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부활 제 4주일;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1. 말씀읽기: 요한 10,11-18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착한 목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착한 목자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양을 사랑하는 목자, 양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 놓으시는 목자. 그 목자가 바로 착한 목자이시고, 나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목자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착한 목자의 사랑에 감사하며, 주님께서 이끄시는 푸른 풀밭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오로지 참된 목자이신 주님만을 바라봅시다. 또한 이 착한 목자 주일을 교회는 성소주일로 지내며 젊은이들에게 성소의 꿈을 불어 넣어 주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여 자신의 삶을 불태우고 있는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합시다. 그리고 혼인성소나 다른 성소를 받고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신앙인들을 위해서도 특별히 기도해 줍시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 놓습니다. 목자와 삯꾼은 다릅니다. 목자와 약탈자도 다릅니다. 목자는 자기 양을 사랑하고, 자기 양을 돌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십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목숨까지도 내어 놓으셨습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나는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야 지천에 풀이 널려 있지만 중동지역은 그렇지 못합니다. 너무도 메마르고 척박한 땅입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양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해 줍니다. 파란 풀밭도 목자가 돌을 고르고, 물을 대고, 씨를 뿌려 일구어낸 것입니다. 그렇게 준비된 풀밭으로 목자는 양들을 인도하고, 양들은 그곳에서 배불리 풀을 뜯습니다. 하지만 그 풀밭으로 가기 위해서는 목자를 따라가야 합니다. 또한 사나운 짐승들의 공격이나, 도둑들의 약탈에서 지켜주는 존재는 바로 목자입니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양떼를 사랑하는 사람과 이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자는 양떼를 사랑하고, 삯꾼은 양떼를 이용합니다. 어떤 시련이 주어질 때 포기하는 사람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당에서 봉사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떼를 위해서 봉사한다면 양떼를 위하고, 양떼를 사랑해야지,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를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또 공동체 안에서 가끔은 이리들도 보입니다. 착한 신자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잘되는 공동체를 흩어 버립니다. 그리고 착한 신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목자께로 바싹 붙어 있어야 합니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관심이 있는 곳에 몸이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나는 공동체를 위해서,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관심이 없다면 빨리 포기해야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양떼를 돌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1)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지, 관계 안에서 자신의 지위나 사업 등의 번창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신자들을 자신의 사업에 끌어들여 고객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단계 판매 등으로 레지오나 구역 전체를 망쳐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직장인들의 경우 상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사람들도 있고, 본인의 의지로 나왔지만 그곳에서 신앙을 잃고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진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자신의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봉사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통해서 신자들이 더욱 풍성한 신앙생활을 하는지, 나를 통해서 신앙을 잃어 가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면서, 굳은 믿음을 가지고 공동체 안에 있는지를 늘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옆에 있는 이들이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은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고, 예수님이 자신들의 장애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들인 율법학자나 사제들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헨리 나윈 신부님이 중동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동지방의 “와디”는 평상시에는 메말라 있다가 비가 오면 커다란 강을 이룹니다. 그래서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동굴 속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런데 동굴 속으로 피신을 하면 여러 목자의 양들이 섞이게 되는데 그 신부님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당신들의 양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목자들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비가 그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있다가 보십시오.”



비가 그치자 목자들이 하나 둘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목자가 노래를 부르며 나가자 그 목자의 양들만 따라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부님이 하도 신기해서 그 노래를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노래를 부르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한 마리도 안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습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양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목자를 알고 있습니다. 목자가 자신들을 풀밭으로 이끌고 위험에서 구해주는 존재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자를 따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목자로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들 예수님께 구원 사업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 양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온 열정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는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당신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이고, 이것이 바로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목자는 자신의 양을 알고 있습니다.2) 그리고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양들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이들이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으며 서로가 한 형제자매임을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예! 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의 구원에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냉담자라는 말을 듣기를 꺼려합니다. 냉담자라는 말 보다는 “쉬는 교우”, “방학 중” 이라는 말을 듣기를 선호합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3) 쉬는 교우라는 말은 듣기는 좋습니다. 하지만 쉬는 것이 아니라 떠난 것입니다. 그러니 냉담 한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듣기는 거북하겠지만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목자의 음성을 거부하고, 목자의 사랑을 거부하고 떠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부류의 양입니까? 목자를 사랑하는 양입니까? 목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양입니까? 아니면 듣는 척만 하고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양입니까?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어떻게 돌아가실지를 미리 말씀하십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숨을 다시 얻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하느님 아버지께 순명하셨습니다. 죽기까지 순명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어두운 곳을 지날 때라도 양들은 목자를 따라갑니다. 목자의 지팡이는 사나운 짐승들을 쫓아 줄 뿐 아니라 밤에는 그 지팡이의 탁탁 거리를 소리를 들으면서 밤길을 갈 수 있습니다. 양들은 목자를 믿기에 밤에도 목자를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믿기에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목자를 믿고 있는 양입니까? 나의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 놓으시는 분이신데, 나는 나를 사랑하시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양 떼를 돌보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양떼를 사랑하시는 것은 누가 사랑하라고 해서가 아니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아버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양떼를 돌보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숨까지도 내 놓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이행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바로 인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내어 놓으신 것입니다. 희생제물이 되시어 인간의 죄를 대신 빌어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있는 나는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목자를 따라가는 양인 나는 결국 파란 풀밭에서 목자와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나의 목자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리고 나는 어떤 양입니까?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양입니까?



③ 길 잃은 양을 생각해 봅시다.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그의 두려움은 무엇이고, 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4. 공지사항

① 본당 신부님과 수녀님을 더욱 사랑하고, 성소주일을 맞이하여 작은 선물을 드려보기

② 신부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실천하기

③ 신앙보다는 사회적인 것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유혹자들로부터 벗어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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