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어떻게 타리카이아가 함락되었는지, 그리고 요단강과 게네사렛 지방에 대하여
1. 베스파시안이 폭동의 진원지인 타리카이아로 진격하다
그리고 베스파시안은 진군을 계속하다가 디베랴(Tiberias)와 타리카이아(Tarichaeae) 사이에 진영을 정했다.[㈜ 이는 호의 남서쪽에 위치한 현재의 케락(Kerak)과 동일하다. (참).플리니. \’Hist. Nat\’. v.71, \”a meridie Tarichea\”)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라이나흐는 단어 proelqwvn과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한 이전의 행진로(行進路)에서 타리카이아가 디베랴의 북쪽에 있었음을 논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동일시는 베스파시안의 진영이 디베랴 남쪽에 있는 현재의 함만(Hamman)인 아마두스(Ammathus)(\”따뜻한 욕탕\”, 전쟁.4권. 1;3(11)에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 지지받는다.] 이 진영은전쟁이 장기화 될 것을 염려하여 평상시보다 더 견고하게 지었다. 한편 모든 반역자들은 타리카이아로 떼지어 몰려들었다. 그곳은 입지 조건이 견고하며 그곳 주민들이 게네사렛(Genneasar)이라 부르는 호수와 가깝기 때문이었다. 타리카이아는 디베랴와 같이 산기슭에 세워진 도시로 호수가 있는 쪽만 제외하고는 디베랴 성벽만큼 강하지는 않았지만 견고한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타리카이아는 한때 요세푸스가 완전히 포위한 적이 있는 도시였다. 디베랴 요새는 요세푸스가 폭동 발발시에 재산과 능력이 충분한 가운데 축조되었는데 반해 타리카이아는 약간 남아있는 보조금으로 지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디베랴 주민들이 요세푸스에게 도시 성벽을 축조할 것을 재촉하면서 \”타리카이아가 이미 요새화 되었다는 것을 들었다\”고 기록된 자서. 32 (156)을 반박하고 있다.] 더욱이 주민들은 육지에서 패할 경우 도피처로 호수에 상당수의 배를 대기시켜 놓았다.또한 수전(水戰)이 필요하다면 수전(水戰)도 대비했다. 한편 로마군은 적들의 막강함과 질서 있게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단념치 않고 공격하였다. 처음 습격하여 일하고 있는 로마군을 쫓아내고 참호 일부를 부숴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로마 군단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급히 후퇴하여 피해를 막았다. 이에 로마군은 그들을 추격하여 배로 몰자 로마군의 사정거리 밖에 있는 호수로 멀찌감치 달아나 그곳에서 닻을 내리고 군대의 전투 대열같이 배를 맞대어 근접시키고 적과 해전을 하는 것인 양 해변으로 나아갔다. 한편 베스파시안은 많은 유대 무리가 성읍 밖으로나와 평원(the plain)에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그의 아들을 600명의 기병과 함께 보냈다.
2. [유대인들의 엄청난 수를 보고 격려하는 티투스의 연설]
이때 티투스는 적들이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더 많은 군대가 필요하다는 전갈을 부친에게 보냈다. 그의 부대 중 대부분의 기병대는 지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전투에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의 엄청난 수를 보고 내심 당황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티투스는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자리를 잡고 병사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로마병사들이여, 나는 연설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우리가 누구이며 싸워야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명심하는 것이 좋다고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살 만한 곳 중에서 우리 손에서빠져 나간 나라는 없습니다. 나는 공정하게 유대인도 언급하는바,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패배를 했다는 것을 끝내 부인하고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여전히 굳건한데, 우리는 늘 승리하면서도 기가 꺾여 있다면 명예스럽지 못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병사들의 얼굴이 감탄할 정도의 용기로 가득찬 그런 얼굴을 대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러나 나는많은 적들의 수로 인해 병사들이 속으로 당황하고 있을까봐 걱정스럽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누구이며 그가 전장에서 싸워야 하는 적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 해봅시다. 