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종(7)

예수님께서는 저 먼 곳인 위로부터 내려와
우리를 종살이에서 구하시고자 하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은 종의 처지가 되신 것이었다.

하느님 수난의 신비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종으로 드러내셨다는 데에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지배하는 폭력과 권세 아래에 똑같이 놓이셨고,
공포와 불확실, 그리고 불안을 우리와 똑같이 겪으신 것이다.
‘우리와 똑같이 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명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수난의 본질이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비움의 완전한 의미를 구현하셨고,
당신 수난으로 우리와 함께 하셨다.
하느님께서 완전히 죽으셨던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기에게 죽음이 닥치는 것을 싫어한다.
뿐만 아니라 보통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고 살아간다.

복음서 안의 치유 이야기들은
하느님께서 고통중에 있는 이들과
얼마나 간절히 함께 하고자 하셨던 가를 잘 보여준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베푸신 사랑과 관심에 대해
우리가 정당한 값을 치르도록 원하시는 것만 같다.
가장 낮은 자가 될 것, 노예가 될 것,
낯설고 잔인하고 강인한 외부의 힘에 나를 복종시킬 것,
어쩌면 그런 값과 대가를 요구하시는 것만 같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런 겸손, 자기 비움의 대가를 피하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서로 공감해 주는 사람에게 호감이 간다.
하지만 거꾸로 어떤 사람이
우리가 피하고 싶은 그 고통을 맞대면시키려고 들면
그 사람이 싫고 껄끄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 한계를 그어놓고
그 안에서 조건부적으로 연대하고 공감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조건 없는, 무한한 연대와 동참에는 인색하다.
그런 것이 바로 우리네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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