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의 날에 부쳐

우리 성당 삼십주년 본당의 날이 내일이다.삼십 년이 됐다니 참으로 감회가 깊다.성당에서 영세 받은 지 십칠 년이 됐으니 나도 이제는 꽤 오래 된 신자라 할 수 있다.세월 유수라 했던가 영세 받았던 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우리 성당의 역사도 짧은 게 아니고 나도 십칠 년이면 어느 정도 주님에 대한 기도도 많이 했다할 수 있을 것이다.주님의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은 한도 끝도 없겠지만 그 사랑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골고루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닌 지 그렇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고 세상 사람들 중에 주님을 모르고 살고 있는 분들도 많이 있어 어느 면에서는 안타까울 때가 있다.결국 주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계시니 이 세상은 그나마 이렇게라도 유지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 것을 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깨닫고 있는 지 너무도 심히 안타깝다.공동체의 삶이란 이 세상의 그 누구나 하고 겪고 있으나 예나 지금이나 이기주의라는 것이 너무도 극명하게 나타나 있어 그 또한 너무도 안타까울 뿐이다.인간이 왜 인간인가?인간이니까 인간일 뿐이다.우리들이 굳게 믿고 있는 주님이 인간이라면 지금 세상의 인간들이 이렇게 믿고 따를 수 있을까?주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라 말씀하셨다.신성과 인성을 다 갖고 계시다고 하는 데 이 세상은 이 우주는 인간이 중심이고 주된 존재자이다.하지만 그 이면에는 주님께서 존재하시니 세상 인간들은 외롭지 않다할 수 있다.인간은 원래 신을 추구하고 자신의 나약성을 세상을 살면서 언제나 뼈저리게 느낀다.이 세상에 분명 신은 존재하고 그 신의 존재가 지금 세상의 과학이란 것도 뛰어 넘는 것이다.우리들은 주님을 찬양해 마지 않는다.그 찬양이 마음에서 우러 나와야 한다.겉과 속이 다른 믿음도 주님께서는 넓은 아량을 베푸시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양심이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겉과 속이 다른 것이 인간이라지만 티끌만한 양심은 그 모든 인간에게 다 있다.자신의 생이 끝나는 날 주님을 따른다면 또 그렇게 살았다면 그 날도 결코 두려울 수 없으리라.본당의 날에 나는 다시 한 번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에 늘 감사할 뿐이다.주님의 은총으로 하루 하루 살고 있고 그 은총 그 은혜에 항상 회개하며 살고 있다.본당의 날에 부쳐 우리 본당이 더더욱 굳은 믿음의 공동체가 되었으면 한다.

이 글은 카테고리: 자유게시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본당의 날에 부쳐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우리 성당 삼십주년 본당의 날이 내일이다.삼십 년이 됐다니 참으로 감회가 깊다.성당에서 영세 받은 지 십칠 년이 됐으니 나도 이제는 꽤 오래 된 신자라 할 수 있다.세월 유수라 했던가 영세 받았던 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우리 성당의 역사도 짧은 게 아니고 나도 십칠 년이면 어느 정도 주님에 대한 기도도 많이 했다할 수 있을 것이다.주님의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은 한도 끝도 없겠지만 그 사랑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골고루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닌 지 그렇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고 세상 사람들 중에 주님을 모르고 살고 있는 분들도 많이 있어 어느 면에서는 안타까울 때가 있다.결국 주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계시니 이 세상은 그나마 이렇게라도 유지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 것을 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깨닫고 있는 지 너무도 심히 안타깝다.공동체의 삶이란 이 세상의 그 누구나 하고 겪고 있으나 예나 지금이나 이기주의라는 것이 너무도 극명하게 나타나 있어 그 또한 너무도 안타까울 뿐이다.인간이 왜 인간인가?인간이니까 인간일 뿐이다.우리들이 굳게 믿고 있는 주님이 인간이라면 지금 세상의 인간들이 이렇게 믿고 따를 수 있을까?주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라 말씀하셨다.신성과 인성을 다 갖고 계시다고 하는 데 이 세상은 이 우주는 인간이 중심이고 주된 존재자이다.하지만 그 이면에는 주님께서 존재하시니 세상 인간들은 외롭지 않다할 수 있다.인간은 원래 신을 추구하고 자신의 나약성을 세상을 살면서 언제나 뼈저리게 느낀다.이 세상에 분명 신은 존재하고 그 신의 존재가 지금 세상의 과학이란 것도 뛰어 넘는 것이다.우리들은 주님을 찬양해 마지 않는다.그 찬양이 마음에서 우러 나와야 한다.겉과 속이 다른 믿음도 주님께서는 넓은 아량을 베푸시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양심이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겉과 속이 다른 것이 인간이라지만 티끌만한 양심은 그 모든 인간에게 다 있다.자신의 생이 끝나는 날 주님을 따른다면 또 그렇게 살았다면 그 날도 결코 두려울 수 없으리라.본당의 날에 나는 다시 한 번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에 늘 감사할 뿐이다.주님의 은총으로 하루 하루 살고 있고 그 은총 그 은혜에 항상 회개하며 살고 있다.본당의 날에 부쳐 우리 본당이 더더욱 굳은 믿음의 공동체가 되었으면 한다.

guest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