유대인들이 겁없이 무모하다지만 그들은 전쟁 훈련과 기술이 없는 사람들로 군대라기 보다는 오합지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로마군의 경험과 훈련에 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모든 나라 중에 우리 나라만이 평화시에도 무기를 들고훈련하는데 그 이유는 전쟁시에 적들과 우리 수를 비교해 볼 필요가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적들을 대면할 때 훈련하지않은 적과 똑같다면 계속적으로 훈련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적들은 거의 무장을 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중무장을 했고, 그들은 보병인데 우리는 기병이며 또 그들에게는 없는 장군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이런 잇점(利點)들은 우리의 힘을 효과적으로 증가시키지만 적의 불리한 점들은 사기를 크게 감소시킬 것입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숫자가 아니라 소수의 병력일지라도 실력있는 병사들의 용기에 의해 얻어지는 것입니다. 소수의 병력은 군사 훈련도 쉽게 시킬 수 있고 서로 쉽게 보조할 수도 있지만 수가 너무 많아 다루기 힘든 군대는 적에게서 받는상해(傷害)가 클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저돌성과 무모함, 자포자기로 움직여지는 군대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승리에 도취하여 기고만장하지만 조금만 장애를 당해도 약해질 것입니다.우리는 대담하며 훈련도 되어 있고 영웅적 자질이 있기 때문에행운이 따르면 확실히 승리할 것이며 역경속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의협심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유대인보다 더 고상한 이유로 인해 싸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유와 위험에 처한나라를 위해 전쟁에 임하지만, 우리는 세계를 정복한 후에 유대인들이 우리 자신의 맞수로 느끼지 않도록 하게 하려는 결단과영광을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고상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두려워할 회복 불가능한 재난이 우리에게는없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원군은 많으며 가까이에있습니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지만 지금 우리는 내 부친으로부터 증원군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만으로승리한다면 우리의 승리는 더욱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내 부친과 나와 여러분 모두들 시험할 만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친이 과거에 성공한 것이 과연 실제로 가치있는 것인지, 나는 그에 걸맞는 아들이지 여러분은 나의 병사가 될 만한지를 보여줄것입니다 내 부친은 항상 승리하였는데 내가 패배한다면 내가그에게 감히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혹은 \”만일 당신이 나를 버리셨다면.\”] 그리고 여러분의지도자가 여러분 앞에서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여러분이 장군과똑같은 용기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수치스러움을 당할것입니다. 확신하건대 나는 여러분을 인도하여 맨 앞에서 적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들은 나를 버리지 않고 하느님은 내편이어서 용기를 북돋워 준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며, 그리고 이 전쟁이 성벽 밖에서 얻는 단순한 승리를 넘어서 그 이상의 승리를 얻을 것이라고 확신할 것입니다.\”
3. 성읍 밖에서 유대군의 패배
그의 부하들은 이와 같은 티투스의 연설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전의(戰意)를 다졌다. 그런데 적과의 교전에 앞서 트라얀이 400명의 기병을 끌고와 그들과 합류했다.티투스의 부하들은 이 군대들이 승리의 영광을 떨어뜨리러 온것에 약이 올랐다. 베스파시안은 동시에 성 맞은편 언덕을 장악하고, 또 성벽 위에 있는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안토니우스 실로(Antonius Silo)에게 2,000명의 궁수를 함께 보냈다. 이 부대는 지시대로 외부에서 유대인들을 원조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티투스는 말을 몰면서 적들과 교전(交戰)했으며, 그 뒤로 부하들이 평원을 가로질러 적들의 전열(前列)을 덮을 만큼 나아가며큰 소리를 지르면서 뒤따랐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겉보기에는그 힘이 증강된 것처럼 보였다. 한편 유대군은 공격이 질서 있고 격렬한 것에 당황했지만 잠시 동안은 로마군의 공격을 견뎌냈다.그러나 창에 찔리고 돌진하는 기병들에 의해 나가 떨어져서 쓰러지고 말 발굽 아래 유린당했다. 평원 사방에 시체로 뒤덮였을 때에야 그들은 사력을 다하여 도시로 줄행랑을 쳤다. 티투스는 많은 무리들이 몰려 있는 곳을 뚫고 나가 부하들의 맨 앞에 말을타고서 전열(前列)에서 싸웠는데, 서로 뒤엉켜 싸우는 무리에게달려들어 말발굽으로 짓밟았다. 즉 그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성벽으로 퇴각하는 것과 평지로 가는 것을 막았으나, 결국 유대군은 로마군의 숫자보다 우세하였기 때문에 길을 뚫고 나가 성읍으로 도망하였다.[㈜ 라이나흐가 제시한 것과 같이 Suet. \’Tit\’. 4에 기록된 사건은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발생했을 것이다 : Tarichaeas et Gam- alam(후자는 베스파시안에 의해 실제로 점령되었음)iv. 4이하)…in potestatem redegit, equo quadam acie sub feminibus amisso alteroque inscenso, cuius rector circa se dimicans occubuerat\”]
