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권 제 3장 아리스토불루스를 대제사장에 임명한 후 헤롯이 어떻게 그를 조금 후에 살해했는지, 그리고 아리스토불루스의 죽음에 대해 그가 안토니에게 어떻게 변명했는지, 또한 요셉과 마리암메에 대하여

 


제 3 장



아리스토불루스를 대제사장에 임명한 후 헤롯이 어떻게 그를 조금 후에 살해했는지, 그리고 아리스토불루스의 죽음에 대해 그가 안토니에게 어떻게 변명했는지, 또한 요셉과 마리암메에 대하여



1.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 Ⅲ 세를 대제사장에 임명하다



  그래서 헤롯왕은 앞서[㈜ 고대. 15권. 2 : 4(22).] 말한 대로 아나넬을 대제사장직에서즉각 해임하였는데, 그는 유대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아나넬이 돌아올 당시에 바벨론에서 수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 아나넬은 대제사장 후예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주 29를 보라.] 헤롯의 절친한 옛 친구였다. 그래서 헤롯은 처음 왕이 되었을 때 아나넬에게 대제상직을 수여했으나, 그의 집안에서 일어난 가정불화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나넬을 그 직에서 쫓아 내었다. 이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인데 아무도[㈜ 나는(Ralph Marcus) 다음의 문장의 관점에서 ouj ga;r a[llo\” gevti\”를 의식적인 과장에 대한 일종의 변명으로 이해한다. a[llo\” 대신에 a[llw\”로 반드시 읽을 필요는 없다.] 대제사장직에서 쫓겨난 전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예외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이 율법을 어긴 첫 번째 인물이었는데, 그는 예수(Jesus)의 대제사장직을 그의 동생 오니아스(Onias)에게 수여했다.[㈜ 예수-야손(Jesus-Jason)은 오니아스-메넬라우스(Onias-Menelaus)에 의해 대체되었다. 고대. 12권. 5 : 1(238)을 보라.]두 번째로 아리스토불루스가 이 법을 어기고 자기 형제인 힐카누스의 대제사장직을 빼앗았다.[㈜ 고대. 14권. 1 : 2(6)과 주 8을 보라.] 그리고는 이 헤롯이 그 세번째로, 그는 아나넬에게서 대제사장직을 빼앗아 젊은 아리스토불루스에게 주었다.



 2. 알렉산드라가 다시 클레오파트라에게 호소하다



  이제 헤롯은 가정 내분을 치유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서로화해한 듯이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헤롯은 자꾸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헤롯은 알렉산드라가 반역을 꾀한 적이 있었고, 또 만약 그녀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녀는 다시 혁명을 꾀하고 말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헤롯은 그녀에게 앞으로는 왕궁내에서만 지내고 공적인 일에는 참견하지 말도록 명령했다.[㈜ 다른 본문에는 \’그의 권위없이.\’ ] 또 그녀의 사생활을 감시병들에게 매일 세심하게 살피게 해서 아무것도 숨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알렉산드라는 날이 갈수록이 모든 어려움을 참을 수 없게 되자 헤롯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다른 본문에는 \’은밀히 자라는.\’ 포스트(L. A. Post)는 요세푸스가 경작식물이 야생되고 있다는 은유를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최고의 자만심을 갖고 있던 알렉산드라는 자신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감시병에게 크게 분노했다. 말할 자유를 빼앗기고 공포와 노예상태로 숨죽이며 사느니보다 차라리 자기에게일어날 수 있는 다른 어떤 것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클레오파트라에게 장황하게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최선을 다하여 자기를 도와주도록 탄원하였다.

