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권 제 2장 톨레미 필라델푸스가 유대의 율법을 헬라어로 번역하게 한 것과 많은 포로들을 자주 사면한 것, 그리고 하느님께 많은 예물을 봉헌한 것에 대하여

 


 제 2 장



톨레미 필라델푸스가 유대의 율법을 헬라어로 번역하게 한 것과 많은 포로들을 자주 사면한 것, 그리고 하느님께 많은 예물을 봉헌한 것에 대하여



1. 필라델푸스가 유대율법을 자기 도서관 장서용으로 번역을 명하다



  알렉산더 대왕이 12년간 지배한 후에, 톨레미 소테르(Pto-lemy Soter)가 그의 뒤를 이어 41년간[㈜ 다른 사본에는 \’40년\’. 그는 주전 323년에서 305년까지 총독이었으며 그후 주전 305년에서 283년까지는 왕이었으므로 41년간 애굽을 다스린 것이된다.] 통치하였다.당시 필라델푸스(Philadelphus)는 애굽에서 왕권을 이어받아 39년간 다스렸다.[㈜ 주전 283-245년.] 그리고 그는 율법을 번역하고[㈜ 본문에서 요세푸스는 소위 아리스테아스(Aristeas)의 편지-헬라 유대인의 변증적인 작품을 의역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주전 2세기의어느 해에 쓰여졌을 것이다. 독자들은 다음에 나오는 번역본들을(각주와 함께) 참고하는 것이 편리할 것이다.  택커래이(H. St. J. Thackeray), \’Jewish Quarterly \’CAP\’, ii. 83-122 ; 미캄(H. Meechah), \’The Oldest Version of the Bible\’, 1932. 번역과 주석을 포함하여 가장 학구적이고 포괄적인 것은 트라몬타노(R. Tramontano)의 \’La Lettera 야 Aristea a Filocrate\’. 1931이다. Aristeas와 관련된 요세푸스의 본문에 관하여는 슈텔린(G. Stahlin)의 \’Theologische Studien und Kritiken\’, cii 1930, pp.323-331에 나오는 \’Josephus und der Aristeasbrief\’를 참조하라.] 애굽에서 노예생활을하고 있는 약 12만명의[㈜ 아리스테아스에는 \’100,000약간 더 되는\’. 참). 12권.(24) 주 27.] 예루살렘 주민들을 해방시켰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팔레룸(Phalerum)의 데메트리우스(Demetrius)는[㈜ 소요학파(Peripatetic school)의 유명한 아덴(Athene) 철학자로 주전 350년에 태어났다. 그는 주전 297년 애굽에 와서 톨레미 I 세에 의해 도에서 공무를 보았지만 톨레미 필라델푸스(Ptolemy Philadelphus)가 등극한 후 곧 추방되었다. 그러므로 그에 관한 아리스테아스의 기록은 허구이다.] 왕실 도서관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전 세계의 모든 책들을 수집하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발견하거나 책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면 그것을 구입하곤 했었다. 그는 매우 헌신적으로 책 수집에 전념하였기 때문에 왕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고자 노력하였다. 한번은 톨레미가 데메트리우스에게 몇만 권의 책을 수집하였느냐고 묻자, 그는 현재 소장하고 있는 권수가 약 200,000권 정도이지만 빠른 시일내에 500,000권 이상의 책을 모으게 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또한 그는 유대에도 연구할 가치가 있고 국왕의 도서관에 소장될 만한 유대인들의 율법에 관한 책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 그것들은 유대인들의 문자와 언어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헬라어로 번역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그 이유가, 비록 그들의 문자가 수리아 고유의 문자(아람어)와 비슷하고 그 언어도 다른 언어들과 유사한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분명한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데메트리우스는 \’우리가 이 책들을 번역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또한 우리 도서관에 유대인들의 책을 갖고 있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다른 사본에는 \’그들에게는\’.] 그만한 댓가를 지불할 수 있는 충분한 재력이 있었기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왕은 데메트리우스로부터 많은 책을 수집하려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매우 유익한 충고를[㈜ 이문은 \’얻으려는 열성에 가장 좋은 충고를\’.] 들었다고 확신하고, 유대인의 대제사장에게 이 작업을 해도 좋다는 편지를 보냈다.



