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 제 8주일;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

1. 말씀읽기:마태 6,24-34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루카 16,13-13)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 (루카 12,22-32)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 것,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살아가며,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는 것. 이것은 참으로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양다리를 걸치지 말아야 하지만 하느님 외에도 수많은 것들에 매달리고 있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느라 하느님을 생각하지 못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지 재물을 섬기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보고, 하느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깊이 묵상해 봅시다.

 

2.1.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태6,24)고 말씀을 하십니다. 두 주인은 바로 하느님과 재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재물을 섬기다보면 하느님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재물은 움켜잡게 만들고, 육신을 편안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은 유혹을 줍니다.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적으로 행복하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런데 재물에 대한 집착은 사기나 도둑질을 넘어서 모함이나 살인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재물은 인간을 죄짓게 하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잊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 재물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주일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알아주는 곳에 늘 자신의 몸이 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모임보다는 재물이 오가는 모임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6,24)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 주인은 하느님과 재물을 말합니다. 하느님을 섬길 것인가? 재물을 섬길 것인가? 그리고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은 재물을 섬기지 않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사용하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실베스텔 신부

프란치스코 성인이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할 때 돌을 산 적이 있었는데, 그 돌을 판 사람은 실베스텔 신부였습니다. 그는 그때 돌을 헐값에 팔았습니다. 아마도 그 돌이 좋은 목적으로 쓰일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싸게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프란치스코의 형제들이 많은 돈을 마구 내주는 것을 보고 그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전에 나한테서 돌을 살 때 당신은 아주 싸게 샀잖아요.” 프란치스코 성인은 실베스텔 신부가 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사제의 욕심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즉시 허리를 굽혀 베르나르도의 옷 주머니에서 돈을 세지도 않고 한줌 쥐어서 그 사제의 손에 쏟아 부으면서 물었습니다. “이만하면 됐습니까? 신부님?”그러자 실베스텔 신부는 냉정하게 고맙습니다고 하고는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후에 실베스텔 신부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심판을 하는 것처럼 영혼 속에서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변화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와서 형제들 안에 받아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실베스텔 신부는 온전하게 하느님만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아버지 이야기

한 형제가 사제관에 와서 이렇게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신부님! 알고 계신 것처럼 큰아들은 성당에서 청년회장을 하고 있고, 작은 아들은 학생회장이라고 주말이면 성당에서 살고, 막내는 복사라고 성당에서 살며, 아내는 성모회 활동 한다고 시대 때도 없이 성당에 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당도 좋지만 가정도 중요하고, 대학도 중요하고, 취업도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신부님께서는 그 형제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가정이 평안하게 되었잖습니까? 아내는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살고 계시고, 자녀들은 바르게 성장하고 있잖습니까? 얼마나 행복한 가정이십니까? 그리고 형제님 가족은 저희 성당의 큰 보물입니다. 그리고 제가 중요한 사실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형제님만 성당에 오시면 이 성당은 형제님 것이 됩니다. 가족이 모두 성당에 와 있잖습니까?”

그러자 그 형제는 신부님! 그렇게 되는 것인가요? 그럼 오늘부터 제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후 신부님께서는 청년회장과 학생회장, 그리고 복사를 하는 작은 아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자기 일에도 충실하단다. 아직은 학생이니 공부도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 다음 학기부터는 꼭 장학금을 받아 오거라.” 그러자 정말로 다음 학기부터는 장학금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은 모든 일에 충실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교리교사들에게 장학금 타지 못하면 교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부분 장학금을 타 왔습니다. 같이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성당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이 좋은 대학 다니고, 좋은 곳에 취직하고, 더 많은 복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성당에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시간을 빼앗긴다거나 해를 입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당에서 그렇게 힘을 얻었기에 더 열심히 공부하고, 가정생활에 충실하며, 더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시간에 성당에 안 간다고 해서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느님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를 알아주는 곳에만 가고 있고, 형식적으로만 신앙생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충분한 재물을 모으고,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만 성당에 다닐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재물을 섬기는 사람의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형제자매들이 나에게 와서 상담을 청한다면 나는 어떻게 말해줄까요?

 

어느 아이의 봉헌금

한 아이가 한 주 동안 준비한 봉헌금을 잊고 성당에 왔습니다. 미사 때 봉헌하려고 했는데 봉헌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빠에게 아빠! 봉헌금을 놓고 왔어요.”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빠는 만 원 짜리 한 장을 건네주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봉헌을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만원은 저한테는 너무 많은 봉헌금이 아닐까요?” 그러자 옆에 계시던 엄마가 네가 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만원은 많을 수도 있지. 하지만 네가 받고 있는 은총에 비하면 그 만원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겠니?”