  이에 대해클레오파트라는 아들을 데리고 즉시 애굽으로 오라고 충고했다. 이 충고에 그녀는 기뻤다. 그리하여 알렉산드라는 탈출 계획을 세웠는데, 관을 두 개 만들고 자신과 아들이 관에 들어간 다음 종들에게 야음을 틈타 시체를 운구하는 것처럼 운반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도주로는 해변 쪽이었고 배를 대기시켜 애굽으로 타고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아이솝(Aesop)이라는 하인 하나가 그의 친구인 사비온(Sabion)이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 그도 이미 이 계획을 알고 있는 줄로 생각하고 모두 말했다. 사비온은 전에 헤롯의 아버지 안티파테르(antipater)를[㈜ 고대. 14권. 11 : 4(281)에 의하면 안티파테르(Antipater)는 그의 친구 말리쿠스(Malichus)의 사주를 받은 힐카누스의 청지기에게 독살당했다.] 독살하려 했던 사람들의 일원으로 헤롯에게 여겨졌었는데, 이이야기를 듣고 그는 헤롯의 미움을 우정으로 바꿀 수 있는 좋은기회라고 생각하여 알렉산드라의 이 은밀한 계획을 헤롯에게 밀고하였다. 이리하여 헤롯은 알렉산드가가 계획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탈출현장에서 체포하였다. 그러나 헤롯은 그녀의 잘못을 아직은 묵과하고 있었다. 비록 그가 그녀를 그렇게 놓아둠으로써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는 감히 그녀를 혹독하게 처벌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헤롯이 알렉산드라를 처벌하면[㈜ boulomevnw haujtw(Hudson에 의해 추측됨)는 투키디데안9thucydidean)의 표현이다. 참). Thuc. ii. 3. 2, iv. 80. 2 그 밖의 여러 곳.] 클레오파트라가 이를 참지 못하고 자신을 미워하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헤롯은 자신이 관대하고 아량을 베풀어 그들을 용서하는 것처럼 가장하였다.[㈜ 이것은 다소 자유로운 번역이다. 헬라어 본문은 어렵고 그 의미가 와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를 제거하려고 한 두가지 방법을 내심으로 생각해 내고는 지금 당장 처벌할 수 없다면 가능한 한 숨겨두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3. 헤롯이 아리스토불루스를 익사시키다



