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베드로와 아버지 이동욱의 대화
1785년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집에서 종교집회를 갖던 중 관헌들에게 적발되어 소위 을사추조적발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승훈 베드로도 형조에 끌려갔었습니다. 이것을 알게된 이승훈 베드로의 아버지 이동욱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이 불효 막심한 놈아! 네놈이 어째 형조에 끌려갔었더냐? 이 아비의 얼굴에 똥칠을 해도 유분수지. 네가 천주학쟁이가 되겠다면 차라리 우리 가족들을 다 죽이고 천주학쟁이가 되거라. 어차피 네가 천주학쟁이가 되어서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거나, 네가 우리를 죽이는 거나 무엇이 다르겠느냐?
“아버님! 천주교는 결코 사학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현혹시켜서 나쁜 길로 빠지게 하는 것도 아니며, 세상의 정도(正道)를 거스르는 것도 아니옵니다. 제가 믿는 천주교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믿는 종교이옵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옵니까?”
“네 이놈! 네놈이 창조주를 믿어서 부모와 일가친척이 몰살을 당해도 좋다는 말이냐? 천주학쟁이들은 애미․아비도 몰라본다고 하는데 네가 나라에서 금하는 천주학을 해서 애미․아비가 죽음을 당한다면 그것이 곧 그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너로 인해 이 애비가 벼슬을 잃는다면 그것이 이 아비를 위하는 일이겠느냐? 네 어미가 종으로 끌려가는 것이 네 어미를 위한 행동이겠느냐? 너를 낳아서 길러준 은공은 보답하지 못할망정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냐? 이놈아! 어떻게 하겠느냐?”
“아버님! 그것은 조정에서 천주교를 금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지어낸 모략입니다. 어찌 자식된 도리로서 부모를 몰라라 해서야 되겠습니까? 천주교의 계명에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있사옵니다. 또한 임금을 몰라본다는 것이 말이나 되겠사옵니까? 다만 세상 모든 만물은 천주님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우선적으로 천주님을 받아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동등하게 대하고자 하는 것은 천주님 앞에서는 모든이가 평등하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이런 신분체제를 유지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서 천주교를 박해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이놈아! 너는 어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더냐? 내가 천주학을 반대하는 이유는 천주학이 나빠서가 아니라 천주학을 하면 결국 멸문지화를 입으니 하는 말 아니겠느냐? 지금 이 나라에 천주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 벽파 사람들이 있더냐? 대부분 시파나 남인들이 아니더냐? 그러니 천주학쟁이들을 잡아들이는 것이 곧 유교 윤리를 받든다는 명분도 얻을 뿐더러, 반대파인 정적을 제거하는 이중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세상이 그렇게 흐르고 있거늘 네놈이 어찌 천주학을 한다는 것이냐?”
“아버님! 남자로 태어나서 자신의 소신대로 살지 못한다 함은 그것이 어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사옵니까? 부디 제가 천주님을 믿는 것을 말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네 이놈! 그렇게 말해도 못 알아 듣는단 말이냐? 네놈이 이 집안을 풍지박살 나는 꼴을 보고서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여봐라 이놈을 당장 묶어라. 내가 저놈의 목을 치리라….,”
<소설 신유박해 중에서>
순교자 성 유대철 베드로
