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사제직에 대한 입장-퍼온글

여성과 사제직에 관해

여성신자로 카톨릭 교회 다니기

저는 서울에서 성당을 다니고 있는 사람이고 어려서부터 신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신부가 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약자, 소외된자를 위한 종교에서도 여성는 역시 소외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미사후에 신부님이 진행하신 미사를 정리하고 치우는 수녀님들을
보면 저는 착찹한 생각이 들었습니다.(일에 충실하고 만족하고 계신 수녀님들께는 죄송합니다)

뒤에서 자신을 들어내지 않으며 하는 봉사가 더 훌륭한 것이라고 말씀하실
분들도 있으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건 힘을 가진 사람들,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규범에 의해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집단내에서 약자들, 남자만이 신부를 할 수 있고 남자만이 교황을 할 수 있다는 규범을 가진 곳에서 여자 신자들은 그런 소리를 들었을때 한숨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계명인 희생, 뒤에서 하는 봉사 등을 지키면 교회와 사회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여자는 교황이 될 수 없고 신부가 될 수 없을까요.
열두 제자들이 모두 남자였기 때문에?
하지만 예수님은 여성을 존중하셨고, 관습적이고 옳지 않은 율법을 질타하시는
혁명가 같으신 분이셨지 않습니까.
또 사제로 남성를 택한 것은 남성중심적이고 여행의 위험이 많았던 그 시대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에 적합한 性이었기 때문일겁니다. 그러나 현대 사제의 임무중 여성이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일은 없어보입니다.

예수님이 남자였기 때문에 사제도 남자여야한다?
이런 생각은 예수님을 그저 단순한 인간으로 밖에 보지 않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신이 아니라 남자였다면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한 性의 특징과 행동양식만을 가진 신이라면 저는 그 신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카톨릭에서 세계의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사는 여성들을 위한 센터를 건립하고,
그들을 위한 메세지를 낭독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보다
여성도 신부와 교황이 될 수 있다고 선포하면 아마 사회적으로 여성의 권익과
인권은 훨씬 더 좋아질 텐데..

저는 신학을 공부하러 유학을 갑니다.
성서내에서 타당하지 않은 여성의 묘사가 그릇됨을 밝혀내고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닌 당시의 시대상황 때문임을 밝히는데 노력할 것 입니다.

교회가 한쪽 性에게만 기회를 주는 곳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부가 되고 싶은 여성은 신부가 될 수 있고,
수녀가 되고 싶은 남성은 수녀가 될 수 있는 교회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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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제목과 위의 글은 부산교구 자유게시판 3월 1/2일자로 올라온 글입니다. 저는 이글을 쓴 분에게 뿐 아니라 신부님들과 관심있는 분들에게 올바른 교회정신을 알려드릴 필요가 있다고 여겨 있는 자료를 여기저기 찾아서 읽고 아래에 답변 형식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되었으면 하고 또 다른 자료가 있으면 제메일로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cyrillok@libero.it
전례학동호회 홈페이지 관리자 신부님께서 제 글을 읽고 참고 자료로 올려달라는 부탁을 해서 부족한 글이나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올리니 읽으시는 분들의 이해를 부탁드리며 혹시 학적으로 다른 자료나 의견이 있으시면 위의 제 메일로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10.103.72.129 세자요한: 흠… 성서를 잘읽어보면 예수님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를 위해 기도 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성에게 중요한것은 무엇일까요? [11/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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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to 여성사제직에 대한 입장-퍼온글

  1. user#0 님의 말:

    김 영호 신부의 답변

    1. 자유게시판에 올린 자매님의 글을 보고, 여성과 사제직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 자매님의 글을 보고나서 가톨릭신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아 저의 의견을 올립니다. 우선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신 자매님께 감사드립니다.

