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장
유대인들이 가이사에게 사절을 보내자 가이사가 헤롯의 유언을 인정한 것에 대하여
1. 로마에 파견된 유대 사절단이 아구스도에게 헤롯의 통치를 종식시켜 달라고 요구하다
[㈜ 11장은 전쟁. 2권. 5 : 3(79), 6 : 1-3(80-100)에 해당함.]
바루스가 소요를 진압한 후에 전부터 예루살렘에 주둔시켰던 1개 군단을 안디옥(Antioch)으로 귀환시켰다. 한편 로마에 있던 아켈라오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새로운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다. 바루스에게 허락을 받은 유대인 사절단이 그들의 율법에 따라 살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청원하기 위해 로마에 온것이다. 유대왕국의 권유로 보내온 사람이 50명이었는데 여기에다 로마에 있는 8,000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합세한 것이다. 이에 가이사는 로마인 가운데 유력 인사들을 자신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세웠던 아폴로 신전에 모아놓았다. 사신들은 그곳에 있던 유대인들과 함께 참석했고 마찬가지로 아켈라오와 그의친구들도 함께 모였다. 그러나 아켈라오의 친척인 사람들 모두는 그를 증오했기 때문에 거기에 가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참석해서 아켈라오에 대항하는 사신들을 도울까도 생각했지만 가이사에게 친척끼리 서로 싸운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빌립(Philip)은 그의 형제 아켈라오를돕는 것이 좋겠다는 바루스의 설득 때문에 수리아에서 로마까지와서 참석하였다. 바루스는 빌립과 아주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이와같이 말했다. \”만일 아켈라오를[㈜ 헬라어 본문에는 \”그의 형제\”로 되어 있음.] 그대로 둔다면 내가 생각하기에는 정부의 형태가 바뀌게 될 것이오.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율법대로 살 자유를 달라고 하는 안건이 그들의 숫적 우세 때문에 통과된다면 실망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켈라오와 함께책임을 져야 합니다.\”
2. 유대 대표들이 헤롯의 실정을 비난하다
한편 유대 대표들은 발언권을 얻자 왕권통치(kingly 핵-ernment)의 해체를 희망하고 있었던 그들은 먼저 헤롯의 부정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난하는데 열을 올렸다. \”헤롯은 이름만 왕이었지 실제로는 통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횡포를 부렸고 자기의 기분에 따라 수시로 정책을 변경시켰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을 멸절시키기 위해 온갖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였습니다. 그는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가 휘두른 폭력에 의해 죽어간 사람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에게 죽음을 다한 사람들보다 몇배나 더 불행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헤롯의 취향과 기벽에 맞춰 살아야 하는 불안과 언제 재산을 빼앗길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는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이웃 도시는아주 잘 단장하면서도 정작 해야할 자기 통치구역은 폐허가 되도록 남겨 두었습니다. 헤롯이 처음 왕으로 임명되었을 때에는굉장한 번영으로 나라 전체가 풍요로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된 후로는 귀족들을 잡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착취하여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살려준다는[㈜ 혹은 \”안전(security)\”. 참). 니이제(Niese), 3권, 서문 p.23.] 조건으로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또한 매년 내는세금 외에도 그의 가족과 친구들, 세금을 징수하는 그의 하인들에게까지도 세금을 물렸습니다. 왜냐하면 금이나 은과 같은 뇌물을 바치지 않고는 그들의 부당한 대우로부터 자유를 얻을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처녀들의 순결을 빼앗고, 인간 이하의 방법으로 부녀자들을 농락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해서 여기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이사께서는 헤롯으로 하여금 백성들을 잘 다스리도록 하기 위해서 왕위를 허락하셨는데 헤롯은 짐승보다 못한 일들은 역사상 비교할 수없을 정도입니다. 상황이 이러하였고 또 누군가가 왕국을 통치해야만 한다면 아켈라오가 왕이 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켈라오는 헤롯보다는 더 온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켈라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서 그가 온화한 정책을 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부친인 헤롯의장례식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켈라오는 헤롯의 아들이아니라고 할까봐 즉시 그의 본 모습을[㈜ 발췌문(Epitome)의 본문(ajpononian은 \”광기, 정신착란\”의 의미임)은 슈미트(Schumidt) (P.352)에 의하여 호감있게 고찰되었고 라이나흐(Reinach)의 편집에 의해 채택되었다.] 드러냈습니다. 그것도 가이사께서 왕위를 허락하시기도 전에 그는 자기 기분대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가 백성들에게 행한 첫 번째 행동에서 그가앞으로 통치할 성향과 그의 인간성이 어떤 것인지 드러났으며하느님께 대한 그의 태도도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아켈라오가 성전에서 자기 동족 3,000명이나 죽인 일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에 대한 미움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아켈라오는 동족을 무참하게 학살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그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도록 무척 우리를 괴롭혀 왔습니다. 저희들이 원하는 것은 왕권통치나 그와 유사한 정부 형태를 두지 마시고 저희 유대를 수리아에 병합시켜서 로마가 파견하는 수리아 총독의통치하에 두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들을 온화한 정책으로 통치한다면 그들이 정말로 난동을 일으키는 백성들이며 변혁을 일으키는지 아니면 질서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인지 명확히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3. 니콜라스가 헤롯과 아켈라오를 변호하다
[㈜ 고대. 17권. 11 : 3(315) 참). 야코비(Jacoby), \’FGH\’ 2 A, p. 326(T.9)에 있는 다메섹의 니콜라스(Nicolas of Damascus).]
