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권 제 5장 트리폰이 데메트리우스를 격파한 후 왕국을 알렉산더의 아들 안티오쿠스에게 넘겨주고 요나단을 자기 동료로 만든 것과 요나단의 사절들의 행동 대하여

 


제 5 장



트리폰이 데메트리우스를 격파한 후 왕국을 알렉산더의 아들 안티오쿠스에게 넘겨주고 요나단을 자기 동료로 만든 것과 요나단의 사절들의 행동 대하여



 1. 트리폰(Tryphon)이 안티오쿠스 Ⅵ세(Antiochus Ⅵ)를 트리우스 Ⅱ세의 적수로 세우다 [마카비 1서 11 : 39]



그러므로, 알렉산더의 군대 장관들 중의 한 사람이던 트리폰 (Tryphon)이라고도[㈜ 그의 이름은 디오도투스(Biodotus)였고 그의 고향 아파메아(Apamea : 더 정확히는 카시아나(Casiana) 이는 아파메아 근처에 있다)는 요세푸스가 헬라 자료에서 취해온 사항들이다 ; 참). Diodorus xxxiii. 4와 Strate xvi. 752. ] 불리는 디오도투스(Diodotus)가 (그의 본국은 아파메아(Apamea)이었다) 데메트리우스에게 향한 군사들의 이같은 불만을 알았을 때, 그가 알렉산더의 아들인 안티오쿠스(Antiochus)를[㈜ 트리은(Tryphon)은 그에게 안티오코스 데오스 에피파네스 디오니소스 (Antiochos Theos Epiphanes Dionysos)라는 공식적인 이름을 주었다. ] 길러온 아랍 사람 말쿠스(Malchus)에게[㈜ 마카비 1서에는 그의 이름이 이말쿠에(Imalkue)이다. 디오도루스는 이암불리쿠스(lamblichus : !Iavmblico\”)로 되어 있다. 이 는 아랍어 또는 나바타이아(Nataean)의 ymlkw의 헬라어 번역이다. 아마도 그림(Grimm)이 제안하는 것처럼 그는 알렉산더 발라스를 죽인 자베일루스(Zabeilus : 다른 번역에는 Zabdiel, Diocles , 참). 고대. 13권. 2 : 15(118))의 계승자였다. ] 달려갔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데메트리우스에대한 군대의 불만을 말쿠스에게 알려주고 난 후에 트리폰은 자신이 안티오쿠스를 왕으로 만들 것이며 그의 부친의 보좌를 그에게 돌려 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안티오쿠스를 자신에게 맡기도록 말쿠스를 설득하였다. 말쿠스는 처음에는 믿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반대하였다. [㈜ 트리폰에 대한 말쿠스(Malchus)의 불신을 언급한 것은 요세푸스가 마카비 1서 11 : 40을 부연한 것이다. ] 그러나 그는 트리폰과 오랫동안 변론한 끝에, 마침내 트리폰의 그 계획을 승인하고야 말았다.



 2. 요나단이 데메트리우스 Ⅱ세를 원조하다[마카비 1서 11 : 41]



 한편 대제사장 요나단은 유대인 배교자들과 불경 한 사람들 그 리고 그 나라 전체 안에 있는 수비대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성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떠나기를 원하였다. [㈜ 다른 본문에는 \”사람들을 추방시키길 원했다 등\”] 그리하여 선물들과 함께 특사들을[㈜ 사절단과 선물들은 마카비 1서에는 언급이 없다] 데메트리우스에게 보내어 유대의 요새들안에 있는 사람들을 쫓아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데메트리우스는 자신이 치루는 그 전쟁이 끝나면 이러한 요청을 들어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더 많이 해줄 것을 약속하였다. 그는말하기를 왜냐하면 바로 지금은 자신의 모든 시간을 이 전쟁에만 관심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이것은 트리폰이 고소한 안디옥인들(fntiochenes)과 라리사인들(Larissans)과 다른 사람들의 반란을 언급한 것이다. ] 그리고 그는 요나단에게 자신의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전해주면서,자기에게 원군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래서 요나단은 3,000명의 군사들을 선발하여 그에게 보내주었다.



 3. 유대인들이 데메트리우스 Ⅱ세가 안디옥을 진압할 수 있도록 원조하다[마카비 1서 11 . 45]



  [㈜ 고대. 13권. (144)에 나오는 단락은 주로 헬라 자료에 기초하고 있다]