    1. 우리 인류의 역사를 보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모계 중심사회도 있어왔고 부계중심사회도 있어왔습니다. 오늘날 발전된 서구사회는 어느 한쪽 중심이 아니라 남녀 평등, 남성과 여성의 공동 협력사회로 향해 발전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아직 남존여비의 구시대 유산이 남아 있는 구석이 많이 있지만 전체적 흐름은 서구사회의 남녀 공동 협력사회 모형으로 향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인간문제, 남성과 여성문제를 계시 진리가 담긴 성서말씀에 기초를 두고 시대와 장소가 요구하는 해결점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말씀과 아담이 잠든 사이에 그의 갈비뼈에서 에와를 만드셨다는 두가지 원천이 다른 창조설화는 자매님이 제기한 문제에 관한한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첫번 째로 남자와 여자는 인간이란 면에서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공동체성을 본성적으로 지닌다는 사실입니다. 두번 째로 인간이란 면에서는 동일한 가치를 지니지만, 하느님의 창조계획에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남성이든지 여성이든지 둘 중 하나의 고유한 성을 지니게 되어있고 그에 따라 그 특성이나 성소도 서로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세번 째로 이러한 두가지 고유한 성으로 나누어진 인간 창조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신비로서 하느님의 영역이라는 것과 남성과 여성은 서로 돕고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보완함으로써 하느님이 계획한 인간으로서 완성되어 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창조주 하느님의 삼위일체의 신비에서 그 모범을 볼 수 있듯이, 창조주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이기에, 인간은 하나의 공동성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두 성으로 나누어지고 또 둘이면서 서로간의 사랑과 협력으로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사이에 발하는 사랑이신 성령이 성부와 성자를 한분 하느님으로 일치시키듯이, 남성과 여성도 사랑자체이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참된 일치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최근 몇 년간 교회는 여성의 고유한 가치와 독특한 성소 문제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해 왔습니다.
    1988년 ‘마리아의 해’를 맞아 교황님은 여성의 존엄성과 성소에 관한 교서 «Mulieris dignitatem» (여성의 존엄)를 발표하였고, 교회내외의 많은 여성들과 학자들에게 큰 감동과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1995년 세계 여성의 해를 맞아 교황님은 성 목요일 사제들에게 여성에 관한 서한을 보내셨고, 6월에 ‘여성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발표하셨고, 같은 해 9월 북경에서 열리게 된 제 4회 전세계 여성대회의 준비로서 여러 번에 걸쳐 주일의 Angelus (삼종기도) 때, 여성의 특성과 역할 그리고 직업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996년 1월에는 제 30회 ‘사회적 커무니케이션’이란 세계대회를 맞이하면서 보내는 서한에서 여성의 중요한 성소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자세한 것은 바티칸 사이트 (www. vatican.va)로 들어가 (대개 영어, 이태리어, 불어 스페인어판이 있습니다) 이에관한 기본적인 자료들을 확인하면 도움을 얻을 것입니다.
    교회 전승 수호의 의무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시대의 징표를 읽는 지혜를 가지신 교황님은 교회의 대표로서 앞의 여러 문헌을 통해 여성의 존엄성과 그 독특한 소명을 인류전체를 향해 강조하십니다. 앞서 열거한 여러 문헌들을 통해 교황님이 강조하고자하는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하 논거에서는 존칭을 생략합니다)
    1) 남성과 여성의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인권강조.
    2) 여성의 우월적 특성과 성소: a) 모성 – 모태로부터 모든 인간의 생명과 역사가 시작됨. 따라서 모성은 생명의 수호자이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육체적) 사건만이 아니라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출생과 교육에 있어서 남성보다 우월성을 지닌다; b) 동정성 – 하느님 나라를 위해 동정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여성들은 (요즈음은 수도자의 길 뿐 아니라 평신도로써 동정의 길을 택하는 여성들도 많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모성을 가진다. 성덕을 지닌 수많은 여성 수도자들 (대 데레사, 소화 데레사등등 현대의 마더 데레사, 그외 수많은 알려지지않은 수많은 동정녀들)은 인류구원을 위해 풍성한 역할을 해왔다; c) 자비로움, 구체적 관심, 평화에의 봉사; d) 인류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사랑의 문화»의 주요한 기술자. 사실상 여성은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또 자매로서, 노동자로서, 봉헌된 자로서, 사랑과 감성과 신비와 봉사에 남성들보다 더욱 민감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정치, 사회, 경제, 예술 그리고 종교 각 분야에서 이 사랑의 문화를 이룩하는 주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3. 교회 내에서도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있어서 여성들은 두드러진 역할을 해왔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공생활을 뒷바라지한 여인들, 사도들 보다 더 주님의 죽음을 슬퍼하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된 여인들 (여기엔 창녀였던 막달라의 마리아가 더욱 돋보인다)이 있다.
    무엇보다 성서와 교회의 모든 전승은 성모 마리아에게서 위에서 말한 여성의 모든 특징의 모범을 본다. 하느님의 계획에 “예” 함으로써 동정성과 모성을 함께 지니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요, 모든 그리스도인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 마리아는 그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에 있어서 모든 여인의 모범이요 완성이시다.
    그리고 또한 신구약 성서의 전통안에서 그리스도는 신랑이시고 교회는 동정으로서 그리스도의 아내요 모든 신자들의 어머니로 표현된다. 성모 마리아는 이러한 교회의 모상 (Icon)이시다.
    교황님을 비롯해 우리모두는 이러한 성모 마리아께 감사드리며, 또한 성서의 여인들과 모성-아내-동정-딸/누이들인 모든 여인들에게 고개숙여 감사드리며 남성위주의 사고방식을 반성해야한다 . 또한 현대 메스메디아의 대부분이 여성을 상품화하는데 반대하며, 무엇보다 여성들 자신들이 스스로 창조주 하느님이 주신 고유한 품위를 지켜나가도록 교육받고 활동하는데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여성의 우월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여성에게 사제직을 부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은 교회도 여성을 차별하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물을 수 있다.

