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권 제 11장 다윗이 왕국을 되찾았을 때 시므이와 시바가 화해한 것과 바르실래에게 큰 호의를 베푼 것, 또한 반란이 일어나자 세바를 추격하기 위해 군대장관으로 아마사를 임명했지만 아마사는 요압에게 살해당한 것에 대하여

 


제 11 장



   다윗이 왕국을 되찾았을 때 시므이와 시바가 화해한 것과 바르실래에게 큰 호의를 베푼 것, 또한 반란이 일어나자 세바를 추격하기 위해 군대장관으로 아마사를 임명했지만 아마사는 요압에게 살해당한 것에 대하여



1.반란군이 다윗과 화해함 〔삼하19:9(10) 〕



  전쟁터에서 달아난 압살롬편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서는 그들의 도시들을 돌면서, 다윗이 그들에게 베풀어 준 은혜와 큰 전쟁에서 그들을 구원하여 자유를 얻게 한 사실을 히브리인들에게 잊지 못하도록 하고, 다윗을 왕좌에서 몰아내고 다른 사람에게  왕좌를 넘겨주려던 일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였다. 그리고 그들 이 택한 지도자가 죽었기 때문에 그들은 다윗왕에게 노를 그치고 그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전처럼 자신들을 다스려 달라고 간청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간청하지 않았다\’ 등등은 성경의 부연설명. 삼하 19:10(히브리 성경은 19:11)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모셔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나?] 그러한 소식이 다윗에게 계속 보고되자 다윗은 대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전갈을 주 어 유다 자파의 방백들에게 이렇게 말하도록 지시하였다. 곧 유 다 지파가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기 전 \”특별히 여러분은 다윗과 한 피를 나눈 친족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파가 여러분에 앞서 다윗을 왕으로 옹립했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커다란 수치입니  다\” 라고 말하도록 지시하였다. 다윗은 또한 사독과 아비아달에 게 지시하여 군대장관인 아마사에게 같은 맥락으로 자신의 전갈을 전해주면서, 그가 다윗의 누이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너희는 내 형제요 (탈굼은 친척) 골육이어늘\’으로만 기록되어 있으며 다윗과 확실한 연고를 언급하진 않는다.] 백성들에게 왕국을 다윗에게 회복하도록 설득시키지 않고 있느냐 고 질문하도록 지시하였다. 또한 그들은 아마사에게 다윗은 그와 화해를 기대하고 있으며 – 그것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 압살롬이 그에게 부여한 것처럼 전 백성의 통솔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래서 대제사장들의 한 전갈은  유다 자파의 지도자들에게, 다른 한 전갈은 아마사에게 전달하였다. 이에 아마사는 곧 유다 지파를 설득하기 위하여 사신을 보내 다윗을 초청하여 그의 왕국으로 되돌아오게 하였다. 모든 이스 라엘 사람들은 아마사의 제안대로 다윗을 찾아와 다시 왕으로 다스려 달라고 요청하였다.



 2.이스라엘의 각 지파들이 요단강에 모여 다윗을 환영함 〔삼하19:15(16) 〕



  그 사신들이 다윗에게 왔을 때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갔다. 요단강에서 왕을 만난 첫 번째 지파는 유다 지파였다. 또한 게라 (Gera)의 아들 시므이(Samuis)도 베냐민 지파 사람1,000명을 데리고 나아왔으며, 사울의 권속이었던 시바도 그의 15명의 아 들들과 20명의 하인들을 데리고 나아왔다. 유다 지파 및 뒤이어  나아온 자들이 요단강에 다리를 놓아[㈜ 히브리 본문에 나오는 aberah ha- abarah는 탈굼의 번역처럼 \’그들의 나룻 배로 건넜다\’를 의미한 싶다. 70인역에 나오는 dievbh h|diavbasiv\”는 \’건너서 갔다\’는 뜻인데 이는 히브리 본문에 나오는 의미보다 더 애매하다.] 왕과 그 부하들이 손쉽게 건널 수 있게 하였다. 다윗왕이 요단강에 왔을 때 유다 지파 의 환영을 받았고, 그가 다리를 건널때[㈜ 성경에는 \’그가 요단강을 건너 가면서\’ 라고 되어 있다.] 시므이가 그 앞에 끊어 엎드려 발목을 부여잡고 자신이 다윗왕에게 행한 악행을 용 서해 달라고 하면서 권력을 되찾자마자 곧 자신에게 복수할 생 각은 마시고 자신의 실수를 계속 후회하고 있고, 누구보다 서둘러 다윗왕에게 나아온 점을 감안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다윗이 시므이를 용서함  (삼하19:18) 〕