 안디옥 사람들은 데메트리우스를 증오하였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그에게 나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은 그의부친 데메트리우스가 자신들에게 범했던 많은 악행(堊行)들로인해 그에게 악의를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를 쓰러뜨릴 좋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그들은 데메트리우스가 요나단에게 요청했던 원군이 도착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만일 자신들이 먼저 선수를 쓰게 않는다면 데메트리우스가 큰 군대를 모으게 될 것을 염려하여, 서둘러 자신들의 군사들을 붙잡아 놓았다. 그리고는 마치 포위공격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의 궁전을 에워쌈으로써 왕이 탈출할 길을 봉쇄한 후, 자신들의 손으로 왕을 붙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데메트리우스는 안디옥 양민들이 자신과 싸우기 위하여 전투 준비를마친 것을 알고는 외국인 용병들과 요나단이 보낸 유대인들을 데리고 안디옥 사람들과 교전하였다. 그러나 데메트리우스는 중과부적이었다. 거기에는 100,000명의[㈜ 마카비 1서 11 : 45에 의하면, 120,000. ] 많은 병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압도당해 결국 패하고 말았다. 그때 유대인들은 안디옥 사람들이 이기고 있는 것을 보고는, 궁전 건물들의 지붕위로 올라가 거기서 안디옥 사람들을 향해 창을 던졌다. [㈜ 지붕에서의 전투와 다른 세부 묘사는 마카비 1서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적들보다 높은 곳에 있었고 또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적들에게 피해를 입지 않고도 적군에게 많은 피해를 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적들을 인접해 있는 건물들 밖으로 쫓아내었다. 그리고 그 건물들에다 재빨리 불을 놓았다. 그 건물들은 함께 밀집되어 있었고 주로 나무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 불길은그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가 그 도시를 전소시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안디옥 사람들은 그 불을 억제할 수도 없고 제어 할 수도 없음을 알고 돌이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 뛰면서 그들의 뒤를 몰아갔다. 그것은 매우 이상한 추격 방법이었다. 이제 데메트리우스왕은 안디옥사람들이 자신들의 아내와 자녀들을 구하려고 애쓰고 있으며 또더이상 싸울 기력도 없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좁은 길목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도망치는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그들을 덮쳐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러 자 그들은 모든 무기들을 내려놓고 데메트리우스에게 항복하였다. 데메트리우스는 자신에게 반항했던 그들을 용서하여 주었다. 이렇게 해서 그 반란은 끝이 나게 되었다. 반란이 평정되자, 데메트리우스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얻은 전리품들을 선물로 주었으며 자신이 승리할수 있도록 크게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하였다. 이렇게 한 후에그는 그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요나단에게 원조해 준 것에 대한 답례품과 함께 되돌려 보냈다.



[유대인들에 대한 데메트리우스 Ⅱ세의 배은망덕,마카비 1서 11 : 53]



 그러나 그 후에 데메트리우스는 요나단에게 비열하게 행동하였으며 자신이 했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그는 요나단에게, 만일유대 민족이 선대 왕들의 시대부티 바쳐왔던 모든 종류의 공물들을 자신에게 바치지 않는다면 전쟁을 각오하라고 협박하였던것이다. [㈜ 조공을 요구한 것은 마카비 1서에 언급이 없다. 여기서는 단지(11 : 53) \”그러나 왕은 약속한 것을 모두 어기고 요나단과 멀어졌다. 그는 요나단이 자기에게 베풀어 준 호의에 보답하는 대신 오히려 그를 몹시 괴롭혔다. ] 만일 트리폰(Tryphon)이 데메트리우스가 그같이 하는 것을 막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데메트리우스의 관심을 요나단에 대해 전투 준비하던 것에서 자신에게로 돌리게 하지 않았었더라면, 데메트리우스는 그같은 협박을 실행해 옮겼을 것이다. [㈜ 다른 본문에는 \”그(트리본)에 대하여 걱정한다\”] 왜냐하면 트리폰이 젊은 안티오쿠스-그는 아직 소년이었다-와 함께 아라비아에서 수리아로 돌아와, 왕관을 그의 머리에 씌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데메트리우스로부터 봉급을 받지 못해 그를 등졌던 군인들은 모두가 트리폰에게로 갔고,[㈜ 마카비 1서 11 : 55은 그가 \”악마에게로 (ajpeskoravkisen)가라고 그들에게 말했기\”때문에 군대는 데메트리우스(Demetrius)에게서 떨어져 나갔다고 말하고 있다. ] 트리폰은 데메트리우스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였다. 트리폰은 데메트리우스와 교전하다가 마침내 그를 제압하고 코끼리들과[㈜ 코끼리들(마카비 1서 11 : 56은 \”짐승들\”이라고 되어 있음)은 추측컨대 톨레미 필로메토르(Ptolemy Philometor)가 가져 온 것들이라 생각된다(참) . 고대. 13권. 4:7(117)). 이는 나중에 데메트리우스의 소유가 된다. ] 안디옥시 모두를 점유하였다.