    4. 여성 사제직에 대해서 몇몇 진보적인(?)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오늘날까지 전체 가톨릭교회는 한결같이 부정적인 답을 내리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성 사제직 가부의 문제가 남성과 여성의 인권 차별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명시하고자 한다.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인간 권리라는 것이 남성과 여성의 각각의 고유한 특성과 역할을 무시하거나 없애자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르기에 협조와 조화를 통해 더 나은 인류 (교회로서는 더욱 교회다운 교회)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래에서는 가능한한 간단하게나마 성서적 근거와 교회 역사적 (교회 전통) 근거와 신학적 근거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먼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목사직은 (성직이지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재현하는 사제직이 아니기에 여성목사의 문제가 본질적인 성서적 신학적 문제가 될 수 없다. 실상 사제직에 가장 핵심인 성체성사가 일반 프로테스탄트엔 없다. 미사는 제사지만 그들의 주일 예배는 말씀의 전례중심인 예배이지 성체성사를 이루는 제사는 아니다. 그러나 성공회 신부직은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미사안에서 성체성사를 이루는 사제직이기 때문에 성공회의 여성사제직 수락은 성서적, 교회 전승적, 신학적 문제를 안고 있다. 동방 정교회 (그리스 정교, 러시아 정교등 여러 독립된 지역 정교회가 있음)에서는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여성 사제직에 부정적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인 교회 일치의 입장에서도 여성 사제직 문제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한다.

