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권 40년 동안의 사건을 다룸
사울의 죽음부터 다윗의 죽음까지
제 1 장
사울의 아들이 나머지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을 때 다윗이 어떻게 헤브론에서 한 지파를 다스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내전이 일어나 어떻게 아사헬과 아브넬이 살해 되었는지에 대하여
1. 다윗이 아말렉 사람으로부터 사울의 전사 소식을 들음 〔삼하1:1 〕
이 전쟁은 다윗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시글락으로 돌아온 당일 발발하였다.[㈜ 성경에는 단지 다윗이 사울이 죽은 이후 시글락으로 돌아왔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보낸 후 사흘째 되는 날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탈출한 사울을 살해한 자가 해어진 옷을 입고 머리에 재를[㈜ 성경에 의하면 \’흙\’으로 나와 있다.] 가득 뒤집어 쓴 채로 다윗앞에 나타났다. 그가 다윗 앞에서 인사하자 다윗은 그에게 그러한 몰골로 어디에서 왔는가를 물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전쟁터에서 왔다고 대답하고, 계속 말하기를 이번 전쟁은 모든 히브리인들에게 재앙이었으며 히브리인중 수 만명이 살해되었고 그들의 왕인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함께 전사했다고 했다. 또한 히브리인들이 패주하는 자리에 자신이 함께 있었으므로 그의 보고는 모두 사실이며, 그가 도망할 때 왕도 거기 함께 있었는데, 적들 의 급습이 임박할 때에, 사울 왕이 자결하기 위해 칼 위로 엎드 렸지만, 너무나 심한 부상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도 역부족이어서 왕의 요청에 따라 왕을 죽였노라고 고백했다.[㈜ 참).고대.6권.14:7(371)] 사울 의 죽음에 대한 증거로써 그는 사울의 팔찌와 왕관에 있던 금장식을 보여 주었는데, 이는 그가 사울의 시체에서 벗겨 내어 다윗에게로 가져온 것이었다.
〔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함 (삼하1:11)〕
다윗은 목전에 놓인 사울의 죽음에 대한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를 보고 자신의 의복을 찢고 그의 동료들과 함께 그날 온 종일을 슬피 울며 보냈다. 다윗의 슬픔은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자 가장 믿음직스런 친구인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죽음으로 인해 더욱 극심했다. 비록 다윗은 자신이 사울의 손에 여려 차례 목숨을 잃을 뻔 하였지만 사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여 사울에 대한 존경과 충성을 끝까지 보여주었을 뿐더러 왕을 죽인 자를 처벌하였다. 다윗이 그에게 말하기를 그 자신이 왕을 살해한 자로 고소 했고 벌을 받아 마땅하다며 그가 아말렉 족속인 것을 알게 된 다윗은 그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다윗은 또한 사울과 요나단에 대한 애가를 지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삼하1:19 이하에 나와 있는 애도에 노래에 관한 언급.]
2. 하느님께서 다윗을 헤브론에 거하게 하심 〔삼하2:1〕
다윗은 왕에게 이와같이 조의를 표한 후에, 애도를 그치고 선지자를 통해[㈜ 성경에는 이에 관한 선지자의 언급은 없다.] 자기가 유다 지파의 어느 성읍에 거해야 하는지를 하느님께 여쭈어 보았다. 하느님께서 헤브론으로 정해 주시자, 다윗은 시글락을 떠나 두 명의 아내와 함께 병사들을 데리고 그 곳으로 갔다. 이에 유다 지파의 모든 백성들은 다윗에게로 모여들어 그를 왕으로 옹립했다. 다윗은 길르안 야베스[㈜ 성경에서 야베스-길르앗이라고 불리우는 이곳은 고대.6권.5:1(71),14:8(375)에서는 야비스(Jabis)라고 불리우며, 고대.6권,14:8(376)에서는 야베사(Jabesa)라고도 불리운다.]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의 장사를 지내 주었다는 얘기를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들의 행위에 대한 치하의 뜻을 전하고 죽은 자들에 대해 보인 그들의 호의에 대해 꼭 보답할 것을 약속했다. 동시에 그는 그들에게 유다 지파 사람들이 자신을 왕으로 옹립했음을 알렸다.
