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예루살렘으로 벱퀘를 옮기고 성전을 세우려고 했던 것에 대하여
1.다윗이 블레셋인들을 격퇴함 〔삼하 5:17,대상14:8 〕
블레셋은 히브리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세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에게로 진군하여 \’거인들의 계곡\’이라고[㈜ 70인역의 역대기의 내용과 일치함. 성경에서는 \’르바임의 골짜기\’로 되어 있다. 르바임이란 전통적으로 \’거인\’의 뜻으로 사용되 어 왔다. 이 위치는 아마도 오늘날의 예루살렘 남서부의 평야 지대인 \’엘 부케이야\'(el Buqeia)일 것으로 추정된다] 불리는 곳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과히 멀지 않다)에 이르러 그곳에 진을 쳤다. 하느님으로부터의 예언이나 명령 없 이는 아무것도 하려들지 않는 다윗은 대제사장에게 명령하여[㈜ 성경에는 다윗이 직접 하느님을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느님의 깊으신 뜻이 무엇이며 이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그에게 예언토록 했다. 그가 다윗의 결정적인 승리를[㈜ 문자적으로는 \’승리와 정복\’. 이 구절은 \’유ㅓ대 고대사\’의 전반부에서 몇 번 반복해서 쓰인다.] 예언하자, 다윗은 그의 군대를 이끌고 블레셋군에게로 나아갔 다. 첫번째 접전에서 그는 적의 후방을 급습하여[㈜ 성경에 의하면 다윗이 뒤쪽에서 갑작스럽게 그들을 덮친 것은 블레셋과의 두 번째 전투시 있었던 것이다.]그들 중 일부를 살해하고 나머지를 도망하게 하였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에게 나아온 블레셋 군대가 소규모 부대이거나,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주하는, 용맹을 떨칠 마음이 없는 겁쟁이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블레셋 군대는 수리아(Syria) 와 베니게(Phoenicia)의 온 군대와 여타 의 호전적인 나라들과 동맹을 맺고 이 전쟁에 참가하고 있었음을[㈜ 다른 민족이 전쟁에 참가한 사건은 요세푸스가 고안해 낸 이야기이 다.] 알아야 한다. 블레셋인들은 너무 자주 패배하고 수 만명의 병사를 잃자, 보다 대규모 부대로써 히브리인들을 공격해 왔다. 이 전쟁에서의 번번히 패배한 후에 블레셋인들은 또 다시 다윗에게 대항키 위해 3배의 군사를 이끌고 동일한 장소에 진을 쳤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블레셋과 싸워 두 번째 승리함 (삼하5:7,22,대상 14:13〕
이번에도 이스라엘의 왕은 이 전쟁에 대해 하느님께 여쭈었고, 대제사장은[㈜ 참). 고대7권 4:1 (72)] 소위 적들의 진영에서 멀지 않은 통곡의 숲 (Weeping Groves)이란 곳에[㈜ 히브리 성경에는 \’발삼 나무의 맞은편\'(흠정역에는 \’뽕나무)] 머물러, 바람도 없는데 숲이 움 직일 때까지 아무런 군사 행동을 전개하지 말라는 예언을 말했 다.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예언하신 그 순간이 다가와서 숲이 움 직이자,[㈜ 삼하5:24,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겉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동작 하라. 그때에 야훼가 네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라.\”] 다윗은 자기를 기다리는 승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조금도 치체하지 않았다. 대적의 전열은 다윗의 공격을 지탱하지 못했고 번째 접전에서 패주하기 시작했고 다윗은 그들은 바짝 뒤쫒으며 그들을 살해했다. 다윗은 적들을 그들의 국경인 게셀 (Gazara)[㈜ 성경에는 게셀. 참).5권 1:22(83) 주 55)] 성까지 추격하여 적의 진영을 약탈하고 그들의 신상을 파괴했다.[㈜ 진영의 약탈에 관해서는 오세푸스가 설명을 덧붙인다. 성경에서는 첫전투와 연관이 있을 때만 블레셋의 신들(히브리 성경은 \’우상들\’을 언급한다. 대상 14:12에는 다윗이 그것들을 불살랐다고 나온다. 참). 탈굼의 삼하 5:21]
2. 법궤를 예루살엠으로 옮기게 됨 [삼하6:1, 대상13:1]