    – 성서적 근거와 고대 역사적 근거
    구약시대의 고대 근동 종교들에서는 여성사제들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이러한 여성사제들은 바로 여신을 숭배하는 종교에서 그 여신에 봉사할 목적으로 존재하였다. 따라서 야훼 하느님의 직접계시에 의해 선택된 (‘이루어진’이라고 해야 더 합당할 것임)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라 다른 신들 뿐 아니라 여신 숭배를 거절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남성들에게 (그것도 한정된 아론계와 레위지파에만) 사제직이 유보되었다. 물론 구약시대에 모세의 여동생 미리암, 데보라, 유딧다, 그리고 에스텔등은 판관과 예언자 역할등을 포함한 중요한 역할들을 했다. 하지만 사제직에는 예외 없이 아론의 후손과 레위가문에서 남성들이 맡았다.
    구약을 이어받고 완성하는 신약에서도 이 전통은 그대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구약에서 야훼는 남편으로 이스라엘은 ‘아내’로 상징되었듯이,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새 이스라엘인 교회의 남편으로 상징된다 (참조: 마태 9,15; 25,1.5-6.10; 마르 2,19-20; 루까 5,34-35; 요한 3, 29; 2고린 11,2; 에페 5, 25-26; 묵시 19,2-9; 21,7.9; 22,17). 신약에도 성모 마리아와 엘리사벳과 안나는 구원역사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였고 또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따르면서 뒷바라지를 한 마리아 막달레나, 베다니아의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그리고 살로메가 중요한 여인들로 떠오른다.. 아무리 예수님 시대가 남성위주의 사회였다 하드라도 4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행동을 보면 그런 구분을 뛰어넘어 여인들에게 큰 관심과 사랑을 베푸셨고 나중엔 여인들이 당신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영광을 안겨주셨다. 그리고 자신을 주인집 밥상에서 떨어지는 찌꺼기를 먹는 강아지에 비유하며 딸의 치유를 위해 간청하던 이방여인을 두고 그 믿음을 크게 칭찬하셨다 ( 그러나 바로 그 앞에 제자들의 믿음이 약함을 꾸짖어시고, 또 조상의 전통을 고집하는 위선적인 파리사이파 사람들을 꾸짖어 셨다! 참조: 마태 14,22-15,28). 그러나 예수님은 남성들 중에서만 12사도를 뽑으셨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와 당신을 따르는 많은 남녀 제자들이 있었지만 성체성사를 세우신 최후만찬에서는 오직 12제자들만 데리고 당신을 기념하여 성체성사를 행하도록 명령하셨다. (평생을 당신을 위해 바친 어머니 마리아에게도 이 자격을 주지 않으셨다! 그러니 성모님이 성체를 변화시켜서 주신다식의 사적계시가 있다면, 올바른 신자라면 그 사적계시가 오류임을 잘 알 것이다. 성모님은 우리 주님의 어머니요 모든 신자들의 어머니이시지만 사제직은 갖지 않으신 것이다!)
    예수님의 직접행동도 중요하지만 바로 계시진리의 직접 전수자요 성령을 받은 12사도들과 12사도들의 직접 후계자들의 이해도 중요하다. 스승 예수가 죽으신 후, 12사도들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다스자리를 대신할 사도 (마티아)를 남자 신도 중에서 뽑았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는 세상사를 초월하신 분이시지만 장차 교회를 위해 애초 제자들이나 사도단에 속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를 이방인의 사도로 파견하셨다. 초창기 교회의 전승을 이어오는 가톨릭 전승에서 보면 사도들의 사명은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과 (예언직) 교회를 다스리는 일 (왕직) 뿐만 아니라, 성사 집행 (사제직)의 임무가 있었고 사도들의 후계자들은 계속 이를 사명을 계승하는 것이다. 박해받던 사도시대에 바오로를 어느 남성보다도 적극적으로 돕던 용감한 여인들 (리디아, 프리실라, 에보디아, 신티게등)이 있었고 “diakonos” (협력자 혹은 봉사자, 부제/여부제. 참조: 로마 16,1. 여기서 신약에서 여 ‘부제 diacono’ 가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공적인 부제라기보다는 이 경우 단순한 의미의 ‘봉사자’를 의미할 수도 있다. 여 부제직 문제는 사제직과는 또 다른 문제이기에 나중에 잠시 언급하겠다)라 불리는 여 교우 페베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지금까지 12사도직의 임무 (주교, 신부)는 남성들에게 계승되었다. 이는 12사도들에 이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모범을 충실히 지켜온 것이다. 다만 로마서 16장 7절에 유일하게 문제의 표현으로, 바오로가 ‘안드로니고 (남성)와 유니아 (여성)’는 ‘사도들 (apostoli)’ 가운데 출중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바오로의 표현인 ‘사도들’이란 자구적 의미요 넓은 의미인 ‘파견받은 자’를 뜻할 수도 있고 (또 로마서의 이 구절은 ‘사도들로부터 명망을 얻은’ 자로 해석할 수도 있다), 고유명사화된 ‘사도’단에 들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넓은 의미의 ‘(복음전파를 위해) 파견된 자’로 해석한다 (‘apostolo’ 란 말이 성서 안에서 사용된 의미들에 대해서는 간단하게는 ‘Jerusalem Bible’의 로마 1,1 주석과 16, 7 주석 참조; 그 외 권위 있는 주석서 참조). 이 같은 문제의 성서구절 해석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전승이다. 교회 전승은 항상 사제직이 남성에게 수여되었음을 보여준다.