  시므이가 이렇게 애원하며 자비를 구하는 동안 요압의 동생인 아비새가 그에게 말했다. \”하느님께서 통치자로 세우신 분을 네가 저주하고도 살아남을 줄 아느냐?\” 그러나 다윗은 그들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조용히 하지 못하겠느냐, 스루야(Saruia)의 아들들아? 더 이상 우리에게 무질서와 내분이 없게 하라. 오늘은 내가 통치하는 첫 날임을 잊지 말아라. 그러므로 나는 더이상 반역행위에 대한 처벌을 중지할 것이며 어느 범죄자도 처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시므이 자네도 죽을까 두려워하지 말게. 그리고 용기를 내게\”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다윗왕에게 절  하고 그에 앞서갔다.



3. 므비보셋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윗에게 변명함 〔삼하19:24(25) 〕



   다윗은 또한 흙묻은 옷을 입고 긴머리가 흐트러진 단정치 못한 몰골을 한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만났다. 그는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달아난 후 슬픔으로 머리를 자르지도 않고 의복을  빨지도 않았기 때문인데, 그는 다윗이 권좌에 밀려난 불행한 처지가 자기 때문인 양 자책했었다. 더욱이 그는 그의 하인인 시바에 의해 다윗에게 부당한 고소를 당했었다. 그가 다윗을 영접하고 절할 때 다윗은 그에게 자기와 함께 떠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이에 므비보셋은 그것은 전적으로 시바의 잘못인데 시바는  떠날 준비를 하라는 지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를 노예처럼 무시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또 덧붙였다. \”참으로 제가 성한 발을 가져 달아날 수만 있었다면, 제가 왕의 뒤에 그처럼 쳐져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주여, 시바가 왕께 대한 저의 충정을 비열하게 방해한 것이 이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왕앞에서 저를 중상모략하여 제게 대한 거짓말을 늘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중상모략을 왕께서 믿지 아니하실 것을 잘 압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공정한 진리를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본문에는 \”왜냐 하면 그것은 공평하여 진리가 성행하기를 바랐으며 하니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왕께서 저의 할아버지에게 무수한 고초를 당하셨기에 저희 가문이 몰살당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왕께서는 그러한 일을 기억하시어 복수할 힘을 갖게 될 그 순간에도[㈜ 본문의 의미가 모호하다. 문자적으로 \’너의명성이 그들에게 보복을 할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었을 때\’라는 뜻이다.] 자제하셔서 그 모든 일을 스스로 잊고자하는 친절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왕께서는 저를 친구처럼 여겨주시고 매일 왕의 식탁에서 식사할 수 있게 해주시며 왕의 친척들과 다름없는 대우를 해주셨습니다\” 므비보셋이 이 말을 마치자 다윗왕은 말했다. \”므비보셋도 처벌하지 않고 거짓 증거한 시바도 비난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자네가 시바와 함께 나에게 오지 않은 연유로 그대의 모든 소유를 시바에게 주었네\” 다윗왕은 므비보셋에게 시바를 용서하고 그 재산의 반은 그에게  돌려줄 것을 약속하였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응답한 내용은 삼하 19:29에 나오는 구절 \”왕이 저에게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를 부연 설명한 것이다.] 이에 므비보셋은 외쳐 말해다. \”시바가 전부 갖게 하소서! 저는 왕께서 왕국을 되찾으신 것으로  만족합니다.\”