3.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을 구함 〔삼하2:8〕
넬(Ner)의 아들로서, 매우 활동적이고 성품이 착한,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은 왕과 요나단 그리고 다른 두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진영으로 가서 왕의 아들로서 유일하 게 살아 남은 이스보셋(Jebosthos)을[㈜ 성경에 나오는 \’이스보셋\’. 이는 가나안 이름 이스바알(Ish-baal)을 고의적으로 고친 것이다. 이는 대상 8:33과 이부분의 몇몇 칠십인역 사본이 증거하는 것이다. 보셋(Bosheth)은 \’부끄러움\’을 의미한다. 칠십인역은 !Iebosqev] 데리고 요단강 건너편 땅으로 건너가 유다 지파를 제외한 전 지파의 왕으로 삼고 히브리어로는 마하나임(Manalis),[㈜ 성경에 나오는 \’마하나임\’. 문자적으로 \’진영\'(陣營). 이것은 히브리어 마하나임에 해당되는 유사한 단어나 Manaveim이 와전된 것이다. 이 히브리 명칭은 요세푸스가 다음 문장에서 설명한다. 본문에서 요세푸스는 칠십인역을 따른다. 칠십인역에는 ajneivbasen aujton ejk th\’\” parembolh\’\” eij\” Manaevm으로 이중어(doublet)가 나오는데 히브리 본문, \”그리고 (요단 건너) 마하나임으로 그를 데려왔다\”를 오역한 것이다. 이곳은 불분명한 장소이다. 얍복강 근처, 요단계곡 가까이로 추정된다.] 헬라 말로는 진영(Camps)이라고 불리는 곳을 수도로 정하였다.
〔 아브넬과 다윗의 부하들의 싸움 (삼하2:12) 〕
아브넬은 거기에서 유다 지파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세운 것에 격분하여 정예 병사를 선발하여 유다를 징벌하러 원정을 떠났다. 이에 맞서 다윗은 요압을 내 보냈는데, 요압은 스루야(Saruia)와 그 자신이 군대 장관으로서 왕으로 섬기는 다윗의 누이인 수리(Suri)의 아들이었다.[㈜ 성경에는 요압의 아비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추측컨대 요세푸스는 대상4:14에 나오는 요압의 아버지 \’스라야\'(70인역은 Saraiv)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 또한 그의 형제로는 아비새 (Abishai)와 아사헬(Asael)이[㈜ 성경의 아사헬, 70인역에는 !Asahvl로 되어 있다.] 있었는데 이들 모두 다윗의 병사였다. 요압은 기브온(Gabaon)[㈜ 성경에는 \’기브온\’,70인역는 Gabawvn 으로 되어 있다. 예루살렘 북서쪽 약5마일 정도에 위치한 오늘날의 \’엘 집\'(el-Jib)을 의미하는 것 같다.] 시의 한 우물에서 아브넬과 대결하게 되었다. 아브넬은 요압에게 어느 편의 병사들이 더 용감한지 겨루어 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양쪽에서 12명의 병사 들을 대결시켜 보기로 동의하고, 이에 따라 양편 사령관에 의해 선발된 병사들이 양쪽에 늘어선 후 그 사이의 공터로 나아가며 서로 창들을 던지며[㈜ 성경에는 창에 관한 언급은 나와 있지 않다.] 각자의 칼을 빼어 상대방의 머리를 잡고 갈빗대를 뚫고 나가도록 찔러 모두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쓰러져 죽고 말았다.
〔 아브넬 병사의 패배와 도피 (삼하 2:17)〕
이들이 쓰러진 후 나머지 병사들이 즉각 전투에 들어가 격렬한 싸움 끝에 아브넬의 병사들이 패배하였다. 일단 그들이 패주하자, 요압은 추격을 늦추지 않았고 자신도 그들 뒤를 바짝 뒤쫓으며 한놈도 살려 두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의 동생들도 아주 열심히 싸웠는데, 그들 중에서도 막내인 아사헬이 가장 두드러져 서, 발의 민접함에 있어서 그를 이길 만한 사람이 없을뿐더러 말과의 경주에서[㈜ 말과 아사헬과의 경주는 요세푸스가 고안해 낸 이야기이다.] 말이 당하지 못할 정도라 할 만큼 달리기를 잘하는 인물이었다.