    – 교회의 역사에서
    첫 몇 세기동안 몇몇 그노시스 이단들사이에 여성 사제직이 수여되었지만 항상 이단으로 판명되었다. 초대교부 이레네오, 오리게네스, 크리소스토모등도 공통적으로 원칙적으로 예수님의 모범과 사도들의 실천, 그리고 성서의 가르침에 따랐다. 중세기의 교회 학자들도 계시에 근거하면서, 교회가 여성들에게 사제품을 베풀 권한이 없음을 주장하였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성들 중 어떤 이는 지능적으로나 영성적으로나 남성들보다 훨씬 뛰어났음을 인정한다. 여성 정치가들이 도시 사회를 지배할 수도 있고, 예언자나 수녀원장이 될 수도 있지만, 그녀들이 지닌 여성의 특성 때문에 사제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성사에서 욋적 상징들은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적인 것과 본성적인 닮음이 있어야 하기에, 사제는 성체를 이루는 순간에 그리스도의 인격과 축성의 말 (“이는 내 몸이니… 이는 내 피의 잔이니…”)을 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모상 (imago Christi, image of Christ )을 재현해야한다.
    성 보나벤뚜라는 좀더 정확하게 유형의 상징에 대한 논거를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사제는 “자신 안에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모상을 지닌다; 한 여성이 한 남성의 머리가 될 수 없다면, 그것 때문에 여성은 사제서품을 받을 수 없다” 고 했다.
    가톨릭의 교황들과 주교들과 신학자들은 이러한 신학적 견해에 계속해서 동의해 왔다. 14세기부터 20세기따지 많은 신학자들은 이 가르침을 그리스도의 계시에 포함된 믿음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가브리엘 바스게즈 (Vasquez), 쟈크-뽈 미녜(Migne), 가스파리(P. Gasparri), 도론조(E. Doronzo) 등 박학한 학자들이 이 문제를 논의했다. 일차대전 후 독일에 사제가 부족했을 때, 철학자로서 에딧 스타인 (E. Stein. 최근에 성녀가 됨)도 여성 사제직의 가능성에로 귀울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더욱 깊은 연구 후 사제직이 여성의 성소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폰 르 포르트(G. von Le Fort)와 이다 프리드리카 괴레스 (I.F. Görres)와 같은 다른 여성 신학자들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1900년대 중반에 와서 많은 프로테스탄트 교파들과 몇몇 성공회 교회가 여성들에게 사목직을 (몇몇 경우엔 주교직까지) 수여함으로써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다. 1948년 성공회의 유명한 학자 레뷔스 (C.S. Lewis)는 지혜롭게 여성사제직이 실천에 옮겨지지 않도록 영국의 성공회에 경고했다. 그는 여성사제직을 허용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전통으로부터 멀어지게되고 영국 성공회와 다른 전통 그리스도교회들 사이에 분리를 더 확장시키는 우를 범하게 되기때문이라고 보았다.
    위에서 잠시 논했듯이 동방 정교회는 이점에 관해서 교회의 전승을 굳게 고수하고 있다. 예로 Tiatira의 대주교 아테나고라는 “현 시대의 풍습 (여성 사제직 허용 풍조)이 복음적 질서와 교회의 경험을 파괴시킨다”고 한탄했다. 또한 그는 특히 무혈의 희생제사 (미사)에서 주교와 사제는 육화된 말씀의 형상 (icon, 모상)이라고 하였다.
    1976년, 신앙교리성성은 교회가 여성에게 사제직을 베풀 권한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는 마치 성모 마리아라도 성체를 이룰 권한이 없는 것과 같다. 바오로 6세 교황도 신앙교리성의 논증을 확증하였다.
    – 형상 (icon) 논리
