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 주로 1947~49년에 태어났으며 1960~1970년대 학생운동을 경험하고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냈다. 2007년부터 이들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며, 일본 사회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2007년 문제’라고 까지 하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단카이 세대란 말은 경제기획청 장관은 지낸 사카이야 다이치의 소설<단카이 세대>에서 비롯됐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 주로 1947~49년에 태어났으며 1960~1970년대 학생운동을 경험하고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냈다. 2007년부터 이들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며, 일본 사회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2007년 문제’라고 까지 하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단카이 세대란 말은 경제기획청 장관은 지낸 사카이야 다이치의 소설<단카이 세대>에서 비롯됐다.
단카이 세대(일본어: 団塊の世代 단카이노세다이[*])은 일본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7년~1949년 사이에 베이비붐으로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단괴세대라고도 한다.
경제기획청 장관을 지낸 경제평론가 사카이야 다이치가 1976년에 펴낸 <단카이의 세대>(단카이(團塊)는 불쑥 튀어나온 덩어리를 의미한다.)라는 책 제목에서 유래한다. 사카이야는 단카이의 세대에서 단카이 세대를 전기 단카이(프레 단카이 : 1943~1946년), 단카이, 후기 단카이(포스트 단카이 : 1950~1953)로 구분하고 단카이 기간에 출생한 세대를 제1차 베이비붐에 따른 세대로 구분했다.
2000년 일본국세조사를 토대로 보면 인구수는 단카이 세대 직전보다 20%, 직후보다도 26%가 많은 약680만 명이다. 그 중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521만 명 정도이다. 단카이 세대와 관계가 밀접한 키워드는 수험전쟁, 경쟁, 학생운동, 청바지, 뉴뮤직, 뉴패밀리 등으로 이문화(異文化)와 다른 가치관이 그 시대에 외국으로부터 도입되었다. 그들은 콜라, 햄버거와 같은 미국문화의 상징들을 적극수용하였고 대중소비세대의 주역이었으며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보냈다. 그 때까지 일본 남성들에게 찾아 볼 수 없었던 패션에 대한 관심과 그룹사운드(GS), 포크 송, 장발이 단카이 세대의 상징이었다. 단카이는 인구 규모가 급격하게 팽창된 세대이기 때문에 진학ㆍ취업ㆍ결혼ㆍ주택 문제 등에 있어서 심각한 경쟁상황을 겪었지만, 자기들끼리 잘 뭉치는 특징과 풍부한 노동력으로 일본의 고도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의 혼란기를 대변한다. 이들은 일본경제의 고도성장과 함께 성장했지만 주도자도 못됐고, 1970년대 후반 이후 경제적 풍요의 혜택은 한 세대 아래인 ‘신진루이’에게 내주어야 했다. 1960년대 고도 성장기에 이들은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1960년 미ㆍ일 안보조약의 개정에 반대하는 이른바 ‘안보투쟁’을 비롯해 이후 10여년간 학생운동으로 사회 혼란기의 중심에 있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생운동이 시들해짐과 동시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취업을 앞두고 현실을 직시해야 하였고 생활을 위해 이념과 현실 중 양자택일을 해야했다. 그 결과 전후의 획일적인 인재양성과 사회가 발전되어 가는 일본사회를 인정하고 기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이러한 단카이 세대가 일본사회 속에 편입 되어 일본의 미래에 대하여 열띤 토론을 벌이던 정열과 의욕은 그대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