〔아브넬이 요합의 동생 아사헬을 죽이다 (삼하 2:23)〕
아사헬은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아브넬의 뒤를 곧장 뒤쫓았다. 그러나 아브렐은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자기만을 추격하는 아사헬에게 말을 걸어 더 이상 자기를 쫒지 말고 자기 부하중 한 사람을 택하여 쫒으라고 하였으나. 그를 설득 할 수 없자, 다시 한번 더 간청하면서 자기를 죽여 그의 형인 요압과의 친밀한 관계를 악화시키는 일이 없도록 추격을 포기하라고 계속 말 했다. 하지만 아사헬이 이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계속 그를 추격하자, 하와넬은 창을 겨낭하여 던져 뒤에 있는 아사헬을 쓰러뜨려 즉사시켰다.[㈜ 성경에는 \”창의 뒤끝으로\”.] 아사헬과 함께 아브넬을 추격하던 자들은 아사헬이 쓰러진 곳에 와서 그의 시체를 둘러서게 되어 더 이상 추격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는 아사헬의 죽음에 격분한 나머지 맹렬히 아브넬을 추격하여 암마(Ammata)라는[㈜ 성경에는 \”암마\”. 70인역에는 !Ammavn 혹은 !Ammav. 성경에는 이위치가 \”기브온거친 땅의 길가에 있는 기아 (칠십인역은 Gaiv ) 앞에 있다\”고 나와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수 없음.] 곳까지 널란 만한 속도로 달려갔지만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요압은 한 언덕에 올라섰을 때 아브넬과 그와 함께 있는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본문이 다소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는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이 아브넬과 함께 언덕에 모여 들었다로 기록되어 있다. 요세푸스 기록에 나오는 이문인 mevga\”는 각주15)에 인용된 절에 언급된 가이 (gaiv, 성경에는 기아)라는 이름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Thackeray) 본문이 원래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다. \”베냐민 자파가 가이(지역)에 있는 한 언덕에 오르는데 요압은 그들 (베냐민 사람들)과 아브넬을 발견했다.\” ] 아브넬은 큰 소리로 외쳐 이르기를 동족끼리의 전쟁과 내분은 옳지 못하며, 더욱이 요압의 동생인 아사헬이 죽음을 당한 것은 더 이상 추격하지 말라는 말은 무시하였기에 어쩔 수 없이 죽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 요압이 아브넬과 화해하다 (삼하 2:27)〕
요압은 아브넬의 말을 받아들이고 그의 말응 위로의 말로 생각 하고 나팔을 불어 더 이상의 추격을 중지케 하고 모여들게 하였다. 요압은 그날 밤에 그자리에 진을 친 반면, 아브넬은 밤새 행군하여 요단강을 건너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있는 \’진영\'(the camps)이라는 곳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요압은 전사자를 계수하고 그들을 장사 지내 주었다. 그전투에서 아브넬의 병사는360명 정도가 전사했고 다윗의 병사는 아사헬을 제외한 19명이 전사하였다. 아사헬의 시체는 요압과 아비새가 베들레헴으로 운구해 그들의 선산에 안장하였다. 그후에 그들은 다윗이 있는 헤브론으로 돌아왔다. 이전투에서 시작한 히브리인들 사이에 내란은 꽤 오래지속되었는데,다윗의 세력은 날로 강성해지고 항상 승리한 반면,사울의 아들 및 그의 신하들의 세력은 날마다 약화되었다.
4.헤브론에서 태어난 다윗의 여섯 아들 〔삼하 3:2,대상3:1〕
이 무렵 다윗은 많은 아내들을 통해 여성 아들을 얻었다[㈜ 성경에 나온대로 \’헤브론\’에서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은 고대 7권 3:13(70)에 나열되어 있다.] 이들 중 장자는 아하노암(Achina)[㈜ 성경의 \’아히노암\’.참).고대.6권.13:8,10 (309,320)의 각주256),272)] 소생으로 암논(Amnon)이라 고 블렀고 차자는 아비가일 소생으로 길르압(Daniel)이라[㈜ 역대상에 나오는 내용과 같음. 삼하에 나오는 \’길르압\’.랍비 전승에 의하면 그는 실제로 아비가일이 다윗과 결혼한 이후에 태어난 나발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다니엘 이었는데 길르압이라고도 불리웠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불렀다. 셋째는 그술(Gesserites)왕 달매(Tholonmios)의[㈜ 성경의 \’달매\’. 70인역에는 Qommeiv Qolmeiv] 딸 마 아가(Machamd)의[㈜ 성경에는 \’마아가\’라고 나와있다. 70인역에는 Maacav] 소생으로 압살롬이며[㈜ 70인역에서와 같은 다른 본문에는 \’아베살룸(Abesalom)\’으로도 나온다. 히브리 사본에는 \’압살룸.] 넷째는 아도니야 (Adoaias)로[㈜ 성경에는 \’아도니야\’. 70인역에는 !Orneiva, !Orneivl] 학깃(Agithe)의[㈜ 다른 본문에는 Aethe 로도 나옴. 성경에는 \’학깃\’으로 나옴] 아들이며, 다섯째는 스바댜 (Saphatias)로[㈜ 성경의 \’스바댜\’.] 아비달 (Abitale)의[㈜ 성경의 \’아비달\’ 70인역의 !Abeitavl] 아들이며 여섯째는 이 드르암(Jethroas)으로[㈜ 성경의 \’이드르암\’] 에글라(Aigla)의[㈜ 성경의 \’에글라] 아들이었다. 내란이 발발하자 두 왕의 추종자들은 빈번히 전투를 벌였는데 사울의 아들의 군대 장관으로 영리한 사람이었던 아브넬은 백성들을 달래어 이스보넷의 편으로 돌리려고 노력하였고, 꽤 오랫동안 백성들은 그를 지지하였다.