4. [로마군을 격려하는 티투스의 연설]
그러나 거기에는 또 한 차례 치뤄내야 할 무서운 싸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도시와 재산을 지키고자 원주민들은 처음부터 전쟁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패한 후로는 전보다 더욱 더 싸우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도시 외부에서 온 엄청난무리들은 더욱 더 전쟁을 부추길 뿐이었다. 그들은 서로 고함을 지르며 상대방을 비난하였다. 양쪽은 곧 한바탕 싸움을 일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티투스는 성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므로 이 소동에 관해 알고 이같이 말했다. \”동료들이여, 신이 유대인을 우리 손에 넘겨주려는 때가 바로 지금인데 왜 지체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승리를 거둡시다. 함성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우리 손을 막 빠져나간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있습니다. 우리들이 민첩하게 행동하면 저 도시는 우리들의 것입니다. 우리는 속히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큰 성과를 거두는데는 항상 위험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Soph. \’Electra\’ 945 ovra povnou toi cwri;\” oujde;n eujtucei\’의 회상은 그밖의 다른 곳에서 유사하게 의역하였다(전쟁.5권. 12:1(501) divca povnou katorqou\’n tiw\’n megavlwn o!udeniv;raj dion , 참).고대.3권. 2:4(58) tw\’ ponei\’n pavnta hptav. 우리는 이미 동일한 맥락에서 뽑은 다른 구절이 있다(전쟁.3권. 8:10(153), 11:4(212)).] 우리는 적들이 다시 화합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그들 모두에게 곧 화해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료들로부터 도움을 기다리지 맙시다. 우리 소수의 병력으로 엄청난 적을 물리친 후, 타인의 도움 없이도 도시를 장악했다는 더 큰 명예를 얻읍시다.\”
5. [티투스가 타리카이아를 장악하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말에 올라 군대를 이끌고 호수로 나갔다.그는 호수쪽으로 가서 맨 먼저 도시에 도착하고 부하들이 뒤따랐다.[㈜ 그 도시는 호수를 마주보고 있는 쪽으로는 성벽을 쌓지 않았다.(전쟁.3권. 10:1(464)).] 성을 수비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의 대담한 행동에 벌벌떨면서 아무도 그와 싸우려 하거나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그들은 초소를 버리고 도망했는데, 남은 예수의 패거리들은 시골로 도망하고 다른 사람들은 호수로 도망했다. 그런데 호수로도망한 자들은 그들을 공격하러 오는 적진에 뛰어든 셈이었다.그 중 일부는 배를 타고 오다 죽었고, 일부는 먼저 넓은 호수로빠져나간 동료에게 가려고 헤엄쳤지만 물에 빠져 죽어갔다.[㈜ 전쟁.3권. 10:1(469).] 그런데 성 안에서는 미처 도망하지 못한 외부인들과 저항하는 자들을 구별하지 않고 살육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주민들은 용서를 기대하며 전쟁을 언짢게 생각하고 있어서 무장하지않고 있었기 때문에 무차별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 결국 티투스는 실질적인 범죄자들이 살해당하자 그곳 원주민을 동정하여 살륙을 금지하도록 했다. 한편 호수로 피신한 사람들은 도시가 장악되자 가능한 한 적이 있는 곳에서 멀리 빠져나갔다.
6. 베스파시안이 도망자를 추적하기 위해 뗏목을 준비하다
그리하여 티투스는 그의 부친에게 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알리기 위해 일개 부대를 보냈다. 기대했던 대로 베스파시안은 그아들의 용기와 그 일이 성공한 것에 대해 대단히 기뻐하였다. 그것은 마치 전쟁에 있어서 어려운 고비를 넘긴 것처럼 보였다. 베스파시안은 곧 그곳을 복구하면서 도시를 둘러 수비를 견고케 하라고 명하고 도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망하는 자들은 누구나 죽이라고 지시했다. 다음 날 그는 호수로 내려와서 도망자를 추적할 뗏목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많은 노동자들은 풍부한 목재를 사용했으므로 곧 소함대(小艦隊)가 준비되었다.
