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권 제 4장 아그립바왕이 글라우디오를 위해 한 일과 글라우디오가 정권을 잡아 가이우스 살해범들을 처형시킨 것에 대하여

 


 제 4 장



아그립바왕이 글라우디오를 위해 한 일과 글라우디오가 정권을 잡아 가이우스 살해범들을 처형시킨 것에 대하여



 1. 아그립바가 글라우디오에게 황제가 되어 줄 것을 설득하고, 원로원을 설득하기 시작하다



  [㈜ 참). 병행구절, 전쟁. 2권. 11 : 2(206)에서는 처음에 아그립바를 소환한 것이 글라우디오였으므로 아그립바가 수동적 역할을 하였고, 글라우디오가 능동적 역할을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여기서 상황의 역전이 나타남. 참). 스크랴무쟈(V. M. Scramuzza) \’황제 글라우디오\’, 1940, pp.58-59.]



 글라우디오는 원로원 의원들의 무례함을 알았지만 지금은 보다 온건하게 그들의 견해에 동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라우디오 군사들의 대담한 행위와 저절로 굴러 들어온 권력을 손아귀로부터 놓치지 말라는 아그립바(Agrippa)왕의 권고로 인해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글라우디오를 황제로 삼는데 도움을 준 아그립바의 역할은 디오 1x : 8 : 2에 또한 언급됨.] 아그립바왕은 가이우스(Gaius)황제의 명예를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였다. 아그립바왕은 가이우스황제의 시신에 다가가서시신을 누이고 가까이에 놓여있는 천으로 덮은 후에 경호병사에게로 다가가서 말하기를 \”가이우스황제는 아직 살아있다. 그분이 중상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니 의사를 데려와서 그 분의 고통을 가라 앉혀주도록 하라.\” 글라우디오가 군사들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아그립바왕은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당황하여 원로원에 굴복하려는 글라우디오를 격려하고 제국을 손에서 절대로 놓지 말라고 요청하였다. 이러한 말은 글라우디오에게 한 후 아그립바왕은 집으로 돌아왔다. 원로원에 의해 호출되자 아그립바왕은 마치 방금 담요를 걷어치우고 도착한 것처럼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원로원 의원들 앞에 나타나자 원로원 의원들은 글라우디오가 무엇을 행했는지를 물었다. 원로원의원들은 정세를 그에게 말했고 전반적 상황에 대해 아그립바왕의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원로원 의원들에게 대답하기를 \”나는 원로원의 영예를 위하여 죽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당신들은 모든 사람들의 선입관을 버리고 무엇이 유리한가를 고려하도록 하십시오. 정국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신변안전에 필요한 무기와 군사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치명적 실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원로원 의원들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무기와 지원금이 충분히 있소. 상비군도 있소. 그리고 노예에게 자유를 줌으로써 보다 많은 군대를 소집할 수 있을 것이오.\” 이에 아그립바왕이 대답하기를 \”원로원 여러분! 여러분들이 바라는 것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만나의 의견이 여러분들의 안전에 관계하고 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물론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우리의 군대는 뜻밖에 노예로부터 풀려난 자들로 구성된 오합지졸에 불과하여 통제하기가 어려운 반면에 글라우디오를 위해 싸울 군대는 오랫동안 훈련되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칼을 뽑을 줄 모르는자들을 거느리고 노련한 자들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판단컨대 글라우디오에게 사신을 보내어 정권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나는 사신으로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2. 원로원에서의 글라우디오의 답변