전쟁이 이와같이 결말이 나자, 다윗은 장로들과 방백들과 천부장들과 상의한 후에 전국의 혈기 왕성한 청.장년층을 소집하여[㈜ 요세푸스는 장르들의 회의를 언급할 때 역대기를 따른다. 삼하에서는 그가 뽑힌 30,000명(칠십인역은 70,000)을 모았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하느님의 법궤가 있는 기럇여아림으로[㈜ 성경에는 \’기럇 여아림\’ 참). 고대. 6권. 1:4(17) 주14)] 보내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게 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들은 법궤를 예루살렘에 두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희생과 예물을 드리며 하느님을 경배할 생각이었는데, 다윗은 사울이 재위시 이와같은 일을 했다면 그토록 끔직한 재앙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다.[㈜ 본문에서 다윗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대상 13:3의 확대해석이다.] 이 계획에 따라 모든 백성이 모였을 때 다윗왕은 법궤 앞으로 나아왔고 제사장들은 아비나답 집에서 그것을 꺼내어 제사장들의 형제들과 아들들로[㈜ 삼하6:3에는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수레를 모니라\’ 요세푸스는 아효대신 그의 형제 에호를 사용한 칠십인역을 따랐다. 70인역은 웃사의 뜻인 그의 형제들이라는 문구를 반복하는데 요세푸스는 웃사의 아비인 아비나답을 언급하는데 \’그의\’라는 단어를 취한다. 결국(두형태 모두 자음이 동일함). 요세푸스 본문에서 웃사라는 이름이 빠진 것은 니이제의 생각대로 탈문에서 기인되었다고 추측된다.] 하여금 소들이 끄는 새수레를 밀게 하고 그 수레위에 법궤를 놓았다. 이들이 떠나기 앞서, 다윗과 함께한 백성들은 나팔과 꽹과리를 비롯한 온갖 악기들을 모두 다 동원해 노래하며 춤추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전통 멜로디로 찬송했다. 그들은 또한 예루살렘까지 그 법궤를 호위했다.
그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웃가가 하느님의 진노로 죽음을 맞이했는데, 이는 소가 심하게 움직여 법궤가 흔들거리자 손을 펴서 법궤를 붙잡았으나 그는 제사장이 아니었음에도 법궤를 만졌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치셨던 것이다. 왕에게나 백성에게나 웃사의 죽음은 즐거운 일이 아니었으며, 그들은 웃사가 죽은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고 불렀다. 다윗은 웃사가 단지 손을 뻗어 법궤를 만짐으로 죽었기 때문에 만약 법궤를 예루살렘의 자기 집안에 둔다면 웃사와 같은 운명을 겪게 될 것이라는 두려운 생각에 성 안의 자기 집에 들여놓지 않고, 대신 레위인의 후예로 의인인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를 보관하기로 하였다.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3달 머무름 (삼하6:10, 대상13:13) 〕
법궤는 온전히 석달 동안 그 곳에 있었고 오벧에돔의 집이 복을 받아 번창했다. 다윗 왕이 오벧에돔에게 일어난 일 곧 가난하고 비참했던 상태에서 당장 부귀를 누리며 그의 변화를 많은 사람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삼하 6:11 \’야훼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의 확대해석.] 소식을 듣고, 법궤를 옮겨도 아무해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고무되어 법궤를 그의 집으로 옮겼다.[㈜ 요세푸스는 본문에서 삼하2장의 순서를 따른다. 대상에서는 법궤의 들임에 있어서 히람의 사절이야기가 나오고 다윗의 가족, 레위인의 준비가 뒤 따른다. (대상 14:1-15:24)]
〔다윗이 법궤 앞에서 춤을 추다 (삼하 6:14) 〕
법궤는 제사장들에 의해 옮겨졌으며 다윗왕이 큰 소리로 하프를 타며 선도하는[㈜ 혹은 \’그의 발을 굴렀다.\”] 7개의 찬양대가 앞서 나아갔다.[㈜ 칠심인역의 삼하 6:13에 따름. 히브리성경은 약간 다르다. \’법궤의 들입에 있어서 여섯 걸음을 행하매 그들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대상15:26에는 \”언약법궤를 멘 레위사람을 도우셨으므 로 무리가 수송야지 일곱과 수양 일곱으로 제사를 드렸더라.] 이에초대 왕 사울의 딸 미갈(Michale)이[㈜ 성경에는 \’미갈\’ 참).고대 7권 (25)] 그의 이러한 행동을 보 고 조롱하며 웃었다. 그후에 그들은 법궤를 예루살렘 성안으로 가져와 다윗이 법궤를 위해 설치한 장막 아래 두었다.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백성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남녀노소를 막 론하고 여러 가지 빵과 희생제물의 한 몫을 나눠주고 그들을 돌 려보낸 후 자신은 집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부분은 요세푸스가 첨가했다.]