 2. 아리스타이우스가 톨레미 필라델푸스에게 애굽 내의 유대인 노예들을 해방시켜 줄 것을 간청하다



  왕의 가장 절친한 친구 중의 하나이며 사려깊은 행동으로[㈜ 혹은 더 문자적으로는 \’절제\’.] 왕의 총애를 받았던 아리스타이우스(Aristaeus)는[㈜ 헬라어로 Aristaios. 이 명칭은 편지 원본에서는 \’Aristeas\’이다.] 이 일이 있기 훨씬 전부터 왕에게 전국의 유대인 포로들을 풀어주도록 간청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만한 시기라고 판단하였을 때, 그는 우선 자신의 친위대장들인 타렌]툼(Tarentum)의 소시비우스(Sosibius)와[㈜ 톨레미 필라델푸스 재위시에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다고 알려진 유일한 소스비우스(Sosbius)는 스파르타(Sparta) 출신이다. 소스비우스는 폴리비우스에 의해 더 잘 알려졌다. 참). 베반(Bevan)의 p.220이하에는 그의 아들도 이름이 소스비우스인데 톨레미 에피파네스(Ptolemy Epipanes)의 호위자중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애굽에 살았던 이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 대해 트라콘타노스의의 이 부분에 관한 주를 보라.] 안드레아스(And-reas)에게[㈜ 우리에게 알려진, 애굽에서 유명한 안드레아인 것 같다. 톨레미 필로파토르(Ptolemy Philopator)의 궁정에서 일한 의사이다. 참). 폴리비우스(Polybius) 5; 81.] 이러한 사실을 말하고, 왕에게 이를 청원하려고 하는 그의 노력을 후원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들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확신하자, 아리스타이우스는 왕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폐하, 우리는 결코 유리 자신을 속여서는 안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의 법률을 복사할[㈜ 즉(팔레스틴에서 얻은)히브리어 원본의 사본을 만들기로. 그러나 붓츠(F.Wutz)의\’Die Transkriptionen von der Septuaginta bis 켜 Hieronymus\’ Pt. I, 1925를 보면 metagravyai는 \’음역하다\’라는 뜻이다. 즉 히브리어 본문을(오리겐의 6중경(Hexaplar)처럼) 헬라식으로 옮겨 쓰는 것이다. 이에 앞서 붓츠는 70인역은 히브리 성격을 지닌 히브리 본문에서 나온 번역이 아니라 헬라 성격을 지닌 히브리 본문에서 나온 번역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시도한다.(18세기에 최초로 Tychsen 제안한)이 이론은 일반적으로 학자들에 의해 거부된다.] 뿐 아니라, 폐하의 즐거움을 위해 그 법률을 번역하기로 결정하신 것이 사실일진대, 이렇게 많은 유대인들이 폐하의 왕국에서 노예로 생활하고 있으니, 우리가 무슨 염치로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폐하의 선하심과 관대하심으로 그들을 비참한 생활로부터 해방시켜 주십시오.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하느님은 바로 폐하의 왕국을  지배하시는 분과 동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많은 연구 끝에 제가 깨닫게 된것입니다. 유대인들과 우리 모두는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께 에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분을 제나(Zena)라는[㈜ 우스(Zeus)의 대격임.] 고유한 용어를 사용하여 부르는데 이러한 그의 이름은 그가 모든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25) 헬라 신들의우주적이며 자연적인 속성을 나타내기 위해 신의 이름에 관한 어원을 밝히는 것은 후기 헬라 시대의 스토아 작품에 나오는 공통적인 것들이다. 이와 유사한 \’Zeus\’의 어원을 밝히는 것은<Eusebius의 \’복음에의 준비\'(Praeparatio Evangelica)\’ xiii. 12. 7에서> 헬라 시대의 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의 단편에 나온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폐하께서 하느님께 전적으로 헌신하여 예배를 드리지만, 조국과 그곳에서의 생활방식을 박탈당해 온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자유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그러나 폐하, 제가 그들을 대신하여 이러한 것들을 간청하는 것은 제가 그들과 비슷한 민족이라든가 그들의 동포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어느 백성, 어느 민족을 떠나서 저는다만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피조물이고 특히 그분께서는 선한일을 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폐하께 간구드리는 것뿐입니다.[㈜ 이 마지막 문장은 아리스테아스에 관계된 부분과 약간 다른 의미가 있다. 거기에서 아리스테아스는 하느님께서 순수한 동기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시므로 하느님께서 왕으로 하여금 그의 요구를 들어주게 하시리라고 확신한다.]\’



