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 개념, 성서에서 바라보는 양심

 

양      심




1) 양심의 개념


Conscientia는 cum과 scientia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함께알다이다.


양심은 인간의 윤리적 능력이며 하느님과 이웃간의 관계에서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내면적 중심이며 성역이다. 실상 인간은 우리자신이 하느님과 이웃을 진정으로 만남으로써만 반사적으로 우리자신과의 참된 만남을 이룰 수 있다.우리 안에는 우리를 창조한 말씀의 부르심이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함께 있기를 초대하시는 스승님의 부르심이 들여온다. 우리 양심은 이렇게 말씀을 통해서 생동력을 가지며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당신의 제자가 되라고 부르시는 말씀을 통해서 끊임없이 우리 내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 인간 존재의 심연을 통해서 양심은 참된 자아가 그리스도와 일치하게끔 하며 그분께 의탁함으로써 우리 각자의 고유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양심의 섬세함, 성실함은 진리의 성령에로 무장시켜 주시는 그리스도를 신적 조명을 통해서 우리안에 더욱 크게 자라게 해준다.


양심은 인간의 전 존재를 통하여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우리들의 능력이다. 양심은 그 자체를 불꽃 없는 하나의 초이다. 이초는 진리, 빛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자신의 진리를 수여 받으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빛을 밝히며 그리스도의 열을 발하는 것이다. 양심은 진리의 탐구를 통해서 양심의 상호 교류안에서 경험과 반성을 함께 공유하는 촛점을 만들어낸다. 경험 지식을 함께 나눌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자유롭게 됨으로써 우리는 서로의 진실된 양심과 만날 수 있게 된다.하느님의 시각에서 우리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있응때 하느님 말씀안에서 우리 서로가 서로의 한 부분임을 인정할때 양심은 충만하게 살아있는 양심이 될 것이며 창조적인 양심으로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2) 구약 성서  안에서의 양심


양심을 가리키는 용어 Syneidesis는 지혜서 17,10에서만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인은 처음에는  선과 악의 경험을 외적, 객관적인 면에서 그리고 집단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았으나 나중에는  그들 내부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체험했다. 내적인 것으로서의 양심의 이해는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공헌으로 가능하였고 양심이란 하느님께 충실하도록, 계약의 백성으로서 충실하도록 불리운 사람의 가장 내면적인 것이며 인간이 자신을 활짝 열기를 원한다면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여 인간을 인도하는 정신이다.


구약성서의 인간 마음에 대한 시각은 인간은 하느님의 성령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여받고 선을 행하도록 자유로움안에서 정직하게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기위해 불리움을 받았다. 그러나 인간은 마음에 가책을 통해서 여전히 하느님 면전에 설 수 있다고 하면서 진정한 회개는 마음의 고뇌와 함께 시작된다고 하였다. 하느님은 무딘마음도 새롭게 하실 수 있으며 형제들에 대한 의무와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새로운 느낌과 열린 마음을 주실 수 있다고 선포한다.




3) 신약성서 안에서의 양심


신약안에서 볼 수 있는 양심에 관한 경험적 실재는 구약의 조명하에서 살펴볼 수 있다. 거짓으로부터의 해방, 그리스도안에서의 진리가 바로 내적 개혁이며 새로운마음 새로운 정신의 체험이다. 우리의 마음안에 울려퍼지는 하느님의 부르심은 하나의 종교적 체험이며 동시에 양심의 체험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 평화안에 머물 수 있으며 이 부르심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법이며 이는 인간의 마음안에 새겨져 있다.






4) 바오로 사상안에서의 양심


바오로는 Syneidesis 라는 개념으로 자신의 독특한 사상을 표현한다. Syneidesis는 헬레니즘 , 셈족의 영향을 균형있게 하면서 바오로의 독자적인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바오로는 Syneidesis개념으로서 윤리적 양심이 지니고 있는 실천적인 의미에로 우리를 인도하였다.