 4.바르실래가 예루살렘에서 함께 살자는 다윗의 제안을 거절함〔삼하19:31,32 〕



  다윗왕이 마하나임(Camps)에 있을 때 많은 필수품을 제공하 였을 뿐 아니라 요단강까지 다윗왕을 호위했었던 거부인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Beerzlos)가[㈜ 고대. 7권 9:8(230) 에서는 베르셀라이오스(Berzelaios)로 불려짐 참). 주275)] 예루살렘으로 다윗왕에게 초대  되었다. 다윗왕은 연로한 그를 모든 예우로써 존귀케 한 것이며 아버지처럼 봉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집에 머물기를 원하는 바르실래는 다윗과 함께 가기를 거절하고 그의 나이가 쾌락을 즐길 수 없을뿐더러 – 지금 나이가 80세 였다 – 그의 죽음과장례를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다윗왕에게 자신의  간청을 생각하시고 은총을 베푸시어 놓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는 또 자신은 너무 연로하여 음식의 맛을 전혀 분별할 수 없으며 왕과 함께 거하는 자들을 기쁘게 하는 모든 종류의 악기의 음 악과 피리의 선율을 즐길 수 없는 귀머거리와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이 간절한 간청을 듣고 다윗은 \”나는 그대를 놓아주겠소, 그러나 당신의 아들 김함(Achimanos)을[㈜ 성경에는 \’김함\’으로 나와 있음. 성경에 보면 다윗과 함께 그의 아들이 남아 있기를 희망했던 사람은 \’바실래\’로 나온다.] 내게 주시오. 내가 온잦 좋은 것으로 그를 대접할 것이오.\” 그래서 바르실래는 그 의 아들을 다윗왕에게 남겨놓고 왕에게 절하고 다윗의 모든 소 원이 성취되길 기도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다윗왕은 길갈로 갔는데 유다 지파와 온 백성의 절반이 그를 수행하였다.



 5.다윗의 은혜를 입기 위한 이스라엘과 유다 자파의 경쟁〔삼하19:41,42 〕



  그 후에 길갈에 있는 다윗왕에게 모든 지파의[㈜ 다른 본문에는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많은 무리와 함께 나아와서 유다 지파가 비밀리에 다윗왕에게  나아왔던 것을 비난하고 온 지파가 같은 시간에 그를 맞이했어  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다 지파의 유력인사들은 그들에게  지레 짐작하여 마음 아파하자 말라고 권면했다. 그들이 첫번째로왕을 맞이한 것은 다윗왕의 친척들로서 자신들이 다윗왕을 더 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행한 것이며, 또한 최초로 나아왔다고 해서 늦게 나온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어 어떤 선물을 받은 적도 없으니 전혀 불평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지파의 방백들 은 이 말들로 잠잠해지지 않고 말했다. \”형제들이여, 우리들은   당신들이 다윗왕을 당신들만의 친척으로 부르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네. 하느님으로부터 우리 모두를 다스릴 권세를 부여받 은 그는 마땅히 우리 모두의 친척이 되어야만 하네. 그런 이유로 우리는11316) 지파이고 당신들은 한 지파만을 차지하였으므로 우리가 권리를 더욱 주장할 수 있네[㈜ 혹은 \’우선권을 가질 수 있네\’.] 그토록 은밀히 왕에게 나아온 것은 결코 정당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네.\”



6.세바 (사바이오스)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선동하여 다윗을 반역케 함 〔삼하20: 1 〕



   이 지도자들이 서로 다투고 있을 때 사악하고 분열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 그들 중에 있으니, 그는 베냐민 자파의 비그리(Bochorios)의[㈜ 성경의 \’비그리\’, 70인역에는 Bocorei] 아들 세바(Sabaios)라[㈜ 성경에는 \’세바\’ 70인역에는 Sabeev]하는 자였다. 그는  대중에게 큰 소리로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는 우리들이[㈜ 다른 본문에는 \’너희\’] 받아 누릴 분깃이나 기업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하고  나서 그는 나팔을 불어 왕과의 전쟁을 선언하였다. 이에 곁에 섰던 유다 지파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다윗을 버리고 그를 쫒았으 며, 유다 지파는 예루살렘에 있는 왕궁으로 다윗을 모시고 갔다. 다윗은 압살롬과 동침했던 첩들을 다른 거처로 옮기게 하고 그  들의 시종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토록 하고 자신은 그들을 다시는 가까이 하지 않았다.



