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권 제 5장 다리오 왕의 손자(아들) 아닥사스다(아하수에로(요세푸스는 아닥사스다를 아하수에로로 잘못 쓰고 있음-역자(2) 주))가 어떻게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푼 것과 또한 에스라와 느헤미야에게 대하여

 


 제 5 장



다리오 왕의 손자(아들) 아닥사스다(아하수에로(요세푸스는 아닥사스다를 아하수에로로 잘못 쓰고 있음-역자(2) 주))가 어떻게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푼 것과 또한 에스라와 느헤미야에게 대하여



1. 아닥사스다와 에스라 (에스드라 1서 9. 1, 스 7 : 1)



  다리오 왕이 죽자 그의 아들 아닥사스다(Xerxes)가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요세푸스는 이 본문에서 다시 성경에 나온 연대 순서를 교정한다. 성경에는 아닥사스다가 다리오 다음에 나온다. ] 그는 부친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신앙심까지도 물려받았다. 그는 하느님께 제사 드리는데 있어서도 부친이 행했던 선례를 좇아 모두 시행하였고 유대인들을 극진히 대우하였다. 그 당시 대제사장은 예수아(Jesus)의[㈜ 참). 느 12 :10, \’예수아(헬라어는 J?s?s)는 요야김 (헬라어는 Joakeimos)을 낳았고\’] 아들 여호야김(Joakeimos)이였다. 또한 바벨론의 백성들로부터[㈜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설명.] 존경받는 의로운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에스라(Ezra)였다. [㈜ 많은 70인역 사본들과 같이 헬라어로는 Ezdras (A 사본은 E[xoa\”, B사본은 E[sra\”) : 이문은(여호수아에서) 루키안에서와 같이 Ezdras.] 그는 백성들의[㈜ 이문은 \’하느님의\’.]  대제사장(chief-prlest)이었으며[㈜ 에스라를 소재하는 절에서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 나오는 것은 그가 아니고 대제사장이 라 불리는 조상 아론이다. 그러나 에스드라 1서 9 : 40에서에스라는 대제사장으로 불린다. ]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자였고 아닥사스다 왕과도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에스라는 바벨론에 사는 일부 유대인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에 올라 갈 것을 결심하고 자기가 누구인지를 수리아 총독에게 알리는 편지를 써달라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요청하였다. 이에 아닥사스다 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써주었다. \”왕중의 왕 아닥사스다가 제사장이요 하느님의 율법학자인 에스라에게 문안하오. 나는 만백성을 사랑하는 나의 의지의 한 표현으로 내 나라에 살고 있는 레위인들이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소. 나와 나의 일곱 고문관들은 그렇게 하면 그들이[㈜ 즉 \’유대인\’.] 유대땅을 하느님의 율법에 따라 가꾸게 될 것이니 좋을 것일라고 생각하였소. 그리고 나와 내 친구들이 주기로 맹세한 선물들을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 하느님께 예물로 바치도록 하시오. 또한 바벨론에서 하느님께 봉헌된 온갖 금과 은을 모두 예주살렘으로 가져가고 또 무엇이든지 금이나 은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만들도록 하시오. 그리고 내가 그대에게 준 성전기명들 외에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비용은 국고에서 충당해 줄 터이니 마음껏만 들도록 하시오. 또한 나는 이미 수리아와 베니게의 재무장관에게 서신을 보내어 제사장이요 하느님의 율법학자인 에스라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시행하라고 명령해 두었소. 나는 하느님의분노가 나와 내 자손들에게 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율법에 따라 제사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다 제공하겠소. 밀도[㈜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은 100달란트와 많은 술과 기름과 소금을 말한다. ] 100코르(KOr)[㈜ Kor는 약 370리터나 11부셀(bushel)과 같다.]정도 드리겠소. 또한 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성전 음악가들, 문지기들, 성전의 종들, 그리고 서기관들에게는아무런 세금도 징수하지 말라고 지시해 두었고 그들을 다치게하거나 못살게 굴지 말라고 일러 두었으니 안심해도 좋을 것이요. 그리고 에스라여, 하느님이 그대에게 주신 지혜로 능력있는 판관들을 잘 선택해 수리아와 베니게를 잘 다스리도록 하시오. 율법을 모르는 자에게 율법을 가르쳐 알게 해주어 율법을 몰라서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사람이 한 명도 없도록 해주시오. 그러나 율법을 알면서도 일부러 준행하지 않는 자는 처형시키거나 벌금을 물리도록 하시오. 그럼 이만 잘 있으시오.\”



