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권 제 12장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 아랍민족에 대하여

 


제 12 장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 아랍민족에 대하여



1.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창20:1]



 아브라함은 사라를 데리고 팔레스틴(Palestine)의 그랄(Ger-ar)로 갔다. 그는 그랄 왕 아비멜렉(Abimelech)을 두려워 했기때문에 전에도[㈜ 애굽에서 고대. 1권. 8:1(162).] 한번 그랬던 것처럼 그를 속이고 남매지간인것처럼 행동했다. 아비멜렉은 사라를 사랑하여 그녀를 소유하려했으나 하느님께서 중병을 내리셔서 그의 정욕을 채우지 못하게 막으셨다. 의사가 그의 병을 치료하는데 난감해 할 때 그는 잠이들었고[㈜ 성경의 부연설명.] 나그네의 아내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의 꿈을 꾸었다. 그는 건강을 회복한 후에 친구들에게 하느님께서 나그네에게 해를 가하게 한 것에 대한 벌로 자기에게 병을 주셔서그 아내의 정조를 지키게 하셨다고 말했다. 또한 사라는 나그네의 누이가 아니라 그의 합법적인 아내이므로 자기가 그녀의 정조를 지켜준다면 하느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고 말했다. 아비멜렉은 이렇게 말한 다음 친구들의 충고에 따라 아브라함을 불러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돌보시며,그 분의 섭리에 따라 아내가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서 아브라함에게로 돌아왔으니 사라가 정절을 잃었을까 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다 아비멜렉은 하느님과 사라의 양심에 호소하여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누이라고 속였기 때문이지, 만약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처음부터 그녀를 농락할 마음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비멜렉은 또한 아브라함에게 화해를 청하면서 함께 있기를 원한다면 원하는 모든 것을 풍성히 줄 것이며, 떠나기를 원한다면 떠날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급해 줌과 동시에 갈 길을 잘 안내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사라가 자기의 조카이기 때문에[㈜ 요세푸스는 그녀를 아브라함의 형제 하란의 따로 봄.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조카인 셈이다<고대.1권.6;5(151). 즉, ajdelyhv가 아니라 ajdelyidh\’이다. 그러나 여동생이라는 말은 보통 \’친척여인\’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창세기에 의하면 그녀는 아브라함의 이복동생이다.] 친척 행세를 하여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외국을 여행할때는 이렇게 위장하지 않으면 안전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게한 것이며, 아비멜렉에게 중병을 앓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신변보호를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참). 창20 : 12].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함께 있고 싶다고 하였으며 이에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땅과 돈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조금의 속임수 없이 함께 살자고 언약을 맺은 후[14절]브엘세바(Bersu-bai)라고 불리는 우물가에서 맹세했다. 브엘세바란 \’맹세의 우물\’ (The Well of the Oath)이란[㈜ 히브리어 브엘세바(Beer-sheba)는 \”7개의 우물\”(혹은 7곱우물)이다. 요세푸스는 성경의 어원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70인역은 31절과 33절을 Frevar orkismou\’ 혹은 tou\’ ovrkou로 번역했다. 만일 히브리어 동사 \’맹세하다\’가 원래 \’7가지 것을 서약함으로써 자시을 속박하다\’라는 의미라면 위의 두 단어가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뜻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이곳 주민들은 그곳을 브엘세바라 부르고 있다.[창21:31].



 2. 이삭의 출생 [창21:1]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그에게 예언하신 대로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이삭(Isaac)이라고 하였다. 이삭이란 말은\’웃음\'(Laughter)이라는 뜻이다. [창17:17, 21 : 5]. 그에게 이런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하느님께서 사라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라가 자기의 나이는 99세이고 아브라함의나이는 이미 100세가 다 되었으니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가 생각하고 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 사라가 90세였을 때 분명히 태어났다.[㈜ 문자적으로는 \”한 아이가 작년에 쌍(the pair)으로 태어난다.\” 역자(1)은 이 문제 구절을 번역한 Weill를 따를 것이지만 본문을 변경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70인역에서 \’나중\’이라는 의미로 나 를 썼는데 후대 헬라어로는 prw\’to\”(\”처음\”)로 쓴것처럼 요세푸스는 uvstero\” 대신 uJetato\”를 사용한다.] 그들은 이삭이 태어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였다. 이후로 유대인들은 사내아이들이 태어나면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는 것을 관습으로 지켜오고 있다. 그 반면, 아라비아인들(Arabians)은 그들 국가의설립자이며 아브라함의 첩(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이 13세에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13세때 할례를 행한다. 이스마엘에대해서 이제 좀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각주 241을 보라.]