 3. 톨레미 필라델푸스가 유대인 노예들의 석방을 명하다



  아리스타이우스가 이 말을 마치자, 왕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대는 해방되어야 할 노예들이 몇만명 정도 되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그의 옆에 서 있던 안드레아스가 약 110,000명이 조금 넘을 것이라고[㈜ 아리스테아스에는 \’100,000 약간 더\’.] 대답하였다. 이에 왕은 \’아리스타이우스여, 그대가 바라는 것은 극히 작은 선물에 불과한 것이로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배석하고 있던 소시비우스와 다른 사람들은 왕으로 하여금, 자신의 왕국을 다스리도록 한 하느님께 관대하신 왕답게 많은 감사의 제물(thank-offer-ing)을 바쳐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들이 정중하게 왕께 간청하자, 왕은 그들에게 군사들의 급료를 지불할 때 그 군사들에게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포로들을 위해 120드라크마(dra-chmas)를[㈜ 아리스테아스에는 \’20 드라크마\’.] 추가지급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요구사항에 대해서 관대한 용어들로 표현된 법령을 출판하고, 아리스타이우스의 제안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는 왕이 자신의 부친과 그의 군대에 의해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왕국에서 살고있던 포로들과 그 이래로 잡혀 온 모든 포로들까지도 석방할 것이라고 말한 것에 따른 것이다. 비록 아리스타이우스 등이 포로들을 방면하게 되면 400달란트 이상의[㈜ 아리스테아스와 동일. 그러나 주 27을 보라. 은(銀) 달란트는 6,000드라크마에 해당한다.]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은 이를 허락하였다. 왕의 이러한 후의에 대한 증거로써, 그들은 다음과 같은 법령의 사본을 보관하기로 결정하였다. \’우리 선조들의 군대가 수리아와 베니게(Phoenicia)를 점령하고 유대지방을 굴복시킨 이후에 포로로 잡아 우리 왕국으로 끌고와 팔았던 모든 노예들과, 그 이전에 이미 나의 왕국에 있던 노예들, 그리고 최근에 잡혀온 모든 노예들의 소유주들은 이들을 해방시키라. 노예주들은 노예 1인당 120 드라크마씩 받게 될 것이다. 노예를 소유하고 있는 병사들은 급료와 함께 이 속전(redemption money)을 받게 될 것이고, 다른사람들은 국고에서 지불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포로로 잡은 것이나, 또한 포로들을 애굽으로 이주시킴으로써 병사들이 많은 이익을 보게 된 것 등은 나의 아버지의 뜻에 어긋난 것일 뿐만 아니라 옳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부당하게 박해받고 있는 유대인들에 대해 연민의 정과 정의심을 갖고, 나는 노예 소유주에게 그들의 시중을 들고 있는 유대인들을 해방시킬 것을 명하노라.노예주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혜택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 일을 부정직하게 행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이 명령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 법령에 따라 3일 이내에 담당관에게 노예명부를 제출하고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노예들을 즉시 보고하도록 하라.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국가의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일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법을 어기는 자들을 고발할 수 있으며,[㈜ 아리스테아스에는 비난받은 사람이 그 고발자의 노예가 된다고 첨가한다.] 나는 그 자들의 재산을국고에 귀속시키겠노라.\’ 그러나 왕이 이 법령을 다시 읽어본결과 다른 모든 조항들은 포함되어 있었으나 그 이전에 또는 최근에 왕국으로 끌려와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 대한 조항이 빠져있었다. 그리하여 왕은 그들에 대해서도 관대한 조치를 취하였다. 그리고 그 댓가로 지불되는 돈이[㈜ 다른 사본에는 주로 \’공물\’을 뜻하는데 와전된 것이다.] 일괄적으로 지출되었기 때문에 정부의 관리들과[㈜ (아리스테아스와) 다른 사본은 \’그 군대의 재무관\’.] 왕실의 재정관들이[㈜ 재정관리는 왕궁에서 일괄하였다. 재정관리인들의 간단한 기록에 관해 Bevan, p.150이하를 보라.] 골고루 부담하라고 명하였다. 이러한 조치들이 취해지자, 왕의 법령은 정확히 일주일만에 신속하게 실행되었고, 속전(redemption money)은460달란트[㈜ 아리스테아스는 660.] 이상에 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노예주들은 왕이 앞서 말한 노예 1인당 액수를  받아야 한다고 공포한 것을 유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시켜 유아들까지도 120드라크마를[㈜ 아리스테아스는 20.] 받았기 때문이다.[㈜ 아리스테아스도 요세푸스도 본문의 해방된 수에 따른 총액이 다르다. 총액 660달란트는 어른만큼 많은 수의 어린이가 있지 않다면( 그 경우라면 660달란트가 맞다), 어린이를 합해 20드라크마에 100,000명의 액수로는 너무 많다. 반면 요세푸스가 주장한 460달란트는(어른 100,000명과 그 1/3되는 어린이의 수로 각 20드라크마씩 이라면 합리적인 총액임) 각 120드라크마씩 23,000명 분으로는 충분한 총액이다.]