  유대인들이 정성껏 지키는 장막절 축제 기간이 다가오자, 헤롯은 그 축제 기간이 지날 때까지[㈜ 초막절은 한주간 또는 연장하여 9일간 지속된다. 왜냐하면 Semini \’Asereth와 Sim\’arth Torah 절기가 곧 따라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언급한 것은 주전 36이기보다 주전 35년 10월에 지낸 절기일 것이다. Schurer, \’GJV,\’i. 362와 Otto, \’Herodes\’, p. 42를 보라.] 그들이 즐겁게 보내도록 허락했다. 그런데 이 기간에 헤롯의 마음에 질투심이 일어나 그가 계획했던 것을 서둘러서 집행하게 하였다. 그 까닭은 17세 된[㈜ 고대. 15권. 3 : 3(56)에서 요세푸스는 아리스토불루스가 대제사장직을 1년동안 수행한 후 18살 때 죽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는 17번째 생일 이전이거나 이후에 이 직위를 임명받았음이 틀림 없다.] 젊은 처남 아리스토불루스가 율법[㈜ 요세푸스 당시 거의 모든 랍비들의 권위는 대제사장이 이론적으로 성전에서 직무를 행할 때는 최소한 20살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는 대하 31 : 17에 있는 율법에 기초하고 있다. 역대하에서 그들은 \”레위지파\”에 제사장들을 포함하여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랍비들은 봉사의 최저 한계 나이를 사춘기 나이로 보고 있다. 바벨론 탈무드<Bab. Talmud>, \’\’ullin\’, 24b를 보라.] 에 따라 대제사장 복장을 하고 제단에 제사를 드리러 올라갔는데, 이 신성한 직무를 수행할 때 그의 모습은 너무 잘 생기고 그 나이 또래보다 훨씬 컸으며 그의 수려한 용모가 귀족집안 출신임을 확연히 드러내 보였다.사람들은 그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호감을 나타냈으며[㈜ 또는 \”점차적으로 압도되어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나타냈다.\”] 그의 조부 아리스토불루스의 행적에 대한 기억을 그들의 마음속에 떠올렸다. 백성들은 아리스토불루스에 대한 애정에 사로잡혀 그를 향한 자기들의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기쁘다 못해 질서를 잃을 정도로 혼란스럽게 되었으며 아리스토불루스에게 즐거운 탄성과 축복을 보냈는데, 그에게 보인 대중들의 호감은 하늘에 닿을 듯하였다. 백성들은 아리스토불루스의 가문으로부터 누렸던 행복에[㈜ 다른 본문에는 \”그들이 얻은 이익들의\” (아리스토불루스 Ⅱ세 또는 하스모네안 통치 하에).] 대해 왕정하에서는[㈜ 즉 헤롯.] 용납될 수 없는 지나친 말을 하였다. 이런 이유로 해서, 헤롯은 이 젊은이를 처치하려했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을 굳혔다. 축제가 끝나자,알렉산드라가 여리고에서 잔치를 준비하고 헤롯을 초청하였는데, 그는 그곳에 가서 아리스토불루스와 한껏 즐기고 두려움(fear)[㈜ 독성(poiooning). 다른 본문에는 \”안전한 장소로 그를 인도했다\”로 되어 있다.] 없이 마실 수 있는 한적한 곳으로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우스꽝스러운 태도로 유치한 놀이를 하였다. 그 곳은 다른 곳보다 유난히 더운 곳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더워 미칠것 같은 생각이 들어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 집 옆에는 큰 연못이 있었는데[㈜ 헤롯 궁전의 유물은,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와 \’Pittsburgh-Xenia Theological Seminary\’에 의해 발굴되었다. James L. Kelso, \’Biblical Archaeologist\’, 14(1951), 39에 나오는 \”New Testament Jercho\”를 보라. 그러나 \’가라앉은 정원\’의 육중한 성벽이 너무 커서 수영장의 벽으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그들은 한 낮이라 수영으로 몸을 식히려고 하였다. 아리스토불루스는 처음에는 구경만 하였으나, 조금 후에 헤롯이 부추겨서 그들이 있는 연못으로 들어갔다.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자, 헤롯의 심복 몇이 헤롯이 지시했던 대로 아리스토불루스와 장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며 그를 물속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그가 완전히 질식할 때까지 누르고 있다가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에게서 손을 떼었다. 18세도 안된 아리스토불루스는 이런 방법으로 대제사장직을 1년도 채지키지 못하고 살해되었으며[㈜ 전쟁. 1권. 22 : 2(437)에 있는 한 문장의 이야기는 \”따라서 그는 밤에 여리고로 보내졌다. 그리고 거기서 지시에 따라서 골인들(Gauls)에 의해 수영장으로 내던져져서 죽었다.\” 골인들(Gauls)은 시대에 만지 않는 표현이다. Dr. Thackeray의 주를 보라.] 그 대제사장직은 결국 아나넬에게로 돌아갔다.