7. 게네사렛 호수에 대해서
게네사렛(Gennesar)호수라는 이름은 인접한 지역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호수의 너비는 40퍼얼롱이고, 길이는 104퍼얼롱인데[㈜ 즉 16마일(길이 x 4.5마일(너비) ; 헬라어 stade는 \”퍼얼롱\”(furlong)으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606¾피트에 해당된다. 현재의 지도상 실척도는 약 12½마일 x 7마일(가장 넓은 지역에서)이다. 요세푸스는 평균폭으로 기록하는 경향이 있다(디베랴의 너비는 약 5마일임) ; 여하튼 그 길이는 과장되었고, 그리고 단어 pro;\” touvtoi\” ejtevrwn의 새 어귀를 삽입한 것으로 간주하여 100 stades)(=약11.5마일)로 줄일 어떤 권위서도 없다.] 이런 크기에도 불구하고 물맛이 좋아서 식수로도 그만이었다. 또한 두껍게 앙금이 깔려있어 늪의 물보다 맑았다. 이곳은 정말 깨끗하였는데 어느 곳이나 자갈과 모래가 깔려 있었다. 더욱이 물이 적당한 온도였을 때 물을 퍼 올리면 어떤 강물이나 샘물보다 더 적당한 온도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시원하다. 그 곳 주민들이 여름 밤에 늘 하던 대로 이 물을 공기 중에 방치해 두면 눈(雪)처럼 차게 된다. 이 호수에는 흔치않은 맛과 모양새가 다양한 어종들이 있다. 요단(Jordan)강은이 호수의 중간으로 지나 흐르는데 파니온(Panion)이 이 강의 근원지인 것이 분명하다.[㈜ 분봉왕 빌립(Philip the Tetrarch)이 파네아스(Paneas)<가이사랴 빌립보, 바니아스(Banias)>를 세운 근처에 있는 \’판의 동굴\'(Pan\’s grotto)(참).전쟁.1권. 21:3 (404)이하). 전쟁.2권. 9:1 (168).] 그런데 실제로는 피알레(Phiale)라고하는 못에서 발원하는데 이곳에서 보이진 않는 지하 수로를 통해 파니온까지 보내지는 것이다. 피알레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120 퍼얼롱 되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드라고닛(Tracho-nitis)으로 올라가는 길 오른쪽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피알레라고 하는[㈜ 그 의미는 \’움푹한 곳\’이다 연못은 아마도 가이사랴 빌립보의 남동쪽 약 4마일 떨어진 현재의 Birkel Ram일 것이다. 그러나 이 웅덩이와 파니온(Panion)사이의 어떤 관련의 가능성은 현재의 지질학자들에 의해 부정되었다.(라이나흐).] 못의 이름은 그 둥근 모양에서 나온 것이다. 그 곳의물은 빠지거나 흘러 넘치거나 함이 없이 항상 가장자리까지 그움푹한 못이 차있다. 이 요단강의 실제 근원지는 오랜 동안 알려지지 않았는데 드라고닛의 분봉왕(tetrarch)이었던 빌립(Philip)에 의해 사실로 증명되었다. 그는 피알레 못에 왕겨를 던져 넣었는데 파니온에 왕겨가 모아진 것을 보았다. 파니온은 옛사람들이 강의 근원지라고 믿었던 곳이다. 파니온의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은 왕실에서 아낌없이 돈을 들여 한층 더 아름다워졌다. 왜냐하면 그곳은 아그립바왕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꾸몄기 때문이다. 요단강은 물의 흐름이 보이는 동굴에서 시작하여 세메코니티스(Semechonitis)호수의[㈜ 현재의 Baheiret el Huleh(수11:5의 \”메롬(Merom)의 물가\”로 추정됨).] 늪과 소택지를 가로지르면서 120퍼얼롱을 더 지나 게네사렛 호수를 가로질러 율리아스(Julias) 도시 밑으로 흐른다.[㈜ 전쟁. 2권. 9:1(168).] 그리고 이 게네사렛 호수로부터 긴[㈜ 사막 지역을 굽이쳐 흐른 후에 아스탈티티스(Asphal-titis)호수에 사해.] 이른다.