 4. 팔레룸의 데메트리우스가 번역 제안서를 제출하다



  이 일이 왕의 의도에 따라 방대한 규모로 시행되어 끝이 나자,왕은 데메트리우스에게 유대인 서적의 복사에 관한 칙령 사본(memoria)을 가져올 것을 명하였다. 왜냐하면 애굽의 왕들은 만사를 아무렇게나 처리하지 않고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예루살렘으로) 보내진 헌정물과 그 물품들 각각의 예술성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각종서신과 문서의 사본을 이 책에 실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글을[㈜ 뜻이 약간 불분명함.] 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장인들의 위대한 솜씨를 분명히 알수 있게 될 것이며, 각각의 제작자들은 그들 작품의 우수성으로 말미암아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 문서의 사본은 다음과 같다. \’데메트리우스가 위대한 왕에게 인사드립니다. 왕이시여, 폐하께서는 저에게 도서관을 가득 채우기 위해 책을 수집하고, 불완전한 서적들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일에 저의 심혈을 다 기울였습니다. 저는 다른 책들보다 유대인들의 법률서적이[㈜ nomoqesiva는 헬라 시대의 유대인 작가들이 오경의 뜻으로 자주 사용한다.]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폐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책들은 히브리 문자와 유대인의 언어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 책들은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폐하의 관심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주의하게[㈜ 추정된 본문. 사본들은 \’있는 것보다\’. 참). 아리스테아스는 \’존재하는 것보다.\'(이뜻은 아마 \’딴 곳에 존재하는 것보다\’일 것이다)] 필사되었습니다.[㈜ 아리스테아스에 나오는 seshvmantai의 정확한 뜻은 -요세푸스는 부정사 seshmavqai로 받았다 – 논쟁 거리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뜻을 \’해석하였다\’라고 생각하며 또한 이전의 오경 헬라역을 의미한다고 본다. 참). 프랑켈(Z. Frankel)의 \’Vorstudien zu der Septuaginta\’, 1841, p.61 2n K. 그러나 상기한 본문에서는 두루마리 원본(original scroll, 예루살렘 성전에 있다고 추정됨)에서 부주의하게 베껴진 오경의 히브리어 사본들을 언급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책들은 교정되어 폐하의 도서관에 소장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법률은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완전무결하고 지혜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아브데라(Abdera)의 헤카타이우스(Hecataeus)는[㈜ 본문에서 아리스테아스가 헬라 사가 헤카타이우스(Hecataeus)-그는 애굽역사를 썼고 톨레미 I 세와 동시대인이다. 아피. 1권. 183에 관한 택커래이의 주를 보라. -의 원본을 인용했는지 헬라의 유대 위경(즉 헤카타이우스 워서)을 인용했는지에 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H. Lewy(참) 12권. 1 : 71주.)는 그 구절 아리스테아스 31, \’그(모세 오경) 안에 들어있는 생명의 조망이 어떤 거룩함과 엄숙함을 지녔기 때문에\’ 는 헤카테우스의 원본에서 인용된 것이라고 믿는다. 이 부분의 자세한 논의에 관해 트라몬타노(Trmontano), p.94이하를 보라.] – \’시인들과 역사가들은 유대인의 법률에 대해, 또는 그 법률에 의해 다스려 지는 백성들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법은 신성한 것이었고 따라서 이교도의 입을 통해 발설되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 라고 말합니다. 오 왕이시여, 그러므로 하실 수만 있으면 유대인의 대제사장에게 각 지파(tribe)에서 그들의 법률에 가장 정통한 장로 6명을 보내 달라고 편지하십시오. 이는 우리가 그들로부터 그 법률들의 분명하고 일관된 의미를 배우고, 정확한 번역을 얻게 되었을 때만이 훌륭한 내용과 폐하의 계획에 걸맞는 책들을 수집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5. 톨레미 필라델푸스가 대제사장 엘르아살(Eleazar)에게 선물보낼 것을 명하다