 4. 알렉산드라의 슬픔과 헤롯의 은폐



  이 비극적인 소식이 알렉산드라와 마리암메에게 전해지자 그들의 기쁨은 순식간에 슬픔으로 바뀌었다.[㈜ pevnqo\” a[sceton는 호머의(Homeric) 표현이다.] 마침내 아리스토불루스의 시신이 그들 앞에 운구되었을 때, 그들은 슬픔을 참을수가 없었다. 이 소식이 도시에도[㈜ 예루살렘을 의미한다.] 퍼지자 모든 시민은 이 재난을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바로 자기 일로 여기며 슬퍼하였다. 특히 알렉산드라는 헤롯이 의도적으로 그를 살해하였다는 것을알고 또 살인이 어떻게 저질러졌는지를 알게 되자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크게 슬퍼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큰 불행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때로 그녀는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고자 하는 생각도 했으나,[㈜ 추측된 다른 본문에는 \”그녀가 원했다.\”] 이렇게 은밀히 저지른 불의한 살인을 복수하기 위해서는[㈜ 문자적으로는 \”~에게 도움을 주게하다\” :  prosarkrei\’n은 소포클레스(Sophocles)의 어휘이다.] 오래살아야 한다고 다짐하며 자제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더 오래 살기 위해 애쓰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기 아들이 고의로 살해되었다고 의심하는 눈치를 헤롯이 채지 못하도록 하고 복수할 힘을 갖추면서 적당한 기회를 엿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조금이라도 의혹을 품고 있다는 것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행동하였다.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의 죽음이 자신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다른 나라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그래서 그는 일상적인 슬픔의 표현뿐만 아니라 눈물도 흘리고 진정한 영혼의 고통까지도 나타내 보였다. 비록 그의 죽음으로 자기의 지위가 안정되기는 했지만, 그렇게 젊고 그렇게 준수한 그 아이의 용모를 보고 진정으로 감정이 격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슬퍼해 줌으로써 적어도 그에 대한약간의 사과가 된다고 생각한 헤롯은 그의 장례에 대해서도 시체가 묻힐 묘지를 크게 마련하고, 많은 향료를 공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부장품을[㈜ 또는 \”장신구(Ornaments).\”] 함께 묻어 주어 깊은 슬픔에 빠져있던[㈜ ejkplh\’xai to; luphrovn은 투키디데스(Thucydides) ii. 38. 1에 잇는 페리클레스(Pericles) 장례식 연설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곳에서 사용된 것처럼 이 어구는 요세푸스의 본문에 다소 부적절한 것 같다.] 알렉산드라조차도 깜짝 놀라게 하였다.



 5. 알렉산드라의 청원에 따라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에게 헤롯을 심문하라고 설득하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도 알렉산드라의 슬픔을 달랠 수는 없었다.[㈜ 추측된 다른 본문에는 \”기만당하지 않았다.\’] 이 비참한 사건을 회상할 때마다 그녀의 슬픔은 오히려 깊어지고 거세졌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이 비극적으로 살해된 것에 대해 편지로 클레오파트라에게 설명하였다. 클레오파트라는 알렉산드라가 원하던 것을 해주고 싶어하던 차에[㈜ 고대. 15권. 3 : 4(59) 주 64를 보라.] 그녀의 이불행한 소식을 접하고 불쌍히 여겼다. 그리하여 클레오파트라는 그 일을 자기 일로 생각하여 안토니에게 그 아이의 살인범들을 처벌할 것을 요청하였다. 즉, 그녀는 안토니가 자격도 없는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세웠는데, 헤롯은 진짜 왕족의 피를 흘린 끔찍한 죄를 지었다고 하였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의 중재가 주전 35-34년 겨울 동안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안토니는 애굽에 있었을 때이거나아니면 그가 주전 34년 초에 아르메니아(Armenia)를 침입하기 얼마 전이었을 것이다. 안토니의 영향으로 왕으로 임명된 헤롯에 대하여는 고대. 1권. 14 : 4(385)를 보라. 헤롯이 주전 40년에는 이름뿐인 통치를 시작한 반면에 주전 37년에는 실제적인 통치를 했다고 특히 강조하는 것은 카나엘(B. Kanael)이 \’JQR,\’42(1951/2), 261-264에 나오는 \”The Coins of King Herod of the Third Year.\”에서 고전학적 증거에 기초하여 그럴듯하게 논증하였다.] 이말에 대꾸할 말을 잃은 그는 결국 그녀의 말에 설득당했다. 그리하여 안토니가 라오디게아에 오게되었을 때,[㈜ 수리아의 해안에서.] 안토니는 헤롯을 호출하여 아리스토불루스에게 행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비극적 음모에[㈜ 문자적으로 \”적당하지않은\”.] 그가 개입되어 있는지 여부를 사실대로 말하도록 했다. 헤롯은 이 소송사건과, 클레오파트라가 자기를 미워하여 안토니로 하여금 자기를 미워하게 한 것에 큰 두려움을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안토니의 소환을 회피할 별다른 방법도 없었기 때문에 헤롯은 순순히 응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헤롯은 그의 삼촌이며[㈜ 전쟁. 1권. 15 : 8(441)에서 요세푸스는 요셉(Joseph)을 헤롯의 누이 살로메(Salome)의 남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가 헤롯의 백부라는 어떤 언급도 없다. 더구나 고대. 15권. 6 : 2(169)를 보면 요세푸스는 요셉과 헤롯 사이의 그런 관계를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인해 어떤 사람은 이 단락에 있는  qei\’on, \’백부\’를 penqerovn \’매부\’의 착오로 보는 몇몇 학자들과 일치한다.] 행정장관인 요셉에게 국정과 공무를 맡기면서 동시에 밀명(密命)을 주었는데, 만일 안토니가 자기를 죽이면 요셉도 즉시 마리암메를 죽이라고 했다.[㈜  사본은 \”우리는 할로시스(Halosis)의 첫 책(즉 \’유대전쟁사\’)에 보다 분명하게 관계되어 있는 것처럼\”을 첨가하면서 고대. 15권. 3 :9(87)의 끝에서 중지하였다.] 왜냐하면 헤롯은 자기 부인 마리암메를 너무 사랑하는데 그녀가 미인이기 때문에 만약 자기가 죽은 후에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 그로 인해 받을 모욕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지시의 배경에는 안토니가 전에 그녀의 미모에 대해 소문을 듣고[㈜ 본문과 의미는 다소 확실치 않다. 마리암메의 아름다움을 안토니가 처음으로 알게 된 것에 관해서는 고대. 15권.2 : 6(26)을 보라.] 그녀와 사랑에 빠졌던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헤롯은 요셉에게 이 임무를 맡기고[㈜ 또는 아마도\”국가(의 운명)에 관하여\” (tw\’n ovlwn).] 어쩌면 살아돌아오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안토니에게로 갔다.



