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나무 아래에 서면

 

호야나무 아래에 서면…,

요한신부




  해미읍성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읍성 한 가운데에 서 있는 호야나무이다. 잔인한 인간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호야나무 아래에 서면 호야나무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런 말을 하는 듯 하다.




  그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의 일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따스한 눈빛을 보면서도 나는 그때의 처절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내가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을 원망했습니다. 뒷산의 작은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아니 다른 친구들처럼 나무꾼의 거친 톱질에 팔다리가 잘려나가 불쏘시개가 되는 것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모릅니다. 차라리 말라 비틀어져 무자비한 고문에 아파하는 무죄한 이들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습니다.




  내 몸에 무죄한 이를 묶어놓고 목숨을 가지고 조롱할 때 나는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내 팔에 굵은 철사를 묶어놓고 무죄한 사람들을 매달아 놓을 때 나는 차라리 한줌의 재로 사라져 버리기를 얼마나 원했는지 모릅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번개가 치는 날이면 나는 하늘을 우러러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느님! 제가 한줌의 재로 변하게 해주십시오.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까? 제가 무슨 특별한 잘못이 있어서 이렇게 처절한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까? 차라리 저 벼락이 제 위에 내려앉아 제가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은총을 주십시오. 저 거센 바람에 뿌리 채 뽑혀서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이제는 더 이상 무죄한 이들의 죽음에 동참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 제가 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목을 매야 한단 말입니까? 왜 제가 무죄한 이들의 죽음에 협조해야 한단 말입니까? 저의 이 작은 소원이 당신께는 들어주시기 힘든 것이란 말씀입니까?..,,




제가 한줌의 재로 사라지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는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그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나는 그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깊게 페인 내 팔의 철사 자국을 바라보는 순례객들의 애절한 눈빛을 보면 나는 또다시 그때의 일들이 어제의 일들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많은 이들이 저 남문(南門)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포승줄에 엮여서 죄인처럼 끌려왔지만 그 얼굴에서는 사악한 그림자를 결코 찾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끊임없는 고문과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 그러나 그 속에서도 동료들을 돌보아 주는 사람들. 자신의 몸이 부서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갈증에 지쳐 입술이 말라 비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피흘리며 누워있는 형제에게 자신의 양식과 자신의 물을 내어놓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결코 나쁜 사람들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느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느님! 당신은 왜 이렇게 무죄한 사람들을 처절한 죽음으로 인도하십니까?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존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은 그 사람들과 나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서문(西門)밖의 자리개돌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이 내 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처절하게 멍든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 글은 카테고리: TN-history-C3, 교회 역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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