 아그립바가 말을 하였을 때 원로원 의원들은 그의 의견에 동조하였다. 아그립바는 원로원 의원들의 혼란을 글라우디오에게 은밀히 알렸고 당국자 중의 한명에게 위엄있고 거만하게 대답할것을 권고했다. 따라서[㈜ 참). 병행구절, 전쟁. 2권. 11 : 2(208).] 글라우디오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원로원 의원들이 이전에 황제의 직을 가졌던 자들의 야만성에의해 억압당해 왔기 때문에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습니다. 공정한 거래의 맛을 보도록 예의바르게행동할 것을 약속합니다. 명목상으로는 정권이 나의 것이지만실제로는 공통으로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대들의 눈으로수많은 변천을 보아왔다면 나를 불신하는 것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참). 병행구절, 전쟁. 2권. 11: 2(208)에서는 글라우디오가 황제 칭호의 영예에 만족한다고 그의 사절 아그립바를 통하여 전하였고, 비록 그가 본래 온건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가이우스의 죽음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도록 하는데 충분한 경고가 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신들이 들었던 말에 의해 회유된 사신들은 돌아갔다. 글라우디오는 군사를 모아서 자신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맹세를 하도록 연설했다. 글라우디오는 군사들에게[㈜ 혹은 \”군대\”일 것이다.] 5,000드라크마 씩을[㈜ 발스돈(Balsdon)의 앞에 인용한 책 p.188에는 요세푸스의 기록(20,000세스테르케)과 수에토니우스의 \’글라우디오 10\'(15,000세스테르케=3750드라크마)에 인용된 기록 사이의 불일치를 주목하여 집정관 호위병에만 지급되는 총액은 135,000,000세스테르케에 달한다고 진술한다.] 주었다. 지휘관들에게는 보다 많은 액수를 주었고 그 밖의 다른 곳에 있는 군사들에게도 동일한 액수의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3. 쥬피터 신전에서 원로원 의원들이 모임