2. 에스라가 유대인들에게 아닥사스다 왕의 서신 내용을 알리다 (에스드라 1서 8 . 25,스7 27)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서신을 받고 매우 기배하며 왕의 마음을 움직여 큰 은혜를 내려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찬양을 올렸다. 그리고 나서 에스라는 왕의 서신을 바벨론의 유대인들에게 읽어 주고 서신 원본은 잘 간직해 두었으며 복사본을 만들어 메대(Media)에 살고 있는 자기 동족들에게 보냈다. 메대의 유대인들은 그 서신을 받아 보고 아닥사스다 왕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에스라를 극진히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하며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벨론으로 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은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는 지파가 아시아와 유럽에 있는두 지파이며 나머지 열 지파는 유브라데(Euphrates)강 건너편에 살고있다. 그 열 지파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 왕의 편지를 공중 앞에서 읽히는 것에 관한 설명과, 이것을 메대(Media)로 보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벨론에 남아있는 자들의 숫자에 관한 기록은 에스드라일서와 에스라에 첨가된 것이다. 바벨른 유대인의 후대 역사에 대해서는 고대. 18권.9. 1(310) 이하를 보라.]그들 중에 제사장들, 레위인들, 문지기들, 성전 음악가들, 그리 고 성전의 종들등 많은 사람들이 에스라에게 몰려들었다. 그래서 에스라는 포로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을 따로 유브라데 강[㈜ 에스드라 1서, \’데라스(Tharas)라 불리는 강에\’. 에스라, \’아하바(\’Ahaw?)에 이르는 강에\’. 룹튼(Lupton)은 요세푸스가 에스드라일서에 나오는 데란(Qevran)을 페란(pevran)으로 잘못 기록했다고 생각해왔다<이것은 찰스(R. Charles)의 책에서 즉(S. A Cook)이 인용한 것임, \’외경과 위경\'(Apocrypha and Pseudepigrapha 1 : 50 주)] 건너편에 모이게 하고 3일간 금식할 것을 선포하며 그곳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동안 적들의 공격을 받지않고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하느님께서 백성들을 지켜주실 것이니 백성들을 호위할 기병대가 필요 없다고 전에 말했기 때문이었다. [㈜ 본문은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 나오는 준비의 설명을 요약한 것이다. ] 마침내 그들은 기도를 마치고 아닥사스다 왕 재위 제 7년 1월 12일에 유브라데 강을 출발해, 같은 해 5월에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되었다. [㈜ 아하수에로 재위 7년 5재월째에 도착했다는 날짜는 앞선 절에 근거한 것이다. 에스드라 1서 6 : 6, 스 7 : 8.1] 그리고 에스라는 즉시로 제사장을 겸하고 있는 무관들에게 은650달란트와 은그룻 100달란트와 금그릇 20달란트와[㈜ 에스드라 1서의 에스라는 100.] 금보다귀한 동그롯 12달란트를[㈜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12(에스라는 2)개의 금같이 보이는 좋은 놋 그릇들\’ 요세푸스는 양서에 나오는 금잔 20개는 누락한다. ] 선물로 주었다. 이 선물들은 아닥사스다 왕과 그의 고문관들 그리고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들이 보낸 것이었다. 에스라는 이 선물들을 제사장들에게 전달한 후 온백성을 예루살렘까지 안전하게 인도해 주신 하느님께 12마리의 황소를 잡아 번제를 드렸고 숫양 90마리와[㈜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96.]  어린양 72마리,[㈜ 에스드라 1서(대부분의 사본들)\’에서. 에스라는 77.] 숫염소 12마리를 속죄제물로 바쳤다. [㈜ 에스라에서. 에스드라 1서에서는 \’화목제로 수양 12마리\’.] 그는 또한 아닥사스다왕의 서신을 코엘레-수리아(Coele-Syria)와 베니게의 총독들및 왕의 대신들에게 보냈다. 그들은 결국 왕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들을 돕고 그들이 필요한 물품을 공급해 주게 되었다.