 6. 요셉이 마리암메에 대한 헤롯의 비밀 지령을 누설하다



  요셉은 정무를 돌보고 있었는데,[㈜ 전쟁. 1권.22 : 4, 5(441-411)에는 고대. 15권.3 : 6-9(68-87)의부분적인 병행구가 있다.] 헤롯의 부탁과 왕비에 대한 존경의 의무 때문에 마리암메와 자주 만나게 되었다. 요셉은 헤롯이 그녀를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고 있는가를 대화 중에 자주 말했다. 그러나 두 여인, 특히 장모 알렉산드라는 그의 말을 여성적인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요셉은 왕의 마음을 나타내고  싶은 나머지, 그만 그가 받은 밀명까지 말해버렸다. 헤롯이 그녀 없이는 단 한시라도 살 수 없으며 병이들거나 죽은 후까지도 그녀와 헤어져 살 수 없다고 하였다고 요셉은 말했다. 그러나 여자들이 보통 그러는 것처럼 이 여인들은 이것을 헤롯이 자기들을 너무 사랑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죽으면서 까지도 그들을 파멸시키거나 포악하게 죽이려고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본문과 의미는 다소 확실치 않다.] (요셉의) 이 말은 이후로 두 여인이 헤롯을 의심하는 근거가 되었다.



