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권 제 2장 작은 도시인 기스칼라가 항복하고 요한은 그곳에서 예루살렘으로 도망한 것에 대하여

 


제 2 장



 작은 도시인 기스칼라가 항복하고 요한은 그곳에서 예루살렘으로 도망한 것에 대하여



1. 요한이 기스칼라에서 반란을 선동하다



 이제 소도시 기스칼라(Gischala)[㈜ 전쟁.4권. 1:1(2)위에 있는 각주 1)과 함께 자서. 11.(46)등. 전쟁.4권. 7:4(421), 9:10(556)을 보라.] 이외에는 갈릴리의 어떤곳도 점령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기스칼라의 주민들은 평화를 갈망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반적으로 농부들이고 항상 땅의 열매를 가꾸는데 주력해 왔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마을에도 이미 타락한 도둑의 무리가 많이 있었는데 이들이 기스칼라 주민들에게 침입했으며, 시민 지도자들은 이런 불안에 고심하였다. 레위(Levi)라는 사람의 아들인 요한(John)은 기스칼라를 반역으로 몰아넣으려고 이들을 부추겼다. 그는 대단히 교활한 성격의 협잡꾼이었다. 그는 큰 것을 기대하면서 그가 바라는 것을 이루는데 매우 주도면밀한 인물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가 최고 권력을 얻기위하여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참).살루스트(Sallust)의 타락한 반역자의 묘사로부터 인용된 병행귀와 함께 전쟁. 2권 585이하에서 언급된 요한의 성격 개략.] 기스칼라(Gischala)에 반역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다스림 아래 있었고 요한 때문에 주민들은 항복하러 사절을보낼 듯 했으나 요한 일당의 영향을 받아 이제는 로마인들이 전쟁태세를 하고 오는 것을 방어 자세로 기다렸다.



[티투스를 기스칼라로 보냄]



 베스파시안은 그들과 싸우기 위하여 1,000명의 기마병과 함께티투스를 보냈다. 그러나 제10군단은 스구도볼리(Scythopolis)까지 철수시키고 다른 두 군단을 이끌고 가이사랴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오는 동안 힘든 전투로 인해 그들을 쉬도록 허락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는 이 도시안에 있는 많은 물자들이 앞으로 그들이 수행해야 할 전쟁에 대비하여 몸과 마음을 증진시켜 줄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점령하려면 적지 않은 고통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였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왕이 사는 이 나라 전체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곳에서 전쟁이 나자 피난민들이 모두 이곳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도 예루살렘은 천혜의 요새일 뿐만 아니라 거기다 인공적으로 튼튼한 성벽까지 쌓아 방어태세를 완비하였기 때문에 베스파시안은 상당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되었다. 게다가 그곳 사람들은 아주 용감하고 대담해서 성벽이 없다 해도 그들은 정복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마치 격투사들이 훈련하는 것처럼 앞으로의 일을 위해 미리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돌보았다.



2. 티투스가 주민들에게 항복하도록 협박하다



 티투스가 기스갈라에 올라갔을 때 공격하면 쉽게 이 도시를 점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만일 그곳을 힘으로 정복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가차없이 병사들에 의해 죽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티투스는 이미 피를 흘리는 것에 진력이 났으며 죄를 지은 사람과 구분없이 죽었던 많은 사람들을 동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 도시가 항복하기를 오히려 바랬다.따라서 그는 악당들의 무리가 성벽에 가득찬 것을 보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즉 그는 그들이 모든 다른 도시가 로마인들에 의해 점령당한 후에 단지 그들만이 홀로 로마인들과싸우자고 버틸 때에, 그들이 무엇을 믿고 그러는지 이상하다고 말하였다. 더구나 그들이 점령한 도시들이 기스칼라보다 훨씬더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의 공격으로 점령당한 것을 보고도 이렇게 싸우자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로마인들의 제안을 믿었던 사람들이 그들의 재산을 안전하게 즐기고 있는 것을 보고 기스칼라인들도 항복한다면 그 전의 어떤 무례함도 생각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자유를 원한다면 모든 행동들은 용서받을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그러나그들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반항을 계속한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또한 그는 만일 그들이 이런 인간적인 제안과 선의의 언약에 응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로마군무기의 무차별 공격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로마의 병기들이 성벽을 쳤을 때 그들의 성벽은 단지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곧 느끼게 되리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는, 그들이 유일하게 믿는 것은 성벽 밖에 없는데 그것은 포로의 완고한 고집을 나타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3. 기스칼라의 요한이 티투스를 속이다