 그때 집정관들은 밤중에 승리의 신인 쥬피터의 신전(theTemple of Jupiter Victor)으로[㈜ 리비(Livy) x. 29. 14와 18은 쥬피터(Jupiter Victor)의 신전을 세울 것을 파비우스 막시무스 풀리아누스(Q. Fabius Maximus Rullianus)가 맹세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오비드(Ovid), \’Fasti\’ iv. 621-622에서는 그 신전이 4월 13일에 봉헌되었다고 주장한다. 디오 카시우스는 제우스 니카이오스(Zeu;\” Niviaio\” )에 바친 신전이나 신당을 언급한다(xiv. 17. 2, xlxii. 40. 2). 그러나 이것이 같은 신전을 의미하는지 그 위치가 어느 곳인지에 대해 상당히 의심의 여지가 있다. 비문에 나오는 \’불굴의\'(Invicitus)라는 명칭은 승리(Victor) 대신 쓰인 것으로 보인다. 참). 플래트너(S. B. Platner)와 애쉬비(T. Ashby)의 \’고대 로마의 지형학 사전\'(A Topographical Dictionary of Ancient Rome), 1929, pp. 306-307, 병행구(전쟁. 2권. 205), 수에토니우스의 \’칼리굴라 60\’, 디오의 1x. 1. 1에서는 가이우스가 죽은 후 신전(Capitol)에서 원로원들이 회합을 가졌다고 한다.] 원로원 의원들을 모이게 하였다. 이때 몇 명의 원로원 의원들은 호출 소식을 듣고는 당황하여 몸을 숨겼다. 다른 의원들은 모든 일이 어떻게 이루어 질지를 예측하면서 자신들의 사유지로 떠났다. 후자(後者)의 의원들은 자유의 회복이 절망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조상들의 위엄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생존의 보장을 가지지 못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노예상태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삶을 연명하면서[㈜ 혹은 아마도 \”작업을 위한 여가\”.] 편안하게 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명 이상의 의원들이 모였다. 그들이 현안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을때에[㈜ 병행구, 전쟁. 2권. 11 : 3(209)는 원로원이 온건하게 통치하겠다는 글라우디오의 제안을 거절하였고 자발적인 노예로 복종하지 않을 것을 단언하였다. 글라우디오가 이러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아그립바를 원로원에 사절로 다시 보내어 전쟁으로 그들을 위협하였다. 원로원의 편을 드는 병사들 중의 한명은 글라우디오를 지지하여 소리쳤고 그의 동료 병사들과 함께 원로원을 떠났고 군사적 지원을 상실한 원로원은 항복하였다.] 원로원을 지지했던 병사들이 갑자기 큰소리를 질렀다.\”원로원은 한명의 황제를[㈜ 혹은 \”총사령관\”] 선출하여 다수의 통치자에게 제국을 위탁함으로 제국을 파멸로 몰고 가지 않도록 하시오\”이에 원로원 의원들은 정권이 모든 사람의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한사람의 손에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대답하였다. 따라서 원로원의 입장은 그토록 감명깊게 생각했던 자유를 되찾지 못했고 또한 글라우디오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문이 좋고 결혼에의한 인척관계로 왕위를 열망하는 사람이 몇 명이 있었다. 예를들면, 마르쿠스 비니시우스(Marcus Vinicius)[㈜ 여러 사본들에는 Minucianus로 표기. 참). 고대. 19권 1:14(102).] 같은 이는 그의 귀족 출신인데다 가이우스 황제의 여동생 율리아(Julia)와의 결혼으로 인해 적합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비니시우스는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열망했지만 집정관들의 제지로 그 야망을 억누를 수 밖에 없었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ValeriusAsiaticus)도[㈜ 참). 고대. 19권. 1 : 14(102).] 