 7. 헤롯이 죽었다는 헛소문



  이 때 예루살렘 시의 헤롯 반대파들 사이에서 안토니가 헤롯을 고문하고 사형시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늘 그러듯이 이 소문은 왕궁에 있는 사람들, 특히 두 여인들을 동요시켰다. 알렉산드라는 율리우스(Julius)[㈜ 다른 본문에는 \”유다(Juda)의 아들.\”이 장교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휘하의 왕국 수비대로[㈜ 군중봉기에 대하여.] 예루살렘에주둔하고 있는 로마 군영으로[㈜ W.W.Tarn의 \’CAH\’x. 77에 따르면, 안토니(Antonyu)는 수리아에 13개 군단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예루살렘에 있는 한개의 군단도 포함된다.] 도만하자고 요셉을 끈질기게 설득하였다. 만약 왕궁에서 어떤 소요가 발생하더라도 로마인들은그들에게 호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 본문은 다소 수정되었다.] 안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알렉산드라는 만일 안토니가 마리암메를 한 번만 본다고 해도 안토니를 이용하여 왕국을 되찾고 최고의 권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있었다. 그들은 왕족이었기 때문에 이런 희망을 가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8. 헤롯은 안토니에게 갔던 일에 대한 그의 성공에 관해편지를 써 보내다



  이런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헤롯에게서 자신의 모든 일들을 적은 편지가 왔는데, 이 편지는 그들이 전에 기대했던[㈜ 다른 본문에는 \”예상 되었었던\”. 다음에 나오는 헤롯의 보고는 헤롯 자신에게 의해서나 또는 요세푸스 자료의 왜곡에 대한 의심을 하게 한다.] 것과는정반대로 사정이 바뀌어 있었다. 헤롯은 안토니에게 갈 때 예루살렘에서 준비한 선물을 그에게 줌으로써 오히려 그의 환심을사게 되었다. 그리하여 헤롯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을 향한 안토니의 분노를 없애는 대화를 유도하였다. 안토니의 신임을 얻기 위한 헤롯의 선물공세는 먹혀 들어가, 클레오파트라의설득에도 불구하고 안토니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헤롯을 두둔하였다. \”자기 나라 정부의 문제를 황제에게 해명하도록 하는것은 좋지 못하다. 그렇게 되면 그는 결코 왕이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권위를 주었으면 그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토니는 클레오파트라에게도 이같이 말하고 헤롯 왕의 통치행위에 사사건건 간섭하지 않는게[㈜ 또는 \”과다하게 관계하지 아니하는 것.\” 고대. 15권. 6 : 2(165)에 있는 polu pragmonei\’n은 \’공적 일에 참여하는 \’을 의미한다.] 좋겠다고 했다. 헤롯은이 일들을 설명하면서 안토니에게 받은 칭찬을 과장되게 편지로써 보냈다. 즉 안토니는 헤롯을 자기 옆에 앉게 한 후 아리스토불루스 사건에 헤롯이 연루되었는지 변명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날마다 안토니와 함께 식사를 했으며, 클레오파트라가 자기를 심하게 비난함에도 불구하고 안토니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자기를 축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며 유대를 달라고 안토니에게 간청했다. 그러나 자신은 안토니가 아직도 자기를 지지하고 있음을 보았고 더 이상 안토니가 자신을 함부로 다룰 염려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자신은 안토니가 아직도 자기를 지지하고 있음을 보았고 더 이상 안토니가 자\’신을 함부로 다룰 염려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자신은 공무를 잘 돌보도록 안토니의 더 굳건한 보증을 얻어 곧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안토니는 클레오파트라에게 그녀가 원하는 것(유대) 대신에 코엘레수리아(Coelesyria)를[㈜ Schurer가 \’GJV\’, I. 3620364에서 추측컨대 레바논 지역에 있는 칼키스(Chalcis)일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설득력있는 논증을 한 것처럼 이 선물은 같은 해 후기에<참). 고대. 15권. 4 : 1(92)이하>준 것과는 다르다. 이는 Plutarch, \’Ant\’, 36과 Dio Cassius, xlix. 32에서 보다 일찍이 언급된 것으로 주전 36년에 파르티아인들과 싸우려고 안토니가 원정을 시작할 때이다.] 줌으로 그녀의 탐욕스런 기질을 무마시켰고 유대를 그녀에게 달라고 한 청원을 거절하였다. 이것이 헤롯이 쓴 편지의 내용이었다.



