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클레오파트라가 어떻게 안토니에게서 유대와 아라비아 일부를 얻고 유대로 왔는지, 그리고 헤롯이 어떻게 그녀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을 인도했는지에 대하여
1. 안토니는 클레오파트라에게 수리아 영토의 일부를 주다.
[㈜ 고대. 15권. 4 : 1-4(88-107)은 전쟁 1권. 18 : 4, 5(359-363)에 부분적인 병행구가 있다.]
그 당시 수리아는 누가 다스리는 영역이건, 안토니를 끊임없이 충동하여 빼앗고자 하는 클레오파트라 때문에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여러 왕자들의 영역을 탈취하여 자기에게 달라고 안토니에게 졸라대었다. 클레오파트라를 사랑한 그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애굽의 왕이 되려했던[㈜ 이 사람은 톨레미 Ⅷ세<클레오파트라의 나이어린 남편인 그의 형이 주전 47년 의혹에 쌓인 채 사라진 후 형의 이름을 따라 데오스 필로파토르(Theos Philopator)라고 불리움>로서 주전 44년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에서 애굽으로 돌아온 후에 곧 죽었다.] 15살 밖에 안된 남동생을 독살하였으며, 에베소에 있는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에 기도하러 가 있던 자기의 여동생 아르시노에(arsinoe)를 안토니를 시켜 죽이게 하였다.[㈜ Dio Cassius, xlviii. 24. 2에 의하면, 안토니는 에베소(Epnesus)에 잇는 아르테미스(Artemis)의 신전에서 그들을 끌어낸 후에 클레오파트라의 ajdelfouv\”(형제들)을 죽였다.] 또한 조금이라도 돈이 될 물건이 있는 곳이면 그녀는 신전이나 무덤도 가리지않고 모두 파헤쳤다. 그리하여 장식물을 그대로 다 갖춘 채 폐허되지 않고 남아있는 성전은 한 군데도 없었고, 이 사악한 여인의 탐욕스러움을 만족시킬 만한 것이[㈜ 부정사 \”만족 시키려고\”(to satisfy)는 추측컨대 라틴어 사본에서 온 것일 것이다.] 있는 한 시달림을 받지 않은 장소는 한 곳도 없었다. 그러나 욕망의 노예가 되고 낭비벽이 심한 이 여인에게는 이 세상이라도 그녀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의미는 전혀 분명치 않다 ; 본문은 \’만약 그 여자가 바라던 어떤 것이 없다면 그 여자는 모든 것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란 의미가 분명하다.] 그래서 그녀는 안토니에게 다른 사람들이 다스리고 있는 곳을 자기에게 빼앗아 주도록 계속 졸랐다. 그녀가 안토니와 함께 수리아를 지나가다가그곳을 자기 소유로 삼을 방안을 궁리한 끝에, 톨레마이우스의 아들 리사니아스(Lysanias)가 로마 정부에 대항하게 파르티안을 끌어들였다고 비난하여 안토니로 하여금 그를 죽이게 하였다.[㈜ 이는 주전 40년에 있었다. 이때 루사니아스(Lysanias)는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 안티고누스(Antionus)와 동맹을 맺었다. 고대. 14권. 13 : 3(330-333)을 보라. 루시니아스는 헤르몬(Hermon)산의 동쪽과 다메섹의 남쪽 조그만한 지역인 칼키스(Chalcis) 또는 이투라이아(Ituraea)의지배자였다. 플루타르크(Plutarch)와 디오 카시우스(Dio Cassius)에 (주 84를 보라) 의하면 루사니아스는 주전 36년에 죽었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루사니아스가 주전 34년에 죽었다고 기록하였다. 고대. 주 85를 보라.] 그녀는 또 안토니에게 유대와 아라비아의 현재의 통치자들로부터 그들의 왕권을[㈜ 즉 유대의 왕 헤롯과 아라비아의 왕 말쿠스(Malchus). 전쟁. 1권. 13 : 9(360)을 보라.] 빼앗아야 한다고 충동질해서 자기에게 주도록 청원했다. 안토니는 이 여인에게 완전히 점령당했으므로 그녀가 하는 말은 곧 그대로 시행될 것이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안토니는 클레오파트라의 여러 가지방법에 홀려 그녀가 요구하는 부탁을 싫어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안토니는 그녀의 노골적인 악한 행동에 죄책감을느꼈기 때문에 그녀가 충동하는 흉악한 범죄를 항상 다 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요구하는 것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도 좋지 못할 것 같아 그 나라의[㈜ 즉 헤롯과 말쿠스의.] 일부를 떼어 주었다. 그래서 안토니는 그녀에게 엘류데루스(Eleutherus)강에서애굽사이에 있는 도시들을[㈜ 베니게(Phoenicia)와 팔레스틴의 해안에 있는 도시들.] 모두 주었는데 두로와 시돈은 조상때부터 자유도시라는 것을 알고 제외시켰다.[㈜ 이러한 수여와 언급된 사항들에 대해서는 고대. 15권.3 : 8(79)에 모미글리아노(Momigliano), \’Ricerche\’, pp. 349-350을 보라.]