4. 안티오쿠스 Ⅵ세가 요나단에게 호의를 베풀다[마카비 1서 11 : 57]



 그러자 전투에서 패한 데메트리우스는 길리기아(Cilicla)로[㈜ 마카비 1서는 데메트리우스가 어디로 달아났는지 말하지 않고 있다 ; 리비(Livy),\’Epit. \’1ii는 (해변에 있는) 셀류키아(Seleucia)라고 되어 있다. 이 셀류키아는 추측컨대 베반(Bevan)이 H. Sel. ii. 227에서 진술한 것 같이 트리폰이 \”길리기아 (Cilicia)\”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면\” 정확한 읽기 라고 생각된다. ] 퇴각하였다. 반면에 젊은 안티오쿠스는 특사들을 요나단에게 보내 편지들을 전달케 하였다. 그는 그 편지들을 통해 그에게 자신의 친구요 동맹자가 되어 줄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그를 대제사장으로 승인하였으며, 유대인들의 영토에 편입되어 있었던[㈜ \”유대의 군역에 첨가되었던\”이라는 구절은 마카비 1서에서는 발견할 수가 없다. 요세푸스가 이것을 실수로 첨가시켰다고 생각하지 못한 현대의 학자들은 4번째 구역에 대하여 의견들이 분분하였다 . 어떤 사람들은 톨레마이스(Ptolemais)는 일찍이 알렉산더 발라스가 요나단에게 준(마카비 1서 10 : 89) 악카론(Akkaron : 따ron)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아벨(Abel,\’GP\’ii. 135는 아크라바테네(Acrabattene)라고 제안한다. 요세푸스의 해석을 반대하는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유대자체라고 추측하고 있다. 첫번째 세구역은 물른 사마리아에서 취하여온 것이다. 즉 아파이레마 (Aphairema), 룻다(Lydda)와 라마다인(Ramathain)이다(참). 고대. 13권. 49(127)>. ] 네 지역을 그에게 양도할 것을 제의하였다. 게다가 요나단에게 용기(容器)및 금잔과 자주빛 의복들을 보내주면서 그것들을 사용해도 좋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금브로치와 자신의첫째 친구들 중 하나라고[㈜ 마카비 1서 11 : 5, \”왕의 친구들중 하나\”, 표제 prw\’toi fivloi에 대해서는 참). 비커 만(Bikerman),\’Inst. Sel. \’p. 41. ] 불리는 특권을 선사하였다. 그는 또한 요나단의 동생 시몬을 두로 지역의 사닥다리에서[㈜ \”사다리\”(Ladder)는 추측된 것이다 ,여러 사본들은 \”지방\”(region)으로 되어 있다. 두로(Tyre)의 사다리(Ladder)는 두로와 톨레마이스 사이에 있는 해안선이었다. 이는 현재 의 라스 엘-아비야드(R\’s el-Abyad)와 라스엔-나쿠라( R\’s en-N\’q\’ra))를 포함하고 있다]부티 애굽까지의 군대 지휘관으로 임명하였다. 그리하여[㈜ 고대. 13권. (147)은 마카비 1서에 첨가된 것비다. ] 요나단은안티오쿠스가 자신에게 베푼 호의를 기뻐하면서 특사들을 그와트리폰 모두에게 보냈다. 그리고 요나단 자신은 안티오쿠스의 친구요 동맹자임을 공언하였으며 자신도 그와 더불어 데메트리우스와 싸울 것을 승낙하였다. 왜냐하면 데메트리우스는 자신이 요나단의 도움이 필요했을 때 그에게서 받았던 많은 호의들에 대해 어떠한 감사의 표시도 요나단에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자신이 받았던 친절에 대해 더 큰 악으로 갚았던 것이다.



5. 요나단이 데메트리우스 Ⅱ세를 대항하도록 수리아 도시들을 선동하다[마카비 1서 11 : 60]



  [㈜ 고대. 13권. (148-153)에서 요세푸스는 마카비 1서 11 : 60 : 62를 부연하고 있다(지금은 없어진 헬라적 자료에서 ).]



