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장
헤롯이 세포리스를 점령하고 동굴 속에 숨어있는 폭도들을 제압하고 원수인 마카이라스에게 보복한 후 사모사타를 공격하고 있는 안토니에게로 간 것에 대하여
1. 헤롯이 이두매에서 벌인 겨울 전투
로마 병사들은 모든 것이 풍부하여 전쟁을 그친 반면 헤롯은쉬지않고 이두매(Idumea)를 장악하고 2,000명의 보병과 400명의 기병으로 이두매를 지키게 하였다. 이곳에 헤롯은 그의 형제인 요셉을 파견해서 안티고누스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게조치했다. 또한 헤롯은 마사다에 있던 모친과 그의 모든 인척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다. 그들을 안전하게 정착시킨 후 헤롯은 갈릴리의 나머지 지역을 원정하여 안티고누스의 수비대를 몰아내었다.
2. [헤롯이 세로피스에서 벌인 전투]
헤롯이 세포리스(Sepphoris)에 도착했을 때는 눈이 몹시 내렸으며 그는 손쉽게 세포리스를 장악했다. 세포리스를 지키던병사들은 헤롯이 당도하기 전에 이미 도망을 친 후였기 때문이다. 세포리스에서 헤롯은 힘들어 하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사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호기를 잡았다. 그 도시에는 필수품이 풍부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전력을 비축한 헤롯은 서둘러 동굴 속에서 살던 강도들을 징벌하기 위해 떠났는데 이 강도들은 세포리스의 대부분을 휩쓸면서 전쟁보다도 더 큰 피해를 주민들에게 입혔었다. 따라서 헤롯은 먼저 3개의 보병대와 1개의 기병대를 아르벨라(Arbela)라는[㈜ 게네사렛 호수 근방의 이르비드(Irbid). 디베랴의 북서쪽.] 마을로 급파하고 헤롯 자신은 40일후에 나머지 병사들과 함께 출정했다. 그러나 강도들은 그의 출정에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장하고 먼저 대들었다. 그들은 전사(戰士)의 노련함과 강도의 대담함을 함께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오른쪽 진영의 군사들로 헤롯의 왼쪽 진영에 먼저 일격을 가하였다.이에 헤롯은 말머리를 급히 돌려 그의 남은 병사들과 함께 접전을 벌이고 있던 왼쪽 진영을 원조하여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웠을 뿐만 아니라 적군의 사기를 꺾어버렸다. 헤롯이 공격의 선두에 서서 몸소 병사들을 진두지휘하자 강도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3. [헤롯이 병사들에게 수고의 대가를 지불함]
그러나 헤롯은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요단까지 쫓아가서 대부분의 강도들을 살해하였으며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은 요단강을 건너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그리하여 갈릴리인들은 강도의 위협에서 해방되었으나 게중에는 동굴 속으로 피신하여 은닉하였기 때문에 그들까지 모조리 근절하는 데는 시간이 좀더 필요하였다. 헤롯은 우선 병사들에게 이전의 노고에 대한 대가로 병사들 모두에게 은화 150드라크마(drachmae)씩을 나누어 주고 지휘관들에게는 훨씬 더 많은 은화를 주는 한편 이들을 겨울진영으로 돌려보냈다. 헤롯은 또한 그의 막내동생인 페로라스(Pheroras)에게 병참부(the commissariat department)를 맡을 것과[㈜ 고대.14권.15:4(418)에 보면 페로라스가 식량 공급을 하도록 명받았던 것은 헤롯의 군대가 아니라 실로와 로마인들이었다. 안티고누스(Antigonus)는 그들의 식량을 차단해 버렸다.(전쟁.1권.15:6(302)참조).] 알렉산드리온(Alexandrion) 주위를 요새화 하도록 지시했으며 페로라스는 이 두 명령을 수행하였다.
4. 헤롯이 동굴에 기거하던 자들을 근절시킴
이 무렵 안토니는 아덴(Athens)의 근교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벤티디우스는 파르티아(Parthia)와의 전쟁에 참여하도록 실로와 헤롯을 소환하였는데 그는 그 이전에 유대내의 문제를 해결하고 오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헤롯은 실로를 먼저 보내고 자신은 동굴에 은거하고 있는 강도들을 진압하기 위해 나섰다. 그런데 이 동굴은 바위가 많은 산 계곡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어느쪽으로든지 접근하기 어려웠다. 또 이 동굴은 꾸불꾸불하고 매우 좁은 통로만 있었기 때문에 이 길로만 그 동굴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동굴 앞쪽에 놓인 바위 아래로는 매우 깊은 계곡이있었고 거의 수직으로 경사가 나 있었다. 헤롯은 그곳이 공격하기가 어려웠으므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오랫동안 궁리하였다. 헤롯은 마침내 극도로 위험한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그는 가장 건장한 병사들을 요람[㈜ 혹은 \”상자들.\”] 안에 달아내려서 동굴 입구에 당도하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동굴에 당도한 이들은 강도들과 그 가족들을 살해했다. 강도들은 완강히 저항했지만 병사들은 그 동굴 안에 불을 질러서 그들을 태워 죽였다. 그러나 헤롯은 불에 타 죽어가는 강도들이 불쌍하여 강도들의 일부를 살리기를 원해서 항복하고 나오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말했지만 강도들 중 한명도 기꺼이 항복하려 하지 않았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고대. 14권. 15:5(427)에 보면 항복의 많은 사례들이 언급되어 있다.] 어쩔 수 없이 나온 사람들은포로가 되느니 죽음을 택했다. 이 동굴에는 7명의 자녀를 둔 한노인이 있었다. 이 노인의 처와 자녀들은 항복하고 걸어 나오면 살려주겠다는 헤롯의 말을 듣고 처자들이 노인에게 동굴 밖으로나가 항복하겠다고 말하라고 매달리며 소리쳤다. 이에 노인은먼저 동굴 입구로 나가 가족들에게 나오라고 손짓하고는 살려고 기어나오는 아내와 자녀들을 차례로 살해하기 시작하였다. 헤롯은 이 광경을 보고 연민을 느껴 자신의 오른손을 노인에게 내뻗고는 자식들을 살려주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노인은 헤롯이 한말을 들은 척도 않고 천한 자의 자식이라고 헤롯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전쟁.1권. 24:3(478); 추측컨대 \”그의 비열한 정신에 대하여.\”] 자녀들 뿐만 아니라 아내도 죽였다. 그리고 그 시체들을 절벽 아래로 던지고는 마침내 자신도 그들을 따라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죽었다.