    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교회 전승에 완전 동의하면서 신학적 견해를 밝힌다. 그의사도적 교서 “여인들의 존엄성”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유로이, 그리고 존엄하게 남성들 중에서 당신 사도들을 선택하시고 부르신다는 사실에 유의한다. 성체성사에서 ‘아내’인 교회의 구원을 위해 ‘남편’으로서 자신을 봉헌하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여성은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교황님은 여기서 성녀 힐데가르데, 성 보나벤뚜라, 그리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글에서 이미 제시된 형상 (icon) 논리를 편다. 이 논리는 위에서 언급한 정교회 대주교 아테나고라와도 일치하며 폰 발타살 (H.U. von Balthasar)과 부이에 (L. Bouyer) 같은 현대의 많은 신학자들이 신념을 가지고 다루기도 한 것이다. 이 두 신학자는 한결같이 사제직 승인이 인격적인 우월성의 문제와는 무관한 것임을 강조한다. 서품 사제직(세례받은 모든 신자의 일반 사제직과 구분하는 뜻으로 ‘서품 사제직’이라 한 것임)은 사실상 성덕으로 건축되는 그리스도의 몸 전체 (즉 교회)에 있어서 그 얼굴모습이다. 사제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자신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표한다. 사제적 행위에서 서품된 사제는 자신의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표상으로서의 사제직이 아닌 글자그대로 교회의 공적 봉사직인 부제직 중 여성부제에 대한 문제는 승인된 것은 아니나 아직도 열려 있는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또 전통적으로 부제직은 곧 사제직의 준비기간이었기에 여성 부제의 승락은 곧 여성 사제와 여성 주교의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신학적인 연구가 더욱 필요한 것 이다. 그러나 이미 남성 중에서도 사제직과는 무관하게 영구부제직이 교회내에 정착되어 가고 있는 만큼 – 물론 한국 같은 지역에선 실질 적으로 영구부제가 담당하는 적지 않은 부분을 수도자들이나 평신도들이 하고 있기에 영구 부제직이 정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영구직 여성 부제의 길은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회는 계시와 교회 전승의 더깊은 연구와 신학적 작업을 계속 필요로한다.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교회는 본질적으로 배우자의 특징을 갖는다: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여성적 특성을 갖는 것이다. 폰 발타살에 의하면 교회내에서 여성적 원리, 즉 ‘마리아적인 원리’ (il principio mariano, principle of Mary: 교회내의 수도영성과 카리스마적 특징)는 ‘베드로의 원리’ (il principio petrino, principle of Peter: 교회내의 교계제도)를 포함해서 모든 다른 원리를 끌어안는다. 교회를 유기체로 비유한다면, 폰 발타살에 이어 오늘날 적지 않은 신학자들은 교계제도를 골격과 뼈대로, 성령에 의한 카리스마를 골격과 뼈대를 담고 살아움직이는 살로 비유한다.
    우리가 유의해야할 것은 성사들의 본질적인 요소들은 교회의 자유재량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성사들이 제정된 신적 작용에 부합하게 거행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포도주나 우유 같은 것들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물로 세례성사를 제정하셨고, 성체성사는 물고기와 물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빵과 포도주로 제정하셨다. 그래서 성사제정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합당한 선택을 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확신할 수 있다. 세례와 성체성사를 위해 사용되는 필수 요소들을 교회가 맘대로 바꿀 수 없듯이, 같은 모양으로 예수님이 여성들을 크게 존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사를 집행할 사도단의 일원으로는 남성들만을 부르신 사실을 교회가 맘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존엄성과 인권을 누리지만, 이 동등함이란 것이 남녀가 같은 정체성 (identità)을 갖는 다거나 각 성의 역할을 서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구세주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과 성체성사를 생각하면서 그기에 그 표상으로서 여 사제를 한번 상상해보라. 얼마나 혼란스런 표상인가! 오히려 여인은 삐에타상에서 보듯이 아들이신 주님의 시신을 끌어 안고 고통을 견뎌내는 성모님의 표상이 될 때 어느 누구에게나 더 큰 감동을 줄 것이다.

