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신 정리 번호 : 1923연말보고
발신일 : 1923. 4. 13, 논산
수신자 : 뮈텔 주교
주교님,
통계가 유행이므로 연말 보고서에 기록되지 않은 몇 가지 숫자를 간략하게 적겠습니다. 새 냉담자, 즉 축첩자 또는 외인에게로 달아난 사람, 또한 냉담자 수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모두 22명입니다. 저의 구역의 옛 냉담자들 가운데 제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60세대가 됩니다. 신자들 가운데로 이주한 사람은 86명, 돌아온 사람은 123명입니다. 논산은 단독으로 64명이나 됩니다. 다소 오래 냉담했다가 교회로 돌아온 사람은 5세대 그리고 세 사람입니다. 한 큰 마을이 모두 옴에 걸려 봄에 공소를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3개의 작은 마을도 너무 극심한 가난이라는 구실로 저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주교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올해에 작은 성당 하나와 아주 안락한 신부 댁 하나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오래된 관례에 따라 줄리앙 공베르 신부의 지도로 회장 피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외 없이 모든 회장들이 참석했습니다.
천주교 청년회가 논산에서 조직되었는데 아마 또 가장 큰 교우촌 한두 곳에서도 조직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청년들을 교육하기 위한 준비가 아무 것도 되어 있지 않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소년들과 청년들은 부기, 그림, 음악, 운동 그 밖의 여러 것을 열렬히 배우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알아야 하니까요.
신학교 교장이 기꺼이 논산에 보내준 박 말구〔朴東憲〕부제1))
2) 박동헌(1893-1948)경기도 양주 광적면 우고리에서 출생하여 1923년 5월 20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금사리, 안성, 미리내, 아산 공세리, 용인 남곡리, 이천 본당 등에서 사목하였다. 교회사와 우리 나라 역사에 통달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강론을 통하여 청년 신자들에게 순교 정신과 민족 의식을 일깨웠다(교회와 역사)제 49호 1979.p.6)
는 공소 방문때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도 그는 어린이들에게 흥미를 일으키고 성가를 가르치고 매일 저녁 그들의 흥미를 끌게 할 수 있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교훈적인 시기에서 기인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나 모두가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그러한 저의 기분 나빠함을 그는 참아야 했습니다. 교우들은 진심으로 그에게 애정과 감사를 표했습니다. 교우들은 훌륭한 정신과 선의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확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잘 자라는 것은 벼뿐이고 비가 올 때면 더욱 잘 자랍니다.
이 착한 교우들도 비가 올 때만 정말로 착한 교우들이 됩니다.
루블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