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 13주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1. 말씀읽기:루카 9,51-62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57 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은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심판하지 않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불의를 불의로 갚지 않고,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말고 주님께서 가신 길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가 처음에 가졌던 그 마음을 다시 기억해 보고, 예수님을 항상 첫 자리에 모시고 살아가는 내가 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해 봅시다.

 

2.1.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는 예수님

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몸소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리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희생제사를 통하여 당신 백성을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닫혔던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루카9,51)라는 것은 이제 예수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해 몸소 희생제사를 드릴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신 이유”는 바로 희생제사를 드릴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발걸음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향하는 걸음”입니다. 당신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그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시기 위한 발걸음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발걸음이고,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한 발걸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따르는 나의 발걸음도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야 합니다. 비록 그 길이 아브라함처럼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 탄식하며 걸어갔던 길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②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심부름꾼을 보내신 예수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사마리아를 통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사마리아에서 묵으시려고 먼저 심부름꾼들을 보내셨습니다.(루카9,52ㄱ).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깊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습니다(루카9,52ㄴ)

그런데 유다인들과 사마리인들과의 관계는 서로 좋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에게 정복당한 북왕국에는 앗시리아 이곳저곳에서 이주해온 사람들과 남아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혼혈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유배시기 후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의 피가 섞인 민족이라 하여 상종하지 않았습니다(2열왕17,24-41; 집회50,20-26 참조). 또한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와 성전을 다시 지을 때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간의 갈등은 더욱 커졌습니다(에즈라4,1-5). 사마리아인들은 하느님의 성전을 함께 짓고 싶어 했지만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집을 짓는 자신들만의 일이라고 강조하며 그들의 도움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인들은 유다인들이 성전을 짓지 못하도록 방해를 했습니다. 또 예루살렘에서 추방된 “마낫세”라는 사제가 예루살렘의 성전과 대립되는 성전을 가리짐 산에 세우고, 예루살렘의 사제직과 대립되는 사제직을 세우려할 때,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갈등은 극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28년경 요한 히르카노스(기원전 135-104)의 명령에 따라 유다인들이 사마리아의 수도 스켐을 점령하고 가리짐 산의 성전을 파괴하고부터는 긴장이 더욱 고조되어 마찰이나 불화가 잦았고 혈투까지 벌어지곤 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 돼지 취급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마리아인들과 유다인들 간에는 종교적이고 민족적인 적대감이 늘 남아 있었습니다.

 

③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은 사마리아인들

사마리아인들은 유다인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루카9,53ㄱ).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루카9,53ㄴ). 그들은 자신들의 예배소인 가리짐 산으로 가시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시는 것은 자신들의 예배소를 업신여기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사마리아인들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도 맞아들이지 않았으니 일반 유다인 순례객들은 사마리아를 통과할 때 언제나 박대를 받았음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모욕을 주어서도 안 됩니다.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인정해 주는 사람,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존중해 주는 사람, 훌륭한 사람들은 존중해 주고 따르려는 사람, 그런 모습의 삶이 바로 참된 신앙인의 삶입니다.

 

④ 화가 난 야고보와 요한

스승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을 보고서 제자들은 화가 치밀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은 모욕을 당할 수 있어도 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은 사마리아인들에게 벌을 내리자고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루카9,54)

그런데 능력이 있다고, 힘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을 헤친다는 것. 당연히 벌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생각들은 참으로 무서운 생각입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형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 죄에 합당한 벌을 받게 해야지 사형시켜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인간을 죽일 수 없습니다. 생명에 관련된 것은 모두 하느님 영역임을 모든 이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⑤ 야보고와 요한을 꾸짖으시는 예수님(루카9,55)

제자들은 모욕을 더 큰 모욕과 벌로 갚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결코 예수님의 정신이 아닝ㅂ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간직해야 합니다.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사랑으로 갚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지 파괴하러 오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고, 파견되었으며,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서하기 위해서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해야 하빈다. 예수님의 마음은 비록 모욕과 매질과 더 나아가 죽음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결코 저주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할아버지가 젊은 친구들로부터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껄껄 웃어 넘기셨습니다. 한 젊은이가 그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혼내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인자하게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건 예수님 정신이 아니라네…,”

 

⑥ 다른 마을로 가시는 예수님과 제자들(루카9,56)

사마리아에서 모욕을 받으셨지만 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십니다. 그냥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상대방이 막고 있다면 돌아가면 됩니다.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면서 그것을 행할 필요는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려 하심이 아니라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함입니다.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면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십니다.