〔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버리고 다윗과 합류하다 (삼하3:7)〕
그러나 이후에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불평의 대상이 되고 이 스보셋이 아야(Sibatos)의 딸[㈜ 성경의 \’아야\’] 리스바(Respha)와[㈜ 성경의 \’리스바.\’] 통간혐의 로 아브넬을 비난하고 추궁하자 아브넬 은 상처를 입었고 그가 이스보셋에게 보여준 온갖 호의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심히 분개하였다. 이에 아브넬은 왕권을 다윗 에게 넘겨 주겠으며 이스보셋 이 요단강 건너편 땅을 다스리게 된 것은 이스보셋의 힘과 지혜에 의한 것이 아니요, 자신이 장군 의 권위와 충성심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겠다고 위협했다. 그때 아브넬은 헤브론에[㈜ 이에 유대의 남부에 위치한 성읍인 \’텔렘\'(Telem),혹은 \’텔라임\'(Telaim)] 있는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가 백성들을 설득해 사울의 아들을 반역하게 하고 다윗을 온 나라의 왕으로 천명하게 한다면 그를 동료와 친구로 삼아 줄 것을 맹세하라고[㈜ 이와 같은 \”맹세\”는 애매한 히브리어로 인해 탈굼역에 따랐기 때문이다.] 요구했다.
〔다윗이 아내 미갈을 찾아오다 (삼하3:13)〕
다윗은 아브넬이 그의 수행원을 통해 전달한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아브넬에게 이 계약 수행의 첫 번째 증거로써 그가 전에 큰 위험을 무릅쓰고 블레셋 사람의 머리 600개로써[㈜ 참).고대6권. 10:3 (203)의 각주 173)] 사울로부터 산 자신의 아내를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아브넬은 현재 남편 발디엘(Opheltias)에게서[㈜ 성경의 \’발디엘\’.참).고대6권 13:8 (309) 의 각주 259)] 미갈(Mel- chale)을[㈜ 성격의 \’미갈\’. 참).고대 6권 10:3(204)에. 여기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멜가\'(Melcha)로 나온다. 또한 7권 4:2(85)에는 그녀의 이름이 \’미갈레\'(Mic-hale)로 나온다.] 빼앗아 다윗에게 돌려 보냈다. 이 일은 이수보셋도 승인하였는데 다윗이 이미 그에게 자신이 아내를 되찻을 권리가 있다고 편지했기 때문이다.
〔아브넬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을 지지하라고 호소하다 (삼하3:17)〕
그때에 아브넬은 백성의 장로들과 하급 관리들과 천부장들을[㈜ 성경에는 단지 장로들에 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하급관리로\’ 번역되어 있는 단어는 요세푸스의 시대에는 \’백부장\’의 의미 뿐만 아니라 로마의 \’군대 지휘관\’의 의미로 통용되어 졌다. 그러나 여기에는 \’유대 고대사\’의 다른 부분에서와 같이 일반적으로 \’하위직 관리\’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어 졌다. ] 불러 모아 놓고 말하기를 전에 그들이 이스보셋을 배반하고 다윗의 편에서 자고 했을 때 아브넬 자신이 만류했지만 이제는 그 들이 원하는 곳으로 누구든 가게 할 터인데 그 이유는 선지자 사 무엘을 통해 하느님께서 다윗을 온 히즈리인의 왕으로 택하셨고 다윗 외에는 블레셋을 징벌하여 종을 삼을 자가 없다고 예언하신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로들과 지도자들이 이 말을 듣고 현 상황에 대한 아부넬의 견해가 전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인식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다윗의 편으로 돌아섰다. 그들을 잘 설득한 아브넬은 이제 베냐민 지파를 소집했다. 이는 이스보셋의 경호원들이 모두 이 지파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느데[㈜ 성경의 내용에 첨가된 이야기.] 아브넬은 이들에게도 똑\’P은 취지의 말을 했다.