따라서, 안티오쿠스가 요나단에게 수리아와 베니게(Pho-enicia)에서[㈜ 베니게(Phoenicia)는 마카비 1서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마카비 1서 11 60에는 \”요나단은 떠나 강 건너편 지방과(추측컨대 요단강을 건넌 것이지 유브라데강을 건넌 것은 아니다. 이는 Bevenot가 제안한 것)그 밖의 여러도시를 순회하였다. 그 때에 수리아의 온 군대가 요나단에게 모여들어 그의 편이 되었다. \”] 큰 군대를 모아 데메트리우스의 군대 장관들과 싸우도록 허락하자, 요나단은 즉시 그 도시들을 향해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도시들에서 대단한 영접을 받은 반면 아무런군대도 모으질 못했다. [㈜ 마지막 문장은 앞의 각주에서 인용한 마카비 1서 11 : 60에 모순이 된다. ] 그래서 그는 아스글론(Asca1on)시로갔다 그곳의 주민들은 큰 호의와 많은 선물로 그를 맞이해 주었다. 그런 다음, 요나단은 그들뿐만 아니라 코엘레수리아(CoeleSyria)에 있는 도시들의 모든 사람들에게, 데메트리우스를 버리고 안티오쿠스에 게 합류할 것과 그들에 게 악행을 행 했던 데메트리우스에게 보복을 가하기 위하여 자신과 함께 싸울 것을 촉구하였다 ;왜냐하면, 요나단은 말하기를 그들이 자기편에 기꺼이가담하게 될 충분한 이유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대. 13권. (149), \”그래서 그가 그들을 격려하였다\”는 마카비 1서에 첨가된 것이다. ] 요나단은 이렇게 해서 그 도시 사람들에게 안티오쿠스와의 동맹에동의하도록 설득하였던 것이다. 다음 그는 가사(Gaza) 사람들에게도 안티오쿠스에 대한 선의의 감정을 얻어내기 위하여 가사로 갔다. 그러나 요나단은 가사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대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요나단에 대하여 성문을 굳게 닫았던 것이다. 그들은 비록 데메트리우스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데메트리우스의 버림당함은 마카비 1서에서는 찾아블 수 없는 사항. ] 아직 안티오쿠스에게 가기로 작정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요나단으로 하여금 그들을 공격하여 그들의 영토를 폐허로 만들 결심을 하게 하였다.그리하여 요나단은 군대의 일부로 가사를 포위한 후, 자신은 그나머지 군대를 이끌고 그들의 땅을 파괴하고 불사르기 위해 쳐들어 갔다. 이때 가사사람들은 데메리우스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움은 커녕 그 반대로 자신들을 괴롭게 하고 있었다. 비록 데메트리우스가 원조할 가능성이 아직은 조금이나마 남아있었다 할지라도, 과연 원군이 올것인가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이처럼 가사사람들은자신들이 큰 곤경에 빠졌음을 깨닫고는, 원군을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곤궁에서 돌이키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 이 문장은 마카비 1서에 첨가된 것이다. ] 따라서 그들은 요나단에게 사람을 보내어 우호동맹을 제안하였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불행을 경험해 보기 전에는 자신들에게 무엇이 유익한지를 알지 못하는 법이다. 오직 그들 자신이 어떤 어려움에 봉착할 때, 또한 그들이 해를 입지 않았던 때에는 더 좋게 행할 수도 있었던 것을 하지 않다가, 결국 자신이괴로움을 당하게 된 그때에야 비로소 그 좋은 것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 성경의 본문에 대한 유사한 교화적 첨가는 \’유대고대사\’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 다. ] 그래서 요나단은 그들과 우호적인 협정을 체결하고 담보물(볼모)을 받아 그것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반면 요나단 자신은 그 나라를 통과하여 다메섹까지 행군하였다.



 6. 요나단이 갈릴리를 침입하다 : 시몬은 벧술(Bethsur)을 점령하다[마카비 1서 11 : 63]



요나단은 데메트리우스의 군대장관들이 큰 군대를 이끌고 가데스(Kedasa)로[㈜ 70인 역에는 Kavde\”(다른 본문에는 Khvde\”). 루키안은 kevde\” : 이 곳은 성경에 있는 납달리의 가데스(Kadesh of Naphtali)이며 훌레(Huleh)호수의 북서쪽 에 있다. 참). 고대. 5권. 1 : 18(63)] 진군하고 있다는[㈜ 異文에는 \”그러나 데메트리우스의 군인들아 진군하는 동안\”. ] 소식을 들었다. 그 도시는 두로(Tyre)와 갈릴리 (G잘lee)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 더 정확하게 가데스(Kadesh)는 갈릴리 북쪽 두로(Tyre)지역에 있었다. 참). 아벨 (Abel),\’GP. \’vol. 2에 있는 지도(Carte)Ⅷ. ] 그런데 데메트리우스의 군대장관들이 가데스로 진군한 까닭은,[㈜ 異文에는 \’갈릴리사람들을 도우려고\’라고 되어 있다. 요세푸스는 여기서 마 카비 1서 11 : 63, \’그(요나단 : Jonathan)의 임무수행을 방해하기 위하여\’ 즉 \’데메트리우스(Demetrius)에 대하여 안티오쿠스(Antiochus)를 도우려고\’라는 의미인 듯한 boulovmenoi metasth\’sai aujton th\’\” creiva\”를 병행시킨다. 더욱이 요세푸스는 그림(Grimm)이 지적한 것처럼 creiva\”cwvra\”로 읽고 있는 듯하다. 물론 몇몇 70인역 사본들도 같다. ] 자신들이 그 도시로 진군함으로써 요나단을 수리아에서 갈릴리로 물러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즉 그들은,요나단이 자신의 동맹자요 자기 백성인 갈릴리 사람들이 적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갈릴리인들과 유대인들 사이가 혈족 관계라는 이러한 언급은 마카비 1서에 첨가되어져 있다. 이때에 갈릴리는 여전히 매우 유순했으며 힐카누스(Hyrcanus)  혹은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의 시대까지 유대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주목      해야 한다. 참). 쉬러(Schurer) I. 276. ] 그러자 요나단은 유대에 동생 시몬을 남겨두고 그들과 맞서기 위하여 나섰다. 시몬 또한 유대에서 가능한 많은 군사를 모아 벧술(Bethsur)을[㈜ 참). 고대. 12권. 7 : 5(313) 각주 387. ] 공격하기 위하여 그 앞에 진을 쳤다. 벧술은 유대에 있는 요새들 중에서도 매우 강한 요새였다. 그리고그 요새는 유리가 전에 보았듯이,[㈜ 고대. 13권. 2 : 1(42)에. ] 데메트리우스의 수비대가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시몬이 토성(흙으로 만든 보루)을 쌓고 거기에 공격용 병기들을 설치하는등 벧술은 공격하고자 하는매우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자,[㈜ 설명은 마카비 1서에 없음. ] 그 수비대는 그곳이 공격을 당해 빼앗기게 되어 파괴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 하였다. 그리하여그들은 시몬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신들은 그곳을 떠나 데메트리우스에게로 돌아가겠으니 떠나는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해줄 것을 그에게 요청하였다. [㈜ 마카비 1서에는 이러한 항복의 조건들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다. ] 그러므로 시몬은 그들에게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그 도시에서 철수하였고 시몬은 그 도시 안에 자기 자신의 수비대를 주둔시켰다.



