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性의 의미, 성

 

올바른 性의 의미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소위 성의 자유와 개방이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포장된 성의 남용과 방종이라는 무절제한 성문화가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즉, 복지문명의 발달로 사람들은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희구하게 되어 성에 있어서 개인이 추구해야 할 쾌락이 최고의 가치로 간주되는가 하면, 더 나아가 성이라는 것 자체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남녀의 구별성을 거부하고 무차별적인 동일성을 강조하는 소위 ‘Unisex’라는 것이 남녀 의류계를 중심으로 굽속히 확산되고 있으며, 자신의 쾌락의 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두어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라는 소위 ‘Freesex’라는 개념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들은 인간의 성을 자신이 마음대로 해도 좋은 자신의 소유물로 파악하고 더 나아가 개인적인 쾌락의 추구라는면을 극대화시켜 성자체를 독립된 절대가치로 간주하는 이념화된 성으로서의 성이데올로기 현상이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성의 우상화와 문란한 성문화라는 문제점과 함께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한 산업화로 사회의 기초 단위인 전통적인 가정의 형태가 분해되어 핵가족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됨으로써 나타나는 부부이기주의라는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즉, 자신들의 안락과 쾌락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여 ‘성관계는 필요하지만 자녀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무분별한 낙태행위와 자신들의 쾌락추구를 위한 무절제한 피임의 실시가 행하여 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서의 성적혼란과 무절제한 남용이라는 현상은 사회구조 자체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쾌락을 최우선으로 두는 부부이기주의라는 문제로 이러한 사실이 뒷받침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질을 재조명함으로써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한 부분을 차지하는 성의 의미를 밝혀보는 것은 단순히 윤리적인 규범의 제시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적인 가치추구와 그 실현을 이루고 인간으로서의 생존을 지속시키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性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없어도 될 것이 있다거나 필요에 의해서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性은 인간을 분리함이 없이 한 인간의 존재를 남자 아니면 여자로 결정해 주며 한 인간의 어떤 부분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전체에 관여하여 개인의 성격과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인간 존재의 성적 구별성에 바탕을 둔 인간 존재의 형성은 자신과 다른 성을 가진 인간과의 관계에 의해서 더 높은 차원에서의 완성에 이르게 된다. 즉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두 가지의 성향을 가지는데 첫째, 인간은 자신의 존재만으로는 불완전하고, 둘째, 인간은 타인격과의 대화적 관계의 형성으로 완전과 안정이라는 지향점을 가진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능동성으로 말미암아 이성(異性)이라는 타인격을 지향하게 된다. 그러나 이 타인격은 자신과 같이 불완전성을 내포하는 존재이기에 “나”의 불완전성을 채워주는 반면 “나”의 또 다른 면이 타인격의 불완전성을 완전성에로 정향시킬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타인격과의 관계는 “나”또는 “너”의 일방적인 통로가 아닌 동시성과 보완성의 긴장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긴장관계로 말미암아 인간 대 인간의 관계는 단편적으로 처리되어질 수 없다. 즉 관계적 특성과 그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성취하는 성은 육체적, 생리적 의미도 지니지만 이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인격적 관계형성에 의한 완전성에로의 지향이라는 의미도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재를 개인적으로 결정해 주며 동시에 타인격과의 관계속에서 파악되어지는 인간의 성은 단순하게 파악될 수는 없으며, 오로지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자녀의 출산과 번식의 면으로 국한 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性을 육체적.생리적 필요에 의해서만 판단하여 오로지 출산과 자손 번식의 수단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창조된 세상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계획을 성취하는데 쓰일 도구로서의 역할과 의무를 가지는 것과 같이 인간의 성도 자녀 출산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 모든 것은 그 나름대로의 목적과 의미도 가지고있다. 그러므로 性을 출산과 쾌락의 도구로만 인식하는 것은 성에 대한 전체적 이해, 즉 性의 인격적, 사회적, 종교적 의미를 간과하게 되며, 한 인간이 인간의 존재 전체를 규명하는 性의 전인적 의미를 획득하지 못하거나 상실하게 된다면 자기완성과 성숙에 이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性이 가지는 인격적,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인 의미를 살펴보겠다.