5) 고린토 전서 8-10 . 로마서 14장


윤리적 양심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지식과 사랑으로 자유롭게 행위할 것을 말한다.그러나 여기서의 자유는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고유한 양심이 타인으로부터 판단받아야하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이들의 유익을 추구하며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나의 양심이 타인에게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서 규정된것


①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자신의 구체적인 행위에 대한 선함 악함을 규정지을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이다. 이 양심은 그 행위가 연약, 강하든가에 관계없이 구체적으로 내 자신이 행해야


   하만 하는것을 항상 나에게 명령하게 될 것이다.


②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지식 자유 그리고 또 이둘의 조화이다. 그렇다고 한쪽에만 치우쳐서


   는 안되고 지식과 자유는 애덕으로 행해야만 하며 애덕에 따라서 실천되어야만 한다.


③ 애덕으로서의 양심은 교화와 성령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④ 신자들의 양심으로부터 나타나는 유익은 타인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 유익이란 모


   든사람들을 위해 드러나고 선포된 구원을 의미한다.




6) 로마서 14장  –  신앙에 촛점을 두면서


각자는 주님을 위해 자신의 전 존재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이 지니고 있는 판단에 대해서 확신을 가져야 한다. 타인에 대해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무관심 해서는 안된다, 사랑해야 사랑은 반드시 그리스도인의 행위에 진리와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 그러면서 신앙에 촛점을 두고 결론 짖는다.


πιστιs는 고린토 전서 8,10-12에서의 Syneidesis와 공통점을 지니나 절대적으로 동일하지는 않다. 믿음은 양심에 대한 하나의 질문이지만 양심은 항상 믿음의 질문이 될 수는 없다.판단과 행위가 믿음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이는 자기 충족이며 따라서 죄이다. 자기충족은 일종의 위협이며 애덕에 반대된다. 동시에 죄는 연약함때문에도 생겨나는 일종의 위협이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드러나는 강인함도 요구되기 때문이다.




로마서 14장의 양심 요약


① 믿음과 양심과의 관계에서 볼때 양심이 그리스도안에서의 모든 인간 존재의 심연을 책임지기 때문에 양심은 곧 바오로적 πιστιs.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모든 생활은 인도하고 생기를 주는 살아있는 실재인 그리스도안에서 행하는 모든것은 양심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② 양심에 대한 존중에 있어서 타인을 판단해서는 안되며 또한 타인의 양심을 결코 손상해서도 안된다. 양심에 대한 이러한 존중은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양심과 믿음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잘 알려준다. 왜냐하면 판단한다는 것은 하느님께만 유보되었기 때문이다.




7) 그밖의 바오로 서간


양심은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재산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진리안에서 우리 각자의 양심을 호소할 수 있다. 바오로의 양심은 인간 행위전체를 총괄하는 내면으로서 드러나고 있다. 바오로는 강조하기를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 양심에 순수함을 주실 수 있다고 하면서 단편적인 텍스트에서 몇가지를 보면


① 양심은 인간의 내면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행위 가치여부를 구분할 수 있다.


② 순수함과 선함은 인간이 지녀야 할 하나의 기본적인 과제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판단못


   한다. 서로의 존중을 통해 진실되고 신뢰할 수 있는 양심을 지니도록 지식-자유-사랑의 길


   을 격려, 지지해야 한다.


③ 구원은 양심의 차원에서 제시되고 생활화된다. 구원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참여함으로써 사


   랑이된다. 양심 사랑만이 진실되며 우리들의  행위는 삶안에서 사랑이 효과적으로 드러날


   때만이 진실되다고 할 수 있다.