3. 에스라가 이방족과의 혼혈을 개탄하다 [에스드라 1서 8:68,스9: 1]



  이상이 에스라가 계획하여 성공리에 이룩한 업적이었다. 이는 하느님께서 그를 선하고 의롭게 보아주셔서 그가 하는 일을 축복하신 결과였다. 그 후 어떤 이들이 에스라에게 와서 고소하기틀 예루살렘의 일반·백성뿐 아니라 레위인들과 제사장들까지도 율법을 어기고 이방 여자와 혼인하는 둥 제사장 가문의 혈통이 더럽혀지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또한 그들은 하느님께서 이 일로 인하여 온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다시 그들에게 불행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에스라에게 도움을 간청했다. [㈜ 에스라에게 율법 실행에 대해 호소하는 부분은 요세푸스의 첨가분임.] 이소식을 듣고 에스라는 애통하여 자기 옷을 및으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수염을 헝클어뜨리고 땅바닥에 털색 주저앉았다. 그이유는 백성들의 지도자들까지도 이런 불경한 죄악에 함께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한 그가 만약 그들에게 이방 부인들과 자식들을 내어물으라고 명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에스라는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 이 부분은 에스드라 1서 8 : 90, 에스라9 : 15(히브리 성경은 16절)을 잘못이해한데서 기인된 첨가분이다. 거기서 에스라는 하느님께 한 그의 기도를 맺는다 (요세푸스가 다음 부분에 언급한다).] 이에 선량한 시민들은 이 난감한 사태를 실감하고 에스라와 함께 울며 애통해 하였다. 그후 마침내 에스라는 땅에서 일어나 두손을 쳐들고 아래와 같이 기도하였다. \”하느님이시여, 이 백성들은 자기 선조들이 불경한 죄를 범하고 어떠한 일을 당하게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이러한 가공할 죄를 또다시 저질렀습니다. 그들의 죄를 생각하면 저는 하늘을 바라볼 면목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포로생활의 환란과 불행속에서도 씨와 남은 자(a seed and remnant)를 건져 내시고,바사 왕의 마음을 돌이키시어 유대 백성으로 하여금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 분이시니,[㈜ 이문들은 문장중에 약간의 누락이 있다. ] 부디 이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그들이 비록 죽을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그들을 처형하지 마시고 살려 주시옵소서, \”



 4. 에스라가 유대인들을 이방 여인과 이혼하도록 설득하다 (에스드라 1서 8 : 91,스5 : 1)



