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권 제 11장 총독 플로루스가 유대인들로 하여금 로마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고 일어나도록 한 것에 대하여

 


제 11 장



총독 플로루스가 유대인들로 하여금 로마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고 일어나도록 한 것에 대하여



  1. 총독 게시우스 플로루스(Gessius Florus)가 잔인무도하게 통치하다



  [㈜고대. 10권. 11 : 1(252-256)에 관해서는 병행본문 전쟁. 2권. 14 : (277-279)을 참고하라]



 네로에 의해 알비누스(Albinus)의 뒤를 이은 게시우스 플로루스(Gessius Florus)는[㈜ 주후 64년의 총독, 고대. 20권. 9 : 5(215)를 보라.] 유대를 온통 수많은 불행으로 가득채웠다. 그는 클라조메나이(Clazomenae) 태생으로[㈜ 소아시아(Asia Minor)의 중심 해변에 있음.] 그의 아내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파견되었다(클레오파트라가 헤롯의 아내인 포파이아(Poppaea)와의[㈜ 참). 고대. 20권. 8 : 11(195).] 교분에 의해 플로루스는 총독직을 얻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사악함에 있어서 플로루스와 별 차이점이 없었다. 플로루스가 얼마나 사악하고 권력행사에 있어서 얼마나 잔인한지 유대인들은 알비누스와 비교하여 알비누스를 은인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플로루스가 유대인들에게 가져온 재난은 실로 엄청났다. 알비누스는 자신의 사악함을 은닉하고 만인에게 폭로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한 반면 게시우스 플로루스는 마치 만인에게 자신의 범죄를 보일양 보내졌던 것처럼 온갖 종류의 폭력을 행사하였을 뿐 아니라 온갖 불공정한 처벌을 행하려는 듯이 유대에 과시하는 허식을 부렸다. 왜냐하면 플로루스는 동정의 마음이 없었고 어떠한 소득에도 만족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작은 취득뿐만 아니라 커다란 횡재에도 더 이상 만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강도떼들과 한 통속이되었다. 따라서 플로루스가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고 그들이플로루스에 의존함으로써, 플로루스는 그들 각각의 강도떼들을 손상받지 않도록 보호해 주어 많은 이들이 두려움 없이 강도짓을 저질렀다. 이로 인하여 유대는 끝없는 불행에 빠지게 되었다.[㈜ 혹은 \”그리고 이것은 견딜 수 없었다.\”] 강도떼들이 자행하는 유린을 견딜 수 없었던 비참한 유대인들은 고국보다는 오히려 이방 지역이 살기가 편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거주지를 떠나 도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대인으로 하여금 로마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지 않으면 안되도록 한것은 다름 아닌 플로루스였으므로[㈜ 타키투스, \’Hist.\’ v. 10도 그렇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인내심은 게시우스 플로루스(Gessius Florus)가 총독이었을 때까지는 계속되었다.\”] 더 이상 무엇을 언급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은 차츰 망하느니보다는 당장 멸망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전쟁은 플로루스 통치 제 2년, 즉 네로황제 즉위[㈜ 주후 66년. 같은 연대가 전쟁. 2권. 14 : 4(284)에서도 나온다.] 제 12년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유대인들이 전쟁을 감행했는지 불행을겪지 않으면 안되었는지는 내가 유대전쟁에 대해 서술하였던 책을 정독함으로써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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