드리면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어떠한 조건도 걸지 않으십니다. 나병환자들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제들에게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사제들이 “이 사람 병이 다 나았습니다.”라고 선언해야만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들을 사제들에게 보내신 것은 결국 “너는 다 나았으니 공동체로 돌아가거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나병환자 열 사람은 아무 조건도 없이 예수님께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10명이 구원되었는데 그중에서 이방인 한 사람만이 돌아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들 드리고 있습니다. 그 사마리아 사람은 이스라엘의 자녀들 가운데 들지 않는 이방인 중의 한 사람이었기에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의 선물에 오직 감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사마리아 사람은 기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뿐 이심을 알고 있었기에 하느님을 찬양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발 앞에 엎드린 다는 것은 깊은 존경의 표시입니다. 지금 큰 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엎드려 존경을 표시하는 방법은 또 하느님께 올리는 존경을 의미했습니다(마태26,39;1고린14,25;묵시록7,11.11,16).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무런 감사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선물을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이 치유 받은 것은 하느님의 대변인으로부터 자신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엄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식사를 감사할 줄도 모르고 투덜거리는 아이들.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길지 모르겠지만 과연 그것이 당연한 것이겠습니까?

    아빠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여 벌어 오시는데 아이들은 그것을 아무런 고마움 없이 써 버린다면 그것이 옳은 일이겠습니까? 아빠의 눈에는 아이들의 행동이 당연하다고 여겨질까요?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감사할 것 들 뿐입니다.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랑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잊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성한 몸을 사제에게 보이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서둘렀을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이 집에 가 있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고쳐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감사를 드려야 했음이 당연한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수능시험”을 하루 앞둔 날 복음말씀이 이 말씀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미사에 참례하고 성사를 보고 강복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수능시험이 끝나고 그날 성당에 와서 감사미사를 바친 학생은 단 한명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한번쯤은 감사하다고 여겨 보십시오. 두 눈이 있음을,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음을, 가족이 있음을, 부모가 있음을, 직장에 다니고 있음을, 그리고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치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이방인은 예수님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가르침의 탁월성을 인정했고,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믿었습니다.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믿는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여기서 또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믿음으로 구원되지만 그 믿음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기에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행동이 따르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주님께 자비를 청하는 믿음과 그 자비에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행동은 늘 결합되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러 오지 않은 치유 받은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입니까?



    2. 내가 예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어떤 것을 감사드려야 합니까?



    4. 공지사항

    1.학교생활 잘 하기  2. 건강관리 잘하기 3. 친구들에게 관심 가져 주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2. user#0 님의 말: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 10명을 치유해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감사하다고 인사하러 온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어요.

    우리 친구들! 나병이 어떤 병인지 아세요? 이 나병을 문둥병이라고 한답니다. 나병 균에 의해 감염되는 만성 전염성 난치병이예요. 피부에 살점이 불거져 나오거나 반점 같은 것이 생기고, 그 부분의 감각이 마비됩니다. 그러니 못에  찔려도 아픈 줄을 모르겠지요. 얼마나 괴롭겠어요. 그리고 눈썹이 빠지고 손발이나 얼굴이 변형되며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답니다. 지금은 나병 발병률이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참 많이 있었답니다. 치료가 불가능하니까 그냥 그렇게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낫게 해 주셨습니다.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문제 1: 예수님께서는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그리고 멀찍이 서서 큰 소리로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않고 멀찍이 서서 외칠까요?

    ① 예수님 시대에 보면 나병환자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 되었지만 성벽이 있는 고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② 특히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고, 사람들 가까이에 가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③ 그러니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애원하였던 것입니다.

    ④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귀찮아서(^*^ 설마~)


    문제 2: 나병 환자는 열 사람입니다. 아홉은 유다인이었고, 하나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이방인들과 어울리지 않는데 어떻게 함께 다닐까요?

    ① 평상시라면 유다인들과 사마리아 사람은 함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②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나 돼지를 보는 것처럼 그렇게 취급했습니다.