  이상이 그 기록의 내용이다. 이 기록이 상달되자,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유대인의 대제사장 엘르아살에게 편지를 보내고, 동시에 자신의 왕국 내에 있는 유대인 노예들을 해방시켰다는 것을 그에게 알리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각종 기명(器皿 ; mixing-bowls, shallow bowls, lebation bowls)을 만들 50달란트 상당의 금과[㈜ 아리스테아스는 \’그리고 은 70달란트\’를 첨가한다.] 수많은 보석들을 함께 보냈다. 그는 또한 보석함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장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선택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또한 100달란트 정도의 돈을 제사와그 밖에 필요한 곳에[㈜ 다른 사본에는 \’성전\’.] 사용하라고 제사장에게 전해 줄 것을 지시하였다. 이제 나는 대제사장 엘르아살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을 소개한 후에 그 예물들의 작품성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엘르아살은 다음과 같은 경위로 대제사장이 되었다.[㈜ 다음 부분(43-44)은 아리스테아스에서라기 보다 다른 자료에서 나온 것이다. 의인 시몬(Simon the Just)과 전 마카비(pre-Maccabee)시대의 다른 대 제사장들에 관해 부록을 참조하라.] 대제사장 오니아스(Onias)가 죽은 후에, 그의 아들 시몬(Simon)이 대제사장직을 계승하였는데, 그의 별명은 \’의인\'(the Just)이었다. 이러한 별명은 그가 하느님 앞에서 경건한 사람이었고 백성들에게도 자비로웠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었다. 그러나 시몬이 오니아스라는 어린 아들을 남기고 죽자, 그의 동생인 엘르아살이 대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톨레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엘르아살에게 보냈다. \’톨레미 왕이 대제사장 엘르아살에게 문안하오. 나의왕국에는 페르시아가 강대국이었을 때 포로로 잡혀와 살고있는 많은 유대인들이 있소. 나의 부친은 그들을 잘 대접하였고, 높은 급료를 주고 군대에 편입시켰으며 애굽인들에게 두려움을 주기위해[㈜  아리스테아스의 사본들은 o[pw\” to Aijguptivwn [eqno\” fovbon mh;e[chdial touvtwn(그들을 통해 애굽 나라가 어떤 공포를 갖지 않도록)으로 나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리스테아스 편집자들은 요세푸스와 유세비우스도 그렇듯이, 않도록에 해당하는 mh(not)를 빼고서, 유대 수비대들이 원주민들의 봉기를 막아 톨레미 통치자를 보호하도록 조직되었다고 아리스테아스 본문은 이해한다.] 나의 부친과 함께 애굽에 온 다른 유대인들에게 요새들을 수비하도록[㈜ 문자적으로는 \’이들의 요새를 수호하며 수비하도록\’.] 하였소. 또한 내가 왕권을 물려받았을 때 모든백성들, 특히 당신의 민족들을[㈜ poli\’tai는 아리스테아스나 요세푸스 모두 애굽에 있는 팔레스틴 유대인들의 같은(종교의)신자들(co-religionists)을 나나내는데,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방인이건 유대인이건 인종과 국적 사이 혹은 국적과 종교 사이를 구별하는 것이 얼마나 헬라 정신과 동 떨어진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몇몇 예들 중 하나이다.] 친절하게 대했소. 또한 나는 전쟁으로 포로가 된 100,000명 이상의 유대인들을 나의 재산에서 속전을 지불하고 그 주인들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소.[㈜ 로스토프체프(M. Rostovtzeff)는 \’Yale Classical Studies\’3권. 1932, p.68에서 \’많은 유대 노예들이 소위 톨레미 필라델푸스(Ptolemy Pliladelphus)의 제 1차 수리아전(First Syrian War) 후에 혹은 그 기간 중에 알렉산드리아 시장에 나타나곤 했을 것이다\’고 한다. 참). W. L. Westermann, \’AJP\’ 59, 1938, 19-28.] 장년기에 이른 사람들은 군대에 편입시켰으며 또한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고 신뢰를 받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궁정에 있게 하였소.[㈜ 본문이 약간 불분명함. 아리스테아스에는 toul\” de; dunamevnou\” kai; peri; hma\’\” ei\’\”  peri th;n aujlhn  pivstew\” ajxivou\”. 비슷한 부분은 215(이 부분은 헤로도투스에도 나타남), 마카비 1서 10 : 37을 보라. 이 마지막 절과 아리스테아스  s37에 나오는 절의 유사성은 Momigliano의 논쟁점 중의 하나이다. Momigliano의 \’Prime Linee di Storia della Tradizione Maccabaica,\’ 1931, 0.64에서 이곳에 나오는 아리스테아스의 구절은 마카비 1서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 아리스테아스에 나오는 구절의 다른 병행구들은 Tramontano의 주에서 인용된다.] 내가 이런 호의를 베푼 이유는 나를 보살펴 주신 하느님께 기쁨과 감사의 제물을 드려야 하겠다는 나의 믿음 때문이오. 나는 이곳의 유대인들과 전 세계에 흩어진 모든 유대인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호의를 베풀었으며, 당신들의 율법을 번역하기로 결정하여 히브리어로 된 율법이 헬라어로[㈜ 본문에서 그리고 아리스테아스에 있는 gravmmasi의 뜻은 물론 \’문자들\’이 아니라 \’문학\’이다. 그러므로 이절은 붓추(Wutz)의 필사설(transcription theory)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참). 12권. (20) 주 23.] 완역되었을 때 나의 도서관에 소장하기로 마음먹었소. 그러므로 당신은 각 지파에서 율법에 정통하고 이를 헬라어로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는 장로들을 6명씩 선발하여 주길[㈜ 다른 사본은 \’그리고 내주길\’을 첨가한다.]바라오. 이 작업이 끝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커다란 영광을 얻게 되리라 믿소. 그리고 나는 이 일을 당신과 의논하기 위해 나의 경비대장인 안드레아스와 내가 총애하는 아리스타이우스를 보내오. 또한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위한 첫 열매로서[㈜ 문자적으로는 \’헌물의 첫 열매들\’ ; 70인역에 나오는 ajparcaiv는 히브리어 르싯(re\’ith, 첫 열매들)과 마찬가지로 트루마(Trum\’h, 바치는)를 번역한 것이다. 앤드류(Andrew)는 이 구절이 은 100달란트와 병치(倂置)된다고 본다.] 감사의 예물과 제사와 그 밖에 필요한 곳에 쓸 은(銀) 100달란트를 보내오. 그리고 만일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면 우리는 큰 기쁨으로 여길 것이오.\’