8) 사도 바오로 서간의 종합 (syneidesis개념)


바오로는 syneidesis개념으로 하느님의 영이라는 역동적인 현존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바오로의 시대까지 스토아 학파의 윤리에서는 악한 일에 대한 양심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만 예외적으로 syneidesis개념을 사용했다. 또한 이 개념은 선과 악의 기로에 놓여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실존적인 인식과 일체성에로의 마은 깊은 속에서부터의 존재론적 열망으로서 이해되었다.


바오로는 syneidesis용어를 죄인을 고발하는 의미에서의 양심을 지칭하기 위하여 여러번 사용한다.


바오로는 syneidesis로서 하느님께서 사랑의 법을 새겨놓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syneidesis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안에 당신의 법을 새겨놓으셨다는 것이 그 이해의 핵심이다. 이는 어떤 후회나 무엇을 고발하는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며 그러기에 오늘날 성서학자들은 바오로가 syneidesis개념을 인간의 마음이 지니고 있는 길 곧 선하고 의로운 것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바오로는 인간이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것을 위한 결정들을 규정하기 위해서 syneidesis개념을 사용한다.


바오로의 관심은 양심의 통합성에 있어 선한 양심의 주체의 일체성을 표현한다는 점을 주시한다. 바오로의 중심 메시지는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하신다는 것인데 이때 인간의마음을 새롭게 하는데는 통회와 회심이 작용하는 사실을 보았다. 구원이란 단순히 정신과 사고의 오류로부터 벗어나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양심의 깊은 내면에까지 파고 들어가는 것 까지도 의미한다. 양심은 신자들에게 자신들의 신앙과 삶에 대한 성실성을 드러내 주는 하나의 증거를 제공해 준다. 선한 양심 자체로 자동적인 보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오로는 결코 자신의 양심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그것이 어떻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9)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양심 ; 사목헌장 16항


① 양심은 내면적 깊이와 견고성을 지닌다.


② 고립을 뜻하는 내면이 아니라 일치와 친교를 이루는 내면이다. 하느님과 함께 너에게서 너를 찾는 것이며, 하느님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이다.


③ 대화형태의 내면은 지금 이 자리에서 행해져야만 하는 것에까지 도달하는 일종의 명령을 체험한다. 그렇다고 내면의 이러한 명령이 어떤 형태에 묶여 있는 명령은 아니다. 총체적인 것 이전의 그 무엇이다.


④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는 법은 인간에게 종속되는 법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새겨진 법이다.


⑤ 이 법은 하느님과 이웃안에서 완성되어야 할 법이다.


⑥ 이 법은 사랑의 법이므로 공적요구를 위한 사랑의 실천적인 진리를 추구한다.


⑦ 불가항력의 무지로 인해 양심이 오류를 범하기도 하나 그렇다고 해서 양심이 그 존엄성을 잃지는 않는다.






Ⅰ 양심의 행위 및 양심의 불변하는 요소




양심의 개념은 항상 구체적인 인간학을 반영한다. 스콜라 신학과 후기 윤리신학에 대한 신학적 반성을 통해서 볼 때 양심의 개념은 Conscientia와 Synteresis 혹은 synderesis 사이의 구분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Conscientia ; 단순히 인간이 선 혹은 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취하게 되는 행위 혹은 판단.


Synteresis ; 인간이 진리를 찾고 그 진리를 실행에 옮기도록, 그리고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도록 인간을 재촉하는, 인간 내부에 있는 어떤 불변적인 요소를 의미하였다.




스콜라신학의 Synteresis에 관한 입장은 인간이 윤리적 질서와 윤리적 제가치를 추구해야만 하는 존재로서 이해되도록 인간을 의식화하고, 인간을 평가하는 인간의 내면적인 능력으로서의 Synteresis로 이해하였으며,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실천적 지성의 선천적인 성향으로 보았다.