 

 

2.2.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자세

①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루카9,57)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들의 냉대를 받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고백은 확고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루카9,57)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선택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바뀌기도 합니다. “예수님! 제가 이런 것을 좋아하는데 이쪽으로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굳이 예수님께서 그 길로 가신다면 할 수 없겠지만 저는 이쪽으로 가고 싶네요. 예수님! 웬만하시면 이쪽으로 가시죠?”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들을 충실하게 수행하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신 길을 제가 갈 수 있도록 강복을 주십시오.”라고…,

 

② 예수님을 따르는 길의 어려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을 하는 이 젊은이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9,58) 예수님을 따르려는 이 젊은이에게 첫째, 안락한 생활과 편안한 잠자리는 꿈도 꾸지 말고, 둘째, 사람들이 존경하고 감사하는 삶은 생각도 하지 말며, 셋째, 사람들의 냉대와 박해는 늘 각오해야 함을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이런 모든 어려움들을 각오해야 합니다.

 

③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루카9,60).

예수님께서 한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루카9,59ㄱ)하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9,59ㄴ)하고 청하였습니다. 죽은 이를 장사지내는 일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중대한 의무였습니다. 시체를 만져 부정을 타는 일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사제나 레위인이라 할지라도 친척들의 장례는 치러야만 했습니다. 즉 장례를 치루는 것은 가장 우선시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루카9,60)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장례도 치루지 못하게 하시는 불효자로 만드시는 것일까요? 인륜을 거스르도록 가르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생명에 대해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인간을 죽음에서 생명에로 변화시키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죽음의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모든 것은 내맡기는 나는 예수님을 통하여 생명을 받아 누리는 사람이고, 그 생명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 나라”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죽은 이들에게 생명을 선포하며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게 하는 일은 죽은 자들의 시신을 묻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④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9,62).

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9,61)하고 청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기꺼이 따르겠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겠다며 허락을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9,62)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는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엘리야가 엘리사를 불렀을 때 엘리사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1열왕 19,20)하고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소를 잡고 쟁기를 부수어 고기를 구워 사람들을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따라갔습니다.

 

“쟁기를 손에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루카9,61)는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선택에 확신이 있을 때, 그는 온 삶을 투신하게 됩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게 되고, 옳은 것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잡을 것은 확실하게 움켜잡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와 닿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내가 모욕을 받았을 때,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모욕을 웃음이나 선행으로 갚아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③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특징을 이야기해 보고, 내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나눠 봅시다.

 

4. 공지

① 상대방을 모욕하지 않기

② 주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살아가기

③ 형제자매들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기 위해 노력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다해(말씀과놀이,2), 말씀과 놀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다해 연중 제 13주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1. 말씀읽기:루카 9,51-62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57 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은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심판하지 않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불의를 불의로 갚지 않고,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말고 주님께서 가신 길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가 처음에 가졌던 그 마음을 다시 기억해 보고, 예수님을 항상 첫 자리에 모시고 살아가는 내가 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해 봅시다.

     

    2.1.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는 예수님

    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몸소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리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희생제사를 통하여 당신 백성을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닫혔던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루카9,51)라는 것은 이제 예수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해 몸소 희생제사를 드릴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신 이유”는 바로 희생제사를 드릴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발걸음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향하는 걸음”입니다. 당신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그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시기 위한 발걸음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발걸음이고,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한 발걸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따르는 나의 발걸음도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야 합니다. 비록 그 길이 아브라함처럼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 탄식하며 걸어갔던 길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②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심부름꾼을 보내신 예수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사마리아를 통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사마리아에서 묵으시려고 먼저 심부름꾼들을 보내셨습니다.(루카9,52ㄱ).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깊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습니다(루카9,52ㄴ)

    그런데 유다인들과 사마리인들과의 관계는 서로 좋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에게 정복당한 북왕국에는 앗시리아 이곳저곳에서 이주해온 사람들과 남아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혼혈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유배시기 후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의 피가 섞인 민족이라 하여 상종하지 않았습니다(2열왕17,24-41; 집회50,20-26 참조). 또한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와 성전을 다시 지을 때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간의 갈등은 더욱 커졌습니다(에즈라4,1-5). 사마리아인들은 하느님의 성전을 함께 짓고 싶어 했지만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집을 짓는 자신들만의 일이라고 강조하며 그들의 도움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인들은 유다인들이 성전을 짓지 못하도록 방해를 했습니다. 또 예루살렘에서 추방된 “마낫세”라는 사제가 예루살렘의 성전과 대립되는 성전을 가리짐 산에 세우고, 예루살렘의 사제직과 대립되는 사제직을 세우려할 때,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갈등은 극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28년경 요한 히르카노스(기원전 135-104)의 명령에 따라 유다인들이 사마리아의 수도 스켐을 점령하고 가리짐 산의 성전을 파괴하고부터는 긴장이 더욱 고조되어 마찰이나 불화가 잦았고 혈투까지 벌어지곤 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 돼지 취급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마리아인들과 유다인들 간에는 종교적이고 민족적인 적대감이 늘 남아 있었습니다.