  에스라가 기도를 마친 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모여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스가냐(Achonios)라는[㈜ 에스드라 1서는 !Ieconiva\”, 루키안은 !Seceniva\”, 에스라는 스가냐.] 예루살렘의 지도자가[㈜ 에스드라 1서에서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 중 예엘로스(Je?los)의 아들. 에스라에는 \’엘람의 자손중 여히엘의 아들\’] 와서 에스라에게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죄를 범한 자들은 그들의 이방 아내와 자식들을 내어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들이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에스라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이방 아내와 그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을 쫓아 내겠다는 맹세를 하도록 만들었다. 에스라는 이 맹세를 받아낸 직후 성전 뜰로부터[㈜ 혹은 단순히 \’성전으로부터\’. 에스드라일서에는\’성전 앞에서부터.] 엘리아십 (Eliasib)의[㈜ 성경에는 엘리아십 (Eliashib).] 아들인 여호하난(Joa-nnes)의[㈜ 에스드라 1서는 요아난(!Iwanan) B 사본은 (!Iwna\’) : 에스라는 Yehohanan.] 방으로 가서 자신의 슬픔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온종일[㈜ )에스드라 1서나 에스라에서는 그가 거기서 지낸 기간에 대한 말은 없다. ] 그 곳에 머물렀다. 그리고 나서 에스라는 장로들과 회의 1,0를 하여 포로에서 귀환한 자는 각자가 있는 곳에서 2~3일 이내에 예루살렘에 모이지 아니하면 국외로 추방되고 재산은 몰수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그러자 유다(Judah)와 베냐민(Benja-min)지파 사람들은 3일째에 즉, 마게도냐 사람들은 아켈라이오스(Apellaios)라고 부르며 히브리인들은 카슬류스(Chasleus)라고[㈜ 수정된 본문. 사본들은 Xenios, folios, Tebeth. 기슬르(Kislew)는 율리우스력으로 대략 12월이다. 기슬르를 아펠라이오스(Apellaios)와 같다고 하는 것은 고대. 12권. 5 : 4(248), 7 : 6(319) 이하에 나온다. ] 부르는 9월 20일에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장로들과[㈜ 이문 \’위에 있는방\’은 확실히 틀렸다.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성전 앞 넓은 곳에\’.] 함께 성전 뜰에[㈜ 첨가본] 앉아 있었는데 추위로 인해 몹시 고통을 겪었다. 에스라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율법을 어긴 죄를 책망하고 이제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이방 아내를 쫓아 내면 그들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권면하였다. 그러자 백성들은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수가 워낙 많았고 추운 겨울인 탓에 이러한 일을 불과 하루 이틀내에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에스라는 각 지역의 지도자들에게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람들을 조사하게 하여 특정한 날을 정해서 장로들을 모시고[㈜ 수정된 본문 라이나흐(Reinach)는 에스드라 1서를 따른다. 그는 에스드라1서의 본문 sthvwsan de; oij prohgouvmenoi tou\’ laou\’  !all!o$i ge hJgevmovne\” menovnte,  즉 \’족장들을 남아있게 하고\’ 라고 할 것을 제안한다. 양서는 그 절에 더 나아가 \’장로들과 사사들이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함께 예루살렘에 온다\’고 나온다. 나는(R.Marcus) 요세푸스가 hJgemovne\”로 이 \’사사들\’을 의미했다고 추정한다. ] 그들이 원하는 장소에 모이도록 하차고 지시했다. 에스라의 지시대로 그들은 10월 1일부터 11월 1일까지[㈜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 따르면 그 조사는(다음해) 첫달의 초하루에 와서야 끝이 난다. ] 이방 여인과 결혼한 자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대제사장 예수아(Jesus)의 많은 후손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러나그들은 인간의 정(情)에 연연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율법을 더 소중하게 여겨 이방 여인들과 그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을 과감히 내어물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숫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 여기서 우리 는그들의 이름을 밝힐 하둥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에스라는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죄를 범한 사람들을 정결케 하여 그 후에도 그들의 정결한 상태가 유지되도록 하였다.



5. 에스라가 초막절에 율법서를 읽다 [에스드라 1서 9 :38,느8 : 1]