〔다윗이 아마사를 군대 장광에 임명함 ( 삼하 20:4) 〕



   그후 다윗왕은 요압의 자리였던 군대장관의 자리를 아마사에게 주어[㈜ 성경 삼하 20:4에 나오는 내용만으로는 다윗이 아마사를 요압을 대신하는 군대 장관으로 임명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그와 동등한 지위에 선임했는지에 관해서 알 수 없다. 고대.7권 11:7(184)에서 보면 요세푸스는 후자의 견해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다 지파에서 가능한한 많은 군대를 모아 3일후에 그에게 나아오도록 명하엿는데, 이는 그에게 전 병력을 주어 비  그리의 아들과 전쟁을 치루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아마사  는 밖으로 나갔지만 군대를 모으는데 느릿느릿 했기 때문에 3일  째 되는날 다윗에게 나아오지 못했다. 이에 다윗왕은 요압에게  [㈜ 성경에 보면 다윗이 \’아비새\’에게 말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세바가 대군을 조직해 압살롬보다 더 해롭게 못된 사건을 일으킬 만한 시간을 주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명령했다. \”그 러므로 아무도 기다리지 말고 바로 여기서 군대를 조직해 나를  추종하는 600명의 병사와[㈜ 성경에는 \”네 주의 신복들\”로 되어 있다. 즉, 다음 절 (삼하20:7)에서 나오는 그렛사람들, 블렛사람들, 그리고 \”용사들\”의 경호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네의 동생 아비새와 함께 적들을 추격하게, 그와 맞부딛치는 곳이면 어디든지 접전을 벌여 그들  이 요새를 차지해 우리가 더욱 많은 땀과 수고를 해야 하는 일이 없도록 하게.\”



7.요압이 세바 (사바이오스)를 추격하면서 도중에 아마사를 살해함 〔삼하20: 7 〕



  요압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의 동생과 다윗을 추종하는 600명과 예루살렘의 잔여 병력을 데리고 세바를 공격 하러 떠났다. 요압은 기브온에 도착했을 때 –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40스다디온 떨어진[㈜ 예루살렘으로부터 기브온 까지의 거리에 관해서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참).고대.7권.1:2(11)의 각주 11).] 마을이다 – 대병력의 선두에 있는 아마사를 발견하였다. 요압은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그를 맞으러 나갔다. 아마사가 그를 맞으려 접근했을 때, 요압은 칼집에서 칼 이 저절로 떨어진 것처럼 교묘하게 떨어뜨렸다.[㈜ 성경에 보면 \”제가 행할 때에 칼이 빠져 떨어 졌더라\”로 되어 있다] 그는 땅에서 그의 칼을 집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자기 근처에 있던 아마사를 입맞추려는 것처럼 그의 수염을 잡다가 갑가지 그의 배를 찔러 죽였다. 요압이 이 용감한 젊은이, 더우기 그의 친척이며 그에게 아무런 악도 행하지 않은 자에게 이같이 야비하고 불경건한 행위를 자행한 이유는 아마사가 군대장관의 자리를 차지하고, 다윗왕에게 요압 자신의 지위와 동등하게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을 보고 시기했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이유로 그는 아브넬  (Abenner)을 살해했는데 단지 차이가 있다면 아브넬을 죽인 것 은 자신의 동생 아사헬에 대한 복수라는 점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그럴듯한 변명이 있을 수 있었지만 아마사를 살해한 것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그는 그의 동료 장군을 살해 한 후 세바를 추격하려고 하면서 아마사의 새체 곁에 한 사람을 남겨 놓고 그에게 군대에게 가서 아마사는 마땅히 죽어야 할 죄를 범해 처형됐다고 전하라고 지시한 후 이렇게 말하도록 하였다. \”왕을 위하는 자는 그의 군대장관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를 따르라\”

