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에 게제된 문화비평가이신 진중권씨의 칼럼입니다.
생각하게 하는 글이라 올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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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박사가 연구에 사용한 난자가 ‘매매’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문화방송 PD수첩의 시청자 게시판에 쏟아지는 수많은 항의를 보며,
나는 이 사회의 정신적 건강을 염려한다.
그 항의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국가주의 버전, 다른 하나는 시장주의 버전이다.
먼저 국가주의 버전은 국익을 위해 진실을 덮으라고 요구한다.
즉 난자 채취 과정에서 설혹 윤리적 문제가 있어도 애국적 견지에서 그냥 덮어두어야 하는데,
그런 애국시민의 의무를 저버린 MBC는 ‘매국노’라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의 임무는 조국을 진실위에 올려놓는 것에 있지,
조국을 진실의 궤도에서 탈선시키는 데에 있는 게 아니다.
애국심이 아무리 뜨거워도 손바닥으로 태양의 사이즈 차이를 메울 수는 없다.
도대체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수 있다고 믿는가?
그나마 이쯤에서 문제가 터졌으니 망정이지.
이런 관행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계속된다면 나중에는 수습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한국의 정서가 외국과 다르다는 변명은
국제무대에서는 통하지 않을 국수주의적 넋두리에 불과하다.
생명과학 연구에는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 자신이 ‘세계줄기세포허브’를 설립해 연구를 국제적으로 주도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어떻게 국제적인 생명윤리 기준만은 피해가겠다는 생각을 하는가?
다른 하나는 시장주의 버전으로,
생명공학이 창출할 부가가치의 엄청난 규모로 생명윤리의 왜소함을 제압해 버리는 것이다.
즉’윤리가 밥 먹여주냐’는 적나라한 반론이다.
좀더 극단적인 이들은 이참에 아예 난자의 매매를 합법화하자고 주장한다.
장기의 자유판매를 허용하자는 ‘자유기업원’ 주장의 난자 버전인 셈이다.
공병호씨에 따르면 돈없는 사람은 돈을 얻고.
장기가 필요한 사람은 장기를 얻는게 ‘자유거래의 미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드러났듯이.
장기 매매는 말이 좋아’자유거래’지,
실제로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강요되는 신체의 탈취일 뿐이다.
돈 없는 동료시민들이 장기나 난자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호러비전이 대한민국의 미래상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비난은 엉뚱하게 진실을 보도한 PD수첩으로 쓷아진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황박사는 생명윤리를 위반하고, PD수첩은 언론 윤리를 저버리는 게 옳은가?
아니면 황박사는 생명윤리를 존중하고,
PD수첩은 언론윤리를 준수하는 게 문제의 올바른 해결책인가?
이미 생명윤리학회, 국가인권위원회, 민주노동당에서 이 문제를 인지하고 수차려 질의를 했지만, 그동안 연구팀에서는 아무 해명도 없었다.
그때도 네티즌들은” 쓸 데 없는 딴죽걸기로 황교수의 연구를 방해하지 말라” 며,
문제 제기자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다.
과연 잘 한 짓이었을까?
그때 진작 손을 썼더라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우아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쯤 최고의 생명윤리와 엄격한 검증절차를 갖춘 생명공학 연구의 제도적 장치가 갖추어졌을 것이다.
또 다시 문제를 덮어두려고만 할 게 아니라,
이제라도 이번일을 생명공학에 필수적인 생명윤리의 인프라를 갖추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종양이 발견됐으면 즉시 제거해야 한다.
종양을 없애려 몸에 칼을 댄다고
“왜 사람을 괴롭히냐” 고 비난하는게 과연 진정으로 황박사를 위한 길일까?
가슴만 뜨거운 ‘주관적’ 애국자들은
자기들이 ‘객관적’으로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