Ⅱ 양심에 대한 이론들




1) 실천적 지성에 대한 강조 ; 토마스의 시각


Synteresis는 인간에게 반드시 선이 행해져야만 한다, 혹은 이웃을 네 자신을 사랑하는 것 처럼 사랑하라 라고 말한다. 양심의 판단은 Synteresis로부터, 실천적으로 이웃사랑, 정의 등의 올바른 표현 혹은 선을 구성하는 것에 관한 구체적인 윤리적 판단에서부터 주어지는 하나의 실천적인 결론이다.


토마스는 선의 인식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의지의 자연적 성향은 항상 실천적 이성에 대한 인식과 연결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토마스는 올바른 윤리적 이성과 가치의 정확한 평가는 현명의 덕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즉 양심에 대한 성실한 판단에서부터 나타나는 것을 Synteresis라고 하는 선천적 경향과 현명의 덕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현명의 덕은 존재하기 위해, 행동하기 위해 선을 위한 기본적인 선택을 미리 설정한다.




2) 의지의 선천적인 성향에 대한 강조 ; 보나벤두라 外


선으로 인식하는 것을 열망하고 사랑하기 위한 의지의 선천적인 성향을 선을 위해서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을 뜨겁게 하는 사랑으로서 이해했다. Synteresis때문에 인간의 의지는 하느님 사랑으로부터 주어진 사랑의 작은 불꽃이 된다. 인간의 의지는 인간의 내면적 성향안에서 하느님과 접촉하게 된다. 보나벤뚜라는 보이지 않는 어떻 힘으로서의 의지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인식된 선을 따르게 하는 어떤 능력으로서의 의지를 받아들인다.




Ⅲ 양심의 총괄적 개념




1) 전체성과 일체성에 대한 내적 열망


양심은 각 개인의 내면에 현존하는 하나의 역동적인 힘이다. 왜냐하면 지성과 의지는 우리 인간들의 심리적, 영성적 생활의 내면적 영역안에 함께 뿌릴르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양심의 역동성을 양심의 옳거나 혹은 그른 기능에 대한 인간 인격의 전체성에 대한 반응이며, 이 반응은 양심의 옳거나 그른 능력의 기능과 관련 없다. 그러나 이 반응은 인간적 실종과 개체성을 구성하는 능력에 관련된다. 인간존재의 가장 내면적인 부분은 인간의 전체성과 인체성을 증진시키고 또 위협할 수 있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양심의 판단이라고 할 수 있는 현명함의 구체적인 판단은 조건, 상황에 따라 다르다. 위기를 판단하고 현명함의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특징은 전체성을 향하는 양심의 열망이다. 양심은 윤리적 동인으로서의 인간의 통합적 주체성과 함께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지성이 움직임과 정서적 움직임은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인간이 스스로 인간에게 하는 내면적 움직임을 통해서 상호교환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니니 양심의 통일성과 개방성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의 움직임을 드러내 보여주는 하나의 실제적인 표지가 된다.


인간 본성안에서 지성, 의지, 감성의 내면적인 일치로 인해서 진리와 선, 성에 대한 지성의 긴장은 없어져 보리며, 그렇지 않을 때 의지는 저항한다. 그리고 의지가 선에 대한 보다 나은 인식과 실현을 통한 지성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할 때에 의지는 탹화된다. 인간이 참된 자아는 전체성과 진리를 향하는 열망을 지니고 있다. 반면 이기적 자아는 선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쫓아 다니다.




2) 전체성, 진리와 연대에의 개방성


우리들의 양심안에는 일치와 전체성에로의 부르심이 메아리친다. 우리들의 마음안에는 계약의 실재가 새겨져 있다. 인간본성을 하나의 순수한 내적 전체성의 특징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전체성을 현존하는 빛에로의 개방성을 전제로 한다. 빛에로의 이러한 개방성을 이웃을 향한 개방도 포함한다. 신앙의 중심인 성체성사가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규칙적으로 거행된다면 우린느 우리들 양심을 통해서 전체성에 도달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이웃과 일치를 이룬다.




