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전야 미사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6월 28일 전야 저녁 미사



<6월 28일 저녁, 대축일 제1 저녁 기도 전후에 이 미사를 드린다.>




주님, 사도 베드로와 이민족들의 스승 바오로는 주님의 계명을 저희에게 가르쳤나이다.

<대영광송>


주 하느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복음 선포로 교회에 그리스도 신앙의 기초를 놓으셨으니, 그들의 전구로 저희를 도와주시고, 저희가 영원한 구원의 길을 걷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입구에서 불구자를 고쳐 준다. 예수님의 능력을 드러낸 것이다. 놀랍게도 베드로는 말씀 한마디로 그를 치유한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이제 예수님의 이름은 만방에 떨쳐진 이름이 되었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교회를 박해하던 자신을 이렇게 바꾸어 주신 분도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제2독서). 스승님은 당신에 대한 베드로의 애정을 시험하시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알려 주시려고 세 번이나 질문하신 것이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베드로의 순박함이 묻어 있는 답변이다(복음).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3,1-10

그 무렵 1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2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들려 왔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들어다 놓았던 것이다. 3 그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였다.

4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5 그가 무엇인가를 얻으리라고 기대하며 그들을 쳐다보는데, 6 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7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8 벌떡 일어나 걸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다.

9 온 백성은 그가 걷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는 것을 보고, 10 또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19(18),2-3.4-5ㄴ(◎ 5ㄱ)

◎ 그 소리 온 땅으로 퍼져 나가도다.

○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도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도다. ◎

○ 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 그들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는 온 땅으로, 그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가도다. ◎


<하느님께서는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1,11-20

1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분명히 밝혀 둡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12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13 내가 한때 유다교에 있을 적에 나의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여러분은 이미 들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14 유다교를 신봉하는 일에서도 동족인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심이었습니다.

15 그러나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16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17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18 그러고 나서 삼 년 뒤에 나는 케파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름 동안 그와 함께 지냈습니다. 19 그러나 다른 사도는 아무도 만나 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만 보았을 뿐입니다. 20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글은 하느님 앞에서 말합니다만 거짓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요한 21,17ㄹ

◎ 알렐루야.

○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니,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시나이다.

◎ 알렐루야.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5-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15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주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축일을 지내며 이 예물을 주님께 바치오니, 저희의 공로로는 감히 바라지 못하는 자비를 베푸시어, 구원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요한 21,15.17 참조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니,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아시나이다.


베드로 사도는 부족한 모습이 많았지만 솔직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그분의 단순한 신앙은 우리의 신심을 돌아보게 합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열정에 넘치는 모습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극복하며 선교에 전념하셨습니다. 두 분 사도의 행적을 묵상하며 그분들의 전구를 청합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비추어 주신 진리를 굳건히 보존하게 하시고, 저희가 천상 성사로 굳세어지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 복음에서 에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던지십니다. 그의 답을 못 알아들으시어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사랑이 어렵다는 것을 알리고 싶으셨던 것이지요. 세 번째 질문에 베드로는 슬픈 마음이 됩니다. 자신의 사랑을 알아주지 못하는 스승님이 야속했던 겁니다. 그 마음을 스승님께서 모르실 리 없습니다.

이렇듯 사랑의 출발은 마음 읽기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잘 읽어야 사랑이 쉬워집니다. 우리는 사랑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무심하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닮은 것은 그분의 사랑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사랑은 베푸는 행위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이 깊어지면 더욱 주고 싶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랑을 베드로에게 주문하신 겁니다. 그러한 사랑으로 양들을 대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세 번씩이나 질문하신 것은 스승님의 간절하심이 반영된 것입니다.

훗날 베드로는 초대 교회의 지도자가 됩니다. 숱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그는 스승님의 말씀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비로소 세 번이나 질문하신 의도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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