9. 마리암메로 인한 헤롯의 질투로 요셉이 처형되다



  이 편지가 도착하자, 헤롯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로마진영으로 도망하려던 두 모녀는 시도를 중지하였으나 그들의 의도가 들통이 났다. 헤롯은 안토니가 파르티아인을[㈜ 어떤 학자들은 여기에 있는 \’파르티아\’를 \’아르메니아\'(Armenia)의 착오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은 불필요하다. 왜냐하면 안토니가 실제로 아르메니아(Armenia)를 침입하고 진압한 것으로 끝났지만 주전 34년에 파르티아(Parthia)를 침공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는 고대. 15권. 4 : 3(104)와 Debevoise, pp. 133-134을 보라.] 공격하러 가는 길을 안내한 후, 유대로 돌아올 때 그의 누이 살로메(Salome)와 그의 어머니에게서[㈜ 그녀의 이름은 키프루스(Cyprus : Kypros)이다. 고대. 14권. 7 : 3(121)을 보라.] 장모 알렉산드라의 의도를 듣고 알게 되었다. 그런데 살로메는 마리암메가 그들과 대화하면서 교만한 태도로 그들의 출신 가문이 낮다고 비난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마리암메를 미워했었다. 그래서 살로메는 요셉이 마리암메와 가끔 간통했다는 중상모략을 덧붙였다. 마리암메를 뜨겁게 사랑했던 헤롯은 이 말은 듣고 마음이 산란해졌으며 질투심에서 오는 고통을 참고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헤롯은 아내 마리암메를 향해 품었던 사랑 때문에 당장 어떤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으며[㈜ 다른 본문에는 \”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억지로 참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열정과 질투심에서 헤롯은 마리암메에게 요셉과의 관계를 물었다. 그녀는 맹세코 부인하면서 잘못이 없는 정숙한 부인이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하여 자신을 변호하듯 하였다. 이에 왕의 의심이 점차 사라지고 그녀를 향한 분노가 멈춰 갔다. 그리고 그의 부인에 대한 질투심이 가라 앉으면서 헤롯은 마리암메에 관한 소문을 믿었던 것에 대해 사과하였다. 또한 헤롯은 그녀의 겸손한 행동에 무한히 감사하고 있으며 누구보다도 뜨겁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다정한 연인들처럼 그들은 둘 다 눈물을 흘리면서 뜨겁게 사랑하여 포옹하였다. 왕이 그녀의 신실성에 점점 확신을 갖게 되자, 그 확신을 더 확고하게 하기 위해[㈜ 다른 본문에는 \’그녀로 하여금 이것을 나누도록 재촉하다.\’] 마리암메가 말했다. \”만일 안토니가 당신을 해치면 사랑의 표시로 아무 관련도 없는 나를 죽이라고 명령하지않으셨나요\’\”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왕은 충격을 받고, 안고 있던 그녀를 떠밀어 내며 소리지르고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헤롯은 이 말이 그녀가 요셉과 간통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말하면서 둘 사이가 그 정도로 친밀하지 않다면 은밀하게 요셉에게만 말했던 것을 요셉이 그녀에게 말할리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생각한 헤롯은 격분하여 그의 부인을 죽이고 싶었다. 그로나 마음의 동요와 계속되는 슬픔이 없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그녀를 끔찍이 사랑하는 헤롯은 이 격분을 억제하였다. 그리고는 그대신 헤롯은 자기 눈앞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요셉을 처형하라고 명령하였으며, 장모 알렉산드라를 이 음모의 주범으로 결박하여 감옥에 수감하였다.[㈜ 전쟁. 1권. 22 : 4, 5(441-444)에서 요세푸스는 마리암메 역시 질투하는 남편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마리암메와 요셉에 대한 동일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더구나 고대. 15권. 6 : 5-7(185-231), 7 : 1-4(202-231)에서 요세푸스는 헤롯의 친구 소에무스(So\’mus)가 주전 30-29년에 옥타비안을 헤롯이 방문했을 때 관련된 비슷한 사건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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