  유대 모든 백성들은 7월에 장막절(the festival of Taber-nacles)을[㈜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서 백성들은 일곱째 달 첫날에 율법을 읽으러 모인다(느헤미야에 따르면 둘째 날에). 그들은 장막절을 일곱째 달에 지냈다는 모세의 율법을 읽는다. 어떤 날이라고 명기되지 않은, 이후에 그들은 그 절기를 지낸다. 느헤미야에 나오는 이 귀절들로부터 모세에 속한 율법에서는 (레 23 : 34, 민 29 : 12, 고대.3긴. 10 : 4(244)) 그 절기가 그달 15일에 시작된다고 할지라도 이 경우에는 그 절기가 일곱께 달의 3일에 시작된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종교력 (religious calendar)의 발달과 장막절의 날짜에 관해 모르겐슈테른(J. Morgenstern),\’Hebrew Union CollegeAnnual\’, 10, 1935, p.56 이하를 보라. 요세푸스가 에스라가 율법을 읽기 시작한 것이 그 달의 며칠인지 기록하지 않은 것은 느헤미야와 오경 사이의 모순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어 성전 동문(東門) 가까이에 있는 뜰에[㈜ 에스드라1서, \’동쪽으로 나있는 성전입구의 넓은 곳에\’ : 느헤미야, \’수문앞 광장에\’. 느 3 : 26에서 수문은 도시의 동편 부분에 있다고 한다. 느3장에 나오는 지형학적인 문제에 관해 M. Burrows,\’Annual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14, 1933/34, p.130이하를 보라.] 올라가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을 읽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래서 에스라는 백성들 가운데 서서 이른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서를 읽어 주었다. 이에 백성들은 그 율법을 듣고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하면 의로와 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또한 지난 날에 이 율법을 지켰었더라면 그런 고통스러운 재난은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광경을 본 에스라는 백성들을 책망하며 오늘은 성일(聖日)인 장막절이니 울지 말라고 하고 이같은 날에 슬퍼하며 우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에스라는 또한 그들에게 지난 날의 잘못을 회개하고 반성하는 것은 앞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안전대 역할을 해줄 것이니 이제 그만 슬퍼하고 장막절을 기쁘고 즐겁게 지내라고 권면하였다. [㈜ 상기(上記)한 본문에서 성경에 나오는 어떤 설명은 빼고 다른 설명을 삽입시켰다. 요세푸스가 느 8 : 9에 언급된 총독 느헤미야(에스드라일서에는 느헤미야의 이름은 빠짐) -그는 율법을 설명하는 자로 에스라와 연관된 지도자중의 한명이다-를 지나치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느헤미야란 이름은 원래 에스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 장에 억지로 삽입 되어졌다고 생각한다. ] 이에 백성들은 에스라의 권면대로 8일간의 장막절을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지킨 후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고 개혁조치를 실행한 에스라에게 감사의 표현을 한 후 각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 이 부분은 성경의 어떤 부분은 빠지고 다른 것이 첨가됨.] 에스라는 이같이 백성들의[㈜ 이문은 \’하느님\’.] 존경을 받고 살다가 늙어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시신은 성대한 장례식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장사되었다. [㈜ 성경에 나오지 않음. 랍비전승에 의하면 에스라는 바사에서 죽었다. 참).Ginzberg, 4 : 358, 6 : 446.] 이 무렴 대제사장 요아김(Joakeimos)이 죽고 그의 아들 엘리아십(Eliasib)이 대제사장직을 계승하였다. [㈜ 참). 고대. 11권. 5 : 1(121)]



 6. 느헤미야가 수산에서 예루살렘의 소식을 전해듣다 [ 느 1:1]



  [㈜ 다음 부분 고대. 11권. 5 .6-8(159-183)에서 느혜미야 이야기에 대한 요세푸스의 설명은 성경과 많이 다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어떤 이유를 가지고 그가 현존하는 히브리어 헬라어 본문과 상당히 다론 그에 앞선 본문을 가겼으리라고 추정한다. ]