 7. 요나단이 데메트리우스 ll세를 갈릴리에서 패퇴시키다(마카 비 1서 11 : 67]



 그러는 동안 요나단은 갈릴리 게네사렛 호수(the waters of Gennesar)로부터[㈜게네사렛(Gennesar, Gennesareth)에 대한 상세한 표사는 전쟁. 3권. 18 : 9~11(506-512), 19 : 1, 2(513~521)에서 볼 것. ] 출군하여(왜냐하면 그때 요나단이 진을 치고 있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솔(Asor)[㈜ 성경에는 하솔(Hazor)로 홀레(Huleh)호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음. 참). 5권. 5 : 1(199) 각주. ]평지로 진군하였다. 그런데 그는 적 이 거기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지못했다. [㈜ 적군의 위치에 대한 요나단의 무지(無知)는 마카비 1서 11 : 68에 함축되어 있지만 진술되어 있지 않다. \”이국군대는 요나단을 평원에서 맞아 싸웠는데 . \”] 반면 데메트리우스 측 사람들은 요나단이 자신들과싸우기 위하여 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 전날에 이미 알았다. [㈜ 적군들이 요나단(Jonathan)의 진격을 그 전날 알았다는 것은 마카비 1서에 언급되어 있지 않고 마카비 1서 11 : 67에 있는 구절에 대한 요세푸스의 오독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요나단의 군대는 아침 일찍 하솔 평원(the plain of Asor)으로 진군하였다. \”] 그리하여 그들은 요나단을 배후에서 습격하기 위하여 군사들을산중에 매복시켜 놓았다. 그리고 자신들은 본부대를 이끌고 요나단에 맞서기 위해 평지로 나싫다. 요나단은 적들이 전투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군사들에게 전투 태세를 갖추도록 준비시켰다. 그때 데메트리우스의 군대장관들이 매복시켜 놓았던군사들이 유대인들의 등 뒤에서 공격해 들어왔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협공을 당하여 죽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급히도망쳤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던 50여명의[㈜마카비 1서는 숫자가 몇 명인지 밝히지 않고, 그리고 단지 마티아스(Matthias)와 유다(Judas)만을 언급하고 있다. ] 군사들을 제외한 그들 모두는 요나단을 버리고 도망쳤다. 도망치지아니한 사람들 중에는 압살롬의아들 마티아스(Matthias), 캅사이오스(Chapsaios의[㈜ 마카비 1서에는 Calfiv 혹은 Xalreiv로 되어있음. ] 아들 유다(Judas) 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전군(全軍)의 지휘관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위험따위를 전혀 개의치 않고 적을 향해 밀고 나갔다. 그러자 적들은 이들의 용맹함에 당황하여 도망하기 시작했다. [㈜ 요세푸스는 이 두 영웅들의 행위를 다소 과장시킨다. 한편으로 그는 요나단(Jonathan)이 그의 의복을 찢는 것과 머리에 흙을 뒤집어 쓰고 그의 군대들이 보기에 실망에 빠져 기도하는 등의 상술(詳述)을 빠뜨리고 있다. ] 요나단의 군사들 중 도망쳤던 사람들은 적들이 패주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도 남아서 싸우던 사라들에 가세하여 적들을 급히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적들이 진을 쳤던 가데스에[㈜ 참). 고대. 13권. 5 : 6(154) 각주 169. ] 이르기까지 뒤쫓아 갔다.



 8. 요나단은 로마와의 조약을 갱신하다[마카비 1서 11 : 74]