첫째, 性은 한 인간 존재 전체를 지배하며 전 생애에 걸쳐 발휘되는 능력이다. 즉 性은 개별적인 인간의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선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형성 때부터 누구에게나 천부적으로 주어져 연령이나 결혼의 여부 등에 관계없이 지속되는 힘으로서 인간간의 관계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발휘되어 인간 실존의 전 영역을 지배하는 인간의 인격적 완성에 있어서 지배적인 관건으로 파악될 수 있다.1) 즉, 인간은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서 인격적 완성이라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인격적 완성으로 나아가는 동안에 자신이 존재론적으로 규정되어지는 성은 결코 소멸되지 않아 인격적 완성의 과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이러한 인격적 완성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의 性은 타인격과 관계를 맺는 능력으로서 자아 중심적 성향과 이타주의적 성향이라는 감정적인 태도의 양극 현상을 표출한다. 즉, 性은 타인격과의 관계 형성으로 인간의 인격을 성숙시키고, 이 인격의 성숙은 또 다른 인격과의 관계에로 확산되어 사회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특히 상호간의 책임 있는 헌신이라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을 통하여 성적인 결합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사랑하는 ‘나’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 받는 ‘너’ 또한 중요하다는 감정의 양극 현상으로 말미암아 두 인격간의 관계 속에서 자아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획득함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배려를 통한 자기 개방으로 삶의 의미를 확대하여 상대방의 인격적 완성에 자발적으로 기여하게 된다.2) 더 나아가 책임있는 헌신과 신뢰로 이루어지는 사랑의 관계는 타인에 대한 인격적 배려라는 성격을 가지게 되어 “나”로부터의 “너”를 향한 관계뿐만이 아니라 “너”를 통하여 그와 유사한 형태로 “그들”과 “나”의 관계에로 확산된다. 이러한 관계의 확산으로 인간은 타인에 대하여 용서와 이해, 그리고 사랑이라는 새로운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세째, 인간의 성적인 관계에 있어서 타인에 대한 자아 개방으로 이루어지는 관계의 정립은 그리스도교적인 구원이 의미하는 관계의 회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이를 현실화시킨다.3) 즉 인간이 자기 개방과 타인에 대한 조건 없는 수용을 통하여 자신에 대한 신뢰와 타인의 가치를 획득하고 더 나아가 이를 자녀를 통한 가정 공동체에로 확산시킴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 유지시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性은 자신과 타인의 인격적 완성과 상호간의 조건이 없는 자기 헌신과 사랑으로 일치된 공동체를 지향하는 책임 있는 행위로서 구체화된다.