  유대인 포로 중에 느헤미야(Nehemiah)라는[㈜ 헬라어로는 Neemias (70인역도 같다).]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아닥사스다(Xerlfes)[㈜ 성경에는 아닥사스다(Artaxerxes). 현대 학자들은 아닥사스다 I세 (주전464-424)나 아닥사스다 Ⅱ세(주전 404-359)를 의미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참). 부록.] 왕에게 술 시중을 드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가 하루는 바사의 수도 수산성 앞을 거닐고 있었는데 어떤 이들이 긴 여행을 마치고 성안에 들어오면서 히브리말로 서로 대화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에게로 가서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묻자 그들은 유대에서 오는 길이라고 대답하였다. [㈜ 성경에 나와 있지 않음. 참). 느 1 : 2,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에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 즉\’. \’] 이에 느헤미야는 궁금하여 그곳 사람들은 어떻고,수도 예루살렘은 어떠한 상황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기를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졌고 인근 국가들이 예루살렘을 침범하여 밤낮으로 약탈하고 백성들에게 갖은 해를 다 끼치고 있으며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고 예루살렘의 토로에는 날마다 시체들이 가득 널려져 있다고 말했다. [㈜ 성경의 부연.]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자기 동족들이 당하는 참담함에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오, 주님, 우리 민족이 적들의 먹이가 되어 이렇게 고통당하는 것을 얼마나 더 지켜만 보고 계시렵니까?\”[㈜ 성경에는 느혜미야가 예루살렘에 관한 슬픈 소식을 듣고 여러날 슬퍼하며 금식한다. 요세푸스는 본물에서 느헤미야의 기도를 많이 축소시킨다. ] 그가 슬픔에 잠겨 성문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을 때 어떤이가 와서 왕이 식사하실 시간이 되었다고 일러주었다. 그러자 느헤미야는 몸도 씻지 않고 즉시로 급히 달려가 왕께 술을 따라드렸다. [㈜ 성경에 나와있지 않음. 성경에 따르면 느헤미야는 기슬르월에 그 소식을 듣고 니산월(4개월 후)에 그의 사역을 시작한다. ] 식사를 마친 왕은 평소보다도 훨씬 기분이 좋았는데 느헤미야의 안색이 매우 좋지 못한 것을 보고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 성경에 나와있지 않음.] 이에 느헤미야는 먼저 자기의 말에 지혜와 설득력을 더해 주시라고 하느님께 기도한 후,[㈜ 성경에는 \’그리고 나는 하늘의 하느님께 기도하노니\’. 또한 성경에는 이 기도가 느헤미야가 그의 슬픔을 말하고 나서 나오며 예루살렘으로 떠나게 하라는 요청을 하기 전에 나오는데 요세푸스는 여기서 결합시킨다. ] 이렇게 왕에게 대답하였다. \”아닥사스다 왕이시여, 제가 저의 선조의 무덤과 기념비가 있는 예루살렘성이 무너졌고 성문은 불타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 슬퍼하지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디 저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저로 하여금 그곳에 가 성벽을 보수하고 성전을 완공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 이문은 \’성전은 가장 큰 역사를 완성한다. \’ 성전은 성경에 나오지 않음.]  이같은 말을 들은 왕은 느헤미야에게 호의를 베풀어 그곳의 총독들에게 느헤미야를 잘 대우하라는 편지도 써주며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구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 이 조서가 느헤미야의 요청에 따라 그에게 주어졌었다는 성경의 설명이 빠진다. ] 또한 왕은 느헤미야에게 \”자, 이제 그만 슬픔을 거두고 즐겁게 일에 몰두하시오 \”하며 그를 격려해 주었다. 그래서 느헤미야도 왕에게 그런 약속을 받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후 슬픈 기색을 떨쳐 버리고 기쁨으로 맡은 바 일에 충실하였다. [㈜ 성경에 나오지 않음.] 왕은 느헤미야를 불러 마리아와 베니게와 사마리아의 총독인 아다이오스(Addaios)에게[㈜ 성경(느 2 : 7-8)은 \’강 서편 총독들에게\’와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라는 조서를 언급한다. Addaios라는 이름은 아삽이 변한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의 총독 명칭은(그가 그에 앞선 우리가 가진 것과 같은 본문울 가졌다고 가정하면) 요세푸스의 부주의로 인한 것임이 확실하다. ] 보내는 편지를 주었다. 그 편지에는 느헤미야를 잘 예우하고 그가 성전 공사 하는데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공급해 주라는 지시가 기록되어 있었다.