2. 클레오파트라와 헤롯 간의 감춰진 적대감
클레오파트라는 그만큼 많은 지역을 얻었다. 그리고, 함께 동행하였던 안토니가 아르메니아(Armenia)[㈜ 전쟁. 1권. 13 : 9(362)에는 요세푸스가 \”파르티아에 대하여\”로 기록하고 있다. 원정은 실제로 아르메니아왕을 체포한 것으로 끝이 난다.] 를 정벌하기 위해유브라데까지 원정하자, 클레오파트라는 홀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메아(Apamea)와 다메섹(damascus)을 거쳐 유대를 지나게되었다. 이때 헤롯은 그녀를 만나 아라비아와 여리고 지역의 세금을 도급맡았다.[㈜ 전쟁. 1권. 13 : 9(362)와 고대. 15권. 5 : 3(132)에 따르면, 댓가는 매년 200달란트였다.] 그 나라는 아주 값비싼 약재로서 그 곳에서만 재배되는[㈜ 고대. 9권. 1 : 2(7)에서 요세푸스는 발삼(balsam)이 사해의 서쪽 해안에 있는 엔게디(En-gedi)에서 자랐다고 말한다.] 발삼(balsam)의 생산지였다. 그 곳의 야자나무는 수량도 많고 다른 것보다 품질도 좋았다.[㈜ 여리고의 산출물에 대해서는 고대. 14권. 4 : 1(54)와 전쟁. 4권. 8 : 3(459-475)의 세부적인 설명을 참조하라. 고대. Testimonia는 Schurer, \’GJV\’ I. 380 주 37에 주어진다.] 그녀는 그 곳에머물면서, 자주 헤롯과 자리를 같이하여 정을 통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향락에 탐닉하는 것을 조금도 죄악시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렇게 헤롯을 유혹했던 것은 어느 정도 그에게 연민을 품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나, 그보다는 그렇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헤롯을 함정에 빠뜨리게 하는 비밀스러운 작업에착수하려고 했다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한다면 클레오파트라는 헤롯에 대한 욕정에 사로잡혔다고 할 수있다. 헤롯은 클레오파트라가 누구에게나 사악한 여자임을 잘알고 있었으며, 특별히 그녀가 추구하는 욕정을 경멸스럽게 생각하였다. 만일 그녀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이러한구애작전을 시도한다면[㈜ 본문은 약간 수정됐다.] 그는 그녀에게 해를 입기 전에 먼저그녀를 해쳐야 하겠다고 생각하고는 한 동안 클레오파트라를 멀리하였다. 그래서 헤롯은 클레오파트라의 유혹을 피함과[㈜ 허드슨(Hudson), 휘스톤(Whiston)과 카모날드(Chamonard)는 diekrouvsato를 \”거절했다\”로 번역한다. 그러나 이 의미는 입증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자기 친구들을 불러 그녀가 자기의 수중에 있을 때 죽여버리는 것이 어떻겠는지를 의논하였다. 헤롯은 그렇게 하는 것이 클레오파트라가 과거에 저질러 놓았고 그리고 앞으로 저지를 모든사악한 일들을 제거하는 첩경이며, 그것이 안토니에게도 도움이된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그녀의 마음에 탐욕이 생기면 그탐욕이 안토니에 대한 충성심을 압도할 것이기 때문에 안토니에게조차도 충성을 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헤롯은 그의 친구들이 그녀를 죽이지 말라고 하는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그들은 헤롯에게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질러 자신을 위험에빠뜨리는 것은 옳지 못하니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말라고 간청했다. 