이와 유사한 이유로[㈜ 권좌에 지명된 세 번째 후보는 장차 황제에 오른 갈바(Galba)였다.(수에토니우스의 \’갈바 7\’).] 가이우스 황제 살해범 중의 한 명이었던 비니키아누스(Vinicianus)에 의해 제지를 받았다.[㈜ 여러 사본들에는 Minucianus로 표기 ; 참). 고대. 19권. 1 : 3(18).] 황제 자리를 탐내는 자들에게 글라우디오를 대항하여 줄을 서 보라고 허락한다면 대량학살이 일어나 살아남는 자들이 없었을 것이다. 밤에 로마시에는 상당한 수의 무사들과 병사들이 감시하였고, 진영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배가 있었다. 그리하여 황제의 자리에 후보로 올랐던 자들중 일부는 로마시를 구하기 위해 철수했고 다른 자들은 신변에 닥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포기했다.



 4. [원로원 의원들도 군인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를 포기하다]



 날이 밝을 무렵 카이레아(Chaerea)와 그의 일행들은 병사들에게 다가가 연설하려고 하였다. 대다수의 병사들은 이자들이 참석자들에게 손을 들고 연설을 막 시작하려고 할 때 이들이 연설하지 못하도록 소란스럽게 이를 제지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한 명의 통치자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연설을 막은 병사들은 계속해서 자기들의 미래의 지도자를 요구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이상의 지체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통치할 수도, 자신들이 어떻게 통치받아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는 병사들이 원로원 의원들을 거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이우스황제의 암살이 병사들을 양보하도록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돌발적인 사태에 접한 카치레아는 황제를 요구하는 병사들의 청원에 자신의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병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였다. \”너희 중 누구든지 유티쿠스(Eutychus)로부터 암호를 가져온다면 너희를 위한 황제를 세워주겠다.\” 이유티쿠스는 가이우스 황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위 \’녹색당\’의[㈜ 색깔에 따라 당의 이름을 붙이 네 개의 당이 있었다. 즉 백색당(albata), 녹색당(prasina), 홍색당(russata), 청색당(veneta)이다. 수에토니우스는 \’칼리굴라 55\’에서 가이우스가 녹색당을 열렬히 지지했다고 한다.] 전차 기수(Charioteer)였다. 병사들은 자신들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에 할당되어 유티쿠스의 말을 위한 마굿간을 지었다. 이일과 다른 모든 종류의 일로 카이레아는 그들을 책망하고 글라우디오의 목을 가져올 것을 명령하였다. \”너희가 그 미친 자에의해 통치받는다면 너희들은 이 로마 제국을 얼간이에게 넘겨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참). 병행구, 전쟁. 2권. 11 : 4(211).] 그러나 병사들은 그의 말에 제지되기는 커녕 그들의 칼을 뽑아들고 군기를 쳐들고 글라우디오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자들과 함께 공동 전선을 펴기 위해 글라우디오에게로 갔다. 원로원 의원들은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게 되었고 집정관들은 일반 시민 이상의 어떤 권위도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원로원 의원들은 글라우디오가 자신들에게 적개심을 품고있는 한 어떤 일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과 실의에 차있었다. 원로원 의원들은 서로를 격렬히 비난하였고 자신들이 취한 행동에 대하여 후회하였다.