 기스칼라 주민들은 누구도 제안에 응할 수도 없었고 감히 성벽에 올라설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성벽들은 전부 강도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이들이 성문의 감시병으로, 항복의 조약을 제안하려고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을 막고 어떤 로마군 기병도 이 도시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문을 지키고 있었다.그러나 요한은 다음과 같은 회답을 티투스에 보냈다. 자신은 티투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만족하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강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유대의 율법을 고려해서 그들에게 한 주의 7일째인 안식일을 지키도록 티투스가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날은 군대를 움직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평화의 조약을 체결하는 것도 율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인들도 제7일에는 모든 노동이 금지되어 있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날에 율법을 어기도록 강요하는 사람도 강요당한 사람과 똑같이 죄를 짓게 되는 것을 로마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좀 지연된다해도 티투스에게 손해될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도망하는 것이외에 하룻밤에 무슨 음모를 꾸미겠으며, 또 도망하는 것도 가말라를 둘러 진을 치고 지킨다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또한 만약 유대인들이 그들의 율법을 지키게 된다면 유대인들은 그것을 크나큰 호의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호의를전혀 기대하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평화를 보장하려는 티투스에게도 그들이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율법을 지키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그에게도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런 답변으로 요한은 티투스를 속였다. 그는 제7일 안식일을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요한은 만약 이 도시가 즉시 점령된다면 살아날 가망은 전혀 없어 오로지 도망갈 기회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요한이 살아 남아서 그가 예루살렘의 파멸을 자초하게된 것은 하느님의 섭리였다. 마찬가지로 티투스가 지체하는 동안 속임수에 당한 것도 하느님의 섭리였으며, 그가 예루살렘에서 훨씬 떨어진 키다사(Cydasa)에[㈜ 아마도 2권 : 459에 있는 게데스-납달리(Kedesh-Naphtali),즉 케다사<KEdasa(Kadasa)>일 것이다.] 진을 치게 된 것도 하느님의 섭리였다. 이 키다사는 유대인들을 항상 미워하여 전쟁을 일으켰던 두로인들(Tyrians)이 사는 지중해 연안의 강한 도시였다. 이곳 역시 많은 주민들이 있었고 잘 요새화된 곳이었다. 따라서 그곳은, 유대민족과 싸우기에는 알맞은 장소였다.



 4.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도망치다



 요한이 밤에, 로마 수비대가 도시주위에 없는 것을 알고 그 기회에 같이 있었던 군대뿐 아니라 비 전투요원인 상당한 수의 주민들과 그들의 가족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도망갔다. 요한은비록 포로가 되거나 목숨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음에도 불구하고 20퍼얼롱까지는 많은 수의 어린이들과 여자들을 격려하여 데리고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요한은 그들을 남겨 두고 행진을 더 계속하였다.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슬프게 통곡하였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 가족들과 더 멀리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점점 더 그들의 적과 가까워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포로로 만들 적들이 바로 앞에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두려워했고, 급히 서둘러 도망할 때 나는 자신들의 소리에 마치 쫓아오는 적이 바로 그들 뒤에 있는 것처럼 놀라 되돌아 보았다. 이들 중 많은 숫자가 길을 잃어버렸고 남보다더 빨리 가려고 하는 아우성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짓밟히기도하였다. 따라서 여자와 어린이들이 비참하게 죽었다. 반면 그들가운데 약간은 용기를 내어 남편과 친척들을 부르며 찾아다니고, 앞서간 사람들에게 기다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애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먼저 도망간 자들처럼 목숨을 부지하려면 빨리도망가라는 요한의 명령에 따랐다. \”너희들은 할 수 있는 한 도망하였다가 만약 로마인들이 뒤로 남겨두었던 가족들을 붙잡는다면 너희들이 뒤쳐진 로마군인들에게 보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요한이 소리쳤다. 이렇게 하여 도망간 많은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각자가 있는 힘을 다하여 빨리 달아났다.



5. 티투스가 기스칼라에 입성하다



 다음날 일찍이 티투스가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 기스칼라성으로 왔다. 이에 사람들은 문을 열어주고 아이들과 부인을 데리고 그에게로 와서, 티투스가 그들의 은인이며 그 도시를 속박에서 해방시킨 자인 것처럼 그에게 기쁨의 환성을 보냈다. 그들은 또한 티투스에게 요한의 도망사실을 알리고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청했고, 들어와서 아직 남아있는 반란자들을 처벌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티투스는 사람들의 이러한 간청은 급선무라고 생각지 않고 즉시 요한을 추격하도록 일부 기마병들을 보냈다. 그러나 이들은 요한을 따라 잡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요한은 그 전에 이미 예루살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기마병들은 요한과 함께 도망쳤던 6,000명의 피난민들을 죽이고 거의3,000명의 여자와 어린이들을 사로잡아 데리고 왔다. 그러나 티투스는 자기를 속인 요한을 데려오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불쾌했다. 하지만 그는 대신 분풀이를 할 수 있는 그 도시의 악당들뿐 아니라 많은 수의 포로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티투스는 열렬한 환호 속에 이 도시로 들어왔다. 그가 병사들에게 이 도시가 전쟁에서 점령당했다는 표시로 성벽의 일부분을 무너뜨리라고 명령을 했다. 그리고는 이 도시를 소동케 한 사람들을 처형하기 보다는 오히려 위협으로써 진압하였다. 왜냐하면 만약 그가 벌받을 만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려고 시도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적개심과 다툼(반목:(反目) 때문에 죄없는 사람들을 고소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죄인과 함께 죄없는 자를 처벌하기 보다는 죄인만을 두려움속에 있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것이 아마도 받아야될 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중함을 배우게 되고, 용서받았을 때에는 그전에 저질렀던 무례한 일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반면 한번에 죽이는 것같은 처벌로는 결코, 다시 갱생시킬 수 없다. 티투스는 안전상 이 도시에 수비대를 배치했다. 이것을 통해 그는 반역을 하려는 사람들을 제어할 수있으며 자기가 떠나도 선량한 시민을 보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하여 모든 갈릴리는 점령당했다. 그 후 로마군들은 임박한 예루살렘 전투를 위해 엄청난 훈련을 하였다.



이 글은 카테고리: josephus, TN-josephus-C2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