    사실상 남성과 여성의 고유한 성소와 개개인의 다양한 소명은 모두가 다 귀중한 것이며 가치의 우열을 따질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교회내의 주교-신부직, 수도직, 그리고 평신도직-결혼성소가 하느님 앞에 서로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특징과 소명, 개개인의 서로 다른 특징과 소명들은 서로서로와 인류 전체에 봉사하는 것이다. 교회내의 여러 소명과 직책은 더욱이 교회와 세상에 봉사하는 직책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의 모든 직책과 역할들은 성덕에로 방향지워져 있다. 최종적으로는 성덕-성화가 관건인 것이다. 성덕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차별, 직책의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고유한 소명을 통해, 모두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습을 닮는 성화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또한 어머니인 교회와 개개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복음화시키고 세상을 성화시킬 책무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아직도 악과 어둠의 세력이 활동하는 세상의 끊임없는 변화와 혼돈과 조류에 교회가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의 빛안에로 세상을 끌어들여야한다. 물론 성령의 도우심으로 교회는 겸손되이 시대의 징표를 읽는데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그러기위해서는 뉴만 추기경의 말처럼, 교회 공동체는 시간적 한계를 초월하는 구약과 신약의 계시와 유산으로 이어온 교회의 전승을 잘 보관하고 또 계속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여기서 ‘발전’이란 역사와 기초를 무시한 획기적인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거룩한 진리와 전승을 기초로 하고, 현재에, 보이는 교회 밖에서도 활동하시는 성령의 빛과 도우심으로 시대의 징표를 읽음과 동시에 타종교와 다양한 인류의 문화유산에서 숨어있는 ‘말씀의 씨앗’을 발견함과 계시진리에 대해 올바르고 더 심오한 이해를 쌓아감으로써 -여기엔 주님의 구원사업에 봉사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교회의 더 깊은 ‘자기이해’도 포함된다- 모든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복음, 구원의 진리를 올바르게 세상만민들에게 전달해 나가는 것이다. 또한 주님의 재림과 종말론적 완성이 있기까지, 미래의 교회와 세상을 위해 현 교회는 계시진리와 교회 전승을 후손들에게 계속 물려주어야 한다.
    **이상은 1) Maria Michela Nicolais (a cura di), La dignità della donna, edit. Lovoro, Roma 1998. 2) Avery Dulles S.J., L’ordinazione delle donne, in La Civiltà Cattolica 1998 vol.III, pp. 119-128. 3) La recente documentazione sul sacerdozio alle donne, in La Civiltà Cattolica 1998 vol.I, pp. 484-493. 4) Piersandro Vanzan S.J., Diaconato Permanente feminile. Ombre e luci, in La Civiltà Cattolica 1999 vol.I, pp. 439-452 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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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문제의 글을 쓴 분이 제기한 직접적인 것에 대해 대화형식으로 위의 글에 이어서 쓴 것입니다)
    자매님, 자매님의 눈에 수녀님은 뼈빠지게 성당과 제대청소나 하고 사제는 높은 위치에서 미사드리고 인사받는 것으로 비쳤다면 ‘겉만 보인 것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본당에서 가끔 사제들이 높은 자리를 찾고 신자들과 수도자들에게 군림하는 모습을 비칠 수도 있습니다… 성직자건 수도자건 본당임원이건 그야말로 평신도건 각자는 다만 맡은 역할이 다를 뿐, 모두가 주님의 종으로써 교회와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임무를 자기위치에서 다해야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두가 봉사에 최선을 다하고 각자가 주님과 서로서로에게 겸손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각자가 먼저 자신에 대해 반성해야겠지요. 상대방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언과 충고를 하는 것은 필요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천국에는 지상에서의 필요성처럼 교황, 주교, 신부, 수도자, 평신도 순서나 구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에선 가장 중요한 믿음과 희망도 사라진다고 했죠!). 천국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은 더 많이 숨어서 겸손되이 봉사하고 더 많이 이웃을 사랑하고 더 많이 성덕을 쌓은 사람이며, 이는 결국 그만큼 더 깊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에 참여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자매님이 개인적으로 타고난 남성적 성향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신부가 되고 싶은 강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계시다고 하기에!)을 기준으로 또 다른 개인적인 부정적 경험을 가지고 보편적인 어떤 사실이나 진리를 너무 쉽게 판단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자매님이 개인적 판단으로 글을 올리셨기에 저도 한 사제가 순전히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판단을 내린다면 아래와 같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매님을 공격하기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든지 오해나 실수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또 자매님의 글과 제 글을 볼 독자들께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일 뿐입니다.
    주님의 공적 종이요 교회의 사목자라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이나 기준을 무시한다면, 한 사제도 어쩔 수 없이 한두가지 약한점을 지닌 인간으로써 온갖계층, 각가지 성격의 신자들 앞에 공적인 사제직무를 수행할 때 도마위에 놓인 고기처럼 온갖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하는 비참함을 –오늘날 인테넷 자유 게시판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보십시오!- 겪어야 하는데, 신학생 때의 청순한 희망이 자신의 나약함 (성인이 되고자 노력해도 하루이틀만에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며 자신 앞에 수많은 복병들이 있음을 점점 깨닫게 되죠)과 소수지만 어떤 신자들의 잘못된 관심-냉담 혹은 거친 비난(너무 지나친 관심, 특히 여성 신자들의 지나친 정성과 관심, 드물긴 하나 선물공세로 자기 신부로 만들려는 경향, 아니면 정반대로 솔직한 충고보다는 개인적인 눈에 비친 한가지 약점 –이는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 을 잡아 아예 신앙생활을 그 신부 때문에 그만두는 것처럼 트집잡거나 이사람 저사람에게 진실인 것처럼 자기말을 옮기는 것등)등에 맞닥뜨릴 때 개인적 감정과 판단만이라면 아무리 낮 미사때 많은 인사를 받는 자리라도 당장 사제생활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또 인간으로서 고이 잠들고 있는 한 밤중에 병자성사 달라는 전화에 싫거나 좋거나 일어나 성사 가방을 챙기고 가야하는 직책이 순 인간적이고 개인적 판단으로 보면 무어 좋아서 그리 오래 오래 남아서 낮에 사람들에게 에헴하고 인사받고 싶겠습니까?