 6. 톨레미의 편지에 대한 대제사장의 답신



  엘르아살은 왕으로부터 편지를 받자, 매우 정중하게 답장을 보냈다. \’대제사장 엘르아살이 톨레미 왕께 문안드립니다. 폐하와 아르시노에(Arsinoe) 왕후,[㈜ 아르시노에(Arsinoe) Ⅱ세로 톨레미 I 세의 딸이며 리시마쿠스(Lysimachus)와 톨레미 케라우노스(Ptolemy Keraunos)의후처였으며 그녀의 오빠 톨레미 필라델푸스(Ptolemy Philadelphus)가 리시마쿠스의 딸 아르시노에(Arsinoe)를 버린 후 그와 주전 279년과 274년 사이에 결혼하였다.] 그리고 자제분들이[㈜ 아르시노에 Ⅱ세가 맞아들인 톨레미 필라델푸스와 아르시노에 I 세의 자녀들일 것이다. 참). Theocritus Xvii. 128에 관한 주석.] 건강하시다니 매우 기쁩니다. 폐하의 편지를 받고 우리는 폐하의 제의에 매우 감사했으며, 백성들을 모아 편지를 읽어주고 그들에게 폐하가 하느님 앞에서 보여주신 신앙심에 대해 있는 그대로 들려 주었습니다.우리는 또한 그들에게 폐하의 가장 신뢰받는 친구들인 안드레아스와 아리스타이우스가 선물로 가져 온 금접시20개와 은접시 30개, 큰 접시ㅣ 5개와 봉헌상(offering table),[㈜ 진설병을 놓는 상을 의미한다. 참). (60)이하. 70인역의 역대하에서는 \’진열된 상\'(proqevsew\”).] 그리고 제사와 성전에서 필요한 다른 물품들을 구입하기 위한 100달란트를 보여주었습니다. 안드레아스와 아리스타이우스는 역시 학식이 출중하고 당신의 총애를 받을 만한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비록 우리의 능력(nature)을 벗어나는[㈜ 문자적으로는 \’초월하는\’ 혹은 \’자연을 거스르는\’. 앤드류(Andrew)에 의하면 \’당신의 요구가 매우 이상하다 할지라도\’.] 일이긴 하지만 우리는 폐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면 어떤 것이든 하기로 했으니 안심하십시오. 이는 폐하 우리 민족에게 여러 방면에서 보여주신 친절함에 보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즉시 폐하와 폐하의 누이,자제분들과 친구들을 위해 제사를 드릴것이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해진 이방인 통치자를 위한 역사적인 예에 관해. 쉬러(Schurer), 2. 302 이하를 보라.] 백성들은 폐하의 계획이 순조롭게 실행되고 폐하의 왕국이 편안할 수 있도록, 그리고 율법서의 번역이 잘 진행되어서 폐하가 바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 다른 사본에는 \’나\’.] 또한 각 지파에서 6명씩의 장로를 뽑아 율법서와 함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완전히 번역되었을 때, 그 책을가져 간 장로들과 함께 율법책을 안전하게 돌려보내 주시는 것은 폐하의 신앙심과 정직함을 보여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7. 톨레미 왕이 대제사장에게 후한 선물을 보내다



  이상은 대제사장의 답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엘르아살이 편지 말미에 율법책과 함께 보내기로 한 70명의[㈜ 아리스테아스에는 72. 요세푸스는 12지파에서 각각 6명씩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장로들의 명단을 여기서 다시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왕이 하느님의 성전에 보낸 예물들의 화려함과 예술성에 대해서는, 왕이 얼마나 열렬하게 하느님을 사모했는가를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히 보여 주기 위해서 서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왕은 이 선물들을 제작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지출했으며, 장인들과 종종함께 있으면서 그들의 작업을 일일이 지켜보고 부주의하거나 서투르게 만들지 못하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 예물들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 비록 이와 같은 이야기가 역사를쓰는 데는 필요한 것이 아닐지라도 – 아래에서 설명을 계속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와 같은 방법이 독자들에게 톨레미 왕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관대함을 깨닫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8. 톨레미가 성전의 탁자를 설계하다



  우선 나는 봉헌상(offering table)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왕은 매우 큰 상을 만들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설치되어 있는 상의 크기를 알아보고 그것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상을 만들 수 있는지를 알아보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상의 크기를 알고나서 그상보다 더 큰 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그는 다음과같이 말하였다. \’나는 예루살렘의 상보다 5배 큰 상을 만들고자했으나 너무 커서 제사드릴 때 쓸모없게 될까 염려된다.\’ 그는예물이 단지 보여주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제사에 사용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의 상은 금이 모자라서가아니라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왕은 기존의 상보다 크게 만들지 말고 그대신 보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만물의 속성을 이해하고, 새롭게 훌륭한 물건들을 고안해 내는데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제작지침이 없는 경우라도[㈜ 즉 성경에서.] 그가 직접 자신의 창작품을 고안하고그것을 장인들에게 설명한 후에 이 물건들을 만들 것을 지시하였으며 제작지침서가 있을 경우에는 장인들로 하여금 이를 정확하게 따르고, 이와 유사하게 작업을 마칠 것을 명하였다.