그러자 옆에 계시던 할머니가 소리를 쳤습니다.

애 교육 잘 시킨다. 봉헌금은 천원이면 되지. 다들 천 원 하더라.”

“……,”

점심식사를 마친 후 친구들한테 놀러가는 어머니에게 아들은 이천 원이 든 봉투를 드리며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머니! 이것 친구들과 맛있는 것 사 드세요.”

할머니는 봉투를 받아들고 나가다가 다시 들어와서 2천원을 던지며 말했습니다.

너 나 늙었다고 놀리는 거냐! 이천 원이 뭐야~ 차라리 주지 말던지.”

어머니! 봉헌금은 천원이면 된다면서요. 하느님께도 천원 드리지만 어머니께는 그보다 더 많은 이천 원을 드렸는데요. 충분하지 않으세요?”

“……,”

 

하느님입니까? 재물입니까?

누군가가 나에게 하느님과 재물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까요? 매 순간 이런 유혹은 밀려옵니다. 그런데 저는 둘 다 선택하겠다고 할 것 같습니다. 두 주인 뿐이겠습니까? , 넷은 물론 열 주인도 섬기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2.2. 중요한 것을 선택하여라.

중요한 것이 있고 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마태6,25)

당연히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합니다. 몸이 옷보다 소중합니다.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일미사와 혼인식이 겹쳤을 때 어느 것이 더 우선일까요? 어떤 경우는 혼인식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주일미사를 빠지게 됩니다. 술 약속과 아내와의 약속,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술 약속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 잃고 난 다음에 후회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주일 빠지고 등산가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대송을 바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보다는 자신의 건강이 우선입니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자기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한 주간을 정리하고, 미사에 참례하여 성체를 모시고, 기쁨이 충만하게 주일을 보내는 것도 큰 이익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고, 지금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울면서 후회하게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2.3. 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내가 정말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겨야 하는 이유는 내가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마태6,26) 하느님께서는 나를 당신의 모상대로 귀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죄 많고 부족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까지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청하기만 하는 나의 기도에도 귀를 기울여 주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나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렇다면 나도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간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헛된 것을 생각하는 나

건강 염려증에 걸린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이 더 건강은 약하다는 것을 볼 때가 많습니다. 더 나아가 그 걱정 때문에 수명이 단축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인간의 근심 걱정 중에서 97%는 쓸데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을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을 고민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쓸데없는 것에 온 신경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시며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마태6,27)

 

우리 모두는 때가 되면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승에서의 끈을 아무리 움켜잡는다 할지라도 때가 되면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잡은 것을 놓는 사람이고, 주님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늘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 나머지는 주님께서 모두 채워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고, 믿고 있고, 믿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멋진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생명을 온전히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주님께서는 나에게 큰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나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마태6,28-30)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는지에 대한 실험을 농구장에서 했습니다. 한 사람이 농구장에 이상한 복장을 하고 움직였습니다. 농구경기가 끝난 다음에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지 못했느냐?”라고 물었을 때,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의 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못 봤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입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입고 있는 옷들은 그리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지 말고, “주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하는가?”를 걱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데 나를 외면하실 리가 없습니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만큼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살아간다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이고, 그 사랑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옷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의 행동으로 말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는 고민들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에 관심 없는 이들은 다른 것에 관심을 씁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누가 알아줄까? 이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남들 하는 것처럼 대충 형식적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신앙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지 않고,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과 무엇을 먹으러 갈까? 어느 찻집에 가서 무엇을 마실까?”를 고민합니다. 그래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어디 갔는데 무엇이 맛있더라. 어디 찻집에 새로 생겼는데 분위기가 좋더라. 누구랑 어디 갔었는데 참 좋더라…,”라는 말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러나 신앙이 있는 이들은 다른 생각을 합니다. “혼자 사시는 자매에게 무엇을 해다 드릴까? 이번 주일에는 신자들에게 무엇을 대접할까? 안 입는 옷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이런 것들을 모아서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하느님이 삶의 중심에 자리 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마태6,31-32)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 안에서 참된 기쁨과 참된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맡기고 살아간다면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등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이 걱정해야 하는 것은 생명의 빵(성체)을 받아 모시고, 구원의 음료(성혈)를 받아 마시며, 의로움의 옷을 입을 생각들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를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앙인들은 좋은 음식이나 좋은 옷을 입지 말아야 할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봉사하는 이들이 함께 먹는 음식이 좋은 음식이고, 봉사하면서 입고 있는 옷이 좋은 옷입니다. 아무리 비싼 옷을 입었다 할지라도 누가 입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무리 낡은 옷을 입었다 할지라도 누가 입었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옷이나 음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서 달리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주변에는 헐벗는 사람, 굶주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걱정하지 말라고 해야 할까요? 재물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재물을 통해 그들의 헐벗음과 굶주림을 달래줄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들의 삶의 자세는 비 신앙인들의 삶의 자세와는 좀 달라야 합니다. 물질을 중요시 하고, 자기만을 생각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의 방식은 신앙인의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필요한 곳을 보고도 얼굴을 돌리는 사람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것이 필요함을 아시고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네가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을 좀 주지 않으련?”