     

    ③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은 사마리아인들

    사마리아인들은 유다인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루카9,53ㄱ).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루카9,53ㄴ). 그들은 자신들의 예배소인 가리짐 산으로 가시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시는 것은 자신들의 예배소를 업신여기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사마리아인들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도 맞아들이지 않았으니 일반 유다인 순례객들은 사마리아를 통과할 때 언제나 박대를 받았음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모욕을 주어서도 안 됩니다.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인정해 주는 사람,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존중해 주는 사람, 훌륭한 사람들은 존중해 주고 따르려는 사람, 그런 모습의 삶이 바로 참된 신앙인의 삶입니다.

     

    ④ 화가 난 야고보와 요한

    스승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을 보고서 제자들은 화가 치밀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은 모욕을 당할 수 있어도 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은 사마리아인들에게 벌을 내리자고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루카9,54)

    그런데 능력이 있다고, 힘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을 헤친다는 것. 당연히 벌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생각들은 참으로 무서운 생각입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형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 죄에 합당한 벌을 받게 해야지 사형시켜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인간을 죽일 수 없습니다. 생명에 관련된 것은 모두 하느님 영역임을 모든 이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⑤ 야보고와 요한을 꾸짖으시는 예수님(루카9,55)

    제자들은 모욕을 더 큰 모욕과 벌로 갚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결코 예수님의 정신이 아닝ㅂ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간직해야 합니다.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사랑으로 갚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지 파괴하러 오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고, 파견되었으며,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서하기 위해서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해야 하빈다. 예수님의 마음은 비록 모욕과 매질과 더 나아가 죽음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결코 저주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할아버지가 젊은 친구들로부터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껄껄 웃어 넘기셨습니다. 한 젊은이가 그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혼내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인자하게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건 예수님 정신이 아니라네…,”

     

    ⑥ 다른 마을로 가시는 예수님과 제자들(루카9,56)

    사마리아에서 모욕을 받으셨지만 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십니다. 그냥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상대방이 막고 있다면 돌아가면 됩니다.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면서 그것을 행할 필요는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려 하심이 아니라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함입니다.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면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십니다.

     

     

    2.2.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자세

    ①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루카9,57)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들의 냉대를 받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고백은 확고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루카9,57)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선택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바뀌기도 합니다. “예수님! 제가 이런 것을 좋아하는데 이쪽으로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굳이 예수님께서 그 길로 가신다면 할 수 없겠지만 저는 이쪽으로 가고 싶네요. 예수님! 웬만하시면 이쪽으로 가시죠?”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들을 충실하게 수행하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신 길을 제가 갈 수 있도록 강복을 주십시오.”라고…,

     

    ② 예수님을 따르는 길의 어려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을 하는 이 젊은이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9,58) 예수님을 따르려는 이 젊은이에게 첫째, 안락한 생활과 편안한 잠자리는 꿈도 꾸지 말고, 둘째, 사람들이 존경하고 감사하는 삶은 생각도 하지 말며, 셋째, 사람들의 냉대와 박해는 늘 각오해야 함을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이런 모든 어려움들을 각오해야 합니다.

     

    ③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루카9,60).

    예수님께서 한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루카9,59ㄱ)하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9,59ㄴ)하고 청하였습니다. 죽은 이를 장사지내는 일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중대한 의무였습니다. 시체를 만져 부정을 타는 일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사제나 레위인이라 할지라도 친척들의 장례는 치러야만 했습니다. 즉 장례를 치루는 것은 가장 우선시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루카9,60)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장례도 치루지 못하게 하시는 불효자로 만드시는 것일까요? 인륜을 거스르도록 가르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생명에 대해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인간을 죽음에서 생명에로 변화시키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죽음의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모든 것은 내맡기는 나는 예수님을 통하여 생명을 받아 누리는 사람이고, 그 생명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 나라”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죽은 이들에게 생명을 선포하며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게 하는 일은 죽은 자들의 시신을 묻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④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9,62).

    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9,61)하고 청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기꺼이 따르겠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겠다며 허락을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9,62)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는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엘리야가 엘리사를 불렀을 때 엘리사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1열왕 19,20)하고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소를 잡고 쟁기를 부수어 고기를 구워 사람들을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따라갔습니다.

     

    “쟁기를 손에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루카9,61)는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선택에 확신이 있을 때, 그는 온 삶을 투신하게 됩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게 되고, 옳은 것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잡을 것은 확실하게 움켜잡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와 닿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내가 모욕을 받았을 때,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모욕을 웃음이나 선행으로 갚아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③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특징을 이야기해 보고, 내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나눠 봅시다.

     

    4. 공지

    ① 상대방을 모욕하지 않기

    ② 주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살아가기

    ③ 형제자매들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기 위해 노력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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