3) 양심에의 충실과 창조적 자유


창조적 양심의 판단을 위해서는 진리안에서 살고, 진리에 따라서 행동하겠다는 강한 의욕과 함께 다음의 것들이 요구된다.


① 양심을 부여하시는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는 역동성, 즉 전체성과 개방성을 향하는 선천적


   인 열망


② 기본적인 선택의 견고함과 명백함


③ 기본적 선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기질과 늘 의식적이고 현명할 수 있는 기질의 힘


④ 양심의 상호교류


⑤ 신뢰, 창조성, 온유함




양심의 창조적인 질, 즉 선에 대한 직관적인 인식은 성령의 업적이다. 영적인 인간은 모든 것을 판단한다. 신앙은 종교적 사랑에 대한 인식의 형태이다. 신앙안에는 사랑으로부터 잉태된 하나의 인식이 자리한다. 직관적 인식에 대한 개방성은 인간이 자신의 양심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말하겠다.




Ⅳ 전체성과 오류적 양심




모든 의도가 올바르고 양심이 성실하게 보다 나은 해결책을 찾으려 할 때도 오류는 개인의 탓 없이도 발생하며 양심이 자체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발생된다. 양심안에는 불가침의 영역인 양지양능이 있다. 양심이 성실성의 결핍으로 오류를 범하면 윤리적 악을 나쁘다.


 ꠏꠇꠏ 진리와 선을 추구하는데 관심을 두지 않음


    ꠌꠏ 윤리적 인식을 소홀히하여 습관적 죄로 인해 양심의 눈이 어두워지는 경우


인간은 진정으로 선과 의를 추구할때  그양심은 완전무결한 종류의 기쁨을 누린다. 결정적인 확실성을 가지고 양심은 지성에 부합하도록 의지에 명령한다. 마음안에 나타나는 이러한 명령은 행위후에 윤리적 당당함이 함께 한다고 확신할 수있다. 만일 오류가 태만, 악한 의지로 인해 나타난것이 아니라면 양심의 능력은 잘못된 판단 때문에 행동하게 된 사람에게 양심의 가책을 주지않을 수 있다.  오히려 그러한 행동은 양심의 선한 움직임으로부터 지지된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아무런 탓없이 잘못 형성된 양심의 어떤 명령은 어쩔수 없이 바른 양심의 명령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주님은 행위의 결과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을 살피신다.  그러므로 Newman추기경은 “어떤 오류적 양심에 대한 복종도 역시 빛에 도달하기 위한 길을 밝혀 준다는 점을 나는 지지 합니다.”하였다.  어떤 참된양심이 교회의 실천적인 법, 사회법, 자연법에서의 필요한 면을 실생활로 내면화 시킬 능력이 없음이 인정되는 경우를  극복 불가능할 정도의 오류적 양심으로 판단할 수 없다.


인간의 양심은 오류를 범하면서 진행된다.


Thomas는 만일 사람이 자기 탓으로 잘못된 양심의 명령을 자기안에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명령을 따르든지 반대하든지 간에 죄를 범하게 된다고 말한다. 객관적으로 올바른 행위를 해도 양심을 거슬러 행하면 그 행위는 명백한 죄가 되며, 양심의 명령을 거슬러 행했기에 그의 내면적 전체성과 객관적인 선과 진리로써 이해된 것과의 일체성이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다.


Thomas는 자기 탓으로 오류적 양심을 가진 사람이 필연적으로 죄를 범하게 된다고 단정함은 옳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에게도 가능한 선택이 있다.  즉 자신의 마음의 심연에 자리잡고 있는 오류라는 타락된 원천을 정화하면서 양심의 명령을 교정하는 것이다.  만일 그사람이 마음 바꾸기를 주저, 거부하면 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진실된 양심의 결정이 주는 표지는 내적 평화이며 사랑과 정의를 요구하는 어떤 행위를 행하게끔 하는 모든 새로운 기회에 항상 개방되어 있는 자의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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