 그 시체를 많은 사람이 다니는 길 안에 놓여 있었는데,[㈜ 투키디데스의 글에 나오는 구절이다.] 초 병이 시체를 들어 길에서 떨어진 곳에 옮겨 놓고 외투로 덮어 놓을 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 이상하게 여기며 동정하는 말들을 했다.[㈜ 본문에 불확실함. 다른 본문에선는 \’그 켵에 서있을 때에 그들은 한참동안 이 시체를 의아하게 (혹은 노려 보았다) 여겼다\’ 는 뜻으로 쓰였다.] 이 일이 벌어진 후, 사람들은 요압을 따랐다.요압이 세바를 찾아 이스라엘 전지역을 수색할 때, 한 사람이 세바 가 아벨 벧마아가(Abelochea)라는[㈜ 성경에는 \’아벨과 벧마아가\’로  되어있다. 이곳은 룰레 호수의 북쪽으로 10마일 되는 곳인 상부 요단계곡에 있는 현대의 아블(Abl)로 잠정적으로 추정된다.] 요새에 있다고 알려왔다. 그때 요압은 그곳으로 가서 그 성을 포위하고 [삼하 20:14], 그 주위에 울타리를[㈜ 참). 루키안 수정본의 Cavraka. 70인역에는 provscwma로 되어 있다.] 세우고, 병사들로 성벽의 밑을 파게 하고, 그곳으로 침투하라고 명령하였는데,[㈜ 성경 (70인역과 탈굼 사본에서도 동일함)에는 \”요압과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벽을 무너뜨릴 궁리를 하고 있었다\”고 되어 있다. 요세푸스는 어근이 shahath(구멍.함정)에서 유래한 명사에서 나온 동사로 mashhlthlm(남성 분사 복수형) 취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의 번역은 \’갱도\'(동굴)를 의미하며 이 뜻은 현대에 와서 Edwald가 지지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 어근의 뜻은 \’파괴하다\’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레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이 일을 끝내었나이다.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도 충성된 자중 하나이거늘\” 이라고 되어 있다. 요세푸스의 해석은 부분적으로 탈굼에 나온 내용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 성 사람들이 요압이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여 요압을 심히 불쾌하게 만들 었기 때문이었다.



8. 한 노파가 포위당한 성을 구함 〔삼하20:16 〕



   한 현명한 노파가 자신의 고향이 곧 파괴될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고 성벽 위로 올라가 요압의 병사들을 통해 요압을 불렀다. 요압이 가까이 오자, 그녀는 하느님께서 히브리 사람들을 그 대 적에게서 구원하시고자 그들을 쫓아내려고 왕들과 군대장관들 을 택하셨다고 전제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331) \”그런데 당신은  아무런 잘못도 범하지 않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성(母城 )인 이곳을 파괴하고 피폐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요압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계속 은총 내려주실 것을[㈜ \”자신에게 계속 은총 내려주실 것을\” 이라는 말은 70인역에서 나온 말이다.] 기도한 후 자신은 그성 사람 어느 누구도 해할 생각이 없으며 더욱이 성을 파괴할 생각은 꿈에도 없다고 하면서 왕께 반역한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넘겨준다면 포위를 풀고 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말했다. 그 여인이 요압의 말을 듣고 잠시 기다려 준다면 세바의 머리를 그 앞에 바로 던져 주겠노라고 말했다.

  그 직후 여인은 성 주민들에게 내려가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그토록 많은 은혜를 베푼 다윗 대신에 아무도 모르는 그런 무가치한 놈을 왕으로 세워 놓고 여러분의[㈜ 다른 본문에는 \”우리\”로 나와 있다.] 자녀와 아내들이 멸절되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까? 그것도 단 하나의 성으로 그토록  크고 강력한 힘에 대항해서 말입니다.\”[㈜ 이 여인의 웅변은 성경에 나온 것이 아니다.] 이어 그녀는 그들을 설득하여 세바의 머리를 잘라 요압의 군대 앞에 던지라고 하였다. 이 일이 행해졌을 때 다윗왕의 군대 장관은 퇴각 명령을 내리고 포위를 풀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시 모든 백성 의 장관에 임명되었다. 다윗왕은 브나야를 경호원 및 그를 추종 하는600명의 대장으로 삼고 아힐룻(Achilos)의[㈜ 성경의 아힐룻. 참).고디.7권. 5:4(110)의 각주 154). 아도람을 제외한 모든 관리들의 이름이 이 전 문단에 나와 있다. ]아들 여호사  밧은 사관으로, 아도람은[㈜ 성경의 \’아도람\’ 70인역에는 !Adwneiravm.] 감역관으로, 세바(Susa)는[㈜ 이 부분에 해당하는 70인역의 대부분의 사본들과 동일함. 성경에는 \’세바\’로 나옴. 고대 7권.5:4(10)에서는 그의 이름이 세이사(Seiasa)로 나온다.] 서기관으로,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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