3. 미갈이 다윗을 비난함 〔삼하6:20〕
그 때 그의 아내인 미갈이 그에게로 와서 하니님의 은총으로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주시고자 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기를축복하는 기원을 마친후[㈜ 성경은 미갈의 축복에 관한 기록은 없고 단순히 다윗을 만나러 와서 그의 보기싫은 행동을 비난했다고만 나와 있다. ] 갑자기 다윗과 같은 위대한 왕이 노예들과 여종들 앞에서 몸을 드러내고 춤을 추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다윗은 미갈에게 그녀의 아버 지와 모든 사람보다 높으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행한 모든 행동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녀 자신이나 그녀의 여 종들에게 고상하게 보이지 않는 것에 상관없이 앞으로도 자주 하느님 앞에서 뛰놀며 춤출 것이라고 대답했다.[㈜ 칠십인역의 삼하6:22과 유사. 히브리 성경은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 그후 미갈은 다윗과 함께 사는 동안 자녀를 낳지 못하다가 훗 날 그녀의 아버지 사울이 그녀에게 남편으로 짝지어 준 그 사람과[㈜ 삼하 21:8의 \”바실래의 아들 아드리엘.\”] 결혼한 후(지금은 다윗이 그에게서 아내를 되찾았기에 현재는 다윗이 미갈의 남편이다) 다섯 아이를 낳았다[㈜ 요세푸스는 성경의 모순을 조화시킨다. 삼하6:23에 따르면 미갈은 사는날 동안 무자 하였다. 그러나 삼하 21:8에는 그녀에게 아드리엘까지 다섯 자녀가 있었다고 써있다. 탈굼을 따르는 랍비전승은 다섯 가녀가 메랍의 소생이며 미갈이 데려오기만 했을 뿐이라고 한다. 참) 루키안역본은 삼하 21:8 에서 미갈대신 메랍이라고 나온다.] 이 이야기데 대해서는 적절한 때에 다르기로 하자[㈜ 요세푸스는 미갈에 대해 다시 언급하지 않는다.]
4. 다윗이 성전을 지을 것을 작정했으나 하느님께서 승인치 않으심 〔삼하7:1, 역대상 17:1〕
다윗 왕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의 만사가 날마다 더욱 번창함을 보고 자신은 삼나무 목재로 지은 아름답고 고상한 집을 살면서 하느님의 법궤는 장막 안에 둔다는 것은 죄를 범하는 일이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전에 모세가 가르친 방식대로 하느님을 위해 성전을 짓기를 원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나단(Nathan) 선지자와 상의하자 나단은 하느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셔 범사에 그를 도우시는 것을 보고 그가 작정한 것을 행하도록 다윗을 격혀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나단에게 그날밤 나카나셔서 다윗의 목적과 바램은 인정하시지만 [㈜ 하느님이 인정했다는 이 표현은 성경에는 없다.] (다윗 이전에는 다윗과 같이 하느님을 위해 성전을 지을 생각한 자가 없었으므로) 그가 많은 전쟁에 차전하여 대적들의 피로 더어워졌으므로 그가 성전 짓는 일을 허락할 수 없으며[㈜ 대상 28:3.] 다윗이 수명을 누린 후 연로하여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이 왕국의 계승자가 되어 성전을 짓게 될 것이라고 전하라고 하셨다.
〔솔로몬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 (삼하 7:12, 대상 17:11〕
또한 하느님께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지키고 돌보는 것처럼 그 아들 솔로몬을 돌보셔서 왕국을 그의 후손들이 대물림 할 수 있도록 보존하시겠지만 만약 그가 범죄한다면 병과 황폐화된 땅 (大地)으로써 징벌하시겠다고[㈜ 삼하 7:14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어떤 랍비 전승은 악한 영들을 뜻한다고 한다.] 말씀하셨다. 다윗이 선지자로부터 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의 왕권이 후선들에게까지 전해질 것이며 그의 가문이 존귀하게 될 것을 분명히 알고 심히 기뻐하였다. 그는 곧 법궤 있는 곳으로 가서[㈜ 삼하 7:18 \”다윗이 하느님(즉 범궤)앞에 않아서\”. 랍파포트 (Rappaport)는 요세푸스의 의역 (\’않아서\’대신 \’의의 얼굴에 의지하여\’) 이 다윗왕의 계열이 성전들에 않는 것이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하스모니아 시대에 왕당파들과 대제사장파들 사이에 있었던 논쟁과, 이절에 나온 동사 \’않아서\’의 해석에 대한 논쟁과 어떤 연결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고, 목자였던 비참한 신분에서 그를 들으셔서[㈜ 성경에는, 다윗의 비천한 가문에 대한 언급이 다윗의 기도에서가 아니라 요세푸수와 같이 다윗에 대한 나단의 신탁 중에서 먼저 나온다.삼하7:8).] 최고의 권력과 영광을 주신 하느님의 역사(役事)와 그의 자손들과 히브리인 전체에 대한 보호와 자유함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에 대해 감사 드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