 7.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백성들에게 연설하다[느2 : 11]



  느헤미야는 바벨론에 가서 성전 재건공사를 자원하는 동족들을 이끌고 아닥사스다 왕 재위 제 25년에[㈜ 성경에 따르면 (아닥사스다의)제 20년.요세푸스는 아하수에로 만이 20년간 재위했었으므로(주전 485-465) 아닥사스다 대신 아하수에로를 대체함으로써 그 자신이 난해한 연대기에 연루된다. ]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아닥사스다 왕의 편지를 하느님께[㈜ 이문은 \’백성들에게\’ Chamonard는 deivxa\” tw\’ qew\’를 \’하느님에게 감사를 돌렸다\’ 로 마음대로 번역했다. 그러나 더욱 문자적인 번역은 허드슨 하버캠프(Hudson-Havercamp)의 책에서 오래 전에 주목했듯이, 상기(上記)한 바와 찬다. 이는 고대. 10권. 1 :4(16)에 나오는 병행구(왕하 19: 14에대해)로써 지지받는데 거기서 요세푸스는 히스기야가 앗수르 총독의 편지를 \’성전 안에\’ (성경에는 \’하느님 앞에\’) 두었다고 한다. ]  보인후, 아다이오스(Addaios) 총독과 다른 총독들에게도 보냈다. 느헤미야는 온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한 후, 성전 뜰 중앙에 서서다음과 같이 연설하였다.[㈜ 성경(느 2 : 17)은 느혜미야가 그 성의 어느 곳에서 백성에게 연설했는지를 언급하지 않는다. 한편 요세푸스는 느헤미야가 밤에 성벽을 시찰한 것에 대해 나오는 선행구절들(12-16)은 누락한다. ]  \”오 나의 동족 유대인들이여,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의로움을 기억하셔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성벽을 재건하고 성전을 완공할 수 있도록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인근 국가들의 잦은 침략으로 그들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지금 우리가 성전을 보수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장에 이 일을 방해하려 들것입니다. 그러 니 저는 여러분들께서 먼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들이 그들의 적대감을 거뜬히[㈜ sunevcein의 다양한 의미에 판하여 참). 고대. 11권.4 : 2(79) 각주 72.] 쳐부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밤낮으로 성전을 건축하도륵 합시다\” 이 말을 마친 후 느헤미야는 행정가들에게 성 벽을 즉시[㈜ 성경의 확대 설명.] 측정하라고 지시하고 각 마을과 도시의 능력에 따라 일을 구분하여 분담시키도록 명령하였다. 그리고 느헤미야자신도 그의 여러 종들과 함께 성전 재건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약속한 후 백성들을 해산시켰다. [㈜ 요세푸스는 이 몇 몇 단어들로써 느헤미야 3장의 내용을 요약한다. ] 이후부터 유대인들은 정 식으로 공사 준비를 시작하였다. 이 유대인이라는 명칭은[㈜ 헬라어로는 J?daioi  물론 이 설명은 성경의 첨가분이다. ] 유다지파(the tribe of Judah)에서 유래된 것으로, 유다지파가 처음으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들과 그들의 땅을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8.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요새화하다  [느 4 : 7]