3. 하갈을 쫓아냄 [창21:10]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처음에는 자기 몸종 하갈(Hagar)의아들 이스마엘을 마치 자기가 낳은 아들처럼 사랑했다. 왜냐하면 사라는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의 통치권을 이어 받을 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라가 이삭을 낳을 무렵에는, 만일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나고 없으면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이스마엘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스마엘이 자라 있었기 때문에 사라는 이삭을 이스마엘과 함께 자라게 내 버려 두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아브라함을설득하여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 하갈을 함께 멀리 내보내자고하였다.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처음에는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사라가 하갈에게 단순한 질투심을 느끼고 있다고생각했고 또 연약한 어린 아이와 여자를 하루 아침에 사막으로내어쫓는 것은 매우 야만적인 처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와 같은 사라의 결심을 기뻐하신 것을 확인한 아브라함은 하갈에게 물 한 병과 빵 한 덩어리를 주고 이스마엘을 데리고 그곳을 떠나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얼마 못가가지고 갔던 빵과 물이 떨어지자, 하갈은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처하게 되었다. 마침내 배고픔과 갈등에 견디다 못해 지쳐 늘어진 어린 아들을 무화과 나무 그늘 아래로 간신히 끌어다 뉘인 하갈은 차마 그 애처로운 모습을 눈뜨고 볼 수 없어서 목적지도 없는 길을 한참 더 걸어 나아가면서 차라리 자기 없을 때 아들이스마엘이 그렇게 나무 그늘 밑에서 편히 숨지기를 바랬다.[㈜ 유리피데스(Euripides)의 \’Hercules Furens\’ p.323이하에 나오는 것을 모방했다. 요세푸스나 그의 조수들이 그런 각본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느님의 천사가 하갈에게 나타나 바로 옆에 샘물이 있다고 일러주면서, 이스마엘을 훌륭한 아들로 잘 양육하면 하느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을 것이니 그를 잘 보살피라고 말하고 떠났다. 하갈은 이 약속에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어 계속 길을 가다가 양치던 목자들을 만나[㈜ 성경의 부연 설명.] 그들의 도움으로 불행의 암굴을빠져 나올 수 있었다.



4. 이스마엘의 후손들 [창25:12]



 어린 이스마엘이 자라서 성인이 되자, 하갈은 자기와 같은 애굽 태생의 여자를 며느리로 맞았다. 이스마엘은 이 애굽 여자를 통해 12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들의 이르은 느바욧(Nabaioth,-es), 게달(Kedar), 앗브엘(Abdeel),[㈜ 70인역 중 한 무리의 사본도 같다. 히브리어 사본에는 앗브엘(Adbeel).] 밉삼(Massam),[㈜ 70인역도 같다. 히브리어 사본에는 밉삼(Mibsam).] 미스마(Masmas)[㈜ 70인역을 따랐다. 히브리어 사본에는 미스마(Mishma).] 두마(Idum),[㈜ 70인역을 따랐다. 히브리어 사본에는 두마(Dumah).] 맛사(Masme),[㈜ 성경에는 맛사(Massa, Masshv).] 하닷(Cho-dam),[㈜ 70인역을 따랐다(Coddavn). 히브리어 사본에는 하닷(Hadad).] 데마(Thaiman),[㈜ 70인역과 같다. 히브리어 사본에는 데마(Tema).] 여둘(Jetur), 나비스(Naphais),[㈜ 성경에는 나비스(Naphish, Nayev\”).] 게드마(Kakmas)[㈜ 성경에는 게드마(Kedemah, Kedmav).]등이다[창25:18]. 이들은 유브라데에서 홍해(Red Sea)에 이르는 전역에서 살면서 그곳을 나바테네(Nab-atene)라고[㈜ 나바타이아인들(Nabataeans)은 헬라-로마시대에는 꽤 번성했다.요세푸스는 이스마엘의 장자 나바욧(Nabaioth)으로부터 그 이름의 기원을 찾는다.] 불렀다. 이 사람들이 아라비아의 여러 국가와 종족들에게[㈜ 혹은 다른 사본에는 \”아랍 국가의 여러 부족에\” ajr ethv#Ab ramo\”의 첫 두글자가 결합하겨 \”아랍\”이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거부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들 자신의 용맹성과 아브라함의 명성을 자랑하면서자기들의 이름을 붙였던 자들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josephus, TN-catholicdictionary-C1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