왜냐하면, 그녀를 죽인다면 우선 안토니가 결코 참지 못할것이고, 또 아무도 안토니에게 그렇게 한 것이 그의 유익을 위한것이라고 그의 목전에서 분명히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또 한가지 이유는 그렇게 포악하고 비참한 방법으로 안토니에게서 그녀를 빼앗아 간 것을 그가 알면 클레오파트라를 향한 그의애정이 전보다 훨씬 더 불타 오를 것이라는 점이며, 또 다른 이유는 당대 최고의 위치에 잇는 여인을 죽이려는 시도는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헤롯이 클레오파트라를 죽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그가 행한 무례함에대해 저주를 받는 것 분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렇게 되면[㈜ 다른 본문에는 \”모두.\”] 헤롯 자신과 그 후손에게까지 엄청나고도 지속적인 불행을 그의정부에 안겨 줄 것이 자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녀의 탐욕스런 그 악을 거절할 힘이 아직도 헤롯에게 있으니 지금 명예롭게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헤롯의 친구들은 헤롯의 그 무모한 행동으로 인해 야기될 위험과 모든 가능성들을 그에게 제시하여 헤롯을 겁먹게 함으로써, 클레오파트라를 죽여 없애려는그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서 헤롯은 클레오파트라를 친절하게 대접하고 선물을 주어 애굽까지 길을 안내해 주었다.
3. 아르메니아에서의 안토니
안토니는 아르메니아를 정복하고[㈜ 주전 34년 후반부에.] 티그라네스(Tigranes)의아들인 아르타바제스(Artabazes)와[㈜ 또한 그 이름의 세 번째 아르메니아왕인 아르타바스데스(Artavasdes ; Artavazd)로 알려졌다.이는 그 이름을 가진 세 번째 아르메니아 왕이다. 전쟁. 1권. 18 : 5(363)에서 요세푸스(또는 그의 자료)는 그를 \”파르티아인\”으로 부르고 있다. 확실히 메대왕인 아르타바스데스와 혼동하고 있는데, 그는 아르메니아의 아르타바스데스와 대항하여 그가 나중에 버린 안토니의 동맹군으로 싸웠었다.] 그의 자녀들과 각료들을 결박하였으며, 클레오파트라에게 그가 그 나라에서 빼앗은 왕궁의 모든 보물을 포로들과 함께 선물로 보냈다. 그때 아르타바제스의 장남 아르탁시아스(Artaxias)는[㈜ 또는 아르탁세스(Artaxes Ⅱ).] 탈출하여 아르메니아왕국을 차지했다. 그러나 아르켈라우스(Archelaus)와[㈜ 갑바도기아(cappadocia)의 왕, 그는 자기의 영토로서 소 아르메니아(Lesser Armenia)를 받았다. Debevoise, p. 141을 보라.] 네로가이사(Nero Caesar)는[㈜ 디베료 글라우디오 네로(Tiberius Claudius Nero), 미래의 황제 디베료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르탁세스(artaxes)를 죽인 후에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아구스도가 보냈던 사람이다. 요세푸스는 이렇게 아르켈라우스(Archelaus)와 디베료가 그를 추방한 것을 부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그를 추방한 후, 그의 동생 티그라네스(Tigranes0에게[㈜ 티그라네스 Ⅲ세(Tigranes Ⅲ). 그는 그후 곧 죽었다. 드 모르간(De Morgan), p. 89을 보라.] 왕위를 물려 주었다. 그러나 이 일은 훨씬후에 발생한 일이었다.
4. 헤롯은 클레오파트라를 깍듯이 섬기다
헤롯은 안토니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준 나라에 대한 세금을 도급받았으므로, 클레오파트라에게 세금을 내야 했다. 클레오파트라가 자기를 미워하면 안전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 헤롯은그녀에게 실수 없도록 행동했다. 그런데 한때는 200달란트나되는 세금을 헤롯에게 내던 아라비아 왕이 점점 인색해지고 지불을 지연할 뿐 아니라, 세금의 일부를 내지 않으려고 하였으며 심지어는 얼마를 깍아주지 않으면 아예 세금을 내려 하지 않았다.[㈜ 보다 문자적으로 \’손해 보지 않고\'<참). 고대. 15권. 5 : 1(120)>. Thackerary(사전)는 \”사기수단을 쓰지 않고\”로 제안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