  한편 암몬, 모압,[㈜ 성경에 모압인들은 나와 있지않다. 반면 아람사람들과 아스돗사람들을 포함하여 산발랏, 도비야, 게셈의 세 지도자들의 이름은 언급한다. ] 사마리아 그리고 코엘레-수리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성벽 재건공사가 신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분개하며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공사를 방해하기 위해 갖은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많은 유대인들을 살해하였고[㈜ 성경에는(느 4 : 11, 히브리 성경으로는 4 : 5)대적들은 유대인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했지만 그대로 되진 않았다. ] 이방인들을 고용해 느헤미야까지도 없애버리려고 하였다. [㈜ 참). 느 6 : 1, 10 이하.] 또한 그들은 예루살렘 주변 국가들이 동맹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예투살렘 주민들이 공포와 불안에 떨게 만들어 스스로 성전 재건을 포기하도록 만들 속셈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농간도 느헤미야의 성벽 건축에 대한 열의를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느헤미야는 경호병들을 직접 지휘하여 이끌고 다니며 백성들을 보호하였으며 성벽 건축을 위해 불철주야로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자기의 신변 안전을 위해서도 세심한 신경을 줬는데 이는 그가 죽음을 두려워 해서가 아니라 만일 자기가 성벽 건축 중에 죽게 되면 백성들이 성벽공사를 완성하지 못하리라고 염려하였기 때문이었다. [㈜ 수정된 본문. 느헤미야의 동기에 관한 성경에 나오지 않는 설명은 느 4 : 14(히브리어 성경은 8절) 후반절을 오해한데서 기인한 것같다.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그러므로 그는 백성들에게 만약을 대비해서 일을 할 때는 항상 무장을 하고다니라고 명령하였다. 그래서 석수들 뿐만 아니라 건축 자재를나르는 사람들도 칼을·지니고 있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방패도그들 근처에 두라고 명령하였다. 또한 500보(步)마다[㈜ 거리에 대해 상술한 것은 성경에 없는 사항이다. ] 나팔수들을 배치하여 만일 적들이 나타나면 백성들에게 나팔을 불어알려서 적들과 싸울 준비를 하여 무방비 상태에서 적들로부터 습격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지시하였다. 그는 밤마다 그 도시를 순찰하였다. 그는 그 공사를 완공하기 위하여 피곤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는 단지 필요한 분량만을 취했을 뿐이며 자신의 안락을 위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느혜미야(Nehemiah)는 이와같이 힘든 일을 2년 4개월 동안 감당했는데 이는 예루살렘 성벽을 완공하는데 그 만큼의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성벽은 아닥사스다(Xerxes)왕치세 28년 9월에 완공되었다. [㈜ 이 계산에 따르면 그 역사는 아하수에로(Xerxes) 제 26년 5월에 시작했었어야 한다 (2년 4개월 먼저 임). 이 것은 그 자체로도 부정확한 5 : 7(168)에 나오는 진술과 다르다. 그곳에는 아하수에로 제 25년에 시작한다. 더욱이 성경에 따르면 그일은 52일 만에 끝나는데 (제 6월인)엘룰(Ellul)월 25일에 마친다. 이것은 우리가Bewer와 같이 생각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진 본문보다 히브리어 사본이든지 헬라어 사본이든지 요세푸스가 그에 앞선 느헤미야서 본문을 가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참). 주 168, J. Bower, \’JBL\’, 63권, 1924보완, p.224 이하(이는 본문이 와전된 것임).]

  성벽 공사가 마침내 끝나게 되자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이러한 공사로 인해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으며 8일 동안 축제를 벌였다. [㈜ 참). 느 8 : 18 : 절기는 에스라서에 나온 한 부분으로 5 : 5(154)에 이미 언급이 된다(주 161을 보라), 뒤 따르는 본문에서 요세푸스는 가능한한 최대로 느헤미야 5 : 7-13을 요약한다. ] 수리아(Syria)에 정착해 있는 나라들은 성벽이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매우 화가 났다. 한편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인구수가 적은 것을 보고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현재살고 있는 도시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주거를 옮기라고 권고하였다. 그는 그들을 위해 자비로 집을 마련해 주었다. [㈜ 성경에 없는 사항. 느헤미야 11장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일부분만이 예루살렘에 정착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진술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유다의 도시들에\’ 머물렸다 (1, 3, 20절).]느혜미야는 또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그곳에서 거처하는 동안 섬기는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백성들에게 땅을 경작해서 얻은 소산물의 십일조를 예루살렘으로 가져 오라고 말했다. 백성들은 이런 느헤미야의 명령에 복종하였고 그 결과 예루살렘에는 더 많은 인구가 살게 되었다. 느헤미야는 위대하고 칭찬받을 만한 업적을 많이 이루어 놓은 후에 연로하여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인정이 많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으며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하여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그의 영원한 기념비로 남겨 놓은 것이었다.[㈜ 느헤미야의 이런 특성은 성경에 첨가된 것이다. ] 지긍까지 아닥사스다 왕 때 일어난 일들을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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