성 유대철 베드로는 유진길 아우구스티누스의 장남입니다. 그런데 이 집안은 이상하게도 부자는 열심히 천주교를 믿는 반면, 모녀는 믿기는커녕 이를 반대하여 가정에 불화가 그칠 날이 없었고 신자들을 욕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어째서 너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일을 고집하느냐?”라고 말씀하시면, 베드로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복종하겠으나 하늘의 임금, 만물의 주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온순하게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어머니의 눈이 어두움을 한탄하면서도 어머니께 대하여는 언제나 지극한 효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박해가 일어나자 그의 마음속에는 순교하고자 하는 열렬한 욕망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옥에 갇혀있던 부친과 여러 신자들의 본보기는 그의 마음에 불을 질러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체포된 후 하느님께 대한 열광적인 사랑에 끌려 1839년 7월경 관헌들에게 자수하였습니다. 재판관은 그의 집안 내력을 자세히 물어보고 신자의 자식임을 알게 되자 옥에 가두고, 배교한다는 말을 하게 하려고 어르고 엄포하고 고문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옥사장이 가혹하게 벌을 가하여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사방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서도 이 용감한 어린이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어떤 포졸이 구리로 된 담뱃대 통으로 그의 허벅지를 들이박아 살점을 한 점 떼어내면서 소리쳤다. “이래도 천주교를 버리지 않겠느냐?” “그러면요, 이쯤으로 배교할 줄 아세요?” 그러자 포졸들은 벌겋게 달군 숯 덩어리를 집어 들고 입을 벌리라고 하였습니다. 대철이 “예” 하고 입을 크게 벌리니 포졸들은 놀라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다른 교우들이 그에게 “너는 아마 많은 괴로움을 당한 줄로 생각하겠지만 큰 형벌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대철은 “저도 잘 알아요. 이건 쌀 한 말에 대해서 한 알 같은 것이지요.”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후 고문을 당한 끝에 까무러친 그를 데려와서 다른 죄수들이 정신이 들게 하려고 허둥지둥할 때 그가 한 첫마디는 “너무 수고를 하지 마세요. 이런 것으로 해서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해 형리들을 더욱 놀라게 했습니다. 유 베드로는 문초받기를 1회, 고문 14회, 태형 6백대 이상과 치도곤 45대 이상을 맞았지만 항상 기쁜 얼굴로 지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관헌들은 어린 그를 공공연히 죽이면 군중이 반발할까 두려워서 1839년 10월 31일 형리가 옥 안으로 들어가 상처뿐인 이 가련한 작은 몸뚱이를 움켜쥐고 목에 노끈을 잡아매어 죽였습니다. 이때 베드로의 나이는 겨우 14살이었다.

이승훈 베드로와 아버지 이동욱의 대화
1785년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집에서 종교집회를 갖던 중 관헌들에게 적발되어 소위 을사추조적발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승훈 베드로도 형조에 끌려갔었습니다. 이것을 알게된 이승훈 베드로의 아버지 이동욱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이 불효 막심한 놈아! 네놈이 어째 형조에 끌려갔었더냐? 이 아비의 얼굴에 똥칠을 해도 유분수지. 네가 천주학쟁이가 되겠다면 차라리 우리 가족들을 다 죽이고 천주학쟁이가 되거라. 어차피 네가 천주학쟁이가 되어서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거나, 네가 우리를 죽이는 거나 무엇이 다르겠느냐?
“아버님! 천주교는 결코 사학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현혹시켜서 나쁜 길로 빠지게 하는 것도 아니며, 세상의 정도(正道)를 거스르는 것도 아니옵니다. 제가 믿는 천주교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믿는 종교이옵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옵니까?”
“네 이놈! 네놈이 창조주를 믿어서 부모와 일가친척이 몰살을 당해도 좋다는 말이냐? 천주학쟁이들은 애미․아비도 몰라본다고 하는데 네가 나라에서 금하는 천주학을 해서 애미․아비가 죽음을 당한다면 그것이 곧 그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너로 인해 이 애비가 벼슬을 잃는다면 그것이 이 아비를 위하는 일이겠느냐? 네 어미가 종으로 끌려가는 것이 네 어미를 위한 행동이겠느냐? 너를 낳아서 길러준 은공은 보답하지 못할망정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냐? 이놈아! 어떻게 하겠느냐?”