 이렇게 해서 적군을 2,000명이나[㈜ 마카비 1서에 따르면 3,000. ] 죽이는 빛나는 승리를 얻은 요나단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요나단은 하느님의 섭리에의해 자신의 모든 일들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진행되어 가는 것을 보고,[㈜ 마카비 1서 12 : 1\’ 요나단은 모든 일이 잘 되어 가는 것을 보고\”(ovti o kairo;\” a!utw\’ sunergei\’). 마카비 1서는 명백하게 신적인 중재라는 암시를 남기고 있다. ] 특사들을 로마인들에게 보냈다. 왜냐하면 요나단은 자기 나라가 이전에[㈜ 유대(Judas)의 때에 . 참). 고대. 12권. 10 . 6(415j)이하 (마카비 1서 8 : 1 이하). ] 로마와 맺었던 우호관계를 새롭게 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요나단은 그 특사들에게[㈜ 異文에는 \”그의 \”라고도 기록됨 . ] 로마로부티 돌아오는 길에 스파르타 사람들(the Spartans)을 방문하여 그들에게 유대인들의 우호와 친선을 다짐하여 말할 것을 지시하였다. [㈜ 유대인들과 스과르타인들(Spartans)에 대하여는 부록에 인용되어진 문헌들을 볼 것. ] 따라서 그 특사들은 로마에 도착하자 원로원 앞에 출두하여 동맹관계를 확고히 하기 위하여 요나단이 자신들을 특사로 보낸 것이라고 말하면서 대제사장 요나단의 메세지를 그들에게 전달하였다. 그러자 원로원은 유대인들과의 우호관계를 규정한 그전의 법령들을 재가하였으며, 또한 그 특사들에게 여러통의 편지를 주어 아시아와 유럽의 모든 왕들과 그 도시들의 통치자들에게 건네주도록 하였다. [㈜ 여기서 요세푸스는 마카비 1서 12 : 4, \”로마인들은 편지를 차 지방장관들에게 써 주었다\”에서 불명료한 진술을 부연하여 밝혀준다. ] 왜냐하면 편지들을 통하여 유대 나라가 안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 특사들은 돌아오는 길에 스파르타(Sparta)에 들러 요나단이 전해주라고 한 그 편지를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파르타사람들에게 보낸 유대인들의 편지(마카비 1서 12\’6)]



 \”유대인족의 대제사장인 요나단과, 공회(公會)와 제사장들의심의회는[㈜ 異丈에는 \”유대공동체\” 마카비 1서 12 : 6은 \”대제사장인 나 요나단과 나라의 원로들과 사제들과 밖의 유다 온 국민이\”라고 적혀 있다. 이 본문(koino;n tw\’n !Ioudaivwn은 요한 힐카누스(John Hyrcanus)의 동전에 있는 헤베르 하 예후딤(\’eber \’a-YHueim)이반 표현과 매우 잘 부합된다. 참). 쉬러(Schuirer) I : 269 각주 25 : koinovn에 대한 협의의 보기들은 발리느(Schallt ), p. 117 각주 14를 참조. ] 형제들 곧 라케다이몬(Lacedaemon)의 장관들(옛 헬라 스파르타의 5장관들)과 원로원과 백성들에게[㈜ 마카비 1서는 단지 \”그들의 형제들인 스파르타인들(Spartiates)에게\”라고 되어 있다. 어떤 주석가들은 \”형제들\”이란 말을 여기서는 종족적인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 취한다. ] 인사드립니다. 우리들은 여러분들이 평안하고 또 공사간(公私間)의 일들도 만족스럽게 진행되어 가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도 또한 잘 있습니다. [㈜ 이 문구는 마카비 1서에 나타나지 않음. ] 전번에 데모텔레스(Bemoteles)가[㈜ 데모텔레스(Demoteles)는 마카비 1서에 언급되어 있지 않음. 참). 고대. 12권. 4 : 10(227) 각주 247. ] 여러분의 왕인 아레이우스(Areius)로부터[㈜ 헬라어로 아레이오스(Areios). 異文에는 아레우스(Areus :보다 정확한 형태임). 마카비 1서에는 다레이오스(Dareios)로 되어 있음. 참). 고대. 12권. 4 : 10(226) 각주 243. ] 우리의 대제사장인 오니아스(0-nias)에게 우리와 당신들 사이에 존재는 혈연관계(kinship)에 관한 한통의 편지에 사본을 첨부하여 가져왔을 때,[㈜ 스파르타인들(Spartans)의 편지인 마카비 1서 12 : 19~23은 요세푸스에 의해 고대. 12권. 4 : 10(225)에 일찌기 기록되었는데 그는 오니아스(Onias)가 바로 오니아스 Ⅲ세 (Onias Ⅲ )라고 추측한다. ] 우리는그 편지를 기쁘게 받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혈연관계는 우리의 신성한 글들(sacred writings)을 통해 확인되어져 왔기 때문에, 비록 우리에게는 그같은 혈연관계에 관한 증거가 필요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데모텔레스와 아레이우스 모두에 대하여 우리의 친절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무척이나 당신들이 수여하는 영예를 얻으려고 갈망하는 듯이 보이지않기 위하여 미리부티 그 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 선행구는 부연설명이다. 이는 마카비 1서 12 : 9 \”우리는 우리 힘이 되는 성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여러분과 동맹 또는 우호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지만\”의 오독(誤讀)내지 다른 본문에 기초한 것이다. ] 우리의 혈연관계가 처음 논의되어진 이후[㈜ 異文에는 \”처음으로 갖추다\”라고 읽을 수 있음. 마카비 1서 12 . 10은 \”사실 우리가 여러분의 핀지를 받은 것도 퍽 오래되었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안식일과 기념일에[㈜ 마카비 1서 12 : 11은 \”축제일이나 그 밖의 다른 적당한 날에 여러분을 잊지 않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가능하면 \”기념의\”(혹은 \”이름의 시조가 되는\”)은 레 23 : 24에 나타나는 \”나팔을 불면서 하는 기념일\”이라고 불려지는 유대 신년 축제날인 디스리(Tishri )월 1일임 을 언급한다] 하느님께 제사드릴 때마다 당신들의 안녕과 승리를 하느님께 계속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이웃 나라들의 탐욕으로[㈜ 마카비 1서는 유대민족 주변국가들의 탐욕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말미암아 많은 전쟁에 휩싸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신들이나 우리와 관계를 맺은 다른 사람들과는 싸우지 않을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적들을 물리친 후에, 안티오쿠스(Antlochus)의[㈜ 異文에는 안티마쿠스(Antimachus). ] 아들인 누메니우스(Numenius)와 야손의 아들인 안티파테르(Antlpater)를 로마인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공회(公會)에 속해있으며 우리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 이 구절은 요세푸스에 의해 첨가됨. ] 그런데우리와 당신들과의 결속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여러분들께도 그들 편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異文에는 \”우리들 사이의 형제관계를 갱신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우리에게 당신들의 요구에 대해 써보내 주셔서 우리로 알게 하여 주십시요. 우리는 모든 면에서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실행해 옮길 것을 분명하게 약속드립니다. \”[㈜ 마지막 준장은 마카비 1서 12 : 18을 확대시킨다] 이와같은 편지를 받은 라케다이몬 사람들(Lacedaemoruans)은 그 특사들을 우호적인 태도로 영접해 주었다. 그리고 유대인들과의 우호동맹에 관한 법령을 만들어 그들이 돌아가는 길에 보내주었다



