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 수녀님의 이슬람 사랑 이야기
서남아시아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국가로, 오른쪽으로 인도, 아래로 파키스탄, 왼쪽으로 이란과 경계를 이루며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중국 등 총 8개 국가와 국경을 연하고 있다. 과거 구소련의 아프간 침공, 세계 최대 바미얀 석불 파괴, 9·11테러에 대한 미국의 아프간 보복공격 등으로 우리에게 ‘위험한 나라’로 인식돼 있다. 파키스탄 접경지대에 위치한 샤만, 퀘타 등 아프간 난민지역은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간 점령때 처음으로 생겨났으며, 2001년 미국의 아프간 공격으로 난민수는 720만명까지 늘어났다. 이중 탈레반 정권 붕괴후 국제구호재단 등의 도움으로 420만명이 본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진다.
독일의 여의사이자 수녀인 루트 파우(76)는 1960년 한센병 환자를 돕기 위해 파키스탄에 파견됐으나, 1984년 이래 아프간에서도 일했다. 특히 아프간 난민돕기에 혼신을 다했다. 그녀는 미국이 아프간을 공격한 첫 2주동안은 “이들 부족간 전쟁을 미국이 막아줄 것”이라며 기뻐했다. 그러나 미국이 민간시설을 폭격하고, 연기와 가스로 사람들을 학살하고 인권을 유린하자 희망이 깨졌다. 아프간인들은 속속 파키스탄으로 피신해 갔다. 난민 거주지역은 식량과 물이 절대 부족했다. 아버지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독살할 지경에 이르는 절망상태였고, 폭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경을 넘어온 난민들은 며칠동안 지붕 없이 혹한을 견뎌야 했다. 한 아버지는 한꺼번에 다섯 아들을 잃고 넋이 나갔고, 일부 가족은 병든 자녀에게 먹일 약이 없어 울부짖었다. 전쟁통에서는 미군이 폭격을 퍼붓지 않으면 탈레반이 총을 쏘아댔다. 양쪽에서 쏘지 않으면 민족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다. 길가에는 부상자들이 개처럼 기어다녔으며, 총격은 주부를 정신이상자로 만들었다. 한 엄마는 채무노예상태에 있는 어린 자녀를 찾기위해 나머지 자녀를 가두어놓고 성매매로 돈을 벌어야 했다. 전쟁은 가족들을 철저히 파괴시켰다.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지 가리바바드에서는 냄새나는 쓰레기 더미에서 수백명의 난민들이 그들의 목숨을 연명했다. 유령의 도시 가다피 캠프에서는 어린이들은 굶어서 부풀어오른 배를 내민 채 텅 빈 오두막을 서성였다. 파우 수녀는 매일 자신의 힘이 바닥이 날 때까지 난민들을 돕는 데 완전히 소진해 버렸다. 아프칸 주민 40%는 외부의 도움 없이 생존이 불가능했다. 그녀는 늘 떼죽음이 임박하고 있음을 느꼈다. 실업은 파키스탄 사회의 깊은 상처이고, 노동시장은 절망적이다. 과연 폭력은 어디서 태동할까. 그녀는 불행과 절망, 거기서부터 번성한다고 말한다. 테러집단으로 알려진 탈레반 일원 상당수가 파키스탄 난민수용소에서 자랐다고 전한다.
파우 수녀님은 악조건에서도 난민 1만8000명을 기아와 질병으로부터 구해냈으며, 1만5000명을 무사히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