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주일

 

농민들의 수고를 함께 생각해 봅시다.

① 교회에서는 농촌을 살리고, 물질문명에 대조되는 정신문화의 발전을 강조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인간화 하는 데에 기여하고자 농민주일로 정했습니다. 오늘 농민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만일 작은 텃밭이 있다면 그곳에 무엇을 심으시겠습니까? 밭을 일구어 그곳에 상추와 고추 등을 심으면, 한 가족이 먹을 것은 충분히 나옵니다.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작은 것 안에서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문제 1: 내가 만일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내가 먹을 상추에 농약을 주시겠습니까?

① 벌레가 있으면 싫으니까 농약을 듬뿍 준다. ^*^

② 나와 내 가족이 먹을 것이기에 절대로 농약을 주지 않는다.



문제 2: 나는 농사꾼입니다. 그런데 시장에 내다 팔 상추나 고추에 농약을 주시겠습니까?

① 당연히 준다. 그래야 빛깔도 예쁘고, 크기도 커지고, 먹음직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②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농약을 주지 않는다. 어떻게 사람의 입 속으로 들어갈 것인데 농약을 주겠는가?

③ 나와 내 가족만 안 먹으면 되니까 농약을 준다.



 세상은 혼자만 열심히 산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포기할 문제도 아닙니다. 세상을 구할 열명의 의인이 되어 다른 사람이 다 그렇게 타협하며 살아간다 할지라도 내가 해야 하는 것,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들을 성실하게 해 나갑시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② 또한 농민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사는 이야기에 보니 저자는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일 중에서 창조적인 것은 농업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업은 있는 물건 팔고 사는 거니까 말할 것도 없지만, 공업도 있는 것을 가지고 모양과 용도만 바꾸는 거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것과 같이 농사도 아무것도 없는데서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니 농사는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농사를 싫어합니다. 부모도 자식에게는 농사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노동과 고역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입니다.

사람은 노동을 통해서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역은 사람을 삐뚤어지고 잔인하게 만듭니다. 그러다 보니 노동의 고역에 오랫동안 시달려 온 사람들은 일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식들은 일을 시키지 않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을 변화시켜서 노동의 고역(비지땀 흘리면서 하는 노동)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게 아니고 내 자식만은 일을 시키지 않겠다고 하니 이런 선택은 자녀들을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흘러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수고의 땀을 흘리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것들의 가치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즉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파괴사업에 열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아파트 앞에서 교통사고가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처음 상황은 소형차가 외제차를 들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외제차를 탄 사람이 차를 돌려서 소형차를 계속 들이받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자동차끼리 싸움을 하는 상황이었는데 소형차가 외제 차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참일 들이받더니 외제 차에서 사람이 내렸습니다. 아주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물론 그 청년은 경찰이 붙잡아 갔습니다. 수고의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들은 인내를 모릅니다. 남을 배려할 줄을 모릅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참된 가치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상대방의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화를 내게 됩니다.



③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먹거리를 만드신 농부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더욱 힘내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지금 농사를 짓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병충해, 가뭄, 비바람도 막아야 하지만 이젠 외국 농산물까지 막아야 하니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논과 밭만 있으면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세상의 틀이 잘못되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값싼 수입 농산물들이 밀려오는데 어떻게 농부들이 농사를 지어서 소득을 올릴 수 있겠습니까? 불행하게도 농민들에게는 그런 힘이 없습니다.

 곡식이 제대로 자라는 데 질소, 인산, 칼리의 세 요소가 필요하듯 농민이 제대로 된 온전한 농민이 땅도 갈고 자기 스스로도 갈고 세상도 갈아야 합니다. 줄기 자라는 질소만 듬뿍 주고 뿌리 튼튼히 뻗는 인산과 열매 충실히 맺는 칼리를 주지 않으면 결국 벼는 쭉정이만 달리게 됩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오는 것이 싸다고 마구 들여오게 되면 이 땅의 농부들은 설 자리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한쪽만을 바라보고 다른 한쪽을 강조한다면 우리 사회는 빈 물통과 쭉정이 사회가 될 것입니다.



④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일도 중요하고, 나 자신의 일도 중요하지만 하느님을 향하는 일도 무척 중요합니다. 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나는 하느님 나라에서 발붙일 곳이 없을 것입니다. 농민주일을 맞이하여 좀더 남을 생각해주고, 나 자신 을 생각해보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간판이 바뀌더라도 물건이 같아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나해(말씀과놀이), 말씀과 놀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