8. 비옥한 게네사렛 지역
게네사렛 호수를 둘러싼 곳 역시 같은 이름을 가졌는데, 이 지역의 자연적 특성과 경관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가버나움(Capernaum)과 막달라(Magdala) 사이에 있는 호수의 북서쪽에 있는 게네사렛 평원.] 이 비옥한 토양에 맞지 않는 식물은 하나도 없으며, 농부들은 모든 종류의 식물을 경작한다. 정반대되는 특성을 지닌 다양한 수목에 맞춰공기의 온도는 적당하다. 호두나무는 아주 차가운 기후를 좋아하는 나무인데 이곳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며, 게다가 뜨거운 곳에서 잘 자라는 종려나무와 온화한 기후를 필요로 하는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까지도 잘 자란다. 이것은 자연이 군집하여 자란다는 의미에서 역작(力作, tour de force)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조화될 수 없는 수종(樹種)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데, 각 계절은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가공 수목(樹木)들이자랄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준다. 그런데 이 지역은 다양한 과일들을 생산해 내는 놀라운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이 과일들을 보존할 수도 있다. 또한 쉴 새 없이 열달 동안 과일 중에서 포도와 무화과를 먹을 수 있으며, 연중 내내 다른 과일들을 먹을수 있다. 온화한 기온의 복을 받은 것에 더하여 이 지역은 그 주민들이 가버나움(Capharnaum)이라고[㈜ 가버나움(Caper Naum : 나움(Nahum)의 마을)은 칸 민예(Kahn Minyeh)보다 북쪽에 있는 텔 훔(Tell Hum)중의 하나와 동일시 된다. 후자(텔훔)는 물이 없는 곳이다. (G.A.Smith). 위의 전자(칸 민예)는 평원과 수로로 통하여 있는 풍부한 샘의 근원이 된다.] 하는 샘에서 물을 공급받으므로 아주 비옥하였다. 어떤 이들은 이 샘을 나일강의 지류(支流)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알렉산드리아(Alexandria)호수에서[㈜ 말코티스 호수(the Lake Marcotis). 검고 윤이 나는 색깔에서 파생된 coracin은 뱀장어와 닮았다. \’Martial\’, xiii.85에서는 이것을 \”princeps Niliaci macelli\”라 부른다.] 발견되는 코라킨(coracin)과 비슷한 물고기가 이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게네사렛이란 이름을 가진 호수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30퍼얼롱 되는 길이와 20퍼얼롱 되는 너비로 펼쳐져 있다. 이상 기술한 것들이 이 지역의 특성이다.
9. 호수에서의 수전(水戰)에서 유대함대가 패하다
한편 베스파시안은 뗏목이 준비되자 호수에 떠 있는 도망자들에 대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많은 군대를 배에 태워 함대를 띄웠다. 이에 유대인들은 한데 모아졌지만 육지로 도망할 수 없었던것은 거기에 그들은 대항할 온갖 장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며 같은 조건으로 수전을 치를 수도 없었던 것이다. 또한 유대인들의 배들은 소형이며 약탈용이므로 로마군의 배와 상대가 되지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인의 배는 소수 인원으로 배치되었을 뿐인데 그나마 이들은 로마 적군들의 빽빽한 대열을 보고 접근하기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적군의 배 주위를 맴돌다가 가끔 거기에 접근하기도 하며 일정거리에서 로마군들에게 돌을 던져 뱃전을 긁게도 했고 가까운데서 공격하기도했다. 그런데 이런 태세로는 유대인 자신들만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돌을 던져도 로마군은 갑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부딪쳐서 덜컹거리는 소리만 낼 뿐이었지만 유대인들은 로마군 화살의 사정거리 안에 있었기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 한편그들이 접근하려 하면 공격을 시도해 보기도 전에 곧 공격을 받아 배와 함께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또한 유대인들이 전선(戰線)을 뚫을라치면 로마군들이 창을 가지고 접근하여 많은 유대인들을 죽였으며, 또 배에 올라 칼로 유대인을 죽이기도 했다.또 종종 뗏목이 접근하여 그들 중에 있는 적들을 사로잡고 배를포획하였다. 물에 빠진 사람이 물위로 떠오르면 재빨리 화살로 쏘거나 뗏목에 부딪히게 해서 죽였다. 