그러나 인간은 성본능에 저항할 수 없는 동물과 달리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억제작용으로 순결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반면, 또 다른편으로 성행위를 생식이나 부부관계에서 분리시킬 수 있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완성되어야 할 인간의 성이 가진 성에 대한 자율성으로 말미암아 이기적이고 쾌락적으로 흐른다면 자신뿐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며,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올바른 성관(性觀)의 부재로 말미암아 갖가지 성적 일탈의 행위가 사회적 병폐로 대두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적 경향으로 말미암아 더욱 가속화되어 이제는 성적 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쾌락과 안락이 우선이며 이로 인해자녀는 귀찮은 존재로 치부되어 버리고,4)타인과의 관계에서 진정한 헌신과 봉사라는 사랑의 관계를 통한 자신과 타인의 인격적 완성과 성숙을 배제시키고 한 순간의 본능적 욕망의 충족을 위하여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쾌락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인격적 완성을 위해 존재하는 성을 대상화시켜 자신의 휴대용품 쯤으로 간주하여 성적능력을 오용 및 남용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성적 방종과 일탈의 문제는 특히 자신의 성과 성적 능력을 하느님으로부터 천부적 선물로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생각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성에 있어서 가장 강조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먼저 인식되어져야 할 것은 性이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로서 주어져 있으며, 선물로서 주어진 이 性을 인간은 마음대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적 일탈을 규제하는 온갖 윤리 규범들을 제시하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이며 근원적인 개선 작용을 수행할 수 있으니 법의 준수는 강제적이고 억압적이지만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응답하는 것은 비자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 감사하는 마음가짐은 인간으로 하여금 가족 윤리 규범과 법률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할 것이다.”5) 또한 인간의 성은 동물의 성과는 달리 정신적이며 초월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인간의 인격안에 통합되어 작용하는 존재론적 실체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성을 인격적인 관계가 배제된 곳에 사용하거나 이기적인 목적에 의하여 자신의 일방적인 쾌락이나 더 나아가 성적관계에 대한 대가나 보상을 염두에 둔다면, 자신을 자신안에 통합시키고 완성에로 이끌어주는 성으로부터 자기자신을 소외시키고 더 나아가 자신의 목적 성취를 위하여 타인을 도구화함으로써 타인의 인격적 완성의 가능성을 차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성을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소중히 보존하고 이를 통하여 타인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획득함으로써 “나”와 “너”의 참된 일치를 이루게 되어 “우리”라는 공동체의 인격적 성장과 완성에로 이른다는 면에서 성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의 性이 인간의 성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어떻게 사용되어져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인간의 性은 동물의 성과는 달리 정신적이며 초월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인간의 인격 안에 통합되어 작용하는 존재론적 실체이다.


특히 교회는 인간의 성의 의미를 구원될 실존적 인간존재의 인격적 완성이라는 면에서 파악하고 있다. 즉, 인간은 성이라는 것을 통하여 타인과 인격적 결합인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헌신적이고 책임있는 상호봉사로서의 관계를 형성하고, 이러한 인격적 관계를 통하여 인간 존재의 완성을 도모할 수 있게된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궁국적 완성은 인격적 의미에 제한되지 않고 타인과의 인격적 관계의 확산으로 궁국적인 자기성취인 구원을 지향하게 된다. 즉, 구원이란 완전한 사랑으로 완전한 일치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삼위일체에의 참여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인간은 타인과 헌신적인 자기증여라는 참된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일치의 공동체를 이루어 삼위일체라는 사랑의 공동체에로의 참여를 지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향의 자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중개자적 역할을 통하여 구원에의 도달 가능성에 대한 확실성을 부여 받는다. 그래서 창조 때부터 계획된 구원에로 정향된 인간은 이 창조사상에 근거하여 자신의 성을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은총의 선물로서 “자손의 출산과 번식”(창세기1,28참조)이라는 창조주의 의도에 맞게 사용하여야 하며, 자손의 출산과 번식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거룩한 성사로서의 결혼이라는 소명안에서 부부의 상호신뢰와 존경, 그리고 성사로서 거룩하게 된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매매춘이라는 현상은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부어받은 성의 근본적 의미를 완전히 배제하고 전도시키는 행위로서 이해되어질 수 있다. 즉, 매매춘 행위는 인간의 성을 인간 상호간의 가장 친밀하고 우애 깊은 사랑의 실천적 의미로 보지 않고 단순히 경제적인 요소를 매개로 하는 교환적 가치로 전락시키고 있다. 또한 인간은 삶의 참다운 희열과 행복, 자기 충만감을 타인에 대한 봉사로서의 성적관계를 통하여 얻게 되는데, 매매춘 행위에 있어서는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분리시켜 자신뿐만이 아니라 타인을 일회적인 성적욕구분출의 대상이나 목적성취를 위한 단순한 도구로 수단화 시키게 되어 인간의 성이 가지는 인격적 관계의 의미를 상실케하고 참다운 기쁨과 행복의 체험이 아니라 자신을 성의 본질적 요소로부터 분리시키고 자기 존재의 의미조차도 파괴해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매매춘 문제는 인간 존재의 어떤 한 부분을 간헐적으로 위협하거나 내모는 현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의 궁국적 완성과 실현을 차단하는 파괴적인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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