〔 아브넬이 헤브론에 있는 다윗을 방문하다 (삼하3:20)〕
아브넬은 그들이 아무런 반대없이 동의하는 것을 보자 20명의 동료와 함께 직접 맹세를 받아내기 위해 다윗을 찾아가서 다윗 에게 자신이 온 지파와 지도자들에게 말한 내용을 알게 하였다. 다윗은 그를 매우 친절하게 영접하고 수일간[㈜ 여기에서 말하는 \”수일간\”은 요세푸스가 첨가시킨 것이다.] 계속되는 대연회 로서 그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때 아브넬은 자기가 다윗에게 통치권을 넘길 때 많은 사람이 증인이 될 수 있도록 백성들을 데리고 올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다.
5.요압이 아브넬을 시기함 〔삼하 3:2〕
다윗이 아브넬을 보낸 직후에 다윗의 군대장관인 요압이 헤브론에서 돌아왔다. 그는 아브넬이 다윗을 만나기위해 거기에 왔었으며 통치권을 넘겨 주기 위한 계획에 동의하고 협정을 맺고 조금전에 떠난 사실을 알고, 다윗이 상황 판단이 빠르고 지략이 뛰어날 뿐더러 왕국을 보위하는데 기여할 아브넬을 개국공신으로서 최고의 자리를 주고 자신은 격하되어 지휘권마저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였다.[㈜ 요압이 아브넬을 증오하게 되었던 동기를 요세푸스가 설명한다.참) 고대.7권.1:5(36) ] 그래서 그는 부정직하고 악한 길을 택했다. 무엇보다도 첫째로 다윗에게 아브넬을 경계하고 아브넬과 체결 한 협정을 무시하라고 강권하면서 그에 대한 비방을 늘어 놓았다. 요압은 다윗에게 아브넬은 이스보셋의 통치권을 지키기 위 해 할 수 있는 모든 초치를 다하고 있으며. 속임스로 다윗에게 온 후, 그의 바램을 성취할 수 있고 은밀한 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는 희망 속에 돌아갔다며 아브넬에 대한 온같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요압은 이 방법으로는 다윗을 설득할 수 없었고 다윗의 생각이 굳은 것을 알고는 보다 대담한 방법을 택했다. 곧 아브넬을 살해할 계획으로, 아브넬을 뒤쫓아 사람을 보내었는데, 그에게 가서 아브넬을 만나거든 다윗이 그와 함께 있었을 때 그들의 협정에 대해 깜박 잊고 언급하지 않은 일이 있으니 돌아와 달라고 했다고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요압의 메시지는 성경 내용의 부연 설명이다.] 아브넬이 사자로부터 이 전갈을 받았을 때는 헤브론으로부터 20스다디온 떨어진 베세라(Besera)라고[㈜ 성경에는 \”시라의 우물\”로 나와 있다. 이 지점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수 없다. 헤브론에서 이 지점까지의 거리(약2.5마일)는 요세푸스에 의하여 첨가된 것이다.] 불리는 곳에 다다랐을 때였다. 아브넬은 아무런 의심없이 헤브론으로 돌아갔다.