9. 상에 대한 묘사



  [㈜ 다음 부분에 나오는 진설병의 상에 관해 아리스테아스는 (요세푸스를 따라) 70인역의 출 25 : 23이하, 37 : 10이하 – 이 70인역이 현존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 에 나오는 간단한 설명을 매우 확대시켰다.~]



  이 모형에 따라 그들은 상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이 부분을 달리 번역한 사람들은 \’모형에 따라 어떤 것을 만들다\’라는 특별한 의미는 간과한 채(만들기에)\’착수하여\’라고만 번역한다.] 길이 2.5규빗(cubit),[㈜ 아리스테아스에서는 2(성경과 같음).] 너비 1규빗,[㈜ 성경과 아리스테아스를 의역한 유세비우스와 동일. 너비의 계수는 아리스테아의 사본들에서 누락된다. 이는 간과로 인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높이 1.5규빗 되는 상을 만들었으면 전부 금을 재료로 사용하였다. 또한 그들은 손바닥 너비의 테두리를 만들었는데, 세 면 모두 밧줄 모양의 얕은 양각을 흔들리는 물결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밧줄의 모양은 거의 실물에 가까웠다. 이 테두리는 삼각형이었으며 각 면에서 동일한 형태로 작업이 행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을 돌려놓았을 경우에도 모두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테두리에서 상쪽으로 경사진 면은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었으며,[㈜ 추정된 본문. 사본들은 \’돌아서\’, 테두리(rim)의 성격은 의문시 된다.] 바깥 쪽으로 향한 면은 외부에서 보이는 곳이기 때문에 훨씬 더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이 때문에 두 면이 마주치는 윗면은 날카로웠으며, 따라서 앞서말한 바와 같이 상이 돌려져 있을 때에도 모든 면이 다 잘 보였다. 양각한 밧줄 사이에는 나란히 보석이 박혀 있었으며 이는 금핀으로 구멍을 뚫어 고정시켜 놓았다. 그리고 보이도록 하기 위해 위쪽으로 경사진 테두리면에는 상의 가장자리에 새겨져있는 것과 유사한 달걀 모양의 장식이 가장 아름다운 보석으로만들어져 달려 있었다. 달걀 모양의 장식 밑에는 장인들이 모든종류의 과일들이 양각되어 있는 화관을 둘러서 포도송이가 달려있고 이삭이 패여 있으며 벌어진 석류 열매의 모습을 연출하였다.[㈜ (아리스테아스에는 나오지 않는) ajpokeklei\’sai의 정확한 뜻은 불분명하다. \’분명히 윤곽이 그려진\’과 비슷한 뜻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들은 보석으로 모든 종류의 과일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장식물들은 과일 색깔을 띠고 있었으며 상 전체를 금으로[㈜ 다른 사본은 \’금과 함께\’.] 둘러싸 이 장식물들은 과일 색깔을 띠고 있었으며 상 전체를 금밑에 다른 달걀 모양의 장식을 달았고 얕은 양각으로 주름을 새겨 넣었으며, 여러 사람들이 제작했으면서도 동일한 모습을 하도록 만들어졌으며 양 끝부분을 우아하게 만들었다.[㈜ 그 의미하는 것이 끝인지 측면이지 불분명함.] 그리하여상이 다른 방향으로 놓여져 있을 경우에도 두 물결모양의 조각과 테두리에는 아무런 차이점이 없었으며, 오히려 다리에까지똑바로 내려온 장식들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손가락 네 개 만한 금판을 만들어 상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달았으며, 여기에 다리를 부착시킨 후에 핀과 꺽쇠를 이용하여 테두리 부근에 고정시켰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떤 방향으로 상이 놓여지던 간에 원래의 예술성과 고급스러움이 나타나도록 하였다.상 그 자체에는[㈜ 즉 윗 표면.] 홈을 만들어 그  가운데에는 루비와 에머럴드같은 여러 가지 보석들을 마치 별처럼[㈜ 요세푸스에게 특별한 이 설명은 택커래이(Dr. Thackeray)의 아리스테아스 66에 나오는 \’많은 모양의 묘성들\’에 근거한 것이다.] 박아넣었는데, 그 보석들은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었으며 그 밖의 가장 진귀한 보석들도 끼워넣었다. 이 주름 옆에는 마름모 모양의 무늬를 가진그물모양의 줄로 장식하여,[㈜ \’줄로 장식하여\’라는 말은 요세푸스가 첨가한 설명이다.] 그 안에 수정과 호박으로 장식하였다. 이 보석들이 규칙적으로 빛을 발하였기 때문에[㈜ \’닮은 형태\’.]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리에는 활짝 핀 백합꽃을 본따서 기둥을 만들었는데, 꽃잎은 상이 아래쪽을 향해 구부러져 있었기 때문에 백합의 수술은 똑바로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각 다리에는 한 뼘 높이의 루비로 만들어진 받침이[㈜ krhpvi\”는 건물이나 제단의 \’기초\’를 의미한다.] 놓여 있었다. 그폭은 손가락 여덟 개 정도이고 그 위에[㈜ 문자적으로는 \’판\'(plate), 미캄(Meecham)은 \’무게\’, 앤드류(Abndres)는 \’비용\’으로 한다.] 다리가  놓여 있었다.장인들은 다리마다 매우 섬세하게, 그리고 정성을 다해 담쟁이넝쿨과 포도가지, 포도송이를 양각하였다. 그것은 마치 실물처럼 보였다. 그것들은 매우 경쾌하고 끝부분이 가늘게 조각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으며 인공적인 모형물이라기 보다는 자연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장인들은상 전체를 3중조각(triptych)의 형태로[㈜ sch\’ma(형상)는 아리스테아스에는 stovma(꼭대기, 전면, 문자적으로는 입)로 나온다.] 만듦으로써 자신들의 독창성을 과시하였다. 따라서 각 부분들은 매우 부드럽게 연결되어 그것들이 어디서 결합되었는지 볼 수도 없고 심지어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또한 상의 두께는 0.5규빗를 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이 예물의 제작은 끝났다. 여기에는 왕의 후함이 걸맞게 값비싼 재료들과 다양한 장식물, 그리고 장인들의 뛰어난 모방기술이 활용되었다. 이는 크기에 있어서는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예루살렘의 상보다 더 크지는 않을 지라도 적어도 예술성과 독창성, 화려함에 있어서는 훨씬 우수하고 탄복할 만한 상을 만들 것을 왕이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0. 아리스테아스의 접시들에 대한 묘사