또한 유대인들이 필사적으로 로마군의 배에 오르려 하면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의 목이나 손을 잘라버렸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호수 위에서 죽어갔고, 생존자들이 호숫가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로마군들은 그들의 배를 에워쌌다. 유대인들이 앞으로 몰려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창에 찔려 호수에서 죽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육지로 뛰어 내리다 거기서 로마인들에게 살해당했다. 이리하여 호수는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고, 시체로 뒤덮였다. 도망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다음날 거리는 엄청난 악취로 냄새가 가득했고 처참한 광경이 벌어졌다. 해변에는 파편들과 물에 불은 시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이 시체들은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었다. 유대인들을 슬픔 속에 몰아넣었던 대 파국은 주위 환경을 너무 처참하게 한 나머지 이렇게 만든 장본인들까지도 경악을 금치 못할 지경이었다. 이상이 수전(水戰)의 결과인데 사망자는 성읍의 수비 때 이전에 죽었던 사람까지 합하여 6,700명에 이르렀다.[㈜ 수전은 동원된 \”수많은 배\”에 의해 로마에서의 개선 행진으로 기념되었다(전쟁.7권. 5:5(147)). 라이나흐는 \’승리의 수전\'(水戰)이라는 전설을 낳게한 베스파시안과 그의 아들들의 동상을 언급한다.]
10. 타리카이아에 운집했던 반역자들의 운명
한편 이 싸움 후에 베스파시안은 타리카이아에서 군단사령관직에 복무하면서 호전적인 태세를 갖춘 이주자 무리들과 원주민들을 구별하여 이 이주자 무리들의 생명을 살려 줄 것인지에 관해 그의 부관들과 협의하였다. 그런데 그들을 풀어주는 것은 치명적이 될 것이라는 것에 만장일치로 뜻을 같이했다. 또한 한번 풀어주면 이 무리들은 절대 조용히 있지 않고 도망한 사람들과 같이 더욱 더 반역을 꾀하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베스파시안은 그들은 용서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자유를준 사람들을 살해하는 등의 행위로 자유를 남용할 뿐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해치울 만한 방법을 자문해 보았다. 그가 그곳에서 그들을 죽인다면 주민들과 심한 갈등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민들은 이 도시에서 도움을 구한 모든 도망자들까지도 학살한 것에 대해 이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베스파시안 자신이 그들을 풀어줄 수가 없다면 그가맹세한 후에 그들을 죽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의 부하들은 몇마디 말로써 주저하고 있는 베스파시안의 뜻을 꺾었다. 그들은 편리성과 타당성이 서로 상충(相衝)될 때는 편리성을 선호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에 따라 베스파시안은 불분명하게 이 이주자들을 풀어주었지만 이 유대인들에게 디베랴로 가는 한 길로만 도시를 떠나게 했다. 이 불쌍한 사람들은그들이 그렇게 바랐던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숨기지 않고 재산을가지고 지시해 준 길로 떠났다. 로마군들은 디베랴로 가는 모든 도로변에 늘어서서 이 길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한편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디베랴로 몰아넣고 성문을 닫았다. 베스파시안이 후에 뒤따라 왔고 유대인들은 경기장으로 이동되었다. 그때베스파시안은 노인과 무능한 사람들은 사형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그 수는 1,200명에 달했다. 그는 또한 청년들 중에서 가장 건장한 6,000명을 뽑아서 지협[㈜ 즉 헤롯이 직접 처음에 팠던 굴착 공사에 동원된 고립도의(해협).]에 있는 네로에게 보냈다. 베스파시안은 아그립바왕에게 선물한 자들을 제외하고 30,400명에게 이르는 나머지 무리들, 즉 그의 이전 영토의 백성들을 팔았다.또한 베스파시안은 이들은 아그립바왕의 처분에 맡겼는데 왕도역시 그들을 팔았다. 나머지 무리들은 주로 드라고닛(Tra-chonitis), 가울라니티스(Gaulanitis), 힙포(Hippo)와 가다라(Gadara)에서 온 주민들이었는데, 전쟁에 매력을 느낀 선동적인 사람들과 도망자들의 무리였다. 이들이 포로로 잡혀간 것은 고르피아이우스(Gorpiaeus)달 8일이었다.[㈜ (니이제의 계산에 따라)주후 67년 9월 2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