9. 세 유대 계파(系派)의 견해



[㈜ 유대의 종파들에 대한 다음의 문단은 그와 관련된 문단들과 함께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부록에서 논의될 것이다. 여기서 요세푸슥의 자료이든지 다메섹의 니콜라스(Nicola의 자료든지>는 세 종파들이 헬라독자들에게 보다 알기 쉽게 이해되는 그러한 방식으로 다양한 종교와 세 종파의 사회철학을 제시했다.]



 그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세 계파가 있었다. 세 파는 인간사(人間事)에 관하여 각기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바리 새 파(the Pharlsees)요, 둘째는 사두개파(the Sadducees)이며, 셋째는 에세네파(the Essenes)였다. 바리새파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은 \’어떤 사건들은 운명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 운명이란 여기에서는 물른 우리가 섭리라고 불러야 할 것의 헬라어 등가어(等價語)이다. 참). 더 상세한 내용은 G. F. Moore의 \”요세푸스가 본 유대 철학에서 의 운명 과 자유의 지\”,\’HTR\’xxii, (1929), 37~~389를 보라. ] 그러나 모든 사건이 그런 것은 아니다. 즉 그밖의 다른 사건들은그 사건들이 발생할 것인지 아니면 발생하지 않을 것인지는 우리 스스로에 달려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에세네 파는 \’운명 은 모든 일을 지배 한다. 만일 운명 의 뜻이 아니라면 어떤 일도 인간을 죽일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사두개파는, \’운명의 일이란 하나도 없다. 인간의 행동들은 운명의뜻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의 능력안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자신이 우리의 행복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이며, 우리가 불행을 겪는 것도 우리 자신의 무분별함 때문인 것이다\’라고 주장하떤서, 운명의 존재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이와같은 문제들에 대해서 나는 \’유대전쟁사\’의 제2권에서 더욱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 전쟁. 2권. 8 : 2-14(119-166)]



10. 요나단이 데메트리우스 Ⅱ세에게 승리를 거두다[마카비 1서 12 : 241]