    ③ 그러나 치유할 수 없는 나병이라는 비참한 상황은 그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④ 그래서 유다인들과 사마리아 사람간의 민족적 적대감까지 잊게 했습니다.


    문제 3: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어떤 공동점이 있을까요?

    ① 하느님의 자녀라는 공통된 신분

    ② 예수님을 사랑하는 공통된 마음

    ③ 친구들을 서로 이용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마음

    ④ 교리를 배우고 성경을 배우고자 하는 공통된 열정


    문제 4: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자비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나병을 낫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을까요?

    ①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② 나병은 그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치유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다.

    ③ 마침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마을을 지나가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④ 그들은 예수님께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⑤ 그들은 예수님께 자비를 청한 사람들이 한번이라도 외면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⑥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매달렸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깨끗하게 해 주셨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문제 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고 이르십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비참한 처지를 아시고 그들을 치유해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② 몸에 부스럼이나 피부병이 있는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격리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염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동체로 다시 돌아가려면 사제가 “이 사람은 깨끗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선언이 있어야 가능했습니다.

    ③ 이제 깨끗해 졌으니 사제에게 보이고 공동체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④ 나병환자들은 사제에게 가는 동안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문제 6: 결코 치료할 수 없는 병을 깨끗하게 치료 받았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요? 먼저 해야 할 것들부터 말해보세요.

    ① 꿈에도 그리던 집으로 돌아가서 함께 기쁨을 나눈다.

    ② 나병환자이기에 들어가지 못했던 곳에 맘껏 들어가 본다.

    ③ 나를 깨끗하게 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먼저 드린다.

    ④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⑤ 기타(                                           ).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문제 7: 10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께로부터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① 모두 예수님 앞에 와 엎드려 감사들 드렸습니다.

    ②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 사람만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③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께 깊은 존경을 드리며,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렸지만, 유다인 9명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감사드리지 않았습니다.

    ④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선물을 당연히 받을 자격이 있고, 그동안 고생을 했으니 하느님께서 당연히 치유해 주셔야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느님께로부터 파견 받으신 분이니 예수님께 감사드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있을까요?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삶이고, 그것이 바로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친구들의 입에서는 늘 이런 소리가 나와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부모님께 감사하고, 형제 자매들에게도 감사하고, 선생님들께도 감사하고, 내 친구들에게도 감사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문제 8: 다음 빈칸에 알 맞는 말을 넣어 보세요.

    ① 건호는 성당에 걸어오다가 민원 선생님을 만나서 민원 선생님차를 타고 함께 성당에 왔습니다. 차에서 내린 건호는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

    ② 종숙이는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비가 왔습니다. 비를 맞고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런데 오빠 종수가 우산을 들고 종숙이에게 왔습니다. 그럴 줄 알고 우산을 준비했지. 종숙이는 오빠에게 말했습니다. ⎕⎕!⎕⎕⎕.

    민철이는 어머니와 함께 시내에 갔는데, 갖고 싶어 하는 운동화를 발견했고, 어머니께서는 그 운동화를 사 주셨습니다. 민철이는 운동화를 신고서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④ 누렁이는 늘 반찬투정을 했습니다. 맛있게 차려 주어도 먹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먹었습니다. 골고루 먹으라고 말하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

                                    (예: 제맘인디유, 감사합니다. 오빠! 고마워! 뭘이런걸다,)


    문제 9: 위 친구들 중에서 감사할 줄 아는 친구는 누구입니까?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문제 10: 믿음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드러날까요?

    ① 믿음이있다는 것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② 믿음이 있는 사람은 감사하기에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하고

    ③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잘못했을 경우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청할 수 있어야 한다.


    3. 나눔 및 묵상

    1.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러 오지 않은 치유 받은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입니까?



    2. 내가 예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어떤 것을 감사드려야 합니까?



    4. 공지사항

    1.학교생활 잘 하기  2. 건강관리 잘하기 3. 친구들에게 관심 가져 주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user#0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