5. 갈릴리에서 일어나 새로운 소요 사건이 진압됨
이렇게 하여 헤롯은 이 동굴을 정복하고 그 지역에 일부 병사들을 배치시켜 어떤 선동에도 진압하도록 명령한 후 톨레미(Ptolemy)를 지휘관으로 앉혀 놓고 사마리아로 돌아왔다. 헤롯은 또한 3,000명의 보병과 600명의 기병과 더불어 안티고누스를 공격하러 떠났다. 이때 갈릴리에서 소동을 일으키곤 하던 자들이 있었는데 헤롯이 출정함으로 행동의 자유를 얻게 되자 헤롯의 군대 지휘관 톨레미를 기습하여 그를 살해했다. 이들은 또한 갈릴리를 황폐하게 하고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늪지로 숨어버렸다. 그러나 헤롯은 이 폭동의 소문을 듣고 곧바로 갈릴리를 도우러 와서는 선동가들 중 많은 수를 살해했으며 이들이 포위하고 있던 모든 요새들의 포위를 풀었다. 헤롯은 또한 이들에게 갈릴리에서 일으킨 소동의 죄값으로 100달란트의 공물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6. 벤티디우스가 파르티아인들을 격파함[주전 38년 6월]
파르티아인들이 갈릴리 지역에서 쫓겨나고 파코루스도 살해된 이 때 벤티디우스는 안토니의 명령으로 헤롯을 지원할 원군으로 1,000명의 기병과 2개 군단을 보내 안티고누스를 공격하게했다. 이에 안티고누스는 로마군의 장군이었던 마카이라스(Machaeras)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간청했고 헤롯의 포악성에 대해 매우 신랄한 불평과 헤롯이 유대[㈜ 혹은 추측컨대 \”왕위.\”]에 행한 해악에 관해 불평함과 동시에 만일 자기를 도와주면 마카이라스에게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마카이라스는 안티고누스의 요청에 응함으로 헤롯의 신의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보낸 자를 배반함으로 헤롯을 업신여길 수가 없었다. 특히 헤롯이 누구보다도 마카이라스에게 더 많은 돈을 주었기 때문에 마카이라스는 안티고누스의 요청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안티고누스의 사정을 정탐하러 갔다. 헤롯은 그렇게하지 말라고 이를 만류했으나 마카이라스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안티고누스는 마카이라스의 의도를 미리 알고 마카이라스가 성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으며 성벽에서 마카이라스를 적으로 대했다. 마침내 마카이라스는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고 엠마오(Emmaus)에 있는 헤롯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의도가 뜻대로 되지 않음에 격분하여 모든 유대인은 안티고누스와 한편이라고 간주하고 헤롯을 따르는 유대인도 가릴 것없이 만나는 유대인마다 살해하였다.
7. 헤롯은 사모사타 공격 때 안토니를 돕는다
그러므로 헤롯은 마카이라스에 대해 매우 격분했으며 마카이라스를 자신의 적으로 간주하고 싸우려고 하였으나 헤롯은 분노를 자제하고 안토니에게 찾아가서 마카이라스의 악행을 고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마카이라스는 헤롯이 격분했음을 감지하고 곧바로 헤롯을 찾아와 정중하게 헤롯에게 간청하여 헤롯과 화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헤롯은 안토니에게 가려는 그의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안토니가 유브라데 근처에 있는 강한 도시인 사모사타(Samosata)를 대군으로 포위 공략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서둘렀다. 이 때가 자신의 용기를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요 또한 그렇게 함으로 안토니에게 큰 은혜를 베푸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헤롯은 사모사타에 당도해서 포위공격을 끝내고 수많은 야만인들을 살해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매우 많은 전리품을 노획했다. 전에 헤롯의 용맹을 칭찬했던 안토니는 이번에는 더욱 헤롯의 용맹을 칭찬했다. 따라서 안토니는 헤롯에게 더 많은 칭찬과 더불어 그를 유대의 왕으로 앉히겠다고 확고히 약속하였다. 반면 이제 안티고누스 왕은 사모사타를 내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