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자들의 동성애자들에 대한 접근 자세

 

사목자들의 동성애자들에 대한 접근 자세


소수이며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동성애자들에게 대화를 시도하려는 사목자는 어떠한 수행원 없이 혼자 찾아가는 것이 그들의 마음을 여는 한 방법이다. 여러 명이 함께 찾아간다면 그들은 자기들을 위험 집단으로 보고 있다고 오해 할 수 있고 이렇게 비추어지면 대화의 깊이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남성 동성애자들에게는 여성이, 여성 동성애자들은 남성이 방문자로 찾아간다면 서로에 대한 부담도 줄일 수 있고 대화도 쉽사리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첫 방문부터 그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질문과 인터뷰는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하므로 우선은 그들과 친분을 다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화 가운데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의 선택에도 주의해야한다. 그들이 쓰는 용어대신에 싫어하는 용어를 써서 관계를 악화시킬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호모’, ‘동성연애자’, ‘homosexuality’ 같은 용어는 그들의 정체성을 몰이해한 표현이다. 여자 같은 남자로, 성적 결합에만 치중하는 존재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가정과 교리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다짐해야 할 것이다. 앞서 고찰한 동성애의 원인에서 심리학적 연구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들 이론이 보편적인 원인 제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올바른 가정환경과 부모의 역할이 중요함을 일깨워 준 것을 교회는 다시 한번 숙고해야 할 것이다. 대단히 어렵고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는 치료보다는 올바른 가정 형성으로 예방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또한 교리교육의 질적 향상과 전인격적인 인간의 성(性)의 의미를 알려주는 성교육이 필요하다. 이렇게 볼 때 다만 교회의 미래에 대한 확실한 설계를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정규 대학교에서 교리교육학과가 개설된 것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동성애자들에게 대한 편협된 시각으로 그들에 대한 경시와 폭력적인 언행을 삼가도록 교회는 지속적으로 저지해야 하겠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멀리 하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들은 더욱 고립될 것이고 인류 전체의 연대성은 상실될 것이다.


셋째 교회가 이들에게 죄에 다가서는 기회를 피하도록 돌보아 주기 위해서는 교회의 공식 입장 발표를 통해서도 이들과 접촉할 수 있겠지만 이는 그들이 느끼기에 일방적일 수 있으므로 어떠한 형태로든 직접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교회만의 입장을 가지고 성급히 다가간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 할 수 있으므로 직접적인 만남 이전에 서로간의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사전 조율의 한 방법으로 인터넷의 가상공간을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동성애자들은 그들 사이의 정보교류나 인권보호를 위해 홈페이지나 게시판(뉴스그룹)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직접적인 만남의 전(前)단계로써 올바른 교회의 입장을 잘 숙지하고 이들에 대한 편견 없는 지식을 소유한 사목자가 이 공간에 참여하는 것은 이들과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고찰이 의미 있게 되려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가 제시한 하느님 나라를 위한 종말론적 희망을 실제로 믿음과 사랑의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어떠한 양식으로든 미래가 이미 현존 할 때, 그리고 이미 모습을 드러내 보이며 어떤 경향과 과정 을 통해 그 모습을 구체화할 때에만 미래에 대해서 어느 정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맛본 미래는 아직 완성을 지향하고 있으므로 이를 채워 나가는 임무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달려 있으며 이 삶을 보고 모든 이들은 하느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을 하느님께로 돌이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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