유대 사신들이 이러한 말을 마치자 이를 듣고 있던 니콜라스(Nicolas)가 그들의 그러한 비난으로부터 헤롯을 변호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헤롯왕이 살아있을 때는 지금과 같은 비난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말한 내용을 훨씬 줄인다고 해도그에 대한 비난으로서는 타당치 않습니다. 이러한 비난이 그가살아있을 때 제기되었다면 모르지만 지금은 그가 죽고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그리고 아켈라오가 유대인들에게 한 행동도 유대인들이 먼저 아켈라오에게 해(害)를 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국법을 위반했고 그들의 부당한 행동을 저지하는 사람들을 죽이려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한 행동(반역하는불평)에 대해서 또한 당연한 댓가를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정의와 법에 순복할 줄 모르는 백성이라서 폭동을 일으키려는 시도와소요를 즐기고 있으며 모든 것에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교만한 자들입니다.\” 이것이 니콜라스가 헤롯을 변호한 요지이다.
4. 아구스도가 아켈라오를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두매의 통치자로, 안디바를 페라이아와 갈릴리의 통치자로,
[㈜ 고대. 17권. 11:4(317-320), Momigliano, \’Ricerche\’, 379-384를 참조할 것. 고대. 17권. 11 : 4, 5(379-384)를 참조할 것. 고대. 17권 . 11 : 4, 5(318-323)에 해당하는 전쟁사 병행구는 서로 다양한 설명으로 다르다]
가이사는 양측의 이러한 간청을 들은 후 그 즉시 어떤 조치를취하지 않고 일단은 그 모임을 산회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가이사는 아켈라오에게 전에 헤롯이 통치했던 전 영토를 다스리는왕이 아니라 그 영토의 절반을 다스리는 분봉왕(ethnarch)으로임명했다. 그리고는 아켈라오에게 그 지역을 잘만 다스리면 후에 왕으로 세워주겠노라고 약속하였다. 가이사는 아켈라오에게주고난 나머지 영토를 다시 나누어 헤롯의 아들인 빌립(Philip)과 안디바(Antipas)에게 주었다. 안디바는 왕권을 물려받기 위해 아켈라오와 경쟁을 벌이던 사람이었는데 그에게는 일년에 200달란트의 세금이 걷히는 페라이아(Peraea)와 갈릴리(Gal-ilee) 지역이 주어지고 빌립에게는 일년에 100달란트의 세금이걷히는 바타나이아(Batanaea), 드라고닛(Trachonitis), 아우라니티스(Auranitis), 제노도루스의 영토(the domain of Zen-odorus)등이 주어졌다.[㈜ 고대. 15권. 10 : 1(344) 각주 311과 전쟁. 1권. 20 : 4(398-400)를 참조.] 그리고 이두매(Idumaea)와 유대(Judea)그리고 사마리아(Samaria)지역은 아켈라오에게 세금을 내도록 했고 특히 그 지역 백성들은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이사에 의해서 세금의 4분의 1을 감면받았다. 또한 스토라토의 망대(Strato\’s Tower)와 세바스테(Sebaste), 욥바(Joppa)그리고 예루살렘(Jerusalem)도 아켈라오에게 세금을바치도록 하였다. 그리고 가사(Gaza), 가다라(Gadara), 힙푸스(Hippus)등의 헬라권 지역은 아켈라오의 통치구역과 구별하여 수리아 지역은 합병시켰다.[㈜ 고대. 15권. 7 ; 39217)과 전쟁. 1권. 10 : 3(396)이하를 참조.] 아켈라오가 통치하는 지역으로부터 매년 걷히는 세금은 600달란트에 이르렀다.
5. 살로메에게 양도한 헤롯의 유산
헤롯의 아들들은 부친의 유산을 이와같이 물려받은 반면에 살로메(Salome)는 헤롯의 유언에 의해서 얌네이아(Jamneia), 아소도(Azots), 파사엘리스(Phasaelis), 그리고 은화 500,000드라크마를 받았고 그 외에 가이사로부터 아스글론(Ascalon)에있는 왕의 저택을 선물로 받았다. 따라서 그녀의 수입은 일년에 60달란트에 달했으며 그녀의 거주지는 아켈라오의 영토안에 있었다. 그밖에 헤롯 왕의 나머지 친척들은 그의 유언대로 재산을 물려받았고[㈜ 고대. 17권. 8 : 1(189, 190) 참조.] 더구나 헤롯의 시집 안간 두 딸에게는 아버지의 유산외에도 가이사로부터 은화 250,000드라크마를 선물로 받았으며 페로라스(Peroras)의 아들들과 결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가이사는 헤롯이 자신에게 남겨준 모든 유산을 왕의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그 액수는 1,500달란트였다.[㈜ 전쟁. 2권. 7 : 1(100)에는 1,000달란트로 나옴.] 그런데 헤롯이 자신에게 물려준 유산 중에서 몇 개의 그릇을 그대로 자기가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릇들이 값나가는 물건이기보다는 헤롯을 기억할 수 있는 유품들이기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