    신구약 성서와 교회의 거룩한 전승과, 교황님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대표해서 교리와 윤리문제에 대해 발표하시는 것들은 보편적이고 대부분 영원한 진리입니다. 사제직이 항상 힘들거나 반대로 높고 즐겁기만한 임무는 결코 아니지만, 어째튼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성사이기에 남성 –그것도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이 있고 또 자신의 자발적인 동의와 7년간의 신학생으로서의 준비과정을 거친 자 –에게만 주어진다는 것도 교회의 전승이요 교황의 교리이기에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러니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정황을 고려해야겠지만, 보편적 사실이나 진리를, 다양하고 변할 수 있는 개인의 경험과 판단만으로 곡해하거나 정당한 근거나 논리없이 잘못된 것으로 주장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자매님이 말씀하신 ‘남자가 수녀가 되고 싶으면 수녀가 될 수 있는…’ 에서도 논리의 비약을 보게 됩니다. 수도자의 길은 여성이나 남성이나 다 갈 수가 있습니다. 남자가 수도자가 되면 남자 수도회의 수사님이 되는 것입니다. 수도자의 길도 같은 목적을 두고 가는 길이지만, 창설자의 지향과 함께, 남성과 여성의 고유한 특성에 맞게 남자 수도회와 여자 수도회로 나누어져 있는 것입니다. 만일 남자가 여성 수도회에 들어 갈 수 있다면 그것은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주님의 보편적인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매님은 “예수님이 신이 아니라 남자였다면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한 性의 특징과 행동양식만을 가진 신이라면 저는 그 신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썼습니다.
    저에게는 좀 당혹스런 언사입니다. 근본적으로 말하면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이 인간으로 이 세상에 구체적으로 태어나지 않으셨다면,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지금처럼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구체적 인간이라면 한 여인의 몸에 잉태되고 남자아이로든지 아니면 여자아이로든지 태어나지 않겠습니까.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남녀성 호르몬을 다가지고 있지만 남성은 여성호르몬 보다는 남성호르몬이 많고 자율적으로 조절을하여 남성의 특징을 드러내게하고 여성은 반대로 여성호르몬이 우세하여 여성의 특징을 드러내죠. 예수님도 성모 마리아의 몸 안에서 태아로서 10달을 지내시면서 어머니로부터 영양공급을 받고 두 호르몬을 다지니시면서 남성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인간으로서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고 남녀성을 완전히 동시에 다 지닌 사람은 신화의 인물이거나 귀신이거나 불완전하고 병적인 존재일 뿐이지요. 저는 그런 예수님이라면 인간으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자매님처럼 여성이면서도 다른 여성들과는 좀 달리 남성적인 성향을 더 지닌 자로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듯이, 한 사람의 행동양식은 각자가 지닌 두 호르몬의 조화와 부모로부터의 교육과 주위환경등의 요인이 합해져 개성과 인격이 형성되어 나가며 성인이 되면 앞서의 유산들과 개인의 사고 방식, 세계관, 자유의지의 결단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완전한 신성을 지니셨지만, 구체적으로 한 인격을 지닌 인간으로서는 생물학적인 인간의 성장과정을 그대로 거쳐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으로부터 모태에서부터 유전적 형질을 물려받으셨고 어른이 될 때까지 교육도 받았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자연적이고 역사적인 인격성장과정에서 이미 당신이 가지신 절대자요 하느님 말씀으로서의 신성을 차츰차츰 자각해 나가셨습니다. 그러니 열두살 때 하느님 아버지를 아시고 성전에서 학자들과 대화하신 놀라운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아직 소년으로서 집으로 돌아가서 교육을 받으시고 날로 성장해 나갔지 않았겠습니까. 특히 성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당신의 성자되심과 소명을 완전히 깨달으셨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교회가 예수님이 어릴 때부터 이미 당신의 전능한 신성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나뭇잎 등으로 새를 만들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담긴 초기교회시대의 책들은 성서로 받아들이지 않고 위경임을 천명한 것입니다. 우리와 똑 같은 인간성을 지닌 한 남성이 아니었다면 인간의 탈을 잠시 빌려선 신일 뿐이요 십자가상의 처절한 고통도 가짜일 뿐이고 (신성을 가진자가 어떻게 고통을 받을 수있냐고), 부활도 신의 연극일 뿐이 되겠지요. 저는 믿음이 약한 인간이라 하느님이 진짜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고 진짜로 죽고 진짜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하느님을 절대로 믿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하느님은 너무 높은 곳에 계시고 인간성을 두고 장난을 치시는 하느님이라 깜짝 속을 지는 몰라도 진정으로 그 하느님을 주님으로 믿을 재간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참 인간이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면 지금도 인간성을 지니시고 부활한 몸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부활 후, 굳게 잠긴 문을 열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에게 보고 당신을 만지게 하시고 그들고 함께 잡수셨겠습니까. 복음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남성을 지니셨지만 그 행동양식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사랑으로 가득찼음을 알수 있지요. 보통인간중에서도 어떤 남성은 여성보다 더 여성을 존중하고 이해하는데 하물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야!!!
    저는 자매님의 글 전체를 읽고 난 후 무엇보다 저 자신부터, 우리 사제들부터 참으로 좀더 주님의 종다운 겸손한 자세를 지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한 신자의 눈에 비친 사제직이 높은 자리요 수도자나 평신도를 부려먹는 자리로 보였다면, 그 판단이 아무리 일부의 일이거나 개인적이고 일시적인 오해라 쳐도 그 자체가 우리 사제들에게 주님 앞에서 반성할 거리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째튼 자매님과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교회가 보는 여성의 특수한 성소, 여성 사제직 문제와 그 주변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시리라 믿고 저도 조그만 봉사를 할 수 있음에 기쁘게 이 작업을 했습니다. 자매님도 이제는 좀 더 차분히 생각하시고 유학에 대한 목적과 지향을 새롭게 내리실 수 있겠지요? 그릳고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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