  금으로 만들어진[㈜ \’금으로 만들어진\’은 아리스테아스의 사본에는 빠짐. 이것은 간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개의 큰 접시(mixing bowls)는 밑바닥부터 중간 부분까지 비늘무늬가 양각되어 있었는데[㈜ 문자적으로는 \’띠\’.] 고리 부분에는 여러 가지 보석이 박혀 있었다.[㈜ 아리스테아스에는 \’눈금\'(folivdwn).] 그리고 그 위에는[㈜ 즉 \’부조(浮彫) 작품\’.] 각종보석들로 한 규빗 높이의 곡선을 만들고, 그 다음에 주름을 새겨넣었으며, 다시 그 위에 그물모양의 마름모꼴 무늬가 꼭대기까지 새겨져 있었다. 그 중간 중간에는 네 손가락 깊이로 보석들을가득 장식함으로써 그 아름다움이 돋보이도록 하였다. 이 접시의 윗부분은 식물의 줄기와[㈜ 본문(그리고 82에서) smivlaxi의 확실한 의미는 불분명하다. 이 단어는 아리스테아스에는 나오지 않음.] 백합꽃, 포도송이 등으로 그 주변을 둘렀다. 이상과 같은 방법으로 금제(金製)접시들을 만들었으며, 각각의 접시들에는 2 암포류스(amphoreus)[㈜ 아리스테아스에는 \’2 메트레테스(metrestes)이상되는\’. metretes와 같은 암포류스(amphoreus)는 약 9갤론이나 40리터에 해당한다.]씩 (물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은으로 만들어진 것은 거울보다 맑게 빛나서 사람들의 모습을 한층 분명하게 비췰 수 있었다. 왕은 또한 이와함께 보석이 박혀있지 않은[㈜ 문자적으로는 \’그늘지게 했고\’.] 금접시 30개를[㈜ 아리스테아스는 숫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음.] 만들었다. 거기에는 담쟁이 넝쿨과 포도나무 잎[㈜ 아리스테아스에는 \’테두리 둘레에는 담쟁이와 도금양( 桃金孃, myrtle), 감람나무를 아로새긴 화관으로 꾸며 있었다.\’] 등이 양각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와 같이 매우 훌륭한 물건들은 상당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의 능숙한 솜씨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왕의 열정과 후원에 힘입은 바가 더 크다. 왜냐하면 왕은 장인들에게 풍부한 재료들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을 뿐 아니라 공무를 중단하면서까지 이들의 전 작업과정을 감독하였기 때문이다. 왕이 이와 같은 열정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장인들은 작업에 최선을 다했으며 이러한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



11. 유대인 장로들의 알렉산드리아 도착



  [㈜ 이 부분에서 아리스테아스의 많은 부분을 누락시킨다. 거기에는 알렉산드리아 조신들의 예루살렘 방문에 관한 설명과 성전과 아크라(Akra)의 묘사, 모세 오경에 대한 엘르아살의 철학적 변증이 나와 있다.]



  이상이 톨레미 왕이 예루살렘에 보낸 예물의 내역이다. 대제사장 엘르아살은 이 물건들을 하느님께 바치고 사신들을 접대한 후에 왕에게 줄 선물을 주어 돌려 보냈다. 톨레미왕은 사신들과70명의

이 글은 카테고리: josephus, TN-josephus-C1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