“아버님! 그것은 조정에서 천주교를 금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지어낸 모략입니다. 어찌 자식된 도리로서 부모를 몰라라 해서야 되겠습니까? 천주교의 계명에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있사옵니다. 또한 임금을 몰라본다는 것이 말이나 되겠사옵니까? 다만 세상 모든 만물은 천주님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우선적으로 천주님을 받아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동등하게 대하고자 하는 것은 천주님 앞에서는 모든이가 평등하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이런 신분체제를 유지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서 천주교를 박해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이놈아! 너는 어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더냐? 내가 천주학을 반대하는 이유는 천주학이 나빠서가 아니라 천주학을 하면 결국 멸문지화를 입으니 하는 말 아니겠느냐? 지금 이 나라에 천주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 벽파 사람들이 있더냐? 대부분 시파나 남인들이 아니더냐? 그러니 천주학쟁이들을 잡아들이는 것이 곧 유교 윤리를 받든다는 명분도 얻을 뿐더러, 반대파인 정적을 제거하는 이중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세상이 그렇게 흐르고 있거늘 네놈이 어찌 천주학을 한다는 것이냐?”
“아버님! 남자로 태어나서 자신의 소신대로 살지 못한다 함은 그것이 어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사옵니까? 부디 제가 천주님을 믿는 것을 말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네 이놈! 그렇게 말해도 못 알아 듣는단 말이냐? 네놈이 이 집안을 풍지박살 나는 꼴을 보고서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여봐라 이놈을 당장 묶어라. 내가 저놈의 목을 치리라….,”
<소설 신유박해 중에서>
순교자 성 유대철 베드로
성 유대철 베드로는 유진길 아우구스티누스의 장남입니다. 그런데 이 집안은 이상하게도 부자는 열심히 천주교를 믿는 반면, 모녀는 믿기는커녕 이를 반대하여 가정에 불화가 그칠 날이 없었고 신자들을 욕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어째서 너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일을 고집하느냐?”라고 말씀하시면, 베드로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복종하겠으나 하늘의 임금, 만물의 주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온순하게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어머니의 눈이 어두움을 한탄하면서도 어머니께 대하여는 언제나 지극한 효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박해가 일어나자 그의 마음속에는 순교하고자 하는 열렬한 욕망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옥에 갇혀있던 부친과 여러 신자들의 본보기는 그의 마음에 불을 질러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체포된 후 하느님께 대한 열광적인 사랑에 끌려 1839년 7월경 관헌들에게 자수하였습니다. 재판관은 그의 집안 내력을 자세히 물어보고 신자의 자식임을 알게 되자 옥에 가두고, 배교한다는 말을 하게 하려고 어르고 엄포하고 고문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옥사장이 가혹하게 벌을 가하여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사방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서도 이 용감한 어린이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어떤 포졸이 구리로 된 담뱃대 통으로 그의 허벅지를 들이박아 살점을 한 점 떼어내면서 소리쳤다. “이래도 천주교를 버리지 않겠느냐?” “그러면요, 이쯤으로 배교할 줄 아세요?” 그러자 포졸들은 벌겋게 달군 숯 덩어리를 집어 들고 입을 벌리라고 하였습니다. 대철이 “예” 하고 입을 크게 벌리니 포졸들은 놀라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다른 교우들이 그에게 “너는 아마 많은 괴로움을 당한 줄로 생각하겠지만 큰 형벌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대철은 “저도 잘 알아요. 이건 쌀 한 말에 대해서 한 알 같은 것이지요.”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후 고문을 당한 끝에 까무러친 그를 데려와서 다른 죄수들이 정신이 들게 하려고 허둥지둥할 때 그가 한 첫마디는 “너무 수고를 하지 마세요. 이런 것으로 해서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해 형리들을 더욱 놀라게 했습니다. 유 베드로는 문초받기를 1회, 고문 14회, 태형 6백대 이상과 치도곤 45대 이상을 맞았지만 항상 기쁜 얼굴로 지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관헌들은 어린 그를 공공연히 죽이면 군중이 반발할까 두려워서 1839년 10월 31일 형리가 옥 안으로 들어가 상처뿐인 이 가련한 작은 몸뚱이를 움켜쥐고 목에 노끈을 잡아매어 죽였습니다. 이때 베드로의 나이는 겨우 14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