 그 때 가이우스 황제 암살자 중의 한 명이었던 사비누스(Sab-inus)가[㈜ 참). 고대. 19권. 1 :7(46).] 그들의 한 가운데로 걸어 나와서는 글라우디오가 황제가 되어 그의 통치 밑에 속박된 그들의 제국을 보고 사느니 보다는 차라리 자결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사비누스는 카이레아가 비겁하다고 비난하였다. \”가이우스를 경멸한 후 자유로운 조국을 회복시킬 수 없을 때 처음으로 생명을 축복으로 여긴 사람이 바로 당신이 아니오.\” 카이레아는 대답하기를 \”나에게는 어떠한 주저함도 없고 목숨에도 연연하지 않소. 다만 글라우디오의 의도를 타진하고 싶을 뿐이오.\”



 5. [아그립바가 원로원 의원들을 보호하도록 간청하다]



 원로원 내의 상황이 그러할 때, 모든 진영으로부터 온 병사들이 자신들의 존경을 표하려고[㈜ 다른 사본에는 \”글라우디오에 대한 존경\”으로 나온다] 글라우디오의 진영으로 모여들었다. 두명의 집정관 중의 한명인 퀸투스 폼포니우스(Quintus Pomponius)는[㈜ 41년의 집정관인 세쿤두스(Q. Pomponius Secundus). 그는 후에 글라우디오에 대한 반역에 가담했다(타키투스 \’연대기\’ xiii : 43).] 병사들의 눈에는 자유의 근거로 원로원을 소집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특히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병사들은 칼을 뽑아들고 폼포니우스에게로 돌진했다. 만약 글라우디오가 중재하지 않았더라면 폼포니우스는 살해되었을 것이다. 그집정관을 위험으로부터 구출한 후 글라우디오는 자신의 옆에 폼포니우스의 자리를 마련했지만 퀸투스를 수행했던 나머지 원로원 의원들을 예우하지는 않았다. 원로원 의원들중 일부는 심지어 글라우디오를 알현하려고 한 그들의 시도를 반박한 병사들로부터 주먹세례를 받았다. 아포니우스(Aponius)는[㈜ 한 때 가이우스의 원조하에 경매가 실시되는 동안 잠에 떨어져 13명의 검투사들을 9,000,000세스테르케로 살 때까지 꾸벅꾸벅 졸았던 아포니우스 사트루니누스(Aponius Saturninus)와 동일인물일 것이다(Suet. Calig. 38).] 부상당한채 물러났고, 원로원 의원들 모두는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그때아그립바왕은 글라우디오에게 도착해서 원로원 의원들을 좀더부드럽게 대해줄 것을 그에게 당부하면서 \”만일 원로원 의원들이 어떤 해를 당하게 되면 통치할 신하들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글라우디오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궁내관으로 원로원 의원들을 호출하고 군중들을 매우 거칠게 다루었던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로마시로 향했다. [카이레아와 루프스가 처형되다]가이우스 황제의 암살자중 카이레아와 사비누스는 공개석상에 나타났지만 그들은 글라우디오가 치안관으로 세웠던 폴리오(Pollio)의[㈜ 루프리우스 폴리오(Rufrius Pollio). 그는 후에 영국 원정에 글라우디오를 동행했고 원로원 의원이 될 권한을 받음으로써 영예를 얻었다(디오. 1x : 23 :2). 만일 그가 보여지는 것처럼(Stein의 Payly-Wissowa, 2와 Reihe, I : 1920, p.1202), Rofius(Rufius) Pomfilius (Sen. Apocol. 13 : 5)와 동일인이라면 후에 그들 중에 끼여 글라우디오에 의해 처형당했을 것이다.] 지시에 의해 대중 앞에 나설 수 없게 되어있었다. 글라우디오는 궁내관에 도착하여 자신의 동료들을 모아 카이레아 건(件)을 투표로 결정하기로 하였다.[㈜ Dio 1x : 3 : 4에서는 비록 글라우디오가 가이우스의 암살 소식에는 기뻐하였지만 황제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에는 기뻐하지 않았으며, 그는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려 하였기 때문에 카이레아와 몇몇 다른 사람들을 처형하였다고 전한다.] 그의 공적은 아주 뛰어났지만 그는 불충한 생각을 지닌 하수인이므로 장래의 방해물이 될 우려가 있으므로 그를 처단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그들의 판결이었다. 따라서 카이레아의 처형이 집행되었고, 그와 함께루푸스(Lupus)와[㈜ 가이우스의 아내와 딸을 살해한 군대 집정관임(고대. 19권. 2 : 4(190-200)).] 몇몇 다른 로마인들이 함께 처형되었다. 카이레아는 중후한 위엄으로 자신의 최후를 맞이하였는데 이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불변의 안색(顔色)과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루푸스에 대한 그의 꾸짖음을 통해서도 증명되어 진다. 옷이벗겨진 루푸스가 춥다고 하자,[㈜ 이 사건은 1월 24일에 있은 가이우스의 암살 몇일 후에 일어났다.] 카이레아는 \”추위가 늑대를[㈜ 늑대를 뜻하는 라티어 단어인 lupus에 대한 언어 유희이다] 해치지는 못한다\”라고 말했다. 많은 무리들이 그 광경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카이레아는 처형장에 도착했을 때 자신의 목을 벨병사에게 이전에 처형을 해본 적이 있는지 아니면 이번이 처음인지를 물었다. 카이레아는 자신의 목을 가이우스를 해치운 칼로 베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병사가 카이레아의 질문에 대답한 본문에는 약간의 탈문이 있을 것이다.] 카이레아는 다행스럽게도 단칼에 처형되었다. 루푸스는 용기가 없어서 죽는데도 고통을 당해야만 하였다. 그는 공포에 휩싸여 과감히 목을 내밀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번 칼에 맞아야만 하였다.



 6. [카이레아에게 제사를 지내다]



 몇일이 지난후,[㈜ 가이우스가 1월 24일에 살해되었기 때문에 1월13일에서 21일까지의 사자(死者)에게 경의를 표하는 축제일(a festival in honour of the dead)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사자(死者)의 묘에서 연례적으로 수행되는 그 예식에 관해서는 Ovid의 \’Fasti\’ ii : 533 이하를 참조하라.] 죽은 자들에 대한 제사가 허용되자 로마시민들은 그들의 죽은 친척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또한 카이레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불속에다 제물을 쪼개어 던지면서 카이레아에 대한 자신들이 배은망덕으로 악의를 품지 말고 자비를 베풀 것을 간청하였다. 이것이 카이레아의 종국이었다. 사비누스의 경우 글라우디오에 의해 석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맡고 있던 직에 중용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동료 공모자들을 배신했다고 생각하여 칼자루까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칼에 엎드려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비누스의 자살에 관해서는 Dio 1x : 3 : 5에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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