 

2.4. 하느님 안에서 풍요로운 사람들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기에.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고,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인들은 의로운 삶을 살아가며,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고, 하느님 나라를 지상에서 미리 맛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재물을 섬기지 않고 하느님을 섬기며, 세속적인 걱정이나 자랑을 하지 않고, 영혼구원을 위해 힘씁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보다는 영적인 것에 더 마음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성실하게 일합니다. 그리고 움켜잡으려 하지 않고, 베풀며 살아갑니다. 신앙인들은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6,33)라는 말씀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참된 풍요로움을 체험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이라는 시간을 바라보며 살아가기에.

그런데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며, 무엇을 입을지를 고민하지도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는 삶은 어리석은 삶이 아닐까요? 세상살이를 포기한 사람의 삶의 모습은 아닐까요? 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보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풍요롭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이런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단기간에 승부를 내는 게임이 아니라 영생 안에서 인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전체 안에서 부분을 바라보아야지, 부분만 바라본다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분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정년퇴임을 하신 한 형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저는 젊었을 때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은 청탁도 잘 받아 주고, 챙기기도 했는데 저는 그것을 못했습니다. 직위를 이용하여 다른 사업에도 뛰어 들고, 그래서 그들은 참으로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지만 저는 무능한 사람으로,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청탁받은 사람들의 비리가 드러나니 그들이 직장 생활을 더 이상 할 수 도 없고, 다른 사업에 손댄 사람들도 오랜 시간이 흘러보니 별것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해 해 나가면서, 젊을 때는 몰랐지만 나이가 드니 바로 이것이었구나! 처음에는 손해 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큰 이익을 보게 되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었음을, 아직도 달려야하는 마라톤이었음을 나이가 들어서 깨닫게 되었고, 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지금 이 순간만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영원이라는 시간을 바라보며, 영원이라는 시간 안에서 지금 이 순간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유혹에도 빠지고 시련도 당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기도하며 이겨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심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걱정하다보니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내일 것도, 모레 것도, 일 년 후의 것도 지금 다 해결하려고 하니 바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좀 더 여유가 생기면 신앙생활 하겠다.”고 말하고, “좀 더 여유가 생기면 나누면서 살아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 바로 내일 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오늘 수업에 충실하고, 오늘 배운 것을 복습하는 것이 내일의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고, 앞으로의 진로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을 내다보면 급하게 되고, 무리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세상 것에 마음을 온전히 빼앗기게 되고, 하느님 나라에서 자꾸 자꾸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6,34)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도 내일의 양식을 청하는 기도를 가르쳐 주시지 않고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신앙인들의 소박한 기도로서 내일 아침에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면서 잠 못 드는 일은 없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바구니에 아직도 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일 양식 때문에 근심 걱정하면서 잠 못 이루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성당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물을 많이 모은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 삶을 연장해주는 보증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걱정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 있습니까? 그리고 내 마음을 차지하고 계신 분은 주님이십니까? 아니면 세상 것들에 대한 집착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가며, 하느님을 참되게 섬기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더욱 굳은 결심과 실천을 다짐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남에게 보여지는 것들입니까? 아니면 하느님 앞에서의 나의 모습입니까? 그리고 나는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4. 알림 및 공지

내가 준비하고 있는 봉헌금과 교무금을 살펴보기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가기

내가 하고 있는 봉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가해(말씀과놀이,2), 말씀과 놀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