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권 12년 동안의 사건을 다룸
헤롯이 성전을 완공할 때부터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가 죽을때까지
제 1 장
헤롯이 만든 도둑방지법,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가 로마에서 돌아오자 살로메와 페로라스가 그들을 비난했으나 헤롯은 그들에게 아내를 구해준 것에 대하여
1. 헤롯의 엄격한 도둑방지법
헤롯은 도시와 지방에서 저질러지는 범죄를 근절시키기 위한 치안행정에 열성을 다하였다. 그는 전에 없었던 법을 만들어 강력히 추진하였다. 그는 가택 침입 절도범을 노예상에게 팔아 나라밖으로 쫓아버리는 법을 제정하였다. 이러한 처벌은 범죄자들에게도 너무 가혹한 것이었을 뿐 아니라 유대의 율법에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도적들을 이방인들에게 팔았던 사실에 관하여는 참).\’Sifire Deut.\’ 118.(유대 주인에게는 매매가 제한됨), Belkin, \’Philo and the Oral Law\’, p.208.] 왜냐하면 외국인의 노예가 되면 유대풍습대로 살 수가 없고, 그들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순종해야 했으므로 이것은 위와 같은 범죄로 잡힌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라기 보다는 유대종교 관습에 대한 파계였다고 볼 수 있다. 유대율법에는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4배로 갚아야 되고,[㈜ 혹은 \”4배로 반환해야 한다\”는 뜻. 필로(Philo)는 도둑질한 것의 두배로 갚아야 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할 수 없으면 남에게 종으로 팔려야 하는데, 6년 후에는 해방되어야 하므로 평생토록 종살이를 시키는 외국인에게는 팔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한편 헤롯의 이러한 처벌은 전에 시행되던 처벌보다 훨씬 가혹하고 위법적이어서 그의 오만불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러한 처벌은 왕으로서의 행위가 아니고, 폭군으로서 백성의 유익을 임의대로 침해한 행위라고 생각된다. 헤롯의 다른 행동들과 마찬가지인 이러한 행위 즉, 강력한 절도방지법 시행으로 그는 백성들의 반감과 원성을 사게 되었다.
2. 마리암메의 아들이 로마에서 돌아옴, 이에 대한 살로메의 적개심
한편 이때 헤롯은 가이사(Caesar)도 만나고 로마에 살고 있는 아들들을 보러 이달리야(Italy)를 행해 항해하였다. 가이사는 헤롯에게 극진한 접대를 해주었고 그의 아들들의 교육이 완료되었으므로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하여 주었다.[㈜ 참). 고대. 16권. 4:6(130-133). 이(마리암메의)세 아들들은 주전 22년에 로마로 갔다. 막내는 거기에서 죽었으며 헤롯은 나머지 둘을 주전 17년에 다시 데려 왔다.] 그들이 이달리야에서 돌아왔을 때 백성들은 이 젊은이들에게 대단한 관심을보였다. 헤롯의 아들들은 준수했고 미래가 촉망되며 왕위를 계승하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헤롯의 아들들은 곧 헤롯의 여동생인 살로메와 마리암메(Mariamme)를 중상했던 사람들의 시기공작에 말려 들었다. 이들은 헤롯의 아들들이 왕위에 오르면, 그들의 어머니인 마리암메를 중상모략한 자기들의 죄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될 것으로 알고 두려워하였다.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헤롯의 아들들을 중상모략하기를 헤롯이그들의 어머니이자 자기 아내인 마리암메를 죽였기 때문에, 헤롯의 세 아들은 아버지 헤롯을 싫어한다는 소문을 백성들에게 퍼뜨리고 다녔다. 그래서 항간에는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 헤롯과 연합하는 것은 어쩐지 거룩하지 못한 행위로 생각해서 헤롯의 세 아들이 헤롯을 피한다는 소문이 나돌게 되었다. 이러한소문은 전혀 사실 무근한 것은 아니었고, 제법 그럴싸하게 들려서그들의 의도대로 헤롯의 총애로부터 그 아들들을 떼어 놓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중상가들은 이러한 소문을 헤롯왕 앞에서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백성들 사이에만 은밀하게 퍼뜨리고 다녔다. 마침내 이러한 소문은 헤롯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그의 증오를 유발시켜 더 이상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헤롯은 세 아들에 대한 갖가지 의심과 중상보다는 아버지로서의 애정이 더 강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적당한 명예직을 주었고, 나이가 찼을 때에는 결혼도 시켜주었다.아리스토불루스는 살로메의 딸 베레니케(Berenice)와[㈜ 주전 17년경. 참). 전쟁. 1권. 23:1(446), 베레니케는 헤롯의 첫째 사촌인 코스토바루스(Costobarus)가 살로메에게서 낳은 딸이었다.] 결혼하게 하고 알렉산더에게는 갑바도기아의 왕 아르켈라우스(Archelaus)의 딸인 글라피라(Glaphyra)를 아내로 맞이하게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