 한편 데메트리우스의 군대장관들은 자신들이 당했던 패배를 설욕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전보다도 더 많은 군사를모아 요나단을 치러 나졌다. 그러나 요나단은 그들이 진군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재빨리 하맛(Hamath)의[㈜ 헬라어로 아마디티스(Amathitis). 요세푸스의 다른 곳에서는(예). 고대. 1권. 6 : 2(138), 7권. 5 4(107)) 아마두스(Ama- thus)혹은 아마데(Amath\’)로 불림 이는 지금의 하마(\’am\’)임. 에피파니아fEpjphania)라고 불리는 헬라시대에 있어서 하맛(Hamath)이라는 성읍은 고대. 13권. 5 : 10 179)이하에 언급되는 엘류데류스(Eleutherus)강의 북동쪽 약 50마일 떨어져 있는 오론테스(Orontes)강 위에 있다. \”하맛(Hamath)구역\”이라는 구절에서 요세푸스는 하맛(Hamath)성읍 남쪽으로 꽤나 떨어진 지역도 포함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왜 수리아인들이 엘류데류스(의 북쪽)를 가 로질러 퇴각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영토에 있는 그들과 맞서기 위해 나섰다. 요나단이 서둘러 진군한이유는 그들에게 유대를 쳐들어 올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않기 위함이었다. 요나단은 적들로부터 50스다디온[㈜ 약6마일. 마카비 1서에는 거리가 기록되어 있지 않음. ] 떨어진곳에 진을 쳤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적의 진지로 보내어 동정을살펴보고, 그들이 어떻게 진을 쳤는가를 알아오도록 하였다. 그정찰병들은 이 모든 것들을 요나단에게 보고하였으며, 또한 야음을 틈타[㈜ 아마 \”밤중에\”(nuktov\”)라는 단어는 관계대명사 다음에 위치하여야 마카비 1서 12 :. 26과 일치한다. 이것은 적군들이 밤중에 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정찰병들이 보고했음을 말한다. ] 적군 몇 명을 붙잡아 왔다. 요나단은 정찰병들이 붙잡아온 사람들을 통하여 적들이 곧 아군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요나단은 전초부대들을 진지 바깥 쪽에다 배치시키고, 군사들에게 밤새도록 전투 준비를 마치게 함으로써, 안전을 위한 조치들을 끝마쳐 놓았다. 그리고 요나단은 군사들의 높은 사기를 그대로 유지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필요하다면 밤에라도 싸울 수 있도록 그들의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을 북돋아 주었다. 그리하여 적의 공격을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그러나 데메트리우스의 군대장관들은, 요나단이 자신들의 작전을 알아챈 것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더이상 냉철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적들이 자신들의 계획을 알아냈다는 사실이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든것이었다. 데메트리우스의 군대장관들은 자신들의 책략이 실패한 지금 다른 어떤 수단으로도 적들을 이길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만일 서로 맞서는 형태로 전투가 벌어졌을때, 요나단의 군사들과 어떠한 전략으로 싸울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도망칠 결심을 하고, 적들이 자신들을 보았을 때, 적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여전히 진지에 있다고 믿게끔 하기 위하여 그곳에 환하게 불을밝혀 놓고는 철수하였다. [㈜ 두 문장 앞에서 요세푸스는 마카비 1서 12 : 27-28을 부연하고 있다. ] 요나단은 새벽녘에 그들의 진지 가까이 갔을 때, 진지가 비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요나단은 그들이 도망쳤다는 것을 알고는 그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잡기에는 너무 늦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엘류데루스강(the Eleutherus river)을[㈜ 현재는 Nahr el-Ker(나르 엘 케비르), 고대. 13권. 4 : 5(105)에서 더 먼저 언급되고 있다. 참). 그곳에 있는 주(註). ] 건너 안전한 곳에 있었기 매문이었다. [㈜ \”were on safe ground\”(안전한 땅에 있음)은 투키디데스에서 따온 것이다. 참). 투키디데 스 viii. 39. 4. ] 그러므로 요나단은 거기에서 아라비아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나바타이아 사람들(the Nabataeans)에 싸움을 걸어 그들의 많은 가축을 노획물로 끌고 나왔다. 그런 다음 그는 다메섹(Damascus)으로 가서, 거기서 그 빼앗았던 가축들을 모두 팔았다. [㈜ 마카비 1서 12 : 31-32에는 \”그래서 요나단은 공격의 대상을 바꾸어 자바대인(Zabadaean)이라고 불리는 아라비아인들에게로 진격하여 그들을 쳐부수고 물건을   노획했다. 그리고는 진영을 기두어 다메섹(Damascus)으로가서 부근의 온 지방을 두루다녔다\”라고 되어 있다 아마 요세푸스는 마카비 1서의 자바대인(Zabadaeans)들을 나바대안 아랍인들(NabataeanArabs)과 연관시키는데 이들은 꽤 델리 떨어진 남쪽지방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가 알렉산더 발라스(Alexander Balas)의 머리를 잘랐던 \’아랍인 자바디엘\'(Zabadlel the Arab)과 그들을 연관시키기 때문이다. 몇몇의 오래된 주석가들은 엘류데루스(Eleutherus) 가까이 있는 다메섹(Damasus)의 북서지역인 잡디니(ZaHinl)라고 언급한다. 요세푸스가 다메섹(Damascus)에서 가축을 파는 요나단(Jonathan)에 대한 설명을 어디에서부티 31집어 왔는지 설명하기는 더 어립다. 아마도 diwvdeuse(그는 행군해 나갔다)에 대하여 요세푸스는 divevdwke(그는 분할했다)혹은 그와 유사하게 읽었을 것이다] 대 략 그때 쯤, 요나단의 동생 시몬은 모든 유대와 팔레스틴(Palestine)[㈜ 여기에서는 팔레스틴(Palestine)으로 필리스티아(Philistia)와 같음. 두 국가는 마카     비 1서에 언급되어 있지 않음. ] 지역을 지나 아스글론에까지 이르렀다. 그런 지역들을 지나면서 그는 그곳의 요새들을 안전하게하고[㈜ 異文에는 \”그들로 하여금 성벽(fortress 흑은 garrisons)을 쌓아 안전하게 하였다\”. ] 그 요새들과 수비대들을 견고케 하였다. [㈜ 마카비 1서 12 : 33은 단지 시몬(Simon)은 \”그 도시를 지나서 아스글론(Ascalon)과 주변 요새까지 진군하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 그런 후에시몬은 욥바(Joppa)로 가서 그곳을 점령한 후에 그 안에다 견고한 수비대를 설치해 놓았다. [㈜ 그 커다란 요새에 대한 소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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