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로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녜스 성녀는 어린 시절부터 깊은 신심을 지녔다. 박해가 심해지자 체포되어 혹독한 심문을 받은 그녀였지만 끝내 배교를 거부하고,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3세기 후반경이었다. 훗날 많은 기적이 일어난 성녀의 무덤은 유명한 순례지가 되었다. 오늘날 아녜스 성녀는 ‘동정녀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입당송

보라, 이제, 정결한 희생이요 순결한 제물인 용감한 동정녀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을 따르도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세상의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약한 이들을 선택하셨으니, 저희가 동정으로 순교한 복된 아녜스의 천상 탄일을 기념하며 한결같은 그의 믿음을 본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멜키체덱은 아브라함 시대의 사제다.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의 일부를 바치며 제사를 드리게 했다. 그리고 재산의 십분의 일을 내놓아 그를 보호하였다. 예수님은 멜키체덱보다 위대한 사제이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려 하신다. 바리사이들은 실제로 고쳐 주실지 보고 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생각하시고, 바리사이들은 법을 생각한다. 불편한 몸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외면해서는 안 될 일이다(복음).


제1독서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7,1-3.15-17

형제 여러분, 1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2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15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께서 나오시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16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17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0(109),1.2.3.4(◎ 4ㄴㄷ)

◎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로다.

○ 주님께서 내 주군께 하신 말씀이로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

○ 주님께서 당신 권능의 왕홀을 시온으로부터 뻗쳐 주시리니, 당신께서는 원수들 가운데에서 다스리소서. ◎

○ 당신 진군의 날에 당신 백성이 자원하리이다. 거룩한 치장 속에 새벽의 품에서부터 젊음의 이슬이 당신의 것이오이다. ◎

○ 주님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않으시리이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로다.” ◎

알렐루야

마태 4,23 참조

◎ 알렐루야.

○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일찍이 박해와 싸워 이긴 복된 아녜스의 생명의 제물을 기꺼이 받아들이셨듯이, 그의 축일을 맞이하여 저희가 드리는 이 예물도 어여삐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묵시 7,17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께서 사람들을 생명의 샘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후 기도

하느님, 성인들 가운데 복된 아녜스에게 동정의 월계관과 순교의 월계관을 함께 씌워 주셨으니,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모든 악을 용감히 이겨 내고 마침내 천상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묵상

어디에나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시큰둥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선한 행동은 깎아내리고, 착한 행동에는 토를 답니다. 칭찬은 하지 않으면서 따지기는 무척 좋아합니다. 부정적 시각이 늘 우세한 사람들입니다. 복음의 바리사이들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려 하십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실제로 고쳐 주실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언제 예수님을 다시 만날지 모릅니다. 그는 애절하고 비장한 눈빛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실눈을 뜨고 있습니다. 고쳐 주시기만 하면 눈을 크게 뜨고 외칠 겁니다. 안식일에 ‘의료 행위’를 했다고 따질 참입니다. 바리사이 역시 신심 깊은 신앙인들입니다. 그런데도 평생을 ‘오그라든 손’으로 살아야 하는 이웃의 아픔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믿음에 사랑이 빠지면 자신만이 옳다는 ‘독선’으로 가기 쉽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웃을 해치는 폭력’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사랑만이 ‘삶의 에너지’를 충족시켜 줍니다. 오그라든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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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연중 제2주간 수요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로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녜스 성녀는 어린 시절부터 깊은 신심을 지녔다. 박해가 심해지자 체포되어 혹독한 심문을 받은 그녀였지만 끝내 배교를 거부하고,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3세기 후반경이었다. 훗날 많은 기적이 일어난 성녀의 무덤은 유명한 순례지가 되었다. 오늘날 아녜스 성녀는 ‘동정녀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입당송

    보라, 이제, 정결한 희생이요 순결한 제물인 용감한 동정녀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을 따르도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세상의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약한 이들을 선택하셨으니, 저희가 동정으로 순교한 복된 아녜스의 천상 탄일을 기념하며 한결같은 그의 믿음을 본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멜키체덱은 아브라함 시대의 사제다.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의 일부를 바치며 제사를 드리게 했다. 그리고 재산의 십분의 일을 내놓아 그를 보호하였다. 예수님은 멜키체덱보다 위대한 사제이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려 하신다. 바리사이들은 실제로 고쳐 주실지 보고 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생각하시고, 바리사이들은 법을 생각한다. 불편한 몸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외면해서는 안 될 일이다(복음).

    제1독서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7,1-3.15-17

    형제 여러분, 1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2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15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께서 나오시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16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17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0(109),1.2.3.4(◎ 4ㄴㄷ)

    ◎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로다.

    ○ 주님께서 내 주군께 하신 말씀이로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

    ○ 주님께서 당신 권능의 왕홀을 시온으로부터 뻗쳐 주시리니, 당신께서는 원수들 가운데에서 다스리소서. ◎

    ○ 당신 진군의 날에 당신 백성이 자원하리이다. 거룩한 치장 속에 새벽의 품에서부터 젊음의 이슬이 당신의 것이오이다. ◎

    ○ 주님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않으시리이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로다.” ◎

    알렐루야

    마태 4,23 참조

    ◎ 알렐루야.

    ○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일찍이 박해와 싸워 이긴 복된 아녜스의 생명의 제물을 기꺼이 받아들이셨듯이, 그의 축일을 맞이하여 저희가 드리는 이 예물도 어여삐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묵시 7,17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께서 사람들을 생명의 샘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후 기도

    하느님, 성인들 가운데 복된 아녜스에게 동정의 월계관과 순교의 월계관을 함께 씌워 주셨으니,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모든 악을 용감히 이겨 내고 마침내 천상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묵상

    어디에나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시큰둥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선한 행동은 깎아내리고, 착한 행동에는 토를 답니다. 칭찬은 하지 않으면서 따지기는 무척 좋아합니다. 부정적 시각이 늘 우세한 사람들입니다. 복음의 바리사이들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려 하십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실제로 고쳐 주실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언제 예수님을 다시 만날지 모릅니다. 그는 애절하고 비장한 눈빛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실눈을 뜨고 있습니다. 고쳐 주시기만 하면 눈을 크게 뜨고 외칠 겁니다. 안식일에 ‘의료 행위’를 했다고 따질 참입니다. 바리사이 역시 신심 깊은 신앙인들입니다. 그런데도 평생을 ‘오그라든 손’으로 살아야 하는 이웃의 아픔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믿음에 사랑이 빠지면 자신만이 옳다는 ‘독선’으로 가기 쉽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웃을 해치는 폭력’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사랑만이 ‘삶의 에너지’를 충족시켜 줍니다. 오그라든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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