〔요압이 아브넬을 죽이다(삼하3:26)〕
요압은 그를 성문에서부터 최고의 호의를 베풀며 우정으로서 영접했다 (가장 사악한 음모를 행하려는 사람은 그들의 의도를 감추고자 가장 선한 사람인 양 가장한다). 그 후에 아브넬의 동행자들에게서 그를 따로 불러내어, 은밀히 말할 것이 있는 것처첨 그의 동생 아비새가 혼자 기다리고 있는 페허가 된 성문터로 데려가서 칼을 빼어 옆구리 아래를 찔러 쓰러뜨렸다. 이리하여 아브넬은 헤브론 근처의 전투에서[㈜ 성경에서와 요세푸스의 이전의 기록에서처럼 \’기브온의 전투\’를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아브넬을 추격하던 자신의 동생 아사헬을 죽인 것에 대한 원수를 갚았다고 주장하는 요압의 배신 행위로 인해 숨졌다. 그러나 사실은 아브넬이 다윗에게서 최고의 자리를 하사 받게 됨에 따라 자신은 군대의 최고 지휘자로서 왕을 보필하는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이러한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제어되지 못한 욕망에 대한 반성 〕
이 일을 통해서 인간들이란 야심을 성취하고 권력을 얻기 위해 또 권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얼마나 무모한 길로 나갈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곧 부와 권력과 명예를 얻고자 하는 열망 속에 말할 수 없는 부정한 행위로 그것들을손에 넣고, 또 그것들을 잃어 버릴 두려움 속에서, 아주 사악한 방법으로 기득권을 계속 누리려 한다. 이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기득권의 명예를 누리다가 그것을 상실한다는 것은 기득권을 얻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문자적으로는 \’모두가 잃어 버린 것을 두려워하여\’. 본문이 불분명하다.] 온갖 무자비한 일도 서슴치 않고 범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루었으므로 여기서 줄이기로 하자.
6.다윗이 아브넬의 죽음에 대해 자신이 무관함을 항변하고 그를 위해 슬퍼함 〔삼하 3:28〕
다윗은 아브넬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오른손을 들고 모든 백성을 블러모아 증인으로 삼고 자기는 아브넬의 죽음과는 무관하며, 그의 죽음은 자신의 명령에 의한 것도 자신의 바램에 의한 것도 결코 아니라고 큰 소리고 외쳐 말했다. 다윗은 또한 그를 살해한 자와 그의 온 집과 그에게 협조한 자들을 심하게 저주했다.[㈜ 삼하 3:29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문둥병자나 지팡이를의 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핍절한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 다윗의 이런 행동은 아브넬과 체결한 협정을 자신이 직접 파기한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배려였다. 게다가 모든 백성에게 그를 애도하도록 명령하고 그들의 의복을 찢고 베옷을 입고 재를 뿌리며 아브넬의 관을 뒤따르게 함으로써 정중한 장례를 거행하도록 지시하였다. 다윗 자신도 장로 및 관료들과 함께 생전에 그에 대한 애정과 원치않는 죽음을 당한데 대한 애도를 표시하면서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며 뒤따랐다.[㈜ 이 문장에서는 쿠키디데스의 글을 상기시키는 내용이 담겨있다.] 다윗은 헤브론에 그를 정중하게 장사 지내 주었고 사자(死者)를 위한 애가를 지었다.[㈜ 삼하 3:33,34에 나오는 짤막한 애가에 간한 언급.] 그는 또한 묘 옆에서 제일 먼저 울기 시작하였으며 다른 사람들도 뒤따랐다. 아브넬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다윗은 그의 부하들이 강권하는 음식에 전혀 손대지 않았고 해질녁까지 아무런 음식도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다윗이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하자 백성들이 다윗을 호평함 (삼하 3:36)〕
그의 이러한 행동들은 사람들의 호의를 얻었는데 평소 아브넬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던 사람들은 다윗이 아브넬을 건성으로 장례를 치름으로써 아브넬을 부끄럽게 하지 아니하고, 친적이나 친구처럼 최대의 경의를 표하며 장례를 치른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또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이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왕으로부터 죽은 아브넬이 받은 것과 같은 외의를 입게 될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윗의 친철하고 온유한 성품에 흡족해 마지 않았다.[㈜ 이 마지막 언급은 성경에 대한 부가 설명이다.] 도우기 다윗이 죽은 아브넬에게 호의를 보임으로써아무도 자신이 아브넬을 죽인 것으로 의심하지 않고[㈜ 본문이 불확실 하다.] 호감을 갖기를 바랬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는 또한 백성들에게 아브넬과 같이 전쟁 발발시에 탁월한 지략과 뛰어난 무예로 그들을 보호하고 단결시킬 수 있었던 인물을 잃은 것은 국가 적으로 막대한 손실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그토록 선한 사람의 죽음에 비통에 잠겨 있다고 말했다. 또 다윗은 이같이 덧붙였다.\”세상의 모든 일을 감찰사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이 악산 행동을 묵과하도록 내버려 두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나보다도 더 강력한 스루야(Saruia)의 아들들인 요압과 아비새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서 그들의 불법한 행동에 대